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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4/10 10:45:36
Name   서포트벡터
Subject   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3.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로맨스
<천사소녀 네티의 메인 테마곡, 요즘은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 행진곡으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판 세인트 테일 2기 엔딩곡 "Up Side Down"입니다. 아침커피님께서 신청해 주셨습니다. 
KBS에서는 엔딩곡을 별도로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이 노래가 익숙하진 않네요 ㅎㅎ>


27년 전 작품에 스포타령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이번 글은 정말 "찐하게"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유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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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인트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뭐?"

제레인트는 엄숙하게 말했다.

"짝사랑이지요."

- 이영도 "드래곤 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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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1. 원작 만화처럼 로맨스 즐기기
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2. 샐리의 짝사랑

초면에 실례지만 혹시 짝사랑 해 보셨습니까?

짝사랑이란게 참으로 사람을 모순덩어리로 만들죠. 짝사랑을 하면, 그래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을까요? 몰라줬으면 좋을까요? 정답은 둘 다죠. 행여 내 마음이 드러날까봐 항상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하지만, 그 와중에 내 마음 속 진심은 알아줬으면 하는 모순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두가지 모순이 싸우다가 어느날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이겨서 조금 티를 냈다가 그걸 후회하고, 몰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이겨서 간신히 버티고 이런 거죠. 별것도 아닌 것에 혹시 날 좋아하나 싶고, 또 별것도 아닌 것에 실망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행여 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건 아닐지 마음은 항상 불안합니다. 내 마음을 알면 날 싫어할까봐 무섭기도 하구요.

지난 번 글에서는 "샐리가 정말 짝사랑에 빠진 소녀가 맞는가"를 말씀드렸죠. 이번에는 그럼 "그 짝사랑에 빠진 소녀 샐리의 모습"이 어떻게 로맨스를 만들어가는가, 작가는 이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로맨스 서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짝사랑에 빠진 소녀"를 나타내는 장치 중 하나, 셜록스가 샐리보다 앞쪽 자리라서 항상 뒤를 바라보죠.>

천사소녀 네티의 주인공 샐리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 짝사랑입니다. "짝사랑에 빠진 소녀", 이것이 샐리의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고 샐리가 가지는 매력포인트죠. 외전을 포함해서 원작 27화 에피소드 중에 단 3개 회차를 제외한 24개 회차는 농담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세심하게, 그리고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죠. 원작자는 주인공인 샐리와 다른 페르소나인 네티를 통해서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사랑을 참으로 예쁘게 그려냅니다.

1. 처음엔 불안감 없이 시작이 되었을 텐데...하지만 좋아한다는 것은 곧 불안감이니

지난 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샐리의 짝사랑은 매우 초반에 시작됩니다. 특히 초반일수록 이 작품은 샐리의 1인칭 중심으로 셜록스를 바라보기 때문에, 셜록스의 마음은 알 길이 없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초반에는 그냥 좋지 않나요? 최소 3화(고슴도치 루비)까지의 샐리의 마음에는 이런 부정적인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KBS에서 미방영된 회차(여자의 마음 or 면사포가 제일 싫어)에서부터 슬슬 불안감이 시작되는데요, KBS버전으로도 4화(화이트 크리스마스)부터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질투심이죠. 이때부터 샐리는 셜록스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슬슬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담으로,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KBS에서 원작 4화인 화이트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4화에 배치한게 나름 절묘하긴 합니다. 한 화를 미방영했지만 그것과 유사한 주제의식(샐리의 질투심 발현)을 가진 회차를 원작과 같은 순서에 집어넣었으니 말이죠. 이 에피소드들에서 샐리의 마음 속 불안감이 점점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천사소녀 네티만 좋아하는데 뭐 하려고 예고장을 보내, 절대로 안 보낼거야.'>

4화(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샐리는 천사소녀를 이상형으로 거론하는 셜록스에게 서운함이 터져버립니다. 내가 네티인데, 네티만 좋아하고! 나는! 눈앞에 있는 나는! 그년이 난데! 그래서 작중 유일하게 예고장을 보내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질투하는 엄청나게 모순적인 상황인 것이죠.

