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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8/07 13:38:25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장애학 시리즈 (2) - 시각장애인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가?
Hammer, G. (2016). “If they’re going to stare, at least i’ll give them a good reason to”: Blind women’s visibility, invisibility, and encounters with the gaze. Signs, 41(2), 409–432. https://doi.org/10.1086/682924

이번에는 오픈 엑세스가 아니니 일부만 풉니다. 아래 적겠지만 연구 특성상 개괄적으로 전체를 다루는 건 불가능합니다. 분석에서 다룬 케이스 하나만 자세히 적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본문을 참고해주세요.

들어가며

여성의 삶에서 타인, 그 중에서도 남성의 응시(male gaze)가 끼치는 영향은 큽니다. '남성의 응시'이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직접적인 눈빛을 넘어, 시각 문화 전반에 깔린 [남성 - 응시의 주체 / 여성 - 응시의 객체]라는 도식을 지시합니다. 영국에서 발원한 문화연구에서 이 점을 잘 지적했는데, 존 버거의 way of seeing을 통해 (https://kongcha.net/free/12309?keyword=%ED%92%80%EC%9E%8E&sn=on)  (https://www.youtube.com/watch?v=m1GI8mNU5Sg) 그 기초적인 얼개를 살필 수 있지요. 여성들은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특정한 형식으로 타인에게 비추어져야 한다는 규범*을 강하게 요구받습니다**.
* 1:1로 상응하지는 않겠지만 남성 동무들이 '능력있을 것'을 요구받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압박감인지 가늠이 될 듯합니다.
** 물론 문화연구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은 여성이 바라봐지는 방식(the way women are looked at)과 여성이 바라보는 방식(the way women look)을 함께 다룹니다.

그렇다면 남성의 응시가 우리의 시각 문화, 여성의 생애경험 혹은 정체성 발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지니지만 맹인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 질문은 반대의 방식으로도 물을 수 있습니다. 응시에 노출되는 것은 꼭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장애인이라서이기도 하거든요. 장애/손상을 지닌 몸은 사람들에게 호기심, 공포, 불편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이자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그 장애의 형태가 시각의 손상인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이 질문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다른 질문을 낳습니다. 시각장애인 여성들은 자신을 평가하는 응시들로부터 보다 자유로울까요 아니면 비시각장애인 여성들과 비슷할까요? 만약 비슷하다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평가적인 응시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일상적 상호작용에서 응시을 돌려줄 수 없다면 어떤 대안을 활용할까요?

이 논문은 시각장애인 여성 3인의 생애사 연구를 통해 시각적 관계(visual relations)의 복잡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관찰하는 자-관찰당하는 자]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다양한 관점과 변화하는 주체로서의 지위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히, 시각장애인 여성의 가시성에 내재한 모순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가시성은 남성적 그리고 치료적(clinical) 응시에 의해 심화되면서도, 동시에 전인적인(fully human) 그리고 성적 대상으로서의 공적, 개인적 가시성이 삭제됩니다. 연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들이 자신들의 가시성이 지닌 역설과, 이에 반응하는 방법들을 인지한다는 걸 보여줄 것입니다.

이론적 개념 중 일부

볼수없음(blindness)와 응시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의 통합

198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이론 연구에서 장애를 가진 몸 및 포함/배제의 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장애를 지닌 여성의 경험은 외양 정치(appearance politics)*를 전면으로 내걸었고, 이는 응시와 관음(spectatorship)의 문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장애를 지닌 여성들은 자신들을 향한 여러 응시와 협상하고 다루며, 여기에는 그들의 조건을 병리화하거나 섹슈얼리티를 지워버리는 의료적 시선,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에로화하는 남성적 시선, 신체적으로 규범과 다른 그들을 비가시화 하는 사회적 시선이 두드러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 적절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 임의로 직역합니다.

장애학과 페미니스트 분석의 결합은 시각 문화에 대한 페니미스트 이론이 상호교차성이 지닌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젠더에만 초점을 두는 걸 넘어, 장애 및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빚어지는 관음 간의 유사와 차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를 통해 시각 문화가 응시 등의 시각적 과정을 통해 젠더화 된 주체(gendered subject)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응시에 대한 시각장애인 여성들의 반응은 '응시'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습니다. 푸코가 강조했던 훈육 기제(disciplinary mechanism)를 넘어, 시각적 경험이 인간 성찰과 상호관계의 한 자원이 된다는 걸 포착하여 응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요.

