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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 17:56:11
Name   아침커피
Link #1   https://crmn.tistory.com/117
Subject   화성의 언어학자 - 단수와 복수
J에게,

내가 지구의 여러 언어를 관찰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단수와 복수에 대한 구분이었습니다. 지구의 언어 중에는 당신이 쓰고 있는 한국어처럼 단수와 복수를 문맥에서 파악하는 언어도 있고 영어처럼 단수와 복수를 철저히 구분하는 언어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사과가 하나 있든지 세 개 있든지 다 '사과'가 있는 것이지만 영어에서는 사과가 하나 있을 때에는 'an apple'이, 세 개 있을 때에는 'apples'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로 인해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드는 물소리"라는 일본의 하이쿠 한 구절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학자들이 개구리가 한 마리인지 여러 마리인지를 따지고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는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게 몇 마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그 개구리가 몇 마리인지 끝까지 따지고 들어서 'a frog'라고 할 것인지 'frogs'라고 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jumps'라고 할지 'jump'라고 할 지도 정해야 했고 말입니다. (덧붙여, 명사는 복수일 때에 s가 붙는데 동사는 단수에 쓰일 때에 s가 붙는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내 입장에서는 지구인들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 곳 화성에서는 단수나 복수가 아니라 홀수냐 짝수냐를 따집니다. 사과가 홀수 개 있으면 '사과홀', 짝수 개 있으면 '사과짝'이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짝수는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 있지만 홀수는 반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기로는 지구에서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들이 홀수와 짝수를 엄밀히 구분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단수, 복수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쓸모가 많지 않습니까? 사과 세 개와 사과 백만 개를 똑같이 'apples'라고 부르는 엉성한 분류법을 사용하느니 차라리 단수든 복수든 다 똑같이 '사과'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지구의 언어에는 이 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기회 되는 대로 편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화성에서,
WQ



7
  • 소수냐 아니냐로 나누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ㅎㅎ
  •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묵직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글


그런데
영어를 배울 때 3인칭에서 복수는 명사가 s를 가지고 단수는 동사가 s를 가지는 것을 보고
[3인칭에 대해서라면 어떻게든 스 발음을 내고야 말테다]
라는 의지를 가지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5
적학진인
소수냐 아니냐로 나누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ㅎㅎ
1
아침커피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금성에서는 소수인지 아닌지를 따진다는 이야기를 집어넣을 걸 그랬나요 ㅋㅋ 음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지구의 현대 암호학 체계가 다 깨질수도?!
Velma Kelly
한국어는 단수 복수에 별 관심이 없다는걸 설명해주니까 참 신기해 하더라고요 ㅎㅎ

문장에 주어가 종종 생략된다는거까지 가르쳐주면 한국 사람들은 텔레파시로 소통하는줄 알아요.
1
아침커피
A: "올때 메로나"
B: "누가 올때?"
A: "너"
B: "메로나는 몇개?"
A: "한개"
B: "내가 올때 메로나 한개를 어떻게 하라고?"
A: "...사오라고."

이런 느낌이려나요 ㅋㅋ
사악군
Come with a melona!
작은자
단복수 구분은 그나마 양호하죠, 어떤 언어는 단수, 그리고 둘과 셋이상 따로 구분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경우 번역할때 굉장히 신경쓰인다고..
Merrlen
그냥 "생각해보니 이러이러한 점이 재밌있다~"라는 식으로 써도 흥미롭게 읽혔을 것 같은데, 이렇게 편지글 형식으로 써둔 걸 보니 참신하고 더욱 좋네요. 혹시 언어 관련해서 이런 생각 자주하시면 시리즈물처럼 써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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