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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0/30 09:55:54 |
Name | 얼그레이 |
Subject | [조각글 1주차] 모난조각 |
[*알림*] 게시판을 도배하는 일이 발생하여 글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습니다! 그 밑에 대댓글로 직접적으로 평해주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Toby님의 말에 따라 앞으로 모난조각 글 모임의 평은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파일럿이라 시항착오가 많네요 8^8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의 가족관계가 드러나되, 작중 인물 간의 갈등(꼭 가족이 아니어도 됨)을 하나 이상 드러나는 글을 쓰시오. 개인글 링크입니다. [A님 글] 제목 : 누나네 아저씨 https://kongcha.net/?b=3&n=1382&c=20353 [B님 글] 제목 : 세기의 예술가 커플 https://kongcha.net/?b=3&n=1382&c=20354 [C님 글] 제목: '정의 옆 법관' https://kongcha.net/?b=3&n=1382&c=20355 [D님 글] 제목 : 팔자걸음 https://kongcha.net/?b=3&n=1382&c=20356 [E님 글] 제목 : 어머니와 융프라우와 컵라면 https://kongcha.net/?b=3&n=1382&c=20357 [F님 글] 제목 : 동균 https://kongcha.net/?b=3&n=1382&c=20358 [G님 글] 제목 : 일만 하고 놀지않으면 바보가 된다. https://kongcha.net/?b=3&n=1382&c=20359 [H님 글]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https://kongcha.net/?b=3&n=1382&c=20360 [I님 글] 제목 : 정식 https://kongcha.net/?b=3&n=1382&c=2036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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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글]
제목 : 누나네 아저씨
누나는 나보다 세살이 높았다. 누나 위로 누나가 하나 더 있었지만 어릴 때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아부지는 가끔 첫째 누나까지 있었으면 우째 먹고 살았으까 하며 막걸리를 드신다.
어릴때 누나는 엄마 대신이었다. 엄마는 날 놓구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난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아부지는 천상 농사꾼이셔서 집안 살림은 거의 누나가 다 했던것 같다.
누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평화시장에 가면 바느질해서 돈을 꽤 벌수 있... 더 보기
제목 : 누나네 아저씨
누나는 나보다 세살이 높았다. 누나 위로 누나가 하나 더 있었지만 어릴 때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아부지는 가끔 첫째 누나까지 있었으면 우째 먹고 살았으까 하며 막걸리를 드신다.
어릴때 누나는 엄마 대신이었다. 엄마는 날 놓구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난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아부지는 천상 농사꾼이셔서 집안 살림은 거의 누나가 다 했던것 같다.
누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평화시장에 가면 바느질해서 돈을 꽤 벌수 있... 더 보기
[A님 글]
제목 : 누나네 아저씨
누나는 나보다 세살이 높았다. 누나 위로 누나가 하나 더 있었지만 어릴 때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아부지는 가끔 첫째 누나까지 있었으면 우째 먹고 살았으까 하며 막걸리를 드신다.
어릴때 누나는 엄마 대신이었다. 엄마는 날 놓구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난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아부지는 천상 농사꾼이셔서 집안 살림은 거의 누나가 다 했던것 같다.
누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평화시장에 가면 바느질해서 돈을 꽤 벌수 있다고 했다. 누나는 언제나처럼 내게 아부지 몰래 삶은 계란을 챙겨주며 꼭 안아주었다. 나는 누나가 좋았다. 아부지는 누나가 서울로 간 뒤로 땅을 다 파셨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집에는 그럴싸한 트-랙타가 생겼다. 우리 마을 전체에 이게 있는 사람은 우리집 뿐이었다. 아부지는 일제 기계의 꼬부랑 글씨들을 열심히 읽으며 마당에서 몇 번이고 트-랙타를 돌렸다. 땅이 없어진 대신, 아부지는 저 기계를 갖고 이집 저집 일손을 돕는대신 돈을 버셨다. 그게 꽤 짭짤했다. 느그 아부지 우리집에서 일하드만! 같은 소리를 듣는건 조금 짜증났지만, 난 이 동네에서 주먹이 제일 세고 키도 컸다.
어느날 누나가 집에 내려왔다. 근 일년만의 일이었다. 누나는 한껏 예쁜 치마를 입고 얼굴은 새하야졌다. 가슴은 봉긋하게 솟고 단아한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것이 마을에서 누나만큼 이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 살이 쑥 빠져서, 누나는 예전보다 훨씬 여려보였다. 아부지는 누나가 가져온 나이롱 양말과 가죽장갑이 꽤 맘에 든 눈치였다. 누나는, 기차가 좋아서 금세 온다며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누나가 해준 밥은 너무 맛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냐는 말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밥만 입에 한 가득 쑤셔 넣었다.
이틀 뒤에 누나는 다시 서울로 떠났다. 아부지는 무뚝뚝하게 마을 바깥까지도 나오지 않으셨다. 나이롱 양말과 가죽장갑까지 사다줬는데. 나는 누나를 따라 역까지 걸었다. 누나랑 오랫만에 걷는 마을길이 기분좋아서 걸음이 폴짝폴짝 자꾸 앞으로 나갔다. 누나는 내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꾸 공부 얘기만 하니 기분이 뾰루퉁해질 것 같았는데 역앞에서 누나가 무려 200원이나하는 큰 돈을 쥐여주며, 또 한번 꽉 안아주었다. 나도 누나를 꽉 안았는데 누나의 몸이 보기보다 너무 앙상에서 흠칫 하고 놀랐다. 누나야, 서울에서 밥 안묵고 지내? 누난 별 걱정을 다한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나가 서울로 올라간 후, 나는 누나가 준 200원과 틈틈히 마을에서 산나무가 필요한 분들에게 나무를 잔뜩 주워와 오원, 십원씩 받아서 370원을 모았다. 아부지께는 서울에 간단 소린 안하고 친구네 집에서 며칠 있으면서 학교에 왔다갔다 한다고 했더니 별일이라는듯 한번 쳐다보시고는 말았다. 그렇게 몰래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무래도 누나가 너무 말랐던게 마음이 안좋았다. 이 돈으로 서울 가면 누나에게 맛있는걸 사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서울에 간다는 말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너 그러다 큰일난다며 다들 말리기 바빴지만 누나도 있는데 별 일 있겠냐며 들뜬 마음으로 기차에 탔다. 동대문 평화시장.. 동대문 평화시장..
서울역에서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동대문 평화시장에 가야한다고 얘기했다. 내심 서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하고 놀랐지만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문득 서울에서는 사람 잘못 만났다가는 큰일치루고 있는 돈도 다 털린다는 말을 해준 형식이가 떠올랐다. 에이 자식, 괜시리 오금이 시리다. 다행히도 한 아주머니께서 버스를 알려주시고 자기도 평화시장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였다. 서울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내심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평화시장에 도착했다. 나는 동네 시장쯤 될 거라 생각하고 내리기만 하면 누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대체 어디서 누나를 찾아야 될지 몰라서 시장을 계속 돌아다녔다. 두번이나 돌았지만 누나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어서 시장사람들에게 누나의 이름을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도 없었다. 슬슬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짜장면을 한 그릇 먹었더니 살 것 같았다. 나는 주인 아저씨에게 누나 이름을 물으며 바느질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묻자, 아 누나가 시다나 재단 하는갑지? 하며 저쪽 길 건너 공단에 가보라고 했다.
길 건너 공단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창문도 열려있지 않고 굴뚝 몇개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건물들. 나는 여기서 누나가 일한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안좋아졌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나는 이 건물 어딘가에서 누나가 일이 끝나면 나올거라는 생각에 길 모퉁이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얘, 얘!\"
잠깐 잠이 들었을까, 생소한 여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으악 하고 뒤로 데굴 굴렀다. 뭘 그렇게 놀래니? 어느새 해는 완전히 사라지고 깜깜했다.
\"아 어..\"
덜컥 겁이났다. 누나가 혹시 먼저 가버린걸까?
\"여긴 무슨일이야? 너 같은 애들은 이쪽에 올 일이 없는데.\"
\"아 저기.. 저 누나를 찾으러..\"
\"누나? 이름이 뭔데?\"
\"박연숙..\"
그러자 그 여자는 \"어머!\" 하고 놀라더니, 어쩜좋아 어쩜좋아 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니가 연숙이 동생이니? 아이구.. 어쩌다 여길와 여길..\"
\"누..누날 아세요?\"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 휙휙 돌아보고는 누나한테 가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저..저기요 잠깐..\"
\"여기 더 있으면 안돼. 빨리.\"
나는 그렇게 생판 모르는 여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몇 개의 건물을 끼고 돌아 허름한 문짝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누나가 죽은듯 누워 있었다.
\"누나!\"
나도 모르게 누나에게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어떤 아저씨가 날 막았다.
\"뭐야!!\"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힘으로 아저씨를 밀쳐내려 했지만, 아저씨는 훨씬 더 힘이 셌다. 놔! 놓으라고! 니들 뭐야! 그러자 날 여기까지 데려온 여자가 그 아저씨를 툭툭 친다. \"태일씨, 연숙이 동생이야.\" 그제서야 아저씨는 날 놔줬고, 나는 있는 힘껏 그 아저씨의 배를 머리로 들이 받아버렸다.
\"어이쿠!\"
후다닥 누나에게 달려간뒤 씩씩대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러자 누나가 신음소리를 내며 비척인다. 나도 모르게 누나를 잡고 흔들었다. 누나야! 누나야! 흐트러진 이불 사이로 누나의 맨살이 드러났다. 거무죽죽한 피멍이 여러군데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누나의 이불을 확 제쳤다. 이제보니 누나는 입술도 파랗고, 온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쇄골은 푹 패였고, 하얘서 이뻐졌다는 누나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갈비가 앙상하게 드러난 누나를 부둥켜안고, 누나야. 누나야. 하고 울었다.