원문을 의역해서 간략화 했는데도 복잡해보이네요. 정리하자면,

- 장애를 지닌 여성들은 기존 페미니스트 연구에서 주목했던 남성의 응시(male gaze)를 넘어, 의료적 응시와 비장애중심적 응시를 함께 경험한다.
- 장애를 젠더와 통합함으로써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관음의 유사와 차이를 볼 수 있으며, 시각 문화가 젠더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세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응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시각적 경험이 일방향적인 과정이 아니며 내적 성찰이나 타인과의 관계라는 다양한 방향에서 작동하는 걸 보여준다.

정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해서 본문에서는 짚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상태(blindness)도 일종의 스펙트럼이라는 걸 명시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흐릿하게만 보이는 상태, 흑백으로만 보이는 상태,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가 흐릿한 정도가 강해지는 상태,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상태, 어느 날 갑자기 시각적 기능이 손상되어 경험과 기억은 존재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 없게 된 상태 등등이요. 본다 / 볼 수 없다는 불연속적 관계가 아니며, 시각장애인들의 생애경험과 자기인식은 훨씬 다양합니다. 이 주제는 향후 다른 논문으로 더 자세히 다룰 것 같습니다.

방법론 소개

배경은 이스라엘입니다. 저자는 3년 간 에스노그라피(참여관찰이라 이해하시면 대충 됩니다) 연구를 실시하면서 40명의 시각장애인 여성을 인터뷰 했어요. 가시성의 경험,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경험 등등을요. 그 중 세 여성은 시각장애의 이력이나, 손상 정도가 달랐고, 자신들이 타인의 응시와 맺는 여러 경험들을 다양하게 제시했지요.

때문에 저자는 이 세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생애사 혹은 생애사 내터리브 연구를 실시합니다. 생애사 연구는 생애 과정 전반과 연구 초점이 되는 경험 사이를 통합하여 각자의 차이를 다양하게 드러내는데 목적을 둡니다.

즉, 이 연구는 일반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자애인 여성이 가시성과 맺는 경험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도 개인의 다양성을 상세하게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연구는 세 시각장애인 여성의 경험을 기술합니다. 각각의 경험을 개괄적으로 담아내는 건 논문의 이론적, 방법론적 문제의식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 푸는 건 공정이용에 저촉되는 정도가 심할테고요.

그래서 첫 번째 연구참여자인 탈리아의 경험만 풀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두 여성들의 이야기는 불편하시겠지만 원문으로 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탈리아: 수심에 빠진 공작(a pensive peacock)

탈리아는 작가이자, 학자이자, 열정적인 영화광이고, 일상적인 사회적 공연과 자신의 글 속에서 보이지않음(blindness)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루고자 유머, 아이러니, 위트를 동원합니다.

시각적인 것에 대한 탈리아의 이야기는 시각장애인 여성으로서의 내적 대화에 항존합니다. 3살에 병을 앓아 시각장애인이 된 탈리아는 시각적인 것과 자신의 관계를 '공작 게임(peacock game)*'이라 불렀습니다. 이 게임은 그가 "자신에게 진실한 것과 시각적 세계의 현존하는 규범에 나를 통합하는 것 사이의 미세한 선을 찾고자ind the fine line between being true to myself and integrating myself into the existing norms in the visual world" 하는 시도 속에서 드러내도록 강요된 모습들이었지요. 시각적인 것을 활용하고 거기에 대항하는 분투는 줄타기와 같은 균형 감각을 요구합니다. 이 협상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시각장애인인 또한 시각적 규범에서 예외가 아니며 영향을 받는다는 걸 보여주지요.

저자는 탈리아를 7년 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탈리아는 그 때 31살이었어요. 처음 통화를 할 때 저자는 탈리아가 자신의 보이지않음을 개방적이고 편하게 얘기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탈리아는 자신과 자신의 보이지않음이 타인에게 인식되는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때문에 저자는 이스라엘 중심가에 있는 그의 부모 집에서 추가 미팅을 잡았습니다.

