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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7 15:14:07
Name   불타는밀밭
Subject   어렸을 때 하던 심시티의 추억과 부동산
너무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그냥 티타임에 적어봅니다.


단순히 서울(혹은 부동산 가격 비싼 곳들)에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현재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서울을 무한정 키울 순 없어요. 뭐 이 쪽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긴 합니다만....


어렸을 적 심시티 게임에선 하다보면 항상 도시가 일정 이상 커지질 못하다가 시 재정 박살나고 망한 도시를 만들어 댔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다 해결책을 찾았는데, 일시적으로 지지율 개박살 나는 걸 감수하고 오페라 하우스나, 적게는 소방서 경찰서 같은 시설들을 현재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이 건설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럼 당장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시 재정이 많이 소모되더라도 그 지역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 그곳은 새로운 도심이 되고, 그게 성장해서 구 도심과 합쳐지면 도시 자체가 커지는 식이었죠. 물론 이게 100%통하는 방법은 아닌게, 당시 그 게임에서는 시장인 저는 상업지구 주거지구 지정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그 자리에 상인들이 상가를 짓고 주택을 짓고 들어와 사는 것은 랜덤인지라 그냥 폭망해 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뭐 그럴 경우엔 실패를 인정하고 지었던 경찰서 다시 철수 해야죠.

어릴 적 이러지 못했던 건 초보적인 B/C분석을 한답시고 '경찰서를 지어야해? 가장 영향받는 주민이 많도록 지어야지!!, 소방서도 마찬기지!! 오페라 하우스도 가장 혜택받는 주민이 많은 곳에 지어야 지지율이 많이 올라!!' 뭐 이런 식으로 건설을 했더니 거의 모든 건물들이 도심에 몰리게 되고, 도심 이외에는 편의 시설들의 혜택을 받지 못하니 땅값이 똥값이 되고, 외곽지역에 아무리 상업지구 공업지구를 지정해봤자 건물들이 들어오지를 않고 어떻게 들어와도 나간 다음에 다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오래도록 폐건물만 남더라고요. 이게 반복되면 해당 지역 자체에 폐건물만 남아서 그냥 게임 그래픽만 봐도 을씨년 스럽게 보였습니다.

대학에 와서 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제가 심시티 하면서 했던 실수들이 [동태적 비일관성, Time Inconsistency]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개념인가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수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각 선택의 시점에서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확실하다고 할 지라도 나중에 뜯어보면 그것들이 최선이 아니었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코, 예쁜 입, 예쁜 눈 등을 모은 얼굴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이 나오는 걸 보장할 수는 없다는 구성의 오류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오페라 하우스나 상급 종합병원 같은 건물을 지을 때는 아주 당연하게 최대한 혜택 보는 사람이 많을 수 있는 자리에 짓는 것이 당연해 보일 뿐더러 B/C분석같은 데서도 최적임을 쉽사리 증명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현재의 부동산 문제가 결국은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이고 가격이 높다는 것은 국소적이든 어쨌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심시티 게임으로 해석해보면 도시의 size가 너무 작아서 지가가 중심부에만 높게 형성되어 있고 변두리에는 폐건물만 잔뜩 있는 상황이네요. 궁극적으로는 일시적인 지지율 감소와 시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새로운 도심을 개발해야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도시 중심부에 공업지구를 걷어내고 상업지구를 깔고, 그 주변에 주거지역을 만들어서 베드타운을 만들고, 공업지구는 변두리로 옮기는 식의 도시개발은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더군요. 근본적으로 도시 개발계획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지역을 개척해야 합니다. 도심의 밀도만 높이는 식의 개발은 물리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현재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새로운 지역을 어떻게 계획하고 개발하겠다 보다는 사기 어렵게, 혹은 팔기 어렵게 만들어서 현 상태를 고착시키겠다. 라는 것 위주라 이게  결국 언 발에 오줌누기 이상이 되나? 아니 단기간이라도 효과가 있음 좋겠는데 왜곡된 시장만 만들고 더 폭망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부동산에 관해서 자신있게 주장을 하진 못하는 이유는 제가 [저런 동네서 어떻게 살지?] 하는 동네들은 항상 부동산 값이 치솟고, [와 이 동네 살기 좋겠다]라는 동네들은 부동산 값이 절대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시티는 이제 안나오고 요즘 스카이라인인가 하는 겜이 대세인거 같던데 그 겜을 돌리기엔 제 컴 사양이 안될 거 같습니다. 게다가 무슨 DLC는 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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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만땅
    https://it.donga.com/22409/

    모바일로 심시티 가능하다고 합니다.
    귀차니스트
    아마 될(...) 시티즈 cd키 드릴까요?
    스카이라인도 나온지 너무 오래 됐어요 ㅋ
    토끼모자를쓴펭귄
    게임을 하다가 통찰력을 얻는다는 경우를 종종 봐요. 어떤 사람은 대항해시대를 하다가 약육강식의 세상의 원리를 배웠다고 하고..

    심시티 게임과 부동산이 연결될 수도 있군요 호오..
    호라타래
    동태적 비일관성 개념이 재미있네요 ㅎㅎ 국지적 해 vs 전역적 해 문제, 과적합 등등이랑 언뜻 보면 같은 원리의 다른 양태 같다만... 이론적 맥락은 다르겠죠?
    절름발이이리
    수요억제 정책을 쓰는 것과 별개로,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도 피고 있습니다. 3기 신도시들, 도심접근성을 높이는 교통개발들, 최근 서울에서 진행된 용적률 완화 등. 뭐 그런데 단지 그게 시장에 반영되려면 한세월인 것, 재건축에 부정적인 것 등이 엇박자가 나고 있고.. 그리고 애초에 서울 집값이 정말 비싸냐 부터가 문제인데 저는 가격은 꽤 비싸다, 그러나 주거비용이 낮은거 감안하면 결국 그럭저럭이다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흑마법사
    좀 통크게 하면 수도이전도 답이겠네요.
    찔끔찔끔 예술의전당 이전 이런거하느니....
    세종시는 옮기다 만 느낌이고.
    치리아
    동태적 비일관성, 좋은 용어 알아갑니다.
    스카이라인은 회사가 회사라서 DLC가 너무 많은게 문제죠. 저는 트로피코로 유사 심시티를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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