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4/07 01:52:31
Name   nothing
Subject   이직 여행기
안녕하세요.
IT 쪽에서 개발을 해온지 대충 10년 정도 된 개발자입니다.

학교다닐 적에는 전학 한 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다녀놓고
회사는 어쩌다보니 이직이 이직을 반복하다보니 벌써 이번이 네 번째 회사네요.

이 이직이란 것도 사실 처음에는 실수 투성이 였는데
그래도 몇 번 하다보니, 아 이땐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겠구나 하는 가이드라인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보면서 아쉬웠던 것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직은 약 4년차 정도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경력직 이직이다보니 부담감이 어마무지 했습니다.
신입과는 다르게 경력직을 채용할 때는 즉시전력감을 기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것도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게, 아무리 경력직이라도 해오던 일이 다르고, 직장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프로세스가 다른데 어찌 즉시전력이 되겠습니까..
근데 그 땐 그렇게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거 잘 몰라요. 도와주세요" 같은 건 신입의 특권이고, 경력직은 어떻게든 답을 내어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내야 하는 자리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땐 그래서 초반에 정말 빡세게 달렸습니다.
가뜩이나 도메인이나 다루는 기술 등이 몽땅 바뀌어 버린 상황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 동료들에게 질문하고 도움을 구하면 훨씬 더 빨리 적응하고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을껀데 무식하게 혼자 맨땅에 헤딩을 자주 했습니다.
사실 그것도 파이팅 넘칠 때 잠깐 쏟아붇는거지, 오래 지속하긴 어렵잖아요.
한바탕 쏟아붇고 나니까 번아웃 비슷한게 오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싫은 시간이 오기도 했습니다.
의욕도 많이 떨어져서 관성으로 일하기도 했구요.
결국 이 회사는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식월이라는 변명같은 이유를 붙여 4달을 내리 놀게 됩니다.

더이상 통장에 월급이 꽃히지 않으면 위험해질 쯔음에 3번째 회사를 들어갑니다.
3번째 회사에서의 롤은 이전의 회사들과는 살짝 결이 달랐어요.
똑같이 개발자 롤이긴 한데, 이전 회사들은 하루종일 코드를 만지는 롤이었다면, 이 회사에서는 코드도 만지되 그 외의 일들도 많이 필요한 롤이었습니다.
문서도 많이 쓰고, 같이 일하는 파견 개발자들의 일정 관리도 하고..
여기서 가장 큰 실수는 제가 제 롤을 그냥 일반 개발자로 제한시켜 놓은 점이었습니다.
나는 개발자니까, 내 롤은 비즈니스를 위해 코드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하면서 개발 외적인 업무들을 좀 태만하게 처리해놓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실수는, 사내 인적 네트워크를 충분히 다져놓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사실 이전 회사들은 다 규모가 고만고만해서 직접 협업하는 유관 부서도 몇 개 없었고, 굳이 인적 네트워크를 관리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근데 이번 회사는 이전 회사보다 규모가 훨씬 커지면서 타 팀과의 협업 기회도 많아지고, 그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내에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널리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도 업무 역량이 되는데 그 점을 몰랐습니다.
그냥 팀이라는 바운더리를 넘어서질 않고 그 안에서 개발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가 생겨서 현재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벌써 반년도 넘었네요.
이번 회사에서는 지난 회사들에서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 환경이라 쉽지 않지만 널리 두루두루 관계를 다져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발 외적인 업무들도 결국은 내 롤이라는 걸 이해하고 꼼꼼하게 하고 있고
무엇보다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팀내 동료들에게 열심히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늅늅인지라 도움을 청하면 그래도 귀중한 시간 써주시며 많이들 도와주셔서 감사히 일하고 있습니다.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217 일상/생각와이프가 행보관처럼 느껴져요. 8 큐리스 22/10/11 4831 0
    13212 일상/생각제사는 악습인가? 25 moqq 22/10/07 5075 0
    13206 일상/생각즐겨보는 해외 유튜브 채널을 소개합니다. 3 Only 22/10/05 4124 3
    13204 일상/생각(음식) 가성비 대신에 칼성비 9 OneV 22/10/04 4014 3
    13193 일상/생각채용연계형 인턴이 의미가 있나... 그냥 정직원으로 채용하면 안되나 23 Picard 22/09/30 5517 0
    13191 일상/생각전화위복이란걸 처음 느껴봤습니다. 8 큐리스 22/09/29 4966 9
    13180 일상/생각아들한테 개발자로 인정받았네요 ㅋㅋㅋㅋ 5 큐리스 22/09/26 4568 10
    13174 일상/생각효도란 무엇일까요…? 15 OneV 22/09/22 4934 1
    13173 일상/생각퇴사하고 꼭 해야할 것들 ? 27 아거 22/09/22 4615 0
    13169 일상/생각만년필과 함께한 날들을 5년만에 다시 한 번 돌아보기 30 SCV 22/09/21 5630 8
    13161 일상/생각딸내미로부터 가을을 느낍니다. 11 큐리스 22/09/19 4382 24
    13151 일상/생각만년필 덕후가 인정하는 찰스 3세의 착한 빡침 90 SCV 22/09/13 37612 47
    13146 일상/생각결혼준비하는데 남친이숨막히네요 23 뿌꾸미 22/09/09 7033 0
    13139 일상/생각옛날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15 큐리스 22/09/07 4766 0
    13136 일상/생각요즘 애들 어휘력 부족이 정말 심각하다? 저는 동의 안 됩니다. 33 OneV 22/09/05 10183 0
    13134 일상/생각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4 whenyouinRome... 22/09/05 4071 34
    13127 일상/생각실패조차 하기 싫은 귀찮음이란 9 큐리스 22/09/02 4571 0
    13110 일상/생각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6 moqq 22/08/26 4932 4
    13109 일상/생각[팝니다] 내용수정 33 *alchemist* 22/08/26 6212 0
    13100 일상/생각자폐 스펙트럼과 일반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 14 카르스 22/08/21 8438 71
    13081 일상/생각왼쪽 ,,, 어깨가 너무 아픈데 ,,, 14 네임드 22/08/13 3718 0
    13080 일상/생각서부간선 지하도로는 왜 뚫었을까요 13 copin 22/08/13 4783 0
    13079 일상/생각물 속에서 음악듣기 16 *alchemist* 22/08/12 4239 8
    13073 일상/생각(치과) 신경치료는 이름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17 OneV 22/08/10 5742 3
    13067 일상/생각한자의 필요성을 이제서야 느끼고 있습니다. 23 큐리스 22/08/08 5327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