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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1/29 13:29:44
Name   초공
Subject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 다만 가면에서 구하소서 (도서 증정 이벤트 3)
안녕하세요,
지난 2회 글에 댓글 달아주신 분 중 '자몽에이슬'님께 책을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쪽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이벤트는 총 5개의 글을 올릴 예정이고,
각 회마다 댓글 달아주신 분 중 추첨을 통해 한 분께 책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을 드립니다.

아래 글은 책을 살짝 짧게 편집한 글이고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

<다만 가면에서 구하소서> _《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115p

편집장은 모를 것이다. 내가 매달 원고를 낼 때마다 밑바닥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한다는 것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듯 ‘무심한 듯 시크하게’ 원고를 ‘툭’ 제출하지만 속으로는 ‘이번 달도 무사히 넘어가길’ 빌고 또 빈다.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줄 서 있는 아이돌을 만날 때도, 레드 카펫에서 내려온 배우를 만날 때도, 고결한 문장으로 심금을 울리는 소설가를 만날 때도 잡지사 에디터 탈을 쓰고 이들을 속이고 있다고 여긴다. 사실 나는 이런 유명인을 인터뷰할 만큼 유능하지 않은데 운이 좋아 기자가 됐고, 부족하지만 성실해서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감의 결여 정도로 여겼다. 혹은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무리 써 내려간 원고의 숫자가 늘어나고, 승진을 하고, 주변에서 칭찬을 받아도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를 읽고 깨달았다. 나에게는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 있었다.

1978년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명명한 이 증상은 “높은 성취의 증거에도 자신이 똑똑하거나 유능하거나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믿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남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뜻한다. 미셸 오바마, 나탈리 포트만, 엠마 왓슨 등 유명 인사들의 고백으로 더 유명해졌다. (“누가 또 날 영화에서 보고 싶어 하겠어? 난 연기할 줄도 모르는데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 고백은 자그마치 메릴 스트립의 것이다!) 그나저나 가면 증후군은 성공한 여성에게 주로 일어난다는데 증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 범주에 넣어도 될지 갑자기 망설여진다. 지긋지긋한 자기 검열이여!

성별 일반화에 유의해야 하지만 가면 증후군은 여자에게 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이 증상을 들여다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198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똑같은 부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자라 비슷한 시점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한 살 터울 오빠에게 나는 가면 증후군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조차 어렵다. 실제로 지인 남자 몇몇에게 이 증상을 털어놓았을 때 복사해서 붙여 넣기라도 한 듯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편집장이 너한테 뭐라고 하디?”

불행 중 다행인 건 가면 증후군의 불안한 심리가 커리어의 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자신을 못 믿으니,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며 업무에 만전을 기한다(재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한 시간은 수치화되기 때문에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근면 성실하다). 끊임없는 자기 검증과 노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장점은 여기까지다. 일단 스스로 너무 고통스럽고, 성과를 제 손으로 깎아내리는 불필요한 겸손은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망설임으로 도전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다. 자기 의심으로 엄청난 시간을 보내며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못해 일중독에 빠지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아예 노력 자체를 그만두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면이 벗겨지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자작극의 연출과 대본, 주인공은 모두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가면 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칭찬에는 그저 고맙다고 반응하라든가, 남과 비교하지 말라든가, 당신과 같은 레벨에 있는 남자들이 얻은 돈과 기회를 떠올려보라는 전문가가 알려주는 가면 증후군 극복법도 중요하지만 원인을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주변 사람을 먼저 돌보도록 사회화된 자신을 부정하지 말고 후배 여자들을 위해 이런 자리에 오래 혹은 자주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전환한다면 자기 확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안주연 전문의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여기라는 당부를 들려줬다.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로 강화된 걸 어떻게 개인이 혼자 정신 승리로 이겨냅니까?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님을 서로 얘기해주고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돼줘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만 성공하는 게 아님을 서로 보고 느끼며 학습한다면 좋아질 겁니다.” 이 원고를 읽고 편집장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별다른 지적 없이 무사히 실린다면, 그게 바로 ‘나의 쓸모’일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천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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