이 때를 전후해서 시작된 불안감은 작품 내내 샐리를 괴롭힙니다. 작가는 이 불안감으로 샐리를 괴롭히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물론 로맨스 자체가 불안의 서사인 측면이 강하니, 1:1 로맨스에서 불안감이 없다면 극적 재미가 크게 줄어들겠죠. 작가가 선택한 첫 번째 로맨스 전개 도구, 샐리의 불안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샐리를 짝사랑하는 소녀로 느끼지 못하죠. 왜냐면 샐리에게는 다른 캐릭터에게 없는 기막힌 대응 방법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행히도 세상 둔하기 짝이없는 둔탱이를 상대로 한 답답한 일직선 짝사랑 로맨스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얘기를 고구마로 느끼지 않습니다.

2. 치트키, 천사소녀 네티

샐리의 불안감은 그 화에 해소됩니다. 왜냐하면, 삐져서 예고장을 보내지 않았더니 확실한 피드백이 왔기 때문이죠. 네티를 불러낸 셜록스는 예고장을 꼭 보내라, 나한테는 너의 예고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합니다. 이 예고장의 원래 의도는 러브레터잖아요? 이야, 샐리는 그렇지 못하지만 네티는 불여시도 이런 불여시가 없죠. 정말 천재적인 밀당입니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요. 샐리가 삐져서 예고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게 네티의 밀당이 되다니.

<이 둔탱이가 이게 러브레터라는걸 깨닫는건 무려 "최종화"입니다. 그것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

그래도 이건 샐리에게도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죠.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 바라봐주고, 절대로 널 포기하지 않겠다고 해주고, 날 꼭 불러달라고 해주고, 이야...짝사랑 판타지도 이정도면 과하죠. 제가 젊었을때 짝사랑하던 사람한테 저중 한 마디만 들었어도 다리에 힘 풀렸을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잡을때까지 아무에게도 잡히면 안돼!" 와 미친...다시 생각해보니 정신나간 대사네요.>

샐리는 작 중반까지 네티의 모습으로 셜록스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추파를 던집니다. 그것과 동시에 항상 셜록스라는 캐릭터의 매력, 오로지 나만 바라봐주는 순수한 마음의 소년에게 점점 더 빠져들게 되는 거죠.

<"놀이동산에서 데이트 즐거웠어! 또 만나자!" 샐리로는 못하는 얘기죠.>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이 바로 10화(천사소녀의 고백)입니다. 제목도 천사소녀의 고백이죠? 일본판 제목도 "고백...해버렸다?"입니다. 여기서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한 추파를 던집니다. 애니메이션에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누구한테 잡혀야 한다면 셜록스 너한테 잡히고 싶어!">

물론 우리 둔탱이 탐정은 이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를 못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셜록스가 최종회에서 이 대사를 회상할 정도로 효과가 있긴 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샐리는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답답한 마음과 불안감을 천사소녀를 통해서 일정부분 해소합니다. 애니에선 잘 표현되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이런 식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에피소드 이후에 샐리가 신나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주 나오는 다음 날 모르는 척 말걸기. 대부분의 경우, 먼저 말을 거는 쪽은 샐리입니다.>

마음껏 까지는 아니지만 열심히 추파를 던지고, 행여 리나한테 관심이 샐까 걱정될 때에 예고장으로 차단하는 모습도 보이구요. 예고장을 보내면, 날 보러 오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오로지 나만 바라봐주는 모습을 또 볼 수 있으니까요. 남는 장사죠.

물론 눈치 빠른 세인트는 다 알고 있죠. 실제로 29화(시장의 음모 - 하)에서 예고장을 보내는 이유가 셜록스가 자기만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서 그렇다는 독백이 나옵니다.

<"난 지금까지 샐리가 천사소녀 네티가 되어서 셜록스를 만나는 걸 즐거워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함정이 되는 이유는 셜록스의 이런 네티 일직선인 모습에 지속적으로 샐리가 느끼는 매력이 커진다는 거죠. 문제는 "네티"가 따로 느끼는게 아니라 그 본체인 "샐리"가 느끼는 것이란 말이죠.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는 겁니다. 샐리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면, 셜록스가 좀 많이 멋지게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죠, 보통 짝사랑 상대한테 셜록스가 네티에게 했던 얘기 중 한마디만 들어도 다리 풀릴 것 같다고 말입니다.

3. 잡히고 싶은 마음과 잡히면 안되는 마음의 충돌

"네티"는 잡히면 안되는데 "샐리"는 잡히고 싶습니다. 내가 천사소녀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놈이 네티 쫓아다니는건 확실한데, 저놈이 바라봐줬으면 하는건 "샐리"니까요. 불안함을 해소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이죠. 작중에 이 "내가 천사소녀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잡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러나는 씬이 몇 군데 있습니다.