\"동생..\"
아까의 아저씨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거칠게 그 아저씨를 뿌리치고 다가오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우리 누나 누가 이렇게 그랬어! 누나를 부둥켜 안고 씩씩대면서도 닭똥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여자는 희선이라는 누나였다. 그녀는 자신을 누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며, 누나가 많이 아파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렇게 몇 분을 씩씩대고 있었을까, 뼈마디마디가 드러난 누나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만..\"
\"누나야!\"
누나는 힘겹게 입을 뗐다. 왜 서울에 오고 그래. 그러는 누나는 왜 요모양 요꼴이여! 누나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힘겹게 숨을 몰아쉬더니, 날 슬그머니 밀어낸다.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누나의 팔이 가슴팍에 닿았지만, 그 어떤 천하장사보다도 강하게 밀려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는 머리맡에 있던 옷을 천천히 걸치고는, 머리를 몇 번 매만진 뒤 겨우겨우 벽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그런 누나의 느릿느릿한 몸동작이 너무 슬퍼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목 : 누나네 아저씨
누나는 나보다 세살이 높았다. 누나 위로 누나가 하나 더 있었지만 어릴 때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아부지는 가끔 첫째 누나까지 있었으면 우째 먹고 살았으까 하며 막걸리를 드신다.
어릴때 누나는 엄마 대신이었다. 엄마는 날 놓구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난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아부지는 천상 농사꾼이셔서 집안 살림은 거의 누나가 다 했던것 같다.
누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평화시장에 가면 바느질해서 돈을 꽤 벌수 있다고 했다. 누나는 언제나처럼 내게 아부지 몰래 삶은 계란을 챙겨주며 꼭 안아주었다. 나는 누나가 좋았다. 아부지는 누나가 서울로 간 뒤로 땅을 다 파셨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집에는 그럴싸한 트-랙타가 생겼다. 우리 마을 전체에 이게 있는 사람은 우리집 뿐이었다. 아부지는 일제 기계의 꼬부랑 글씨들을 열심히 읽으며 마당에서 몇 번이고 트-랙타를 돌렸다. 땅이 없어진 대신, 아부지는 저 기계를 갖고 이집 저집 일손을 돕는대신 돈을 버셨다. 그게 꽤 짭짤했다. 느그 아부지 우리집에서 일하드만! 같은 소리를 듣는건 조금 짜증났지만, 난 이 동네에서 주먹이 제일 세고 키도 컸다.
어느날 누나가 집에 내려왔다. 근 일년만의 일이었다. 누나는 한껏 예쁜 치마를 입고 얼굴은 새하야졌다. 가슴은 봉긋하게 솟고 단아한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것이 마을에서 누나만큼 이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 살이 쑥 빠져서, 누나는 예전보다 훨씬 여려보였다. 아부지는 누나가 가져온 나이롱 양말과 가죽장갑이 꽤 맘에 든 눈치였다. 누나는, 기차가 좋아서 금세 온다며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누나가 해준 밥은 너무 맛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냐는 말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밥만 입에 한 가득 쑤셔 넣었다.
이틀 뒤에 누나는 다시 서울로 떠났다. 아부지는 무뚝뚝하게 마을 바깥까지도 나오지 않으셨다. 나이롱 양말과 가죽장갑까지 사다줬는데. 나는 누나를 따라 역까지 걸었다. 누나랑 오랫만에 걷는 마을길이 기분좋아서 걸음이 폴짝폴짝 자꾸 앞으로 나갔다. 누나는 내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꾸 공부 얘기만 하니 기분이 뾰루퉁해질 것 같았는데 역앞에서 누나가 무려 200원이나하는 큰 돈을 쥐여주며, 또 한번 꽉 안아주었다. 나도 누나를 꽉 안았는데 누나의 몸이 보기보다 너무 앙상에서 흠칫 하고 놀랐다. 누나야, 서울에서 밥 안묵고 지내? 누난 별 걱정을 다한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나가 서울로 올라간 후, 나는 누나가 준 200원과 틈틈히 마을에서 산나무가 필요한 분들에게 나무를 잔뜩 주워와 오원, 십원씩 받아서 370원을 모았다. 아부지께는 서울에 간단 소린 안하고 친구네 집에서 며칠 있으면서 학교에 왔다갔다 한다고 했더니 별일이라는듯 한번 쳐다보시고는 말았다. 그렇게 몰래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무래도 누나가 너무 말랐던게 마음이 안좋았다. 이 돈으로 서울 가면 누나에게 맛있는걸 사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서울에 간다는 말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너 그러다 큰일난다며 다들 말리기 바빴지만 누나도 있는데 별 일 있겠냐며 들뜬 마음으로 기차에 탔다. 동대문 평화시장.. 동대문 평화시장..
서울역에서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동대문 평화시장에 가야한다고 얘기했다. 내심 서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하고 놀랐지만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문득 서울에서는 사람 잘못 만났다가는 큰일치루고 있는 돈도 다 털린다는 말을 해준 형식이가 떠올랐다. 에이 자식, 괜시리 오금이 시리다. 다행히도 한 아주머니께서 버스를 알려주시고 자기도 평화시장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였다. 서울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내심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평화시장에 도착했다. 나는 동네 시장쯤 될 거라 생각하고 내리기만 하면 누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대체 어디서 누나를 찾아야 될지 몰라서 시장을 계속 돌아다녔다. 두번이나 돌았지만 누나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어서 시장사람들에게 누나의 이름을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도 없었다. 슬슬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짜장면을 한 그릇 먹었더니 살 것 같았다. 나는 주인 아저씨에게 누나 이름을 물으며 바느질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묻자, 아 누나가 시다나 재단 하는갑지? 하며 저쪽 길 건너 공단에 가보라고 했다.
길 건너 공단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창문도 열려있지 않고 굴뚝 몇개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건물들. 나는 여기서 누나가 일한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안좋아졌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나는 이 건물 어딘가에서 누나가 일이 끝나면 나올거라는 생각에 길 모퉁이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얘, 얘!\"
잠깐 잠이 들었을까, 생소한 여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으악 하고 뒤로 데굴 굴렀다. 뭘 그렇게 놀래니? 어느새 해는 완전히 사라지고 깜깜했다.
\"아 어..\"
덜컥 겁이났다. 누나가 혹시 먼저 가버린걸까?
\"여긴 무슨일이야? 너 같은 애들은 이쪽에 올 일이 없는데.\"
\"아 저기.. 저 누나를 찾으러..\"
\"누나? 이름이 뭔데?\"
\"박연숙..\"
그러자 그 여자는 \"어머!\" 하고 놀라더니, 어쩜좋아 어쩜좋아 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니가 연숙이 동생이니? 아이구.. 어쩌다 여길와 여길..\"
\"누..누날 아세요?\"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 휙휙 돌아보고는 누나한테 가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저..저기요 잠깐..\"
\"여기 더 있으면 안돼. 빨리.\"
나는 그렇게 생판 모르는 여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몇 개의 건물을 끼고 돌아 허름한 문짝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누나가 죽은듯 누워 있었다.
\"누나!\"
나도 모르게 누나에게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어떤 아저씨가 날 막았다.
\"뭐야!!\"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힘으로 아저씨를 밀쳐내려 했지만, 아저씨는 훨씬 더 힘이 셌다. 놔! 놓으라고! 니들 뭐야! 그러자 날 여기까지 데려온 여자가 그 아저씨를 툭툭 친다. \"태일씨, 연숙이 동생이야.\" 그제서야 아저씨는 날 놔줬고, 나는 있는 힘껏 그 아저씨의 배를 머리로 들이 받아버렸다.
\"어이쿠!\"
후다닥 누나에게 달려간뒤 씩씩대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러자 누나가 신음소리를 내며 비척인다. 나도 모르게 누나를 잡고 흔들었다. 누나야! 누나야! 흐트러진 이불 사이로 누나의 맨살이 드러났다. 거무죽죽한 피멍이 여러군데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누나의 이불을 확 제쳤다. 이제보니 누나는 입술도 파랗고, 온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쇄골은 푹 패였고, 하얘서 이뻐졌다는 누나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갈비가 앙상하게 드러난 누나를 부둥켜안고, 누나야. 누나야. 하고 울었다.
\"동생..\"
아까의 아저씨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거칠게 그 아저씨를 뿌리치고 다가오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우리 누나 누가 이렇게 그랬어! 누나를 부둥켜 안고 씩씩대면서도 닭똥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여자는 희선이라는 누나였다. 그녀는 자신을 누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며, 누나가 많이 아파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렇게 몇 분을 씩씩대고 있었을까, 뼈마디마디가 드러난 누나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만..\"
\"누나야!\"
누나는 힘겹게 입을 뗐다. 왜 서울에 오고 그래. 그러는 누나는 왜 요모양 요꼴이여! 누나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힘겹게 숨을 몰아쉬더니, 날 슬그머니 밀어낸다.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누나의 팔이 가슴팍에 닿았지만, 그 어떤 천하장사보다도 강하게 밀려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는 머리맡에 있던 옷을 천천히 걸치고는, 머리를 몇 번 매만진 뒤 겨우겨우 벽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그런 누나의 느릿느릿한 몸동작이 너무 슬퍼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B님 글]
제목 : 세기의 예술가 커플
“야!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참다 못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른 곳도 아닌 거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치다니. 지나 가던 사람 중 몇몇이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터져나온 큰 소리에 놀란 시선이다.
