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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5/09 10:11:28 |
Name | 은머리 |
Subject | 섬세한 담론의 중요성 : 미국의 반인종차별주의 이념 |
미국의 흑인 좌파 지식인 이브람 켄디(Ibram X. Kendi)의 반인종차별주의 이념, 즉 인종차별은 구조적이라 억압자인 백인은 본인이 남을 억압하고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억압자의 위치가 될 수밖에 없고, 우리 모두는 이런 문제의식을 항시 염두에 두고 타파할 생각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진보성향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들 수긍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현재의 미국의 리버럴 담론은 이런 상식적인 주장에 근거해서 건설적으로만 발전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미국의 한 백인 부유층 동네 고등학교 교사 폴(Paul)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올해 2021년 4월 13일의 일입니다. https://bariweiss.substack.com/p/i-refuse-to-stand-by-while-my-students 기고글을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Critical Race Theory라고 하는 것인데요. 바로 인종차별은 구조적인 문제란 얘기이고 리버럴대학이라면 기본적으로 구축해 놓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의 교양과정 커리큘럼입니다. 문제는 이 사회학 주제가 일부 antiracism으로 좌편향을 해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취지가 살짝 변질돼 억압자, 피억압자를 인종적으로 구분해 오히려 인종적 구분을 심화시키는데, antiracism에서는 이런 반박 자체가 노골적인 인종차별로 인식되어서 목소리가 묻히니 이념적으로 전체주의적인 독선을 야기한다는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뒤 앞서 언급한 고등학교 교사의 기고글을 살펴 보면, 이 학교에서 ‘반’인종차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념 자체는 매우 옳지만 실천방향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 학교는 최근에 백인 교사들과 백인 학생들만 모여 줌미팅을 열었는데 백인으로서의 ‘자기 관리’ 세미나 같은 거였다고 회고합니다. 유색인종을 배제해 놓고 백인들끼리만 회의를 열어 자기 속죄훈련을 도모하는 거죠. 이 세미나에서 인종차별담론에서는 객관성, 개인주의, (백인의) 자기 위안 등이 백인우월주의의 속성을 지닌다고 훈련합니다. 이에 교사 폴이 개인이 그렇게 인종적 정체성에만 기반해 정의될 수가 있는 거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의문에 몇몇 다른 교사들과 학생들이 그의 지적은 건설적이라며 반가워 하죠. 문제는, 교사인지 제 3자에 의한 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규율상 외부에 새어 나가선 안 되는 이 대화가 노출이 되었고 교장이 교사 폴의 철학은 학생들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누구에게는(=유색인종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비난을 합니다. 또, 교장은 교사가 상처받기 쉽고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불협화음만 초래했다고 합니다. 며칠 후, 교장은 학교의 모든 상담사들로 하여금 교사 폴에 대한 교장의 비판을 모든 학생들에게 읽어 주도록 명령합니다. 교사 폴 자신도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저소득층 학부모가 이 학교에 오면 문화충격부터 느끼고 이런 저런 차별적인 경험을 한다는 걸 알죠. 그치만 이 교육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 학생들이 있고 몰래 교사 폴에게 상담을 해 오곤 하는데 그들에 의하면 수업분위기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이브람 켄디식 반인종차별주의 이념에 반대하는 그 어떤 의견을 피력해서도 안 됩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죠. 교사들은 학생들이 주입받은 프레임을 유려한 화법으로 소화하면 칭찬을 하고, 아무말 않고 가만 있는 학생들한테는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표현하도록 강권합니다. (그 이유는 반인종차별주의에 의하면 백인들이 열성적으로 반인종차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침묵하는 것 또한 인종차별 또는 백인우월주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8년에 출판된 [백인의 허약성](White Fragility)이라는, 백인여성저자의 저서로 리버럴들 사이에서 강화되어 퍼지게 됩니다.) 그런데 침묵을 깨고 생각을 말해보라 해놓고 정해진 답이 아니면 죄악시하는 거죠. 학교 교장이 말하는 인종차별이란 '나는 피부색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 능력주의 신봉, 침묵 등입니다. 