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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눈도 오고 생각나서 강운구의 사진집 '마을 삼부작'을 다시 읽었는데 좋네요. 그 중 특히 좋아하는 '수분리' 부분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문장이 사진만큼 좋은 작가죠.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들목에는 수분재가 있다. 그리로는 장수에서 남원으로이어지는 19번 국도가 넘어간다. 수분재의 마루에 물매가 가파른 건새집이 한 채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집 지붕의 북쪽 면에 떨어진 빗방울은 흘러 흘러 금강으로 합류되었다가 서쪽 바다로 가고, 남쪽 면에 떨어진 빗방울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서 구비구비 돌다가 남쪽 바다로 간다'고. 그래서 물을 가른다는 수분재이고 수분리였다.
그곳은 지형적인 특성으로 비나 눈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수분리 마을의 집들은 거개가 지푸라기 대신 새,곧 억새풀의 줄기로 이엉을 엮어서 지붕을 인, 그이들은 "쌧집" 이라고 부르는 건새집들이었다. 그런 건새집들은 지붕이 두터웠으며 물매가 가팔랐다. 그것은 그래서 비나 눈을 빨리 흘러내리도록 했다. 볏집으로 이엉을 해서 덮는 초가는 해마다 새로 지붕을 이어야
했지만, 건새로 이은 지붕은 한 삼사십 년쯤은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새 초가지붕에는 기와지붕이 그렇듯이 시퍼렇고 두껍게 이끼가 덮여 있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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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례가 없던 건새집 마을은 이 사진을 찍던 때로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서 모두 '새마을' 유니폼으로 바뀌어, 그야말로 일본 사람들의 집 지붕들처럼 납작납작하게되었다. 이 마을은 국도에서 바라다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나는 "발견"을 할 수 있었고,그들은 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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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날 설핏하게 기울던 해가 낮게 깔린 구름 속으로 잠겼을 때, 느닷없이 장난처럼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궁핍하던 시대의 궁핍하던 사람들이 짓던 이 넉넉한 표정과 분위기는 도무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윽고 흰 눈에 잿빛이 묻어 내리자 마을은 어둠에 잠겼다. 춥고 기나길던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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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온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다 가서 보고싶었다. 찍는다는 것, 꼭 파인더를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땅의 고유한 삶과 풍경과 정서를 맨눈으로 보고 느끼며 알려고 했다. 구도와 초점과 노출 그리고 내면의 의미나 외면의 아름다움 또는 표상 같은 것이 전제되는 사진이라는 성가신 방편 없이, 맨눈으로 바라다보고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했다. 그래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거나 할 때도 졸지 않고 밖을 줄곧 내다보려고 했다. 날 저물어 캄캄하게 압축된 차창으로 마을들의 흐릿한 불빛이 지나가는 것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보지 않고, 외부를 통하지 않고, 대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모른ㅐ다.
사진은 언제나 현재를 찍는다지만,어떤 것이나 저장하려고 필름에 영상을 비추는 순간에 과거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슬픈 사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백이십오 분의 일초나 이백오십 분의 일 초 전은, 물리적으로는 확실히 과거지만 현실에서는 현재의 과거는 결코 아니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말, 그리고 노래, 그림, 글 ... 들도 말하고 노래하고,그리고 쓰면서 그것들의 앞은 과거로 함몰된다.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슬프지 않다. 다만 사진에 화석 같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들이 슬플 따름이다.
1973. 강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