“무슨 이야기야? 너무하다니! 우리 사이에,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그게 내가 잘못한거야? 어? 오빠한테 못 할 말 한거냐구!”
그녀도 나에게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보기
제목 : 세기의 예술가 커플
“야!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참다 못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른 곳도 아닌 거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치다니. 지나 가던 사람 중 몇몇이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터져나온 큰 소리에 놀란 시선이다.
“무슨 이야기야? 너무하다니! 우리 사이에,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그게 내가 잘못한거야? 어? 오빠한테 못 할 말 한거냐구!”
그녀도 나에게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보기
[B님 글]
제목 : 세기의 예술가 커플
“야!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참다 못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른 곳도 아닌 거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치다니. 지나 가던 사람 중 몇몇이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터져나온 큰 소리에 놀란 시선이다.
“무슨 이야기야? 너무하다니! 우리 사이에,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그게 내가 잘못한거야? 어? 오빠한테 못 할 말 한거냐구!”
그녀도 나에게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거리에서 싸우는 커플을 볼 일이 잘 없어서 그러리라.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니까.
“아무리 보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면서 봐야 해? 내가 회사 처음 갈 때 분명히 말했잖아. 초반에 적응하느라 힘들꺼니 평일은 가능하면 안 만나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해보지만 처음 버럭한 것에 비해 말에 힘이 없다. 말하면서 후회한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허점이 딱 보이는데.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서로 시간 안 맞아서 못 보고 오늘 겨우 봤는데, 이렇게 피곤하다고 하면 난 뭐야? 뭐가 되는거야? 그리고 오빠도 오늘 만나자는 데 동의했잖아. 내가 혼자 보고 싶다고 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 사실 오늘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보고 싶다는 그녀의 문자에 나도 무언가 마음이 애틋해져버렸다. 끝나고 나서 보자고 답문을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는데 계속해서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오는대로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상사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미안했다. 까페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다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그 때 그녀는 그런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자기를 아껴주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정. 그래서 나에게 고스란히 화가 난 그 표정.
“……”
순간 대응할 말이 생각 안 났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 걸 내가 왜 모르겠나. 내가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재차 그녀가 나를 몰아붙인다.
“나 보고 싶단 말 진짜 참고 참아서 한 거잖아. 오빠도 알잖아. 내가 요새 그런 말 안한거. 보고 싶은 거 오빠 생각해서 참았고, 보고싶다고 말하려던 거 오래 참아왔단 말야. 오빠 생각해서. 하지만 오늘은 보고 싶었단 말야. 그래서 보고 싶다고 말한거고 오빠도 보자고 그랬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어?”
“……”
말이 안 나온다. 갑자기 이렇게 공격을 당하면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나로선 답을 잘 못한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왜 다른 남자들처럼 나 보러 못 와? 왜 맨날 내가 와야해? 나도 노는 거 아니고 공부하고 모임하고 바쁜 거 알잖아!”
순간 눈 앞이 핑-도는 느낌이 나면서 어지러워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지럽다. 방금 들은 말이 진짜인가 싶다. 내가 그녀를 만나온 시간 중 최초의 다툼을 하고 나서 그녀에게 부탁을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거나 남과 비교당하면 정말 화를 내거든. 그게 예전 선사시대부터 능력이 안되면 여자와 짝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거라서 그래. 그러니 나를 만나는 동안 그런 이야기는 최대한 안 해줬으면 좋겠어.’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는 설명을 해주었었다. 남자의 능력은 그렇게 의심받거나 비교당하면 안되는 거라고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나는 정말 화가 나면 도리어 마음이 가라앉으며 말투가 침착해지는 버릇이 있다. 침착한 어조와 갑자기 논리정연하게 팩트를 바탕으로 상대를 몰아붙인다. 지금 나는 나도 모르게 말투가 침착해졌다. 하지만 눈에 분노가 실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눈은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뭐가. 보고 싶은데 왜 안 보러 오냐는 말. 내가 못할 말이야?”
그녀는 나를 보며 대답한다. 살짝 내 생각을 알아차린걸까? 아니면 아는데 모른 척 하는 걸까?
“도대체 나한테 그런 말 왜 한거야. 왜 다른 남자들처럼? 내가 그런 말 하지 말아달라고 했어, 안 했어. 그런 비교 당하는 말 내가 싫어한다고 정말 싫다고 말했잖아. 말해봐. 그 말 왜 한거야.”
말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게 느껴진다. 그 분노를 눈에 가득 담은 채 그녀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말투는 침착하다.
“아… 그거… 미안해. 내가 말을 잘못했어”
그녀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에 한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잘못하고 미안하다면 다야? 나는 그럼 뭐가 되는데. 그렇게 막 헤집어 놓은 내 마음은 뭐가 되는데?”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쉰다. 보고 싶었고 너무 그리워한 마음과 지금 자기 마음대로 안 해주어 화가 난 마음이 부딪힌 걸까. 그 사이에서 자신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는걸까. 나도 그녀가 한 말에 대한 미움과 그녀가 너무 좋은 그런 마음이 부딪히는 것처럼.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나 갈께… 우리 오늘은 진짜 아닌 거 같아… 나 집에 간다.”
그녀는 어렵게 입을 떼더니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버스를 타러 간다. 나는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 보았다. 돌아볼꺼라는 기대를 일말 가진 채. 하지만 돌아설 기세가 아니다. 아마 그녀는 내가 그녀를 붙잡아 주길 기대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가서 그녀를 잡아서 세우지 않을 거다.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오늘은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돌아서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나 또한 돌아서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아까 지었던 분노에 가득찬 눈을 가진 채.
한달 전, 우리는 까페에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쓴 책을 같이 읽었다. 그의 책 서문에는 아내 조지아 오키프를 만나서 며칠 만에 반해서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양 즐겁게 이야기 하고 평생 동안 그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평생동안 두 사람이 인생의 그리고 본인 분야의 동반자로서 살았다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마치 우리 사이가 이 예술가 커플 같다며 스스로를 ‘세기의 예술가 커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세기의 예술가 커플’은 크게 싸웠다. 그것도 거리 한복판에서. 지금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아 뒤돌아볼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질 수 없다. 항상 내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을 했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자기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돌아서 가야만 한다. 돌아보면 안된다. 을지로입구역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핸드폰 진동이 온다. 그녀의 전화인가 내심 기대를 했지만 화면을 보니 어머니 전화다. 전원 버튼을 눌러 통화 거부를 했다. 지금은 받을 수 없다. 계단을 걸어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라고 널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나라고 네가 그립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의 무게를 아직 제대로 짊어지지를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너를 보는 것과 회사라는 현실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되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라니. 갑자기 눈앞이 흐려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지하철 게이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서 흐려진 눈 앞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한참 서 있던 그 날 저녁이었다.
제목 : 세기의 예술가 커플
“야!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참다 못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른 곳도 아닌 거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치다니. 지나 가던 사람 중 몇몇이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터져나온 큰 소리에 놀란 시선이다.
“무슨 이야기야? 너무하다니! 우리 사이에,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그게 내가 잘못한거야? 어? 오빠한테 못 할 말 한거냐구!”
그녀도 나에게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거리에서 싸우는 커플을 볼 일이 잘 없어서 그러리라.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니까.
“아무리 보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면서 봐야 해? 내가 회사 처음 갈 때 분명히 말했잖아. 초반에 적응하느라 힘들꺼니 평일은 가능하면 안 만나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해보지만 처음 버럭한 것에 비해 말에 힘이 없다. 말하면서 후회한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허점이 딱 보이는데.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서로 시간 안 맞아서 못 보고 오늘 겨우 봤는데, 이렇게 피곤하다고 하면 난 뭐야? 뭐가 되는거야? 그리고 오빠도 오늘 만나자는 데 동의했잖아. 내가 혼자 보고 싶다고 와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 사실 오늘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보고 싶다는 그녀의 문자에 나도 무언가 마음이 애틋해져버렸다. 끝나고 나서 보자고 답문을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는데 계속해서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오는대로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상사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미안했다. 까페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다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그 때 그녀는 그런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자기를 아껴주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정. 그래서 나에게 고스란히 화가 난 그 표정.
“……”
순간 대응할 말이 생각 안 났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 걸 내가 왜 모르겠나. 내가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재차 그녀가 나를 몰아붙인다.
“나 보고 싶단 말 진짜 참고 참아서 한 거잖아. 오빠도 알잖아. 내가 요새 그런 말 안한거. 보고 싶은 거 오빠 생각해서 참았고, 보고싶다고 말하려던 거 오래 참아왔단 말야. 오빠 생각해서. 하지만 오늘은 보고 싶었단 말야. 그래서 보고 싶다고 말한거고 오빠도 보자고 그랬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어?”
“……”
말이 안 나온다. 갑자기 이렇게 공격을 당하면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나로선 답을 잘 못한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왜 다른 남자들처럼 나 보러 못 와? 왜 맨날 내가 와야해? 나도 노는 거 아니고 공부하고 모임하고 바쁜 거 알잖아!”
순간 눈 앞이 핑-도는 느낌이 나면서 어지러워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지럽다. 방금 들은 말이 진짜인가 싶다. 내가 그녀를 만나온 시간 중 최초의 다툼을 하고 나서 그녀에게 부탁을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거나 남과 비교당하면 정말 화를 내거든. 그게 예전 선사시대부터 능력이 안되면 여자와 짝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거라서 그래. 그러니 나를 만나는 동안 그런 이야기는 최대한 안 해줬으면 좋겠어.’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는 설명을 해주었었다. 남자의 능력은 그렇게 의심받거나 비교당하면 안되는 거라고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나는 정말 화가 나면 도리어 마음이 가라앉으며 말투가 침착해지는 버릇이 있다. 침착한 어조와 갑자기 논리정연하게 팩트를 바탕으로 상대를 몰아붙인다. 지금 나는 나도 모르게 말투가 침착해졌다. 하지만 눈에 분노가 실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눈은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뭐가. 보고 싶은데 왜 안 보러 오냐는 말. 내가 못할 말이야?”
