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14 09:51:30
Name   시뮬라시옹
Subject   블랙홀
블랙홀, 블랙홀. 그 거대한 암흑 구멍 블랙홀.
우주의 제 아무리 크고 센 녀석일지라도, 이 거대하면서도 초고밀도의 질량 덩어리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왜곡 앞에선 무기력할 뿐.
그 존재를 모르고 산다면 모를까, 그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우리 모두는 늘 블랙홀의 공포에 빠져 살 수 밖엔 없다.

이미 블랙홀에 이끌려 저 너머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 이부터, 곧 빨려 들어갈 이까지.
이 세상은 블랙홀의 발견 이후로, 빨려 들어갈 놈과 빨려 들어간 놈 이 둘로 나뉘었다.
시팔.. 나는 달라. 나는 빨려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들어가더라도 나올 거야, 화이트홀이 있다잖니.
라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너희들이 나약해서 그렇다고. 나는 이 두 다리로 떡하니 버틸 수 있노라 외쳤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분명 탈출구가 있을 것이라 엄포를 놨다.
그러나 그 탈출구가, 화이트홀이라 불리던 것이 천상의 빛이었던 것. 즉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리 자신만만하던 이들도, 자포자기할 수 밖에는 없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블랙홀의 벼랑, 절벽에 매달려 사람들은 버텼다.
그 들 중에서는 조금씩 밖으로 전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아래로, 점점 아래로,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혹시나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이 블랙홀에서 정말로 탈출했을지 모른다.
블랙홀의 탈출 속도는 우리가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빛, 즉 광속보다 빠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탈출은 불가능하다.
설사 탈출했다 해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우리가 제대로 관측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이론적으로 블랙홀에서 탈출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탈출했다고 해도,
이내 추력을 잃고 나면 다시금 블랙홀로 빠져들 뿐이다. 사람의 인생은 블랙홀에 빠지기 이전과 이후, 혹여나 탈출하더라도
그 반복일 뿐이다. 나는, 우리는 그럼에도 살 가치가 있는가? 블랙홀 저 너머 심연에 무엇이 있을지는 지금 붙잡고 있는 벼랑을 놓아야만 알 수 있다.
화이트홀? 이러한 고통의 끝에 무언가 정답이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희망이 뭉쳐서 만들어진 환상인 화이트홀은. 사실 이제 그만 놓으라는.
죽음을 향한 망자의 손짓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화이트홀을 선택할 것인가, 블랙홀 벼랑 끝에 매달려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씩 엄청난 힘을 들여서라도 바깥으로 전진할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042 창작사귀지도 않고 헤어진 제 친구의 연애 아닌 연애 이야기 24 아침커피 20/10/12 3925 15
    10994 창작애기 홍차신입 17 업무일지 20/09/25 5810 33
    10949 창작화성의 언어학자 - 단수와 복수 8 아침커피 20/09/11 4552 7
    10923 창작포스트 코로나시대 2 2 풀잎 20/09/04 5169 5
    10917 창작단편에세이 - 격동의 After 코로나 시대 1 풀잎 20/09/03 3943 3
    10902 창작[자작시] 무제 1 Merrlen 20/08/31 4257 2
    10838 창작내 작은 영웅의 체크카드 4 심해냉장고 20/08/05 4101 14
    10698 창작그러니까, 원래는 4 심해냉장고 20/06/18 4740 13
    10684 창작블랙홀 4 시뮬라시옹 20/06/14 5236 1
    10652 창작피아노 곡을 전자 음악으로 바꿔보았습니다 (곡 : Soul Particle) 1 롤백 20/06/05 3802 3
    10602 창작이번엔 재즈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곡 제목 : Shall we?) 6 롤백 20/05/20 4104 7
    10477 창작기대 속에 태어나 기대 속에 살다가 기대 속에 가다 3 LemonTree 20/04/09 3819 10
    10472 창작그 애 이름은 ‘엄마 어릴 때’ 14 아침 20/04/08 4896 12
    10458 창작말 잘 듣던 개 6 하트필드 20/04/04 4005 3
    10373 창작초상화 그려 드립니다. 33 한썸머 20/03/12 4662 8
    10356 창작[소설] R.I.P Romance 1 태양연어 20/03/08 4441 1
    10270 창작손수레를 끌고가는 사내 2 바나나코우 20/02/07 4563 3
    1023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5759 23
    10155 창작거미를 노리는 두 개의 손 13 바나나코우 20/01/07 4413 4
    10096 창작시시하고 심각한 이야기 10 작고 둥근 좋은 날 19/12/20 5503 17
    10020 창작은밀한 통역 2 작고 둥근 좋은 날 19/11/23 5399 23
    9835 창작[자작] 동영상을 몰아서 보고 싶었습니다. 2 어키도킹 19/10/14 4057 5
    9557 창작달랑베르시안 2# 태양연어 19/08/18 3626 0
    9549 창작[엽편소설] 빚어서 날카로운 물방울 2 착각범 19/08/15 3929 1
    9547 창작 달랑베르시안 1# 2 태양연어 19/08/14 4356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