그리고 2019년 2월의 모임에서 인종차별로 인식되는 모든 말과 이미지들의 해악은 마치 총이나 칼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다른 의견'을 드러내기란 불가능하죠. 교사 폴은 이미 교육자로의 생업을 건다는 각오까지 하고서 이런 문제제기를 하게 됩니다. 아마 교사 한 명의 튀는 목소리와 그 교사가 학교 하나에서 경험한 것만으로 미국 전체를 재단하기 힘들다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치만 이 글이 제게 경종을 울린는 것 같다 느낀 이유는 바로 2017년의 Evergreen State College 사태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에요. 이제부터 펼쳐질, 워싱턴 주의 한 자유롭고 리버럴한, 기존에 4000여명의 재학생들이 다녔었던 주립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믿기가 힘들 정도로 괴랄해 보일 겁니다. 에버그린 대학교는 예전에 미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실험적인 학교들이 다들 실패하고 사그라진 것에 비해 독특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매우 유니크한 학교라고 합니다. 백인학생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니르바나의 싱어 커트 코베인이 다닌 학교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해에 흑인학생은 아마도 10% 가량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5%라고 자료에 나와 있네요. 전공이 없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등교만 하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든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으며 GPA라는 평가기준도 없고 학생들에게는 피드백만 주어집니다. 학생들에게 최대한 배움의 자유를 부여하며 독립성을 보장합니다. 교수진들은 이미 매우 좌편향된 리버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브렛 와인스틴(Bret Weinstein)과 그의 아내이자 동료 교수 헤더 헤잉(Heather Heying)도 독특하게 실험적인 에버그린 학교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근무를 하고 있었죠. 2015년 에버그린 대학교에 새로운 백인교장 조지 브리지스(George Bridges)가 부임해 옵니다. 그는 이미 좌파일색인 교수진들보다 훨씬 더 래디컬한 성향인데 자신의 래디컬한 반인종차별주의 아젠다를 관철시키기 위해 '평등(equity)'를 기치로 내세워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브람 켄디식의 반인종차별주의는 분명 옳은 가치이지만 이 이념이 거의 종교같이 신봉되다시피 합니다. 어느 날 교수회의가 열리는데 그 날의 회의는 교수를 고용할 때 계약서에 한 가지 조항을 포함하냐 마냐를 결정하는 자리였죠. 교수들은 매해 자기평가서를 작성하는데 논의된 항목은 자신의 인종차별성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성장을 거듭했냐를 술회하는 항목이었습니다. 교수 브렛 와인스틴이 유일하게 우려를 표하는데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이렇게 두려워본 적이 없다는 말도 합니다. 그가 이 항목은 포함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익명이 아닌 기명투표결과 70: 2로 압도적인 다수가 항목포함에 찬성을 합니다. 교수 브렛은 익명이었으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합니다. 실제 웬만해선 해고당할 일이 없는 테뉴어 백인 동료교수가 브렛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무서워서 찬성표 던졌다고 고백을 했지요. 2016년 교수진들은 카누회의라고 하는 일종의 평등위원회모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카누란 강이나 호수에서 타는 카누를 말하죠. 한 유색인종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에버그린대학교는 다양성에서는 월등하지만 '평등(equity)'에는 취약하다고 합니다. 그거 아시죠. 키가 다른 세 명이 같은 크기의 받침상자에 서 있으면 키가 큰 사람만 야구경기를 관람하지만 키 큰 사람은 낮은 받침상자를 딛고 서고, 키 작은 사람은 높은 받침상자를 딛고 서면 모두가 야구관람을 하는 그림이요. 그 얘기인거죠. 교내 상급자리는 백인일색인 걸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거죠. 흑인여성교수도 발언을 하는데 분노를 감추지 않고 아주 심각하게 얘기를 합니다. 이 회의에서 인종차별을 타파하고 평등을 이루자는 계획에 우리(흑인)가 당신들(백인 교장 외 백인지도부들)을 초대하는 것이며 반대하는 사람은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교수를 고용하는 데 있어 무조건적인 평등이 적용되는 분위기로 갑니다. 그 영역이 STEM으로 뻗어가면 좀 곤란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런 반박은 인종차별이 됩니다. https://youtu.be/FH2WeWgcSMk?t=835 카누회의에서 유색인종의 사회자교수는 백인일색의 핵심임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주변을 마치 카누를 타듯 둥그렇게 지나가라고 요구하는데 카누 여행은 힘겹고 장애물이 있을테지만 극복하고 해쳐나갈 것을 맹세해야 한다고 합니다. 