그녀는 나를 보며 대답한다. 살짝 내 생각을 알아차린걸까? 아니면 아는데 모른 척 하는 걸까?
“도대체 나한테 그런 말 왜 한거야. 왜 다른 남자들처럼? 내가 그런 말 하지 말아달라고 했어, 안 했어. 그런 비교 당하는 말 내가 싫어한다고 정말 싫다고 말했잖아. 말해봐. 그 말 왜 한거야.”
말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게 느껴진다. 그 분노를 눈에 가득 담은 채 그녀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말투는 침착하다.
“아… 그거… 미안해. 내가 말을 잘못했어”
그녀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에 한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잘못하고 미안하다면 다야? 나는 그럼 뭐가 되는데. 그렇게 막 헤집어 놓은 내 마음은 뭐가 되는데?”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쉰다. 보고 싶었고 너무 그리워한 마음과 지금 자기 마음대로 안 해주어 화가 난 마음이 부딪힌 걸까. 그 사이에서 자신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는걸까. 나도 그녀가 한 말에 대한 미움과 그녀가 너무 좋은 그런 마음이 부딪히는 것처럼.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나 갈께… 우리 오늘은 진짜 아닌 거 같아… 나 집에 간다.”
그녀는 어렵게 입을 떼더니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버스를 타러 간다. 나는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 보았다. 돌아볼꺼라는 기대를 일말 가진 채. 하지만 돌아설 기세가 아니다. 아마 그녀는 내가 그녀를 붙잡아 주길 기대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가서 그녀를 잡아서 세우지 않을 거다.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오늘은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돌아서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나 또한 돌아서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아까 지었던 분노에 가득찬 눈을 가진 채.
한달 전, 우리는 까페에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쓴 책을 같이 읽었다. 그의 책 서문에는 아내 조지아 오키프를 만나서 며칠 만에 반해서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양 즐겁게 이야기 하고 평생 동안 그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평생동안 두 사람이 인생의 그리고 본인 분야의 동반자로서 살았다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마치 우리 사이가 이 예술가 커플 같다며 스스로를 ‘세기의 예술가 커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세기의 예술가 커플’은 크게 싸웠다. 그것도 거리 한복판에서. 지금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아 뒤돌아볼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질 수 없다. 항상 내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을 했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자기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돌아서 가야만 한다. 돌아보면 안된다. 을지로입구역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핸드폰 진동이 온다. 그녀의 전화인가 내심 기대를 했지만 화면을 보니 어머니 전화다. 전원 버튼을 눌러 통화 거부를 했다. 지금은 받을 수 없다. 계단을 걸어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라고 널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나라고 네가 그립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의 무게를 아직 제대로 짊어지지를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너를 보는 것과 회사라는 현실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되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라니. 갑자기 눈앞이 흐려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지하철 게이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서 흐려진 눈 앞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한참 서 있던 그 날 저녁이었다.
[C님 글]
제목: \'정의 옆 법관\'
창밖 어둠이 짙다. 쇠창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은 빗소리만 못하고, 이내 한편 바특한 지근거리의 머리, 또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 산산이 부서지기 일쑤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그렇게 나는 멀어진 걸까.
“허허.”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천장이 세는지 바닥 한 자락에 답지 않은 웅덩이가 보인다. 대번에 앉기도 힘들어 한참을 웅크리다 간신히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것은 속죄이자 내 모든 과오의 응당한... 더 보기
제목: \'정의 옆 법관\'
창밖 어둠이 짙다. 쇠창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은 빗소리만 못하고, 이내 한편 바특한 지근거리의 머리, 또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 산산이 부서지기 일쑤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그렇게 나는 멀어진 걸까.
“허허.”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천장이 세는지 바닥 한 자락에 답지 않은 웅덩이가 보인다. 대번에 앉기도 힘들어 한참을 웅크리다 간신히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것은 속죄이자 내 모든 과오의 응당한... 더 보기
[C님 글]
제목: \'정의 옆 법관\'
창밖 어둠이 짙다. 쇠창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은 빗소리만 못하고, 이내 한편 바특한 지근거리의 머리, 또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 산산이 부서지기 일쑤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그렇게 나는 멀어진 걸까.
“허허.”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천장이 세는지 바닥 한 자락에 답지 않은 웅덩이가 보인다. 대번에 앉기도 힘들어 한참을 웅크리다 간신히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것은 속죄이자 내 모든 과오의 응당한 대가이리라. 어느새 고인 눈물이 한 움큼 웅덩이에 닿았다.
그곳에는 휘청거리는 상처투성이 남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낮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얼핏 낯에 익은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할 틈도 없이 그는 말을 이어왔다.
“선배님 사건에 사람들 관심도 많고, 반민특위 쪽 검사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뭐라 더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충분했다. 어쩌면 이 어둠 속에 내팽개칠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아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두 번 다시 빛을 보는 일은 이 세상에서는 없어야할 일이다. 다만, 어느 가장자리의 뉘엿한 몸이 시리도록 희다.
“저기 저, 매국노 놈 보게!”
누군가 무엇을 던졌고, 몸에 닿은 그것은 산산이 부서졌다. 돌아보려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제지하는 사람도 있는 듯했지만 소란은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귓가에 자리 잡은 벌레는 도통 떠날 생각이 없는가보다.
“정숙, 정숙하십시오.”
시작은 미숙했고, 끝은 혼란했지만 그런대로 엄숙한 권고였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보인다. 법대 위의 검은 법복자락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차라리 덧씌운 의사봉 소리가 더 위엄찰 일이었다. 아무렴 법관이란 놈이 저리 심지가 약해서야 쓰겠는가. 걱정이 앞섰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의심하되 주어진 사실과 네 판단을 믿어라.”
어느 날이고 한참을 숙고한 내 말이건만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물론 대답에 무슨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지나치려는데 아들이란 놈의 말이 참 되바라졌다.
“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겁니다.”
“허허.”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그래도 축하할 일이지 않는가. 언제 철드나 걱정했던 놈도 이제는 어엿한 법관이었다.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 볼 면이 조금이라도 서는 듯하다.
“아이고,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아낙네의 악다구니는 듣고 있기가 매우 곤란했다. 이미 실질심사는 끝이 났고, 종국판결만 남은 상태다. 더군다나 상대는 일본인이었다.사실 애초에 승소라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여보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건너 알음알음으로 인사하던 변호사라던 후배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죄송하다는 듯 여인을 나무랐다. 그 광경이 썩 마음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죽어요. 아이고, 안 됩니다.”
동요는 짧았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그 정의 옆에 선 법관이었다.
“선고하겠습니다.”
마음은 굳혔지만 목소리는 나지막할 수밖에 없었다.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의사봉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여전히 좌우 시선이 따갑다. 아마 따로 불려가 한참을 욕먹을 일일 것이다. 어쩌면 징계가 있을 일일지도 몰랐다. 결국 아마 그 시야는 법복보다 더 까마득했을 것이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 피고 김인구……에 사형을 선고합니다.”
대한민국 법관의, 아들의, 그 작은 망설임으로 충분했다. 이윽고 단호한 의사봉소리, 남은 것은 반백의 늙은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한 역시 그렇게…….
바야흐로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끝내 광복하였다.
제목: \'정의 옆 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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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천장이 세는지 바닥 한 자락에 답지 않은 웅덩이가 보인다. 대번에 앉기도 힘들어 한참을 웅크리다 간신히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것은 속죄이자 내 모든 과오의 응당한 대가이리라. 어느새 고인 눈물이 한 움큼 웅덩이에 닿았다.
그곳에는 휘청거리는 상처투성이 남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낮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얼핏 낯에 익은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할 틈도 없이 그는 말을 이어왔다.
“선배님 사건에 사람들 관심도 많고, 반민특위 쪽 검사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뭐라 더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충분했다. 어쩌면 이 어둠 속에 내팽개칠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아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두 번 다시 빛을 보는 일은 이 세상에서는 없어야할 일이다. 다만, 어느 가장자리의 뉘엿한 몸이 시리도록 희다.
“저기 저, 매국노 놈 보게!”
누군가 무엇을 던졌고, 몸에 닿은 그것은 산산이 부서졌다. 돌아보려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제지하는 사람도 있는 듯했지만 소란은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귓가에 자리 잡은 벌레는 도통 떠날 생각이 없는가보다.
“정숙, 정숙하십시오.”
시작은 미숙했고, 끝은 혼란했지만 그런대로 엄숙한 권고였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보인다. 법대 위의 검은 법복자락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차라리 덧씌운 의사봉 소리가 더 위엄찰 일이었다. 아무렴 법관이란 놈이 저리 심지가 약해서야 쓰겠는가. 걱정이 앞섰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의심하되 주어진 사실과 네 판단을 믿어라.”
어느 날이고 한참을 숙고한 내 말이건만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물론 대답에 무슨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지나치려는데 아들이란 놈의 말이 참 되바라졌다.
“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겁니다.”
“허허.”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그래도 축하할 일이지 않는가. 언제 철드나 걱정했던 놈도 이제는 어엿한 법관이었다.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 볼 면이 조금이라도 서는 듯하다.