<4화(화이트 크리스마스), "내가 천사소녀...!">

아예 내가 천사소녀라고 할 뻔한 적도 있구요.

<"나야, 내가 천사소녀 네티란 말이야!">

4화, 12화에서는 내가 천사소녀인데 그걸 알아봐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묘사도 나옵니다.

<7화, 18화, 도망갈 수 있는데 CC기 맞고 굳어버린 상황>

뭐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 몸이 굳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있는 것 말고 은근히, 하지만 꽤나 무게감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회차가 있는데요.

23화(향수의 비밀)에서 네티는 들키면 절대로 안된다는 두려움을 안고도 "샐리"로서 셜록스에게 물어봤던 품종의 꽃(KBS판에선 스노우 캔디라고 나왔지만 실제 있는 "스노우 드롭"이라는 꽃입니다.)을 사용한 마술을 보여줍니다. 만약 셜록스가 이 꽃이 샐리가 물어봤던 꽃인 걸 알았다면, 네티가 샐리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어요.

<셜록스에게 물어봤던 꽃을 그 회에 사용합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효과음 등으로 "알려지면 안된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연출됐지만, 원작 만화에서는 거의 내가 샐리라는 것을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고백하는 수준으로 이 마술의 연출이 나옵니다. "속이는 게 아니야, 말로는 말할 수가 없는 것 뿐이야" 하고 말이죠. 그리고 이런 양가적인 마음은, 이 회차가 마지막입니다.

3. 내가 네티라는 것이 기회에서 위기로, "두려움"의 시작

지난 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작가는 12화(신비한 거울) 이후로 셜록스의 마음이 네티에서 샐리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네티와 계속 꽁냥대면서, 네티 일직선이면서 샐리와 로맨스를 진행하긴 힘들겠죠. 작가는 이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샐리에게 잡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게 됩니다. 이것으로 "잡히면 안돼"와 "잡히고 싶어"의 균형을 깨트리죠. 두 번째 로맨스 전개 도구, "두려움"의 등장입니다. 불안감보다 훨씬 파괴적으로 샐리를 괴롭히죠. 그리고 네티를 셜록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23화(향수의 비밀)에서 샐리는 셜록스에게 잡히는 꿈을 꿉니다. 여기서 샐리의 정체를 알게 된 셜록스가 "지금까지 나를 속였구나!"라고 하는 꿈을 꾸죠. 원작 만화에서는 묘사가 좀 더 강합니다. 셜록스가 아예 뒤돌아서 떠나버리거든요. 울면서 깨어난 샐리는 절대로 잡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요. 잡히면, 셜록스가 미워할 테니까요. 이때를 전후해서 잡히고 싶다는 마음을, 잡히면 날 싫어할거라는 두려움이 압도하게 됩니다.

<"언젠간 너에게 진실을 말하려고 했었단 말이야!" 이 두려움에 대해, 샐리는 굉장히 자주 눈물을 보입니다.>

이 에피소드 후로 셜록스와 "샐리"는 오히려 더 가까워집니다. 27화(샴푸 모델 경연대회)에서는 저번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셜록스가 샐리에게 꽤 강한 관심 표현을 하지요. 30화(루비가 인형이라고)에서도 샐리를 향한 질투를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구요. 근데, 이렇게 셜록스와 가까워질수록, 네티의 위기는 더욱 커집니다. 셜록스에게 잡히면, 그때 잃게 되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거니까요.

결국 샐리가 셜록스와 가까워질 수록, 네티와 셜록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죠. 제발 나를 계속 쫓아달라고 했었는데, 이젠 절대로 잡히면 안되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근데 이것을 모두 견뎌야 하는건 실제로는 둘이 아니라 샐리 한명입니다. 이것이 작 초반에서 치트키처럼 쓰였던 "네티"라는 페르소나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네티로서 나만 바라봐주는 셜록스를 만나고 싶습니다. 근데 두려움은 점점 커지죠.

<38화(엄마의 비밀)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압도당한 상징적인 장면, "미안해, 너한테만은 절대로 잡힐 수 없어", 
예전의 "잡힌다면 너한테 잡히고 싶어"와 완전히 상반되죠.>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회차가 국내에 미방영된 회차, 셜록스에게 고백을 받은 직후인 원작의 "판도라의 소녀", 래시와의 첫번째 대결 에피소드입니다. 이미 셜록스와 사귀게 된 상황에서 내가 네티라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고, 가장 힘든 일이죠. 이젠 그냥 싫어할거야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죠. 이 에피소드에서 샐리는 셜록스와 사귀게 되어 가장 행복해야 할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멘탈이 거의 무너져 있습니다. 거의 한 테이크에 한번은 우는 장면이 나올 정도니까요. 떨면서 우는 샐리에게 세인트가 진지하게 이제 셜록스를 네티로서 만날 필요가 없으니 천사소녀를 그만두자고 할 정도로요.