카누에 승선하기 전에는 이 카누에 승선해도 되는지 허락을 요구해야 된다고도 하죠. 백인 지도부 일원들은 평등을 위한 여정에 함께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형태로 평등에의 충성을 맹세하는 발언을 하고 나서 회의장 안을 둥그렇게 걷기 시작합니다. 백인학생도 눈에 띄는데 비장한 목소리로 자신의 백색을 치열하게 거부하겠노라 맹세를 하죠. 지금까지의 스토리는 텍스트로 읽을 땐 상당히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영상을 보면 기분이 다릅니다. 이건 배경설명일 뿐이에요. 엽기적인 사태는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키면서 시작됩니다. 에버그린 대학교에는 전통적으로 지켜온 Day of Absence 라는 날이 있습니다. 옛날 미국의 흑백분리사회를 기억하며 차별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유색인종 학생들만 이 날 등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백인학생들만 캠퍼스에 모여서 인종이슈에 대해 토론을 합니다. 유색인종의 명백한 부재를 목도하며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의식화를 공고히 하는 거죠. 이런 토론에는 아시안 소수인종이 어떻게 백인우월주의에 기여했는가라는 주제도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2017년 이 해에는 유색인종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백인교수진들과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교수 브렛이 이멜을 통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말이 좋아 자율적으로 백인들만 오지말라고 하는 거지 두려워서 등교할 백인이 누가 있겠으며 인종배제를 통한 반인종차별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런 내부 문제제기를 흑인교수 나이마 로우(Naima Lowe)가 공론화 해버립니다. 참고로 브렛은 학부생이던 시절에 흑인여학생이 백인남학생들에게서 성적으로 학대?희롱?을 당하는 걸 막으려다가 학교를 떠나야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흑인교수 나이마 로우는 [백인들에게 질문해야 할 39가지]라는 책의 저자이며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을 질문을 백인들에게 던짐으로써 인종차별을 역지사지로 체험하도록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느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충분히 심오한 물음이죠. 그래서 진보언론 Salon이 긍정적으로 기사를 실어준 적이 있죠. 교수 나이마는 백인교수 브렛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인종차별자라고 낙인을 찍고 엄청난 분노를 쏟아냅니다. 브렛이 비판하는 지점은 백인은 무조건 백인이라는 이유로 본디 인종차별주의자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시선에 대한 반발입니다. 이 주장은 백인여성저자인 로빈 디안젤로가 앞서 말한 [백인의 허약성(White Fragility)]에서 설교하고 있는데 그녀의 해결책이란,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며 유색인종에게 '나이스'하라는 겁니다. 의도는 좋고 분명 옳은 말들의 향연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결국 구원의 주체가 백인이어서 비판을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저서를 출판한 건 2018년이지만 그 전에 계속 다양성 전문가로서 활동했고 에버그린 학교에서도 강의를 했습니다. 그녀의 속죄는 반인종차별주의적이지만 동시에 어찌 보면 본인이 실제 인종차별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책에서 말하길 흑인 대학장을 보고 '흑인이 대학교 학장을 다 하네'란 생각을 했다면서 이처럼 백인은 시스템 안에서 억압자해 해당되는 피부색때문에 인종차별의 내면화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은 아마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미국에는 정말로 피부색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character만을 보는 백인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실이 구조적인 인종차별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저만 해도 의외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흑인을 보면 와~미국 많이 변했구나라고 생각하지 흑인이 저런 걸 하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에버그린 학생들의 소요사태를 보면 백인(에버그린 교장)이 무조건 숙이고 속죄만 할 때 경우에 따라 어떤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되는지를 보시게 될 거예요. 나이마 교수의 공론화로 브렛 교수는 학생들의 분노를 순식간에 사게 되고 그의 사무실 바깥에 모여든 학생들은 교수해고를 요구하며 집단광기를 보입니다. 