“아이고,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아낙네의 악다구니는 듣고 있기가 매우 곤란했다. 이미 실질심사는 끝이 났고, 종국판결만 남은 상태다. 더군다나 상대는 일본인이었다.사실 애초에 승소라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여보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건너 알음알음으로 인사하던 변호사라던 후배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죄송하다는 듯 여인을 나무랐다. 그 광경이 썩 마음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죽어요. 아이고, 안 됩니다.”
동요는 짧았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그 정의 옆에 선 법관이었다.
“선고하겠습니다.”
마음은 굳혔지만 목소리는 나지막할 수밖에 없었다.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의사봉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여전히 좌우 시선이 따갑다. 아마 따로 불려가 한참을 욕먹을 일일 것이다. 어쩌면 징계가 있을 일일지도 몰랐다. 결국 아마 그 시야는 법복보다 더 까마득했을 것이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 피고 김인구……에 사형을 선고합니다.”
대한민국 법관의, 아들의, 그 작은 망설임으로 충분했다. 이윽고 단호한 의사봉소리, 남은 것은 반백의 늙은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한 역시 그렇게…….
바야흐로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끝내 광복하였다.
[D님 글]
제목 : 팔자걸음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날”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식상한 행사였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아니지만, “아버지”하면 이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다. 뒷산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버지를 한참 쳐다봤는데, 팔자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팔자걸음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학교에 와서 팔자로 달리는 아버지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였다. 앞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유추할 수 있지만, 뒷모... 더 보기
제목 : 팔자걸음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날”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식상한 행사였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아니지만, “아버지”하면 이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다. 뒷산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버지를 한참 쳐다봤는데, 팔자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팔자걸음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학교에 와서 팔자로 달리는 아버지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였다. 앞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유추할 수 있지만, 뒷모...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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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날”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식상한 행사였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아니지만, “아버지”하면 이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다. 뒷산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버지를 한참 쳐다봤는데, 팔자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팔자걸음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학교에 와서 팔자로 달리는 아버지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였다. 앞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유추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늙은 내가 앞서서 뛰어가는 듯했다.
첫 걸음마를 팔자걸음으로 떼어서 친척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100미터를 팔자걸음으로 전력 뛰기를 해 주변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저런 일까지 있었고, 지금도 터벅터벅 팔자걸음을 걷는다. 그렇긴 해도 팔자걸음이 콤플렉스가 되어 날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발가락처럼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상징으로 프로이트적 혐오 감정이나 근대적인 극복 의지 같은 걸 매개해 줄 법도 했지만, 나는 그저 무심코 팔자걸음을 계속 걷는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사춘기 때도 없었던 부모와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사춘기 때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내고 가족들을 괴롭혔다.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부를 조금 해보니까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인생을 쓰려면 나 정도 재능과 여건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대학원을 그만둔다고 하자 이번에는 부모가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놀라고 불안함이 지속된 탓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의대를 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다고 가지는 것도 아니고 피곤함과 회의감에 절어 방황하게 되었다. 로스쿨 시험을 봤고 철학과 대학원에 지원하고 토플 학원에 다녔지만, 딱히 열심히 하는 것 없이 게으른 날들을 보냈다. (아, 비겁한 내가 할 수 있는 방황이란 이런 것들뿐이었구나)
아버지와 밤새 소리를 지르고 싸운 날이 있었다. 나는 말을 많이 했는데 너무 악을 써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버지는 나보고 계속 의대에 가라고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럴까, 숨이 문턱까지 차오르는 삶의 순간이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문학이, 철학이 이럴 때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가 자신에게 얽어 놓은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굴레가 자신의 정체성, 문제, 목표가 된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아버지 앞에서 숨이 막 차오르는데도 그가 생각나지 않았다. 읽었던 책들이 전부 우습다. 대단한 사람들이나 그런 갈등에 놓인다. 조금만 특이해도 인간극장에 나올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얽어 놓은 것이 없었다. 의대에 가라고 하고 최선을 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꽉 막힌 평범함 앞에서 운명을 저주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극복해야 할 높은 산도 아니었고 잊고 싶은 힘든 과거도 아니었고 붙들어 놓는 족쇄도 아니었다. 이렇게나 닮았는데 아버지처럼 똑같이 팔자걸음으로 걷는데도 나에게 뿌리내린 것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미래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또 나의 미래다. 나는 똑같이 팔자걸음으로 서둘러 산비탈을 내려갈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지금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처럼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 산비탈을 내려갈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냉소한다. 그는 나에게 얽어 놓은 것이 없었다. 아버지의 평범함 앞에서 운명을 저주할 수가 없었다.
제목 : 팔자걸음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날”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식상한 행사였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아니지만, “아버지”하면 이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다. 뒷산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버지를 한참 쳐다봤는데, 팔자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팔자걸음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학교에 와서 팔자로 달리는 아버지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였다. 앞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유추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늙은 내가 앞서서 뛰어가는 듯했다.
첫 걸음마를 팔자걸음으로 떼어서 친척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100미터를 팔자걸음으로 전력 뛰기를 해 주변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저런 일까지 있었고, 지금도 터벅터벅 팔자걸음을 걷는다. 그렇긴 해도 팔자걸음이 콤플렉스가 되어 날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발가락처럼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상징으로 프로이트적 혐오 감정이나 근대적인 극복 의지 같은 걸 매개해 줄 법도 했지만, 나는 그저 무심코 팔자걸음을 계속 걷는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사춘기 때도 없었던 부모와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사춘기 때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내고 가족들을 괴롭혔다.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부를 조금 해보니까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인생을 쓰려면 나 정도 재능과 여건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대학원을 그만둔다고 하자 이번에는 부모가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놀라고 불안함이 지속된 탓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의대를 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다고 가지는 것도 아니고 피곤함과 회의감에 절어 방황하게 되었다. 로스쿨 시험을 봤고 철학과 대학원에 지원하고 토플 학원에 다녔지만, 딱히 열심히 하는 것 없이 게으른 날들을 보냈다. (아, 비겁한 내가 할 수 있는 방황이란 이런 것들뿐이었구나)
아버지와 밤새 소리를 지르고 싸운 날이 있었다. 나는 말을 많이 했는데 너무 악을 써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버지는 나보고 계속 의대에 가라고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럴까, 숨이 문턱까지 차오르는 삶의 순간이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문학이, 철학이 이럴 때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가 자신에게 얽어 놓은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굴레가 자신의 정체성, 문제, 목표가 된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아버지 앞에서 숨이 막 차오르는데도 그가 생각나지 않았다. 읽었던 책들이 전부 우습다. 대단한 사람들이나 그런 갈등에 놓인다. 조금만 특이해도 인간극장에 나올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얽어 놓은 것이 없었다. 의대에 가라고 하고 최선을 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꽉 막힌 평범함 앞에서 운명을 저주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극복해야 할 높은 산도 아니었고 잊고 싶은 힘든 과거도 아니었고 붙들어 놓는 족쇄도 아니었다. 이렇게나 닮았는데 아버지처럼 똑같이 팔자걸음으로 걷는데도 나에게 뿌리내린 것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미래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또 나의 미래다. 나는 똑같이 팔자걸음으로 서둘러 산비탈을 내려갈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지금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처럼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 산비탈을 내려갈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냉소한다. 그는 나에게 얽어 놓은 것이 없었다. 아버지의 평범함 앞에서 운명을 저주할 수가 없었다.
[E님 글]
제목 : 어머니와 융프라우와 컵라면
지난 겨울의 일이다.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오래만에 서울을 찾았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앞에 두고 나는 엉뚱하게도 컵라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있는 꼭대기 전망대에선 컵라면을 판다. 20여 년 전 내가 일곱 살 때인가 간 유럽 여행에서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끼고 모아서 온 유럽이다. 아무리 떼를 쓰며 주저앉아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고,... 더 보기
제목 : 어머니와 융프라우와 컵라면
지난 겨울의 일이다.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오래만에 서울을 찾았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앞에 두고 나는 엉뚱하게도 컵라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있는 꼭대기 전망대에선 컵라면을 판다. 20여 년 전 내가 일곱 살 때인가 간 유럽 여행에서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끼고 모아서 온 유럽이다. 아무리 떼를 쓰며 주저앉아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고,... 더 보기
[E님 글]
제목 : 어머니와 융프라우와 컵라면
지난 겨울의 일이다.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오래만에 서울을 찾았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앞에 두고 나는 엉뚱하게도 컵라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있는 꼭대기 전망대에선 컵라면을 판다. 20여 년 전 내가 일곱 살 때인가 간 유럽 여행에서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끼고 모아서 온 유럽이다. 아무리 떼를 쓰며 주저앉아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고, 아무리 졸라도 책 한 권 사주지 않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오른 여행길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융프라우에 오른 그 날 사건이 터졌다. 추위에 덜덜 떨던 나는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파는, 기적같은 컵라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컵라면을 사달라고 졸랐다. 망설이던 어머니는 그러나 한국 돈으로 오천 원 가까이나 되는, 당시로써는 비싼 가격에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나는 추위와 배고픔과 무엇보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서러움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난처해 하면서도 나를 달랬다. 어린 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더 크게 울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많이 싸웠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이후 어머니와 크게 다퉜던 기억은 없다.
발인식 하루 전날, 항상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젊은 상주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췌장암이었다. 의사들이 고개를 젓던 것을 병원까지 옮겨가며 강행한 수술이었다. 나는 상심을 이해한다며 고개를 짧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새벽 네 시인가 일을 끝내고 누웠다. 장례식장에서의 잠은 어쩐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는 잠이 필요했다.
