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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01 12:45:58
Name   王天君
File #1   movie_image.jpg (1.96 MB), Download : 2
Subject   [스포]대니 콜린스 보고 왔습니다.


“Hey, Baby doll!” 원히트원더의 전설적인 가수 대니 콜린스는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노년의 가수가 대저택에 돌아오자 서프라이즈 파티가 열리고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대니는 그 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파티가 끝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매니저 프랭크는 깜짝 놀랄 선물이라며 호들갑스럽게 상자를 건넵니다. 그 안에는 젊은 시절의 대니가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 대해 애정어린 충고가 쓰여있었습니다. 발신인은 무려 비틀즈의 바로 그 존 레논. 30년간 박제되어있던 편지를 받은 순간 대니는 자신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합니다. 젊은 애인이 다른 놈팡이와 바람이 나건 말건, 서둘러 짐을 싸고 훌쩍 떠나는 대니는 과거의 자신에게 대답해준 존 레논에게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는 대답을 다시 하려 합니다.   “부와 명성이 제 미래를 망쳐놓으면 어쩌죠?”  

영화 대니 콜린스는 실화에 기반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현실과 겹치는 부분은 이야기의 시발점인 “존 레논의 편지”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허구죠. 스티브 틸스턴이라는 영국의 포크송 가수가 존 레논이 부친 같은 내용의 편지를 30년이 지나서야 받았지만 이 가수는 대니 콜린스만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거나 적당히 타락한 사람도 아닙니다.(누군가는 영화 속 대니의 모습이 폴 매카트니와 어느 정도 겹쳐보인다고도 하더군요) 영화와 현실의 접점은 지극히 작습니다. 존 레논도 오로지 영화 속 음악으로 등장할 뿐이구요. 오히려 알 파치노란 배우와의 접점이 더 눈에 띕니다. 영화가 대표작인 여인의 향기를 닮아있는 점이나 과거의 영광이 너무 커다란 필모그래피가 그렇습니다.

부와 명성 때문에 대니 콜린스는 추억팔이만 하는 상업적 가수로서 머물러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친아들과는 거의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빵점짜리 아버지로 살아왔죠. 존 레논의 편지를 통해 대니는 이 두가지 과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진실된 가수가 될 것, 그리고 진실된 아버지가 될 것. 하지만 그 어느 드라마도 영화는 만족스럽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음악가로서 거듭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바로 주인공이 직접 곡을 쓰고 이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나 창작 과정의 우여곡절을 가사로 압축하고, 영화의 피날레로 공연 장면을 쓰는 것은 전형적인 음악 드라마의 공식이죠.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에서 밋밋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날에 대한 후회는 볼 수 있지만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거의 없으니까요. 머리를 끄적이며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보는 지극히 피상적인 묘사말고는 대니 콜린스가 뮤지션으로 각성하는 계기와 과정이 거의 없습니다. 돈을 쫓는 현실이나 주변인과의 타협도 없고, 창작의 치열한 분투도 없습니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완성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음악으로 감동시켜야 하는 음악 영화의 알맹이가 쏙 빠진 셈이죠.

대니와 아들과의 가족드라마도 그냥저냥 흘러갑니다. 문전박대, 끈질긴 정성, 물량 공세, 투닥거리는 대화를 통한 새롭게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은 전형적이라서 큰 감흥이 없어요. 장애가 있는 손녀와 몸이 아픈 아들을 자신의 재력과 명성을 통해 돕는 이야기는 재화와 애정의 거래처럼 보여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데도 영화는 이를 적당히 에두르고 있습니다. 근 사십년을 그렇게 잊고 증오하려고 노력했던 아들이 재정적 지원과 고집에 그렇게 마음을 바꾸는 걸 보니 갈등 자체가 좀 얄팍해 보이기까지 해요. 또한 영화 속에서 아무 힌트도 없이 곧바로 아비 노릇을 하려는 대니 콜린스의 행동은 어딘가 모호합니다. 그것이 속죄인지, 가족에 대한 깨달음인지, 외로움에 대한 투쟁인지, 그 동기가 불명확하죠. 이 때문에 영화가 가족이라는 답을 안일하게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대니가 힐튼 호텔에 투숙하며 벌이는 소소한 이야기들 역시 싱겁습니다. 젊은 남녀를 맺어주려고 하거나 호텔의 중년 매니져에게 추근덕대는 게 어떤 낭만인지 전 잘 모르겠더군요. 그 와중에서 대니가 선보이는 유머 코드나 인생관 역시 썩 와닿진 않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해피 바이러스 전도사처럼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공과 부와 연결된 자의식의 표출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딱히 이 전에 교만하며 속물인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인간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많은 부분이 돈이나 남성다움의 요소로 나온다는 것이 그렇죠. 알 파치노란 배우의 헐렁헐렁한 연기가 이야기의 공백을 채우기에는 대사나 연출 자체의 재치와 신선함이 충분치 않습니다.

영화는 역전 만루 홈런으로 감동이 폭발하게끔 노리진 않습니다. 딱히 튀거나 극적인 전환점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뒤집지 않는 부분에서는 어떤 일관성이 보입니다. 대니가 개과천선하는 것 같다가도 끝내 자작곡을 선보이지 못하고,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인생사의 어려움을 픽션으로 쉬이 넘기지 않겠다는 나름의 존중도 엿보여요. 동시에, 굴곡이 없는 만큼 영화는 밋밋합니다. 영화는 대니의 자작곡을 이야기 속에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관객들에게는 들려줘야 했습니다. 아들과 화해하는 이야기도 세월의 무게에 비하면 너무 뚝딱 이루어지는 느낌이에요. 영화에는 무언가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없고 카타르시스가 없습니다. 그것이 감독이 그리고자 한 인생관의 표현일지라도 이야기로서의 흡입력은 심하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변호가 어렵습니다.

좋은 배우와 소재를 쓰고 있지만 정작 작품이 주는 감동의 농도는 너무나 묽습니다. 존 레논의 음악들은 영화의 컨텐츠와는 아무 연관이 없이 분위기 환기용으로 소모되는데 그칩니다. 음악 영화가 딱히 맴도는 노래를 남기지 못한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연기와 음악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여백에 여운보다는 떨떠름함이 더 크게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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