<솔직히 "판도라의 소녀" 회차는 좀 너무한거 같아요. 그래도 사귀는 상황인데 좀만 더 행복하게 해주지...>

4. 이 위기의 진짜 이유, 샐리에 대한 셜록스의 마음

셜록스의 시점에서는 이 얘기가 조금 다릅니다. 이르게는 12화(신비한 거울)에피소드, 조금 늦게는 23화(향수의 비밀) 이후로 셜록스는 샐리와 네티를 겹쳐 보기 시작합니다. 사실, 중반 이후로 셜록스가 네티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네티에게 샐리가 비춰 보이기 때문"이거든요.

38화(엄마의 비밀)에서 셜록스는 이것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네티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이유는 네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샐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셜록스가 샐리에 다가가게 될 수록, 반대로 네티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됩니다. 물론 초반이면 몰라도, 이미 샐리를 좋아하는게 확실한 후반의 셜록스 본인에겐 이런 것이 모순이 아닙니다. 본인은 그냥 마음에 따라 행동할 뿐이니까요. 모순에 시달리는건 샐리지 셜록스가 아니니까요.

<어두워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장면에서 네티와 샐리가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이것은 37화(돌고래를 구하라)에서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샐리와 분리된 네티와 셜록스의 실질적인 마지막 로맨스라고 할 수 있는 33~34화(시장의 음모)에서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 셜록스는 샐리와 네티를 더욱 겹쳐보게 되고, 네티에게 폭탄 선언을 하죠. "너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랑 닮았다."라고요.

저는 이 말이 본인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샐리에게는 "이제 네티와의 로맨스는 끝났다"라는 선언으로 들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중 연출도 거의 "나랑 헤어지자"는 소리 들은 것 같이 해놨구요. 원작에서는 잉크 뿌리는 이펙트로 샐리가 받은 충격을 더 강하게 연출을 해놨어요. 작가가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원래는 이게 "샐리"에게는 본인의 최강의 네메시스, 아치에너미인 "네티"가 해소되는 선언이 되어야 하는데 그 해소되는 대상이 본인이라니. 작중에서 "불안감"이 가장 크게 터지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고장은 평소처럼 보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은 상황>

그래서 38회에서는 샐리가 계속 멘붕한 모습을 보여주죠. 네티는 어쨌든 나였는데 아니라니,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이제 어쩌지? 샐리에게는 매우 다행이지만 두 사람은 이 회차에서 서로에게 급격하게 마음을 나타내고, 셜록스가 샐리에게 고백합니다.


<고백받은 후 샐리가 흘리는 눈물은 그저 기쁨의 눈물만은 아닙니다.>

샐리의 긴 짝사랑이 일단락이 됐네요. 이제 네티와의 로맨스는 끝났고, 샐리와 사귀는 것으로 해피엔딩...?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셜록스는 샐리가 네티인 것을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속이고 있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불안감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두려움의 스택은 쌓일 대로 쌓인 것이죠.

5. 문제의 진짜 해결 방법 - 짝사랑하는 소녀에서 사랑하는 소녀로

최종화 직전까지, 샐리와 셜록스간의 로맨스는 전적으로 셜록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됩니다. 샐리와 셜록스간의 첫번째 데이트도 셜록스가 하자고 해서 이루어졌고, 네티와의 로맨스가 샐리와의 로맨스로 전환되는 것도, 샐리와 사귀게 되는 것도 전부 셜록스가 마음을 먹어서 이루어졌어요. 한마디로 "샐리"는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인 입장이었어요. "짝사랑 로맨스"의 전형적인 양상이죠. 물론 뭘 안한 건 아니고 샐리로든 네티로든 셜록스를 여러 번 도발해서 어떻게든 본인에 대한 마음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이 둔탱이의 탱킹력은 사귀기 거의 직전까지 이런 것에 꿈쩍도 안해왔거든요. 예를들어 18화(혜성 대소동)에서는 샐리도, 네티도 모두 셜록스를 도발해보지만 이놈은 이런 저런 이유로 도발 면역이에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제일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야?", 물론 이놈은 "그런 사람 없다"고 대응하죠.>