다사다난했던 유럽 여행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족의 경제 사정도 꽤 여유로워졌다. 어머니의 씀씀이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일년에 한 두번 하던 외식이 일주일에 한 두번으로 늘었다. 배우고 싶어하는 것에는 항상 돈을 대주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 타지로 나가게 되자 굶고 다니지 말라고 용돈도 넉넉하게 보내주셨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융프라우와 컵라면 이야기를 꺼냈다. 글쎄, 오천 원이 뭐라고 그깟 거 그냥 사줄걸. 그러게 그냥 사주시지 그러셨어요 하고 그날 나는 웃었다. 그때부터 나는 컵라면을 볼때면 종종 난처해 하던 어머니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다음 날 운구차가 서울 추모공원을 향해 떠났다. 나는 그 뒤를 친구 어머니의 차를 타고 따랐다. 상주 말고는 함께 있는 친구 중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미망인인 친구 어머니가 직접 운전을 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었다. 따뜻한 햇볕과 일상적인 풍경 사이로 차들의 행렬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어머니는 운전면허를 꽤 늦게 땄다. 남들은 한 번에 붙는다는 기능 시험을 몇 번이나 떨어졌다. 쉬운 시험장을 찾아 시내에 있는 면허 시험장을 모조리 한 번은 거쳤을 것이다. 레이싱 게임이 운전 연습에 도움이 될 거라는 핑계로 어머니는 나와 게임 센터에도 같이 가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운전면허를 손에 든 어머니는, 왜 이렇게 운전을 못 하느냐는 아버지 타박에 네 아빠처럼 난폭하게 운전하지 않고 안전 운전을 해서 그렇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던 어머니였다.
이번 토요일이면 새로 딴 운전 면허증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달리 한 번에 붙었다고, 이만하면 청출어람이지 않으냐며 자랑도 해볼 것이다. 나도 이제 어른이라며 아들 걱정이랑 하지 말고 이제 편히 쉬라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왜 아들이 새삼스럽게 안 하던 짓을 하느냐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머니라면 꼭 그러실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제목 : 어머니와 융프라우와 컵라면
지난 겨울의 일이다.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오래만에 서울을 찾았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앞에 두고 나는 엉뚱하게도 컵라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있는 꼭대기 전망대에선 컵라면을 판다. 20여 년 전 내가 일곱 살 때인가 간 유럽 여행에서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끼고 모아서 온 유럽이다. 아무리 떼를 쓰며 주저앉아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고, 아무리 졸라도 책 한 권 사주지 않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오른 여행길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융프라우에 오른 그 날 사건이 터졌다. 추위에 덜덜 떨던 나는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파는, 기적같은 컵라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컵라면을 사달라고 졸랐다. 망설이던 어머니는 그러나 한국 돈으로 오천 원 가까이나 되는, 당시로써는 비싼 가격에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나는 추위와 배고픔과 무엇보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서러움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난처해 하면서도 나를 달랬다. 어린 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더 크게 울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많이 싸웠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이후 어머니와 크게 다퉜던 기억은 없다.
발인식 하루 전날, 항상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젊은 상주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췌장암이었다. 의사들이 고개를 젓던 것을 병원까지 옮겨가며 강행한 수술이었다. 나는 상심을 이해한다며 고개를 짧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새벽 네 시인가 일을 끝내고 누웠다. 장례식장에서의 잠은 어쩐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는 잠이 필요했다.
다사다난했던 유럽 여행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족의 경제 사정도 꽤 여유로워졌다. 어머니의 씀씀이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일년에 한 두번 하던 외식이 일주일에 한 두번으로 늘었다. 배우고 싶어하는 것에는 항상 돈을 대주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 타지로 나가게 되자 굶고 다니지 말라고 용돈도 넉넉하게 보내주셨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융프라우와 컵라면 이야기를 꺼냈다. 글쎄, 오천 원이 뭐라고 그깟 거 그냥 사줄걸. 그러게 그냥 사주시지 그러셨어요 하고 그날 나는 웃었다. 그때부터 나는 컵라면을 볼때면 종종 난처해 하던 어머니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다음 날 운구차가 서울 추모공원을 향해 떠났다. 나는 그 뒤를 친구 어머니의 차를 타고 따랐다. 상주 말고는 함께 있는 친구 중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미망인인 친구 어머니가 직접 운전을 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었다. 따뜻한 햇볕과 일상적인 풍경 사이로 차들의 행렬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어머니는 운전면허를 꽤 늦게 땄다. 남들은 한 번에 붙는다는 기능 시험을 몇 번이나 떨어졌다. 쉬운 시험장을 찾아 시내에 있는 면허 시험장을 모조리 한 번은 거쳤을 것이다. 레이싱 게임이 운전 연습에 도움이 될 거라는 핑계로 어머니는 나와 게임 센터에도 같이 가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운전면허를 손에 든 어머니는, 왜 이렇게 운전을 못 하느냐는 아버지 타박에 네 아빠처럼 난폭하게 운전하지 않고 안전 운전을 해서 그렇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던 어머니였다.
이번 토요일이면 새로 딴 운전 면허증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달리 한 번에 붙었다고, 이만하면 청출어람이지 않으냐며 자랑도 해볼 것이다. 나도 이제 어른이라며 아들 걱정이랑 하지 말고 이제 편히 쉬라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왜 아들이 새삼스럽게 안 하던 짓을 하느냐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머니라면 꼭 그러실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F님 글]
제목 : 동균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또 “내 할아버지는….”로 시작되는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 또한 전쟁 통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그 아들인 우리 아버지 또한 교육자시다. 아버지는 A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었다며 나와 형에게도 매번 그 길을 가길 ‘권’하셨다.
“아휴, 이 양반도. 밥... 더 보기
제목 : 동균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또 “내 할아버지는….”로 시작되는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 또한 전쟁 통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그 아들인 우리 아버지 또한 교육자시다. 아버지는 A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었다며 나와 형에게도 매번 그 길을 가길 ‘권’하셨다.
“아휴, 이 양반도. 밥... 더 보기
[F님 글]
제목 : 동균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또 “내 할아버지는….”로 시작되는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 또한 전쟁 통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그 아들인 우리 아버지 또한 교육자시다. 아버지는 A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었다며 나와 형에게도 매번 그 길을 가길 ‘권’하셨다.
“아휴, 이 양반도. 밥이나 뜨고 말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어머니는 학원 강사였다. 웃긴 집안이다. 처음에는 아버지 쪽에서 어머니를 많이 반대했다고 한다. 학원에서 돈 보고 가르치는 사람은 교육자도 아니라고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집안에 찾아왔다고 한다. 제가 이 사람을 사랑하니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처음에 어머니의 당돌함에 당황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어머니에게 곧 매료되었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깊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았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사실은 이러했다. 학원 밀집 가에서 유명했던 어머니는 몸값이 높았고, 돈이 많았다.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께 아파트를 한 채 사드리기로 한 것이었다. 보통은 빚내서 결혼하는 마당에 능력 있는 며느리를 만나 집 한 채를 얻어가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조부모님은 좋아하셨다고 한다. 돈이나 버는 교육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조부모는 결국 돈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러니 아버지의 교육자 타령이 나는 우습기만 하다.
어머니는 학원가에서 유명했다. 아이들의 성적을 잘 올리는 능력 있는 강사로 통했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학생들이나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팬도 꽤 많았다. 밖에서는 아버지를 추어올렸지만 집에서 실질적으로 군림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은근히 아버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돈은 어머니가 더 잘 버니까. 이런 선물 받은 날에는 어느 정도 아버지가 그 기세를 피기를 허용하지만, 평소라면 그렇지 않다. 어머니는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누가 자신의 기세라도 펼칠 참이면 호랑이처럼 그 목을 단단히 물어 죽여 놔야지만 성미가 사는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때면 유독 이렇게 자랑이 심하시다. 그것이 아버지의 위엄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일인 것처럼.
오늘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에는 멸치볶음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 들어 온 선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 집안에서 양식하던 유서 깊은’ 멸치였다. 우리 집에선 보통의 음식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 나온 메뉴는 이러했다. 정육점 세희네 아저씨가 강원도 횡성에서 직접 잡아온 소고기로 만든 갈비찜. 명준이네 할머니께서 손수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찌개. 몇십 년 전 제자가 승진 기념으로 보낸 여주 쌀밥. 심지어 달걀조차 무항생제니 뭐니 하며 어디서 들어온 음식이었다. 도무지가 우리 집엔 아버지 돈으로 산 무엇인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주는 요즘 어떠냐.”
“…고3이니까 맨날 똑같죠. 뭐.”
“그래. 그 정도로 유지하면 네가 목표로 하는 대학에는 무리 없겠지?”
아버지는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로 형에게 물었다. 형은 늘 그렇듯이 짜증을 냈다.
“네.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이내 식사를 하셨다. 예민한 형 성격을 건드렸다가는 집안은 곧 난리가 날 테고, 그렇게 되면 형의 성적이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아버지는 넘어가시는 거다. 형은 공부를 잘한다. 성적으로는 대한민국 상위 1%다. 형은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그놈의 유서 깊은 교육자 집안을 장남이 이어야 한다고 했고 두 사람은 자주 싸웠다. 어머니가 형은 의사가 되어 교수가 되면 좋지 않겠냐고, 나중에 잘 타일러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돈과 성적 그게 전부였다. 참으로 끔찍한 집안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밥상머리 위에서 소리를 지르다 비틀어 죽어 있는 저 멸치들이 마치 내 모습 같다.
“동균이는 어떠냐.”
“저도 같아요.”
“학교에서는 별일 없고?”
“네. 아무 문제 없어요.”
“그래…. 너도 지금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 고등학교 수업은 예습 착실히 나가고 있는 거지?”
“네.”