탈리아가 집 문을 열어주었을 때, 저자는 그녀 티셔츠에 적힌 재미난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너무 가까이 서 계신 거예요If you can read this, you’re standing too close." 이 문구는 탈리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걸 잘 인식하고 있고, 이런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음으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탈리아는 시각문화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후 저자는 탈리아의 익살적인 유머와, 폴란드-유대계 배경에서 비롯된 다른 사람을 웃기려는 성향, 책과 문학에 대한 사랑, "맹인 농담"에 익숙해집니다. 예를 들어, "글쎄 내가 고등학생일 때 텔레비전 배우 덕질을 미친 듯이 했었다니까요. 만약 앞을 볼 수 있었으면 TV에서 별까지 봤겠어요 When I was in high school, I had a hell of a crush on some television actor! If I were sighted, I would have seen stars" 같은 식으로요. 그는 자신의 블로그 소개글에 "때때로 맹목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언제나 긍정적으로 눈멀어 있음sometimes blindly optimistic, always optimistically blind"이라 적었습니다.

아이일 때, 탈리아는 시각적으로 손상되었거나 볼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한 통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초등학교에 다녔어요. 여기서 그의 시각장애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졌지요. 자신의 가시성에 대한 내적 대화는 심화 되었어요. 탈리아는 보여지고 싶었던 청소년으로서 경험한 어려움을 얘기했어요. 맹인이자 장애인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소녀이자 성적인 존재(sexual being)로.

16세 때, 자신의 시각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내 장애와 매우 잘 지내고 있을 때 living really well with it", 그는 자신의 섹슈얼리티에서 투명성을 느꼈어요. 말인즉슨 "난 공기와 같았어요I felt like air"라는 거지요. "남자애들은 절 소녀로 보지 않았다고 느껴요.... 저는 그냥 사람이었어요. 전 문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소녀였지만, 남자애들은 절 흥미로울 잠재력을 지닌 소녀로 바라보지는 않았지요. 날 관통해서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그냥 관통해서요. 걔들은 그러니까 제 말은... 저는 여성이나 특정한 성별에 속한 누군가로 취급되지는 않았어요I felt like .. . the boys weren’t looking at me as a girl; I was ... a person. And I was literally a girl in every sense, you know, but I didn’t feel like they were looking at me as a girl who had the potential to be interesting or anything. I felt like they looked through me. Just through me. The boys, I mean .. . I wasn’t treated as a woman or as someone who belonged to a specific sex.”

물론 남자애들은 탈리아를 알아차렸지만,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그의 시각장애였고, 그가 받은 것은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였어요. 한 소년은 자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야 쟤랑 사귈 남자는 진짜 운 좋겠다. 남자친구가 어떻게 생긴지 알려면 만져서 알아야 할 거잖아the boy who goes out with her will be really lucky, because she’ll need to touch him in order to know what he looks like." 그 얘기를 듣고 탈리아는, "웃음이 터졌어요. 진짜 웃겼거든요. 얘들은 시각장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싶었죠.bursting with laughter, because it was really funny to me, you know, it’s like ... they really didn’t know anything about blindness."

다른 경험은 웃기기보다는 상처가 남는 경험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죠It’s something that happened not only in high school" "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누군가 볼 수 없다는 것이 볼 수 있다는 것과 죄다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지 못해요but with people, and with men in general; they don’t understand that being with someone blind doesn’t necessarily mean anything different than being with a sighted person."

탈리아에게 둘의 차이를 물었을 때, 그녀가 밝힌 볼수없음(blindness)에 대한 믿음은 "대부분 낙인적이고most stigmatized", "공포의 원천이자 동정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자아내는 것source of fear ... evoking pity and avoidance."이었어요. 탈리아의 말에 따르면 남자들은 대부분 앞을 볼 수 있는 여성과 데이트하기를 원하는데, 의자나 엘리베이터를 체크하는 등 도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탈리아의 볼수없음과 장애는 그를 역설적인 지위에 놓았어요. 이 속성들은 한 편으로는 전통적인 여성성에 결부된 무기력함과 의존성이라는 관점에서 과도한 여성성(hyperfeminine)이 부여되어 여성이라는 젠더가 강화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여성성이나 섹슈얼리티와는 거리가 멀게 만드는 남성의 응시에 노출되요. 여기서 장애와 젠더 체계의 간극이 드러나지요.