이런 소요사태때문에 아마도 교수진들과 학생들 간 회의가 있었던 모양이고 한 백인교수가 꽤나 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학생인 듯한 목소리가 'Your silence is white violence.'라고 합니다(22분 16초). https://youtu.be/A0W9QbkX8Cs?t=1058 영상의 24분 27초에서 교장이 발언을 하는데 손제스쳐가 들어가니 학생이 손을 내리라고 타박을 합니다. 다른 학생 몇몇도 조롱하듯 동조하며 차렷자세로 손을 내리라고 명령을 하고 교장은 정말 차렷자세를 합니다. 이에 학생들이 신나게 비웃죠. 이 교장의 모습이 바로 속죄하는 백인의 극단적인 나쁜 예이고 광기어린 학생들은 흑인피해자성의 나쁜 예가 되겠죠. 학생들의 모습은 바로 흑인 보수지식인 Shelby Steele이 말한, 백인의 죄책감을 이용해 파워를 휘두르는 모습입니다. 교수 브렛은 팍스뉴스채널에 출연해 이 사태를 설명합니다. 리버럴언론은 아무도 안 불러줬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팍스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 버리니 문제가 더욱 악화가 돼요. 영상으로 신분이 노출된 흑인교수나 학생들이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집단살해협박을 받습니다. 한편 이 소요동안 교내에서는 공적 자금으로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등의 편의가 베풀어졌는데 유색인종학생들만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의자에 앉을 때도 유색인종이 다 앉고 남은 뒷자리만 백인들이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속죄형 백인교장이 이끌던 에버그린대학교는 선의로 시작한 반인종차별주의, 평등주의 지향이 브레이크 없이 편향적으로 이념화되면서 브렛교수 사태가 발생하고 그 후 이 대학의 입학생수가 4000여명이던 것에서 2000여명으로 뚝 떨어져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아무도 교장을 안 하려고 하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백인 교장 조지 브리지스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었으며 아내와 함께 학교를 떠난 브렛 교수는 그 어떤 다른 대학에서 불러주지 않고 있지요. 브렛 교수는 개인적으로 다른 영상들을 살펴봤는데 굉장히 영리하고 명민한 교수로 보입니다. 흑인 나이마 교수도 역시 학교를 떠났으나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시달려서 소송을 걸어 학교로부터 23만불을 보상받고 지금은 'Fuck the Police'라는 로고가 박힌 소품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브렛 교수도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에버그린 대학교는 평판만 나빠지고 다방면에서 실패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거대한 미국에서 극단적인 일부의 모습일 뿐이라 치부했었죠. 그런데 지난 수 년간의 문화전쟁과 Black Lives Matter운동의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중구난방으로 습득하다가 저 교사의 기고글을 읽으니 저러다 말겠지란 생각도 들고 정말 저러다 말까란 생각도 들고 잘 모르겠어요. 이브람 켄디식 반인종차별주의는 현재 리버럴대학에서 교과서처럼 다루어지고 있긴 합니다. 에버그린대학처럼 극단적인 방식인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안 다녀봐서 저는 몰라요). 그런 방식이라 할지라도 대학이니 문제가 없어요. 고등학교나 그 아래 학년의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만 주입되는 이념교육이 된다면 미국 보수들의 우려가 근거가 아예 없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다시 대학교육으로 넘어 와서 스탠포드 의대에서 이루어지는 반인종차별교육은 다음 영상에서처럼 이루어집니다. 맞는 말인데도 묘한 기분이 듭니다. 강연자에 의하면 인종차별을 극복하려면 다양성이나 포용이 해법이 아니며 반드시 반인종차별주의여야 한다고 합니다. 반인종차별주의는 equity를 지향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결과의 평등인데 그런 래디컬한 의미는 잘 비켜가면서 강의를 합니다. 강의의 첫부분은 인종차별이 인간에게 얼마나 어마무시한 폭력인지부터 설명합니다. 백인 헤게모니, 백인 우월주의, 백인의 특혜, 백인편향성 파워의 정상성에 대항하기를 꺼리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https://youtu.be/ZXISNMG8WLQ 의대생의 숫자가 인종별로 어떻게 변했는지 추이를 보여주면서 백인은 여전히 다수고 아시안은 눈에 띄게 증가한 반면 흑인의대생은 비정상적으로 소수임을 지적합니다. 결과를 보아하니 흑인이 가장 차별을 많이 당했음을 보여준다는 뉘앙스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죠. 의대교수자료를 분석하면 백인은 비율상 의대에서 지나치게 교수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고 아시안은 의대생 숫자가 꽤나 증가한 것에 비해 비율적으로 교수로서의 성과가 저조한 편이며 흑인은 더 심하다고 하고 있죠. 