대한민국 교육은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정작 자식들은 학원을 보내는 우리 부모님.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어서 빨리 이 집안을 뜨는 일이다. 스무 살만 되면 돈을 벌어 집을 독립해 나갈 거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아무리 더러운 말들을 토하더라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토사물을 비둘기처럼 쪼아 먹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커피를 마실 건지 물었다.
“그 왜 김 집사가 선물한 녹차를 마시지. 동주랑 동균이도 마셔라. 녹차엔 카페인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없다고 하더구나. 동주도 괜찮을 거다.”
“네, 아버지.”
나는 대답했고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영어 단어 암기장을 꺼내서 묵묵히 녹차를 기다렸다.
제목 : 동균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또 “내 할아버지는….”로 시작되는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 또한 전쟁 통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그 아들인 우리 아버지 또한 교육자시다. 아버지는 A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었다며 나와 형에게도 매번 그 길을 가길 ‘권’하셨다.
“아휴, 이 양반도. 밥이나 뜨고 말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어머니는 학원 강사였다. 웃긴 집안이다. 처음에는 아버지 쪽에서 어머니를 많이 반대했다고 한다. 학원에서 돈 보고 가르치는 사람은 교육자도 아니라고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집안에 찾아왔다고 한다. 제가 이 사람을 사랑하니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처음에 어머니의 당돌함에 당황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어머니에게 곧 매료되었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깊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았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사실은 이러했다. 학원 밀집 가에서 유명했던 어머니는 몸값이 높았고, 돈이 많았다.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께 아파트를 한 채 사드리기로 한 것이었다. 보통은 빚내서 결혼하는 마당에 능력 있는 며느리를 만나 집 한 채를 얻어가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조부모님은 좋아하셨다고 한다. 돈이나 버는 교육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조부모는 결국 돈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러니 아버지의 교육자 타령이 나는 우습기만 하다.
어머니는 학원가에서 유명했다. 아이들의 성적을 잘 올리는 능력 있는 강사로 통했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학생들이나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팬도 꽤 많았다. 밖에서는 아버지를 추어올렸지만 집에서 실질적으로 군림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은근히 아버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돈은 어머니가 더 잘 버니까. 이런 선물 받은 날에는 어느 정도 아버지가 그 기세를 피기를 허용하지만, 평소라면 그렇지 않다. 어머니는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누가 자신의 기세라도 펼칠 참이면 호랑이처럼 그 목을 단단히 물어 죽여 놔야지만 성미가 사는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때면 유독 이렇게 자랑이 심하시다. 그것이 아버지의 위엄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일인 것처럼.
오늘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에는 멸치볶음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 들어 온 선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 집안에서 양식하던 유서 깊은’ 멸치였다. 우리 집에선 보통의 음식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 나온 메뉴는 이러했다. 정육점 세희네 아저씨가 강원도 횡성에서 직접 잡아온 소고기로 만든 갈비찜. 명준이네 할머니께서 손수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찌개. 몇십 년 전 제자가 승진 기념으로 보낸 여주 쌀밥. 심지어 달걀조차 무항생제니 뭐니 하며 어디서 들어온 음식이었다. 도무지가 우리 집엔 아버지 돈으로 산 무엇인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주는 요즘 어떠냐.”
“…고3이니까 맨날 똑같죠. 뭐.”
“그래. 그 정도로 유지하면 네가 목표로 하는 대학에는 무리 없겠지?”
아버지는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로 형에게 물었다. 형은 늘 그렇듯이 짜증을 냈다.
“네.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이내 식사를 하셨다. 예민한 형 성격을 건드렸다가는 집안은 곧 난리가 날 테고, 그렇게 되면 형의 성적이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아버지는 넘어가시는 거다. 형은 공부를 잘한다. 성적으로는 대한민국 상위 1%다. 형은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그놈의 유서 깊은 교육자 집안을 장남이 이어야 한다고 했고 두 사람은 자주 싸웠다. 어머니가 형은 의사가 되어 교수가 되면 좋지 않겠냐고, 나중에 잘 타일러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돈과 성적 그게 전부였다. 참으로 끔찍한 집안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밥상머리 위에서 소리를 지르다 비틀어 죽어 있는 저 멸치들이 마치 내 모습 같다.
“동균이는 어떠냐.”
“저도 같아요.”
“학교에서는 별일 없고?”
“네. 아무 문제 없어요.”
“그래…. 너도 지금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 고등학교 수업은 예습 착실히 나가고 있는 거지?”
“네.”
대한민국 교육은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정작 자식들은 학원을 보내는 우리 부모님.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어서 빨리 이 집안을 뜨는 일이다. 스무 살만 되면 돈을 벌어 집을 독립해 나갈 거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아무리 더러운 말들을 토하더라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토사물을 비둘기처럼 쪼아 먹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커피를 마실 건지 물었다.
“그 왜 김 집사가 선물한 녹차를 마시지. 동주랑 동균이도 마셔라. 녹차엔 카페인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없다고 하더구나. 동주도 괜찮을 거다.”
“네, 아버지.”
나는 대답했고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영어 단어 암기장을 꺼내서 묵묵히 녹차를 기다렸다.
[G님 글]
제목 : 일만 하고 놀지않으면 바보가 된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어린 시절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뭐든지 잘했으니깐. 못 하는 게 없었으니깐. 부모님도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전 과목 만점. 전교 1등. 나의 공부 실력은 부모님이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가 평생의 목표가 될...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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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뭐든지 잘했으니깐. 못 하는 게 없었으니깐. 부모님도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전 과목 만점. 전교 1등. 나의 공부 실력은 부모님이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가 평생의 목표가 될...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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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뭐든지 잘했으니깐. 못 하는 게 없었으니깐. 부모님도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전 과목 만점. 전교 1등. 나의 공부 실력은 부모님이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가 평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물론 평생에 걸쳐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많은 석, 박사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은 학문이지 공부 자체가 아니다. 수능 만점, 전교 1등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슬슬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나이가 됐을 무렵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게임이었다. \'창세기전\', \'포가튼 사가\', \'디아블로\', \'토탈 어니힐레이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이 게임들은 나를 매료시켰다. 나도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컴퓨터 학원을 보내달라 했다. 하지만 대답은 \"공부해야지. 네가 지금 그런 거 할 때가 아니야.\" 나는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대답은 \"공부해야지. 네가 영화나 보러 다니고 그러면 되겠니? 학생은 극장 같은데 가는 게 아니야.\"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게임도 끊고, 농구도 끊고, 영화도 안 봤다. 그리고 공부만 열심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대학을 갔다. 좋은 대학을 갔다. (대입 이후 잠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대학을 갔는데 대학 공부가 쉬운 게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졸업한 게 용하다. 정말 졸업하겠다고 죽을 똥을 쌌다. 다른 아이들은 똑같이 학교 다니면서 하고픈 것 많이 하던데, 아마 내 능력의 한계가 거기까지였나 보다. 나는 정말 수업 따라가기도 벅찼다. 슈레딩거, 아인슈타인 죽어버렸으면... (이미 죽었어 멍청아!) 그렇게 대학을 겨우겨우 졸업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런데 취업이 안 된다. 청년 실업 10만 시대가 아니라 청년 실업 100만 시대다. 최종 면접까지 아득바득 올라가도 미끄러진다. 떨어진다. 더 이상 취업 전선에 뛰어들 용기도 없고, 회사에서 서류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나이만 먹는다. 버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간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난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다. 공부만 했다. 하다못해 운전도 할 줄 모른다. (면허가 있으면 뭐 하나)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지자, 도리어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래저래 커뮤니티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돈 한 푼 안 벌어다 주는 이 짓을 일삼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로 취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공부에 도전하고 있다. 30살이 넘어서도 다시 공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서글프고 원망스럽다. 그래서 부모님께 하소연하기도 했다. 왜 공부 말고 아무것도 못 하게 했냐고... 나이 처먹고 부모 원망하는 게 참 병신 같긴 하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자신에게도 원망스럽다. 왜 난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학창시절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다가 게임만들겠다고 \'RPG 만들기 95\' 하느라 성적이 개차반 같이 나왔던 내 동생은 지금 어느 대학의 게임제작원에서 일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했다. 어쩌다 인생이 후회와 원망으로 점철되었을까.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공부만, 공부만 하다가는 공부밖에 못 하는 바보가 된다. 아... 나도 돈 벌고 싶다.
[H님 글]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0.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고 일어설 힘이 없고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저는 항상 거울을 보거든요. 여러분도 거울을 보면 여러분 스스로를 믿는 단 한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고맙습니다.”
1.
“아 글쎄, 그 길은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왜 그걸 하려고 해. 네가 그만큼의 재능이나 있는 줄 아냐?” 처음 성우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더 보기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0.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고 일어설 힘이 없고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저는 항상 거울을 보거든요. 여러분도 거울을 보면 여러분 스스로를 믿는 단 한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고맙습니다.”
1.
“아 글쎄, 그 길은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왜 그걸 하려고 해. 네가 그만큼의 재능이나 있는 줄 아냐?” 처음 성우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더 보기
[H님 글]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0.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고 일어설 힘이 없고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저는 항상 거울을 보거든요. 여러분도 거울을 보면 여러분 스스로를 믿는 단 한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고맙습니다.”
1.
“아 글쎄, 그 길은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왜 그걸 하려고 해. 네가 그만큼의 재능이나 있는 줄 아냐?” 처음 성우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내 스스로는 충분히 자립할 수 있고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뿐이었고 그런 내가 하는 말들은 당신에게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말씀을 묵인하고 계셨고, 형은 그때… 뭐하고 있었지? 그래, 대학교를 이제 막 들어가서 집에 없을 때였다. 나만 홀로 내 꿈을 위한 외로운 투쟁 속에 있던 것이다.
