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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10/18 17:26:57
Name   Picard
Subject   거시기한 상사 외전 : 대충돌
안녕하세요

중견 제조업의 중간관리자 포지션인 아재입니다.

지난번에 예전 상사 이야기를 썼더니 대충돌 이야기를 궁금해 하셔서 댓글로 썼지만 조금 보완해 봅니다.

거시기한 파트장 밑에서 부서 이동도 못하고 협력사분들 편들어 주면서 10년 남짓 지내다가 처음으로 후배가 들어왔습니다.
신입이 아니라 대리급이었습니다.

순환보직이 제한적이고 저처럼 한분야에서만 쭉 일하는게 이상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에서... 무려 4번이나 팀을 옮긴 이력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팀을 옮겨봐야 영업-마케팅-고객서비스 정도 돌고, 생산-기술-품질 정도만 돌거든요.
이 친구는 생산-생계-구매-물류를 돌다가 막판에 회사 망하고 구조조정할때 명퇴대상자로 분류 되었는데도 사표 안쓰고 무급명휴로 6개월을 버틴 끝에 복직한 친구였습니다. 애초에 이렇게 복직한 친구 아니면 우리 부서에 사람 충원 안해줬겠지만.

인사발령이 뜬 날, 파트장의 표정이 구겨졌습니다.
'에이.. 내가 그렇게 우리 사람 필요없다고 했는데, 왜 현업 말을 귓등으로 들어!'(기어이 날 쫒아내려고 하는구나) 라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후배가 왔을때도 시크둥하게 저보고 알아서 교육하라고 하고 회식도 안하고 어떻게 하면 쟤를 다시 쫒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여러부서 전전하다가 명퇴 대상까지 되었던 친구니 능력이 없겠지 하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교육을 하다보니 좋은 대학을 나왔고, 똘똘한 친구였습니다. 문제는 성격이었어요.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건 아닌데요' 싶은거는 물러나지를 않는 성격이더라고요.
대충 스토리를 들어보니, 생산팀에 있을때는 현장 반장이 대충 넘어가려는거 못 넘기다가 충돌났는데, 이 친구가 잘못한건 아니니 생계로 부서이동. 그런데 생계팀에서 자기 주문 급하다는 영업팀장이랑 충돌나서 '애가 유도리가 없네.. 이런 성격이면 구매팀이 딱이지' 하고 구매팀에 보내졌는데 거기서 또 연줄로 들어와서 비싸게 받아 가는 업체를 '아무리 연줄이라지만 이건 너무 폭리 아닙니까!' 하면서 구매팀장에게 업체 퇴출하겠다고 대들다가 물류팀으로 이동... (....)
물론 이 친구 말만 들은거라 이게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도 참 파란만장 했더라고요.

딱 3개월 교육시켰는데, 제가 갑자기 지금 부서로 발령납니다. 그렇게 그 파트는 다시 둘이 되었고, 파트장이 신나서 (지가 술을 사는게 아니라) 협력사 이사한테 술을 사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 딴데 가서 자기 자리 위협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후배는 뭐 3개월 배운애니까 무시무시...


반년쯤 지났는데, 후배가 찾아와서 '과장님. 혹시 여기랑 여기 예비품 재고 실사 하셨어요?' 라고 물어봅니다.
'거기는 내 담당이 아니라 파트장님 담당이라 직접 하셨어요.'
'처음 입고 들어올때 확인도 파트장이 직접 했죠?'
'그치.. 자기 담당 업무에 내가 끼는거 싫어하니까..'
'제가 재고 실사를 해봤는데요. 예비품 재고 목록이랑 재고가 안 맞아요'
'응..?'
'제가 협력사 *** 차장님을 강하게 추궁했더니.. 파트장님이 가져간것도 있고, 아에 안들어온것도 있는 것 같아요'
'과장님 옮기시고 나서 과장님 담당 예비품 목록에 작년 12월에 있다고 되어 있는 장비가 사용실적도 없이 지금 없어요. 조심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친구는 파트장이 장비 들여올때 예비품이라며 물건을 더 사고서는 빼돌렸다고 의심을 하는 거였습니다. 아니 아에 지불만 하고 실제 물건이 안들어오고 뒤로 해먹었을 가능성을 의심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전히 차 한잔씩 하던 협력사 부장님에게 가서 넌즈시 물어봤더니, 부장님이 '피과장은 그냥 모르는 걸로 해.' 라면서 대답을 회피합니다.
아... 입고검수 같은 귀찮은거 나 안시키고 자기가 직업 하면서 매년 (내가 보기에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예비품을 발주내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후에 파트장이 발주내는 자재들 이 친구가 크로스체크를 하고, 재고실사를 하면서 파트장이랑 이 친구랑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그 뒤로 댓글에도 썼듯, 이 친구가 한 공적에 파트장에 숟가락 얹기 하면서 둘이 크게 싸우고서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요.
여러가지 소문이 있었는지, 갑자기 공장장이 파트를 해체하고 파트장을 팀원으로 다른 팀에 넣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팀장이랑 구)파트장이랑 계속 싸우다가, 팀장이 이 사람이랑은 같이 일 못한다고 하는 와중에 사내협력사(우리회사 지분 100%)에 빈자리가 생겨서 거기 팀장으로 낙하산 발령납니다.

후배는 일은 몰리지만, 과장 승진도 하고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재고 문제가 터집니다.
원래 예비품은 선입선출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외자로 들어온 예비품은 환율에 따라 원화가격이 달라지고, 환율이 높을때 들어온 예비품보다 나중에 환율이 쌀때 들어온 예비품을 원가 관리 차원에서 먼저 쓰다 보니 환율이 높을때 들어온 예비품이 쓰지도 못하고 오래 묵혀 있다가 폐품이 되어버렸죠. 이런식으로 외자 부품들이 10년 가까이 장부상에 수십억 잡혀 있는데,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재고는 폐품인겁니다.

회장이 노발대발해서 도대체 누구 결정이냐! 하고 캐봤는데 당시 결정 라인에 있던 공장장이나 생산부사장은 이미 다 나갔고,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이런 일을 아무도 책임 안지고 넘어갈 수 없다며 회장이 누구든 책임지게 하라고 해서 팀장이 잘리고 예비품 재고를 그룹에서 빡세게 감사 받았습니다.

당연히 이쪽 예비품 재고도 문제가 생겼는데, 후배 과장이 미리 '재고가 잘 안 맞는다' 라고 선보고를 했고, 구파트장은 이미 퇴사를 한 사람이고, 임원들도 팀장이 억울하게 잘렸는데 스스로 일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되어서 어떻게 넘어갔습니다.
(후배 말로는 1년에 천만원 정도 빼드신것 같다는데.. 수십억 외자 부품 때문에 난리가 난지라 몇천만원으로 일 키우기 싫으셨던듯)

자칫하면 부서 이동한지 4년 지난 저한테까지 불똥 튈뻔... (....)

하여튼, 저라는 인간도 파트장이 부품 구입으로 해먹는걸 후배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으니 참 눈치가 없다 싶고.. (사실 파트장 일은 간여하기 싫었음)
나 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누군가가 해먹어도 안들키고 넘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왜 나는... 내가 발주내고 내가 입고검수 하고 아무도 관심도 안두는 예비품을 빼먹을 생각을 못했나!!!
(노트북, 하드디스크, SDD, 모니터 등등 빼먹을 만한거 많았는데!)

써놓고 보니 대충돌 이야기는 너무 간략히 넘어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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