이 분야에서 아시안들이 진출해 있는 규모에 비해 교수나 매니지먼트 위치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적은 것은 사실이고 인종차별과 무관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자료를 접하는 아시안인 저는 아마도 반인종차별주의 강연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할 입장이겠으나 강연자는 model minority 언급 또한 인종차별이라고 합니다. model minority는 백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아시안들은 그냥 자기들 일 묵묵히 하는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의대생 숫자에서 의학교수숫자로 넘어갔는데 의학과정을 완성하지 못하고 낙제하는 의대생이 인종별로 어떻게 차이나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웰스파고 CEO가 불행히도 아무리 흑인을 고용을 하고 싶다해도 인재발굴이 너무 어렵다고 발언을 했는데 이런 발언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라고 합니다. 스탠포드 의대는 주로 흑백차별을 다루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영상이 불편했던 모양인지 anti-Asian racism에 대한 강연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아시안 교수 강연자는 아시안 혐오범죄와 아시안 차별은 유구히 존재해 왔으나 아무도 얘기하지 않음을 비판합니다. Model minority라는 것도 신화에 불과하며 데이타를 보면 아시안 빈곤계층도 유의미하게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model minority는 백인우월주의를 희석시키기위해 인종 간 갈등을 부추기는 담론이라고 비판합니다. 구조적 인종차별은 아시안도 겪고 있는 것이고 분명 미국사회의 문제가 맞는데도 반인종차별 강연자가 한시간짜리 영상으로 집약해 버리기에는 들여다보지 않은 부분 또한 많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흑인 보수지식인들의 내부비판의 목소리가 연상되는 거죠. equity를 지향하자고만 주장하기에는 서로 다른 집단 간에 너무도 상이한 문화가 존재하며 특히나 흑인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문맹률, 가장의 부재, 범죄율 등은 내부의지가 부재한 채로 외부의 구제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수정의 과정은 아마도 수 세대에 걸칠 지도 모릅니다. 그치만 이런 문제들을 반인종차별 강연에서 굳이 꺼낼 필요는 없지요. 젊은 흑인담론가 콜먼 휴스(Coleman Hughes)의 말이 생각납니다. 흑인 래퍼중에 Lil Wayne이라고 있어요. 불법총기소지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냥 전형적인, 유명하고 돈 많은 흑인 래퍼죠. 그가 Black Lives Matter운동에 대해 언급하길,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는 거고 자기는 관심이 없다고 했죠. 이 발언때문에 흑인커뮤니티의 분노를 사 결국 사과를 했어야 했습니다. 콜먼은 흑인커뮤니티가 웨인이 BLM운동을 응원하지 않는 것에는 분노하고 사과를 요구면서 그가 갱폭력을 미화하는 데 대해서는 사과를 요구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뭔가 결과적으로 흑인커뮤니티에 대한 반발심이 부각된 것 같은데 이런 시끄러운 담론들에 빠져 있다가도 이 현상들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큰 숲을 바라보면 구조적 인종차별은 피부색을 넘어 모두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인권과제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깨달음이 중심이 되려면 상대진영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를 공유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다양한 담론을 구경하면서 다른 인종, 특히나 흑인커뮤니티에 대한 이해심과 존경심이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많은 백인들이나 리버럴언론은 white guilt 때문에 균형잡힌 의견을 피력하거나 수렴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흑인커뮤니티에 대한 내부비판에 진지한 흑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래 영상은 자신이 흔들림없는 리버럴이었다가 지금의 정치성향은 independent이며 그런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진솔하게 털어놓는 흑인남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탁월한 기고가도, 학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흑인남성이에요. 자칫 고생스러울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를 정말 섬세하게 풀어놓습니다. 본인이 흑인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종차별담론에 접근할 때는 화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글이 엄청나게 길어졌고 저도 힘이 딸리는 관계로 링크만 걸어놓을게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ZlH_O0gV0XI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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