2.
나의 싸움은 나름 치밀하고 치열하고 계획적이며 합리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간절했다. 성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시는 어머니를 위해 성우란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목소리가 좋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돈도 못 벌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에 그리고 영화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직업이며, 그러한 작업이 내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것을 어머니께 다각도로 다양하게 여러 번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셨으며, 그저 하시는 말씀이라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냥 학교에서 반 겨우 넘으면서 뭘 그렇게 딴 생각을 하는지”
3.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했다. 그 때 내 계좌에 있었던 돈을 모두 털어서 막무가내로 등록하고 온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모두 털었다. 아마 잔액이…600원 정도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 전 재산 60만원. 그때 나는 카드를 만들 수도 없었고 어머니 카드를 사용하면 내역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미련하게도 현금으로 모두 들고 갔다. 학원 근처 ATM에서 뽑아서 학원까지- 생각해보면 진짜 짧고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땐 왜 그리 떨렸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얼른 알아봐 둔 학원으로 들어갔고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연신 예를 연발하며 아무 반이나 들어가고 싶다 하였다. 당황스런 선생님의 표정을 보았지만 못 본체 하였다. 들어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나의 투쟁은 반쯤 성공하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나는 취미로 발음 교정을 받는 반에 소속되었다. 만세. 나의 나라, 나의 투쟁 만세. 내 스스로 결정한 나의 투쟁 만세.
4.
집에 돌아온 나는 진짜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고, 울면서 환불을 받고 부모님 돈으로 다시 등록했다. 퉁퉁 부운 눈으로 그래도 히죽이는 내 자신이 내 스스로도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
어느 새 10년 가까이가 지났고, 나는 내게 그런 3개월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그동안 난 재수생, 대학생, 백수, 공시생 등으로 다양하게 전직해왔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해철이 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형의 노래를 듣다, 문득 형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열일곱, 열 여덞의 내가 떠올랐다.
5.
나는 이제 다시 학원 등록하러 간다.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0.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고 일어설 힘이 없고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저는 항상 거울을 보거든요. 여러분도 거울을 보면 여러분 스스로를 믿는 단 한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고맙습니다.”
1.
“아 글쎄, 그 길은 아무것도 안된다니까. 왜 그걸 하려고 해. 네가 그만큼의 재능이나 있는 줄 아냐?” 처음 성우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내 스스로는 충분히 자립할 수 있고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 뿐이었고 그런 내가 하는 말들은 당신에게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말씀을 묵인하고 계셨고, 형은 그때… 뭐하고 있었지? 그래, 대학교를 이제 막 들어가서 집에 없을 때였다. 나만 홀로 내 꿈을 위한 외로운 투쟁 속에 있던 것이다.
2.
나의 싸움은 나름 치밀하고 치열하고 계획적이며 합리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간절했다. 성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시는 어머니를 위해 성우란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목소리가 좋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돈도 못 벌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에 그리고 영화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직업이며, 그러한 작업이 내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것을 어머니께 다각도로 다양하게 여러 번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셨으며, 그저 하시는 말씀이라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냥 학교에서 반 겨우 넘으면서 뭘 그렇게 딴 생각을 하는지”
3.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했다. 그 때 내 계좌에 있었던 돈을 모두 털어서 막무가내로 등록하고 온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모두 털었다. 아마 잔액이…600원 정도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 전 재산 60만원. 그때 나는 카드를 만들 수도 없었고 어머니 카드를 사용하면 내역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미련하게도 현금으로 모두 들고 갔다. 학원 근처 ATM에서 뽑아서 학원까지- 생각해보면 진짜 짧고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땐 왜 그리 떨렸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얼른 알아봐 둔 학원으로 들어갔고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연신 예를 연발하며 아무 반이나 들어가고 싶다 하였다. 당황스런 선생님의 표정을 보았지만 못 본체 하였다. 들어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나의 투쟁은 반쯤 성공하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나는 취미로 발음 교정을 받는 반에 소속되었다. 만세. 나의 나라, 나의 투쟁 만세. 내 스스로 결정한 나의 투쟁 만세.
4.
집에 돌아온 나는 진짜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고, 울면서 환불을 받고 부모님 돈으로 다시 등록했다. 퉁퉁 부운 눈으로 그래도 히죽이는 내 자신이 내 스스로도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
어느 새 10년 가까이가 지났고, 나는 내게 그런 3개월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그동안 난 재수생, 대학생, 백수, 공시생 등으로 다양하게 전직해왔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해철이 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형의 노래를 듣다, 문득 형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열일곱, 열 여덞의 내가 떠올랐다.
5.
나는 이제 다시 학원 등록하러 간다.
[I님 글]
제목 : 정식
내가 잠드는 방문만 보아도 나는 잘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나는십여 년간 저 방에서 자왔으며, 자고 싶을 때 잠들지 못한 적이 없다.수면의 불패신화다. 잠들기 전에 하는 것은 칫솔질과 가벼운 세수 정도다. 잠옷은 세 벌이 있지만 딱히 아끼는 것이 있지는 않다. 침대맡에는핸드폰 충전기도 책도 자리끼도 없다. 그저 벗어 놓는 안경 하나가 있을 뿐이다. 누워서 하는 생각은 매번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하는 식사를 상상하는것이다. 보통은 점심을 먹다 보면 말다툼이... 더 보기
제목 : 정식
내가 잠드는 방문만 보아도 나는 잘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나는십여 년간 저 방에서 자왔으며, 자고 싶을 때 잠들지 못한 적이 없다.수면의 불패신화다. 잠들기 전에 하는 것은 칫솔질과 가벼운 세수 정도다. 잠옷은 세 벌이 있지만 딱히 아끼는 것이 있지는 않다. 침대맡에는핸드폰 충전기도 책도 자리끼도 없다. 그저 벗어 놓는 안경 하나가 있을 뿐이다. 누워서 하는 생각은 매번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하는 식사를 상상하는것이다. 보통은 점심을 먹다 보면 말다툼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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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드는 방문만 보아도 나는 잘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나는십여 년간 저 방에서 자왔으며, 자고 싶을 때 잠들지 못한 적이 없다.수면의 불패신화다. 잠들기 전에 하는 것은 칫솔질과 가벼운 세수 정도다. 잠옷은 세 벌이 있지만 딱히 아끼는 것이 있지는 않다. 침대맡에는핸드폰 충전기도 책도 자리끼도 없다. 그저 벗어 놓는 안경 하나가 있을 뿐이다. 누워서 하는 생각은 매번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하는 식사를 상상하는것이다. 보통은 점심을 먹다 보면 말다툼이 시작된다. 나는왜 상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지? 그건 차치하고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음식이다. 온갖 종류의 음식을 주문하고 먹지만 그 맛은 하나같이 처참하다. 의자는푹신해서 세 시간도 너끈히 앉아서 식사를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웨이터도 태어나 거짓말 한 번 해보지않았으며 내가 살인마라도 비밀을 지켜줄 것처럼 굴지만, 요리만큼은 선사시대에서 조리법을 배워온 양 하나같이투박하고 원시적인 맛이 나는 것이 나온다. 아니 요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먹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물건이, 어울리지 않는 짐을 져 처량해보이는 식기에 들려 나온다. 웨이터는당연하다는 듯, 또는 일류 요리를 내오는 양 당당하다. 나는그런 요리를 접하는 데 이제는 익숙하다. 허나 상상 속의 어머니는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인지, “이런 걸 먹을 바에야 개종하겠다” 라거나 “이런 음식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같은 얼토당토않고 원색적인말을 해댄다. 내가 살면서 언제 음식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입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질겅질겅 정체 모를 고기를 씹거나 흙을 개어 만든 것 같은 푸딩을 먹는 상상 따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잠들어있다.
제목 : 정식
내가 잠드는 방문만 보아도 나는 잘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나는십여 년간 저 방에서 자왔으며, 자고 싶을 때 잠들지 못한 적이 없다.수면의 불패신화다. 잠들기 전에 하는 것은 칫솔질과 가벼운 세수 정도다. 잠옷은 세 벌이 있지만 딱히 아끼는 것이 있지는 않다. 침대맡에는핸드폰 충전기도 책도 자리끼도 없다. 그저 벗어 놓는 안경 하나가 있을 뿐이다. 누워서 하는 생각은 매번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하는 식사를 상상하는것이다. 보통은 점심을 먹다 보면 말다툼이 시작된다. 나는왜 상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지? 그건 차치하고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음식이다. 온갖 종류의 음식을 주문하고 먹지만 그 맛은 하나같이 처참하다. 의자는푹신해서 세 시간도 너끈히 앉아서 식사를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웨이터도 태어나 거짓말 한 번 해보지않았으며 내가 살인마라도 비밀을 지켜줄 것처럼 굴지만, 요리만큼은 선사시대에서 조리법을 배워온 양 하나같이투박하고 원시적인 맛이 나는 것이 나온다. 아니 요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먹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물건이, 어울리지 않는 짐을 져 처량해보이는 식기에 들려 나온다. 웨이터는당연하다는 듯, 또는 일류 요리를 내오는 양 당당하다. 나는그런 요리를 접하는 데 이제는 익숙하다. 허나 상상 속의 어머니는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인지, “이런 걸 먹을 바에야 개종하겠다” 라거나 “이런 음식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같은 얼토당토않고 원색적인말을 해댄다. 내가 살면서 언제 음식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입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질겅질겅 정체 모를 고기를 씹거나 흙을 개어 만든 것 같은 푸딩을 먹는 상상 따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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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처럼 만들어서 본문에 넣으면 읽는 분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읽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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