또한 탈리아의 서사는 여성성과 섹슈얼리티가 인식되는 모순적인 방식을 드러내요. 탈리아가 만져야 얼굴을 알 수 있을테니 데이트하는 남자는 좋겠다는 수군거림은 장애와 젠더가 결합되어 괴기하게 장애화되고, 괴기하게 젠더화 된 몸(freakishly disabled and gendered body)*이 구성되는 양상, 보이지않음이 강화된 섹슈얼리티로 페티시화 되는 양상을 보여주지요.
* 장애인들을 구경거리로 전시하고 다니던 프릭 쇼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동시에 탈리아는 남성의 응시를 받을 "자격이deserving"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데, 이유인즉슨 그의 장애 때문에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혹은 성적인 존재일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지요. "전 섹슈얼리티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에요I’m not a person who projects sexuality." "사람들은[남자들은] 절 따라오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추파를 던지지도 않아요People[guys] don’t run after me or hit on me on the street."

하지만 사람들은 탈리아를 응시합니다. 그리고 탈리아는 그것을 알고요. 그가 들고 다니는 하얀 지팡이가 장애를 보여주고, 탈리아는 "보이는 모든 세계는 당신에게 갑자기 튀어오르는 것이에요*the whole world to see; it’s something that jumps out at you"라고 설명합니다*.
* 탈리아가 보는 세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응하여, 탈리아는 적극적 행위자로 자리매김 했어요. 자신과 자신의 시각장애가 취급되는 양상을 다루어 나가면서요. 다른 사람들이 응시할 때 비언어적 반응을 보이는 건 한 사례지요. 고등학교 때, 탈리아는 예쁜 친척과 길을 걷고 있었어요. 갑자기 친척이 "아 짜증나. 난 쳐다보는 게 짜증나‘I’m sick of it! .. . I’m sick of the staring.", "야 그건 니가 이뻐서잖아It’s because you’re beautiful", "아니야 탈리아, 너가 맹인이라 그런거야No Talia, it’s because you’re blind", "오 그래? 여기에 볼 게 뭐가 있다고?Ho, ye? What’s there to look at?", "몰라, 쟤들은 니가 장님이라서 보는 거라니까I don’t know, they stare ‘cause you’re blind". 그 얘기를 듣고 탈리아는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친척이 뭐 하는 거냐고 묻자, 탈리아는 "걔들이 여기를 쳐다본다면 그럴만한 최소한 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어줘야지 Well, if they’re going to stare, at least I’ll give them a good reason to."라 답했고요.

탈리아의 경험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교차되는 역설적인 지위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쳐다보기(staring)와 응시(gaze) 사이의 유사와 차이를 보여줘요. 탈리아의 친척은 인간이자 섹슈얼한 신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응시를 끌어들였고, 탈리아는 무성적이고 의학적으로 다른 신체에 대한 평가인 쳐다보기를 경험했어요. 응시가 섹슈얼화인 반면, 쳐다보기는 비인간화이며, 장애 여성이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모두에서 주변화 된다는 걸 알려줘요. 말하자면 응시는 "넌 내꺼야You are mine"인 반면, 쳐다보기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야? What is wrong with you?"지요.

하지만 탈리아의 경험은 응시와 쳐다보기 사이의 경계가 딱 떨어지는 이분법이 아니며 서로 얽혀있다는 것 또한 보여줘요. 탈리아를 쳐다본 시선은 장애와 여성성 양 쪽 모두의 결과이고, 공공 영역에서 예측되지 않는 신체(unexpected body)의 결과이니까요.