비록 천사소녀 네티로서 샐리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을 해왔고, 정말 끊임없이 추파를 던져오고, 주변의 경쟁자들을 쳐내려고 노력했지만, 먼저 짝사랑에 접어든 사람이 뭘 어쩌겠습니까. 마음의 크기가 차이가 날까 너무도 불안한 것을. 그리고 관계가 끊어질까봐 두려운 것을 말입니다.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이 없으면 그건 샐리가 아니죠. 이것 때문에 네티로서 셜록스를 만났고, 항상 잡힐까 두려움을 가졌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면서도 온전히 행복하지 못했으니까요. 커플이 된 이후 조차도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네티"로서 접근하는 것을 온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샐리는 전체 에피소드 중에 딱 한번, 이 관계에 대해 굉장히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합니다. 바로 최종화입니다. 로즈마리 모녀에게 셜록스가 납치됐을 때, 이 모든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셜록스를 구하러 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동안 셜록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샐리는 수동성에서 벗어나서 주도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짝사랑하는 소녀에서 사랑하는 소녀로 나아가는 것이죠. 여기서 샐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묘사하는 연출에 많은 힘이 들어가죠.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가 어둡고 강하게 묘사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네티 변신 완료 장면도 우리가 아는 그 화려한 뱅크신이 아닙니다. 무겁고 엄숙하게 묘사되죠.>

<"셜록스가 네 정체를 알게되면 어쩌려고 그래!" 어른스럽고 침착한 세인트가 진짜 눈물을 보이는 아주 드문 장면입니다.>

<"만약 셜록스와 끝나게 되더라도, 셜록스가 날 싫어하게 되더라도, 난 구하러 가겠어!" 
두려움이 사라진게 아닙니다. 안고 가는 거죠.>

잠깐 등장했지만 큰 인상을 준 "래시"와 "로즈마리"라는 캐릭터는 사실 진정한 최종보스가 아닙니다. 진짜 최종보스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 그리고 이것 때문에 셜록스와 끝나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주는 내적 모순입니다. 저는 이 래시와 로즈마리 모녀가 각각 샐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형상화한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샐리의 심리적 모순이거든요. 이들과 마주하는 장면 모두에서 샐리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굉장히 진하게 묘사됩니다. 실제로 로즈마리가 샐리에게 가하는 것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 마음의 공격이죠. 그리고 이들에게 "승리"하는 방법 역시 "진실됨" 하나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것을 잃어버릴 각오를하고, 진짜 모습과 진실됨으로 셜록스를 마주하게 되면서, 이 모든 불안감과 두려움은 해소됩니다. 이미 셜록스를 구하러 가겠다고 결심하는 하는 순간에 샐리는 이 로맨스의 결말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그 장면"에서 셜록스가 말하기 전까지, 샐리는 계속 두려움과 미안함에 떨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떠는 목소리로 자기가 천사소녀였다고 말하죠. 여기서 짝사랑 판타지의 끝판왕이 나오게 됩니다.

<"빨리 눈치채지 못해 미안해." 아 미친놈, 아니 미친 형님, 그동안의 죄를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하겠습니다.>

최종화와 그 근처 내용들은 사실 전반적인 연출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원작은 괜찮은데, 애니메이션은 너무 만화책 그대로에 옛날 식 회상 연출이 많아서, 좀 조야하게, 유치하게 느껴지는 씬이 많아요. 하지만 "그 장면" 하나로 괜찮습니다. 예 뭐 진부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로맨스에 진실한 마음 빼놓으면 뭐가 되겠습니까. 이거 외전에서 샐리가 "그때 일은 꿈이었을까"라고 할 정도로 환상적입니다 정말. 샐리는 이렇게 본인의 주도적인 선택,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심을 전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샐리의 로맨스는 최후의 문턱을 넘어 거의 완전하게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탄식한 샐리의 숏컷이 나오면서) "8년후,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엔딩으로 애니메이션이 마무리되죠. 

여기까지였으면 저에게 이 천사소녀 네티는 "다시 봐도 명작인 추억의 만화"로 남았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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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은 본편의 로맨스 얘기를 해봤습니다.

다음편은 제가 천사소녀 네티에 진짜 빠진 이유, 짝사랑의 관성에 관한 이야기, 외전 2편에 대해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7
  • 모두가 탄식한 숏컷ㅋㅋㅋ
  • 대충 이 연재 대찬성이오 하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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