탈리아와의 대화는 시각적인 것을 다루어나가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요. 한 편으로 그는 자신의 시각장애를 축복으로 생각해요. 탈리아는 이를 "내적 거울inner mirror"이라 불렀어요. 비시각장애 여성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매력적이라고 여겨지고 무엇이 매력적이라 여겨지지 않은지 알려주는 수많은 규범과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반면, 자신은 "일상 속에서 항구적인 시각적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이런 규범들로부터 자유로운free from these norms, because there is no constant visual feedback on a daily basis" 기분을 느꼈지요. "나는 날씬하면서도 몸매가 있어야 한다는 컴플렉스를 지니지 않고 있다는 것에 꽤 만족해요. 또 아침마다 헤어드라이기 쓰는 데 집착하지도 않고요. 만약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여성들이 따라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회적 규범에 순응해야 했을 거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네요. 제가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안 보이는 것에는 몇몇 좋은 점이 있네요I’m happy with not looking for a mirror all the time. I’m happy with .. . not being obsessed about using a hair dryer in the morning. ... If I were a sighted person, I would have to comply with the social norms that women feel compelled to follow. ... And I wouldn’t want to be in that place. I really like the fact that I was spared that. You see? There’s something good about blindness."

다른 한 편, 탈리아는 기실 "시각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관행과 규범"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거기에 따르고자 했어요. "전 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요. 그리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요. 그리고 제 외양이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보기에 즐거울 때, 저 또한 기분이 더 좋아져요.I live among sighted people, and I don’t want to make them feel uncomfortable. And it gives me a better feeling when my appearance is pleasant for a sighted person to look at."

탈리아의 서사는 시각적인 것과 나누는 대화가 지닌 복잡성을 보여주고, 시각적인 필요와 예측에 맞춰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줘요. "매우 난해하죠It’s so complicated" "왜냐면... 만약 제가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않는다면, 제가 이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죠?because ... if I’m not true to myself, what have I accomplished?"

나가며

사실 이 주제를 벌써 다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습니다. 처음 뽑은 논문 리스트를 보더니 친구가 요것도 추가해 달라며 알려준 논문인데, 젠더/섹슈얼리티/장애가 교차하는 영역은 중반부 이후 다루고 싶었거든요. 초반부에는 의도적으로 장애/손상에 관련된 정체성만 다룬 후 천천히 교차되는 영역을 넓히고 싶었어요.

그런데 초창기부터 복잡한 연구를 대비시켜 보여줘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생애사 연구라는 특성 떄문에, 젠더, 장애, 섹슈얼리티, 더해서 이스라엘의 사회 담론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차이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잡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논문이었거든요. 위에 자세히 풀어낸 탈리아 사례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는 흐릿하다만, 다른 사례들에서는 충분히 살필 수 있고요.

탈리아의 내러티브와, 저자가 해석해낸 다양한 경험을 보면서 '아니 탈리아는 그리고 저자는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장애라는 이유로 무성적으로 취급하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다가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페티시화 되는 걸 경계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 이것도 저것도 다 문제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논문은 단순하게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쉽게 결론내린 후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하거나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장애인이자 여성인 사람들이 삶에서 부딪치는 복잡한 시선들, 그 시선들이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모순적이더라도 나름의 체계를 잡아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각장애인 사람들이 그 시선들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종합하며, 때로는 볼 수 없음에도 '보이는 것'들을 이용해서 타인의 시선에 - 응시든 바라보기든 - 영향을 끼치려는 걸 상세하게 드러내려는 것에 가까워요.

이런 작업물들을 엿보는 걸 통해,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대한 사려가 조금은 더 늘어나게 되요. 기실 삶에서 복잡한 게임을 벌이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거든요. 각자에게 주어진 게임의 형태가 체계적으로 다를 뿐이지요. 하지만 그 게임은 개인의 정체성을 구속하는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지 않으며, 사람들은 그 제한 속에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일상의 순간들을 순간적으로나마 새롭게 생성해요. 어찌보면 유머의 한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걔들이 여기를 쳐다본다면 그럴만한 최소한 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어줘야지"라는 탈리아의 댄스처럼 말이죠.

향후에 남성 장애인들의 정체성과 일상적 공연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난 후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살펴보시면 나름의 재미를 또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오타나 비문은 언제든지 댓글로 짚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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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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