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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20 14:35:02
Name   눈시
Subject   두 형제 이야기 - 삼수의 옥, 무수리의 아들
경종이나 영조나 꽤나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둘 다 후궁의 자식이었죠. 형은 엄마가 왕비가 됐다가 강등돼서 죽음까지 당하는 일을 겪었고, 동생의 어머니는 무수리였습니다. 궁녀도 아니고 궁녀들의 하녀, 그 중에서 물 긷는 등의 힘 쓰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었죠. 결혼도 가능했고 천민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수리가 아니라는 주장도 당연히 나옵니다만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합니다) 역시 낮은 위치였다는 건 바뀌지 않죠.

+) 장희빈이 중인 출신이라 하지만 잘 살던 집안 출신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숙종과 인현왕후의 마음에 들고, 아들을 낳으면서 승승장구, 빈의 자리까지 오르니 숙빈 최씨입니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 올랐지만, 컴플렉스는 그대로 남아있었죠.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이라고 합니다. 세자와 세자빈, 왕의 친족들의 무덤은 '원'이라고 하죠. 나머지 왕족들의 무덤은 '묘'라고 합니다. 후궁은 기본적으로 묘에 묻히지만, 왕을 낳을 경우 특별히 원으로 올립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대접이 많이 다르죠.

경종 2년에 장희빈은 옥산 부대빈으로 추존됩니다. 힘을 얻으니 어머니도 올린 거겠지만, 무덤은 원이나 능으로 올리지 못 합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요. 한편 최숙빈은 묘였다가 영조 29년에 원으로 올립니다. 이 때쯤이면 다음 편에 다룰 영조의 기나긴 투쟁이 끝났을 무렵이었으니 그제야 신경 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이 '소령원'에는 여러 야사들이 전해집니다. 영조는 어떻게든 '능'으로 올리려고 했지만 안 됐다는 식으로 말이죠. 나무꾼이 '소령릉'이라고 한 것을 기뻐해서 (원래 원에는 없는) 능참봄으로 시켜줬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당연히 효심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런 일들은 부모의 자리를 올려서 자기의 정통성 확보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왕이 아니었던 왕들이 아버지를 왕으로 올린 것이 대표적이죠.

이렇게 어머니의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영조가 손자에게는 더 큰 컴플렉스를 심어주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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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 보죠.

왕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세자라 해도 함부로 나누면 안 되는 거였죠.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거나 아예 왕위를 물려준다는 것은 거의 신하 길들이기용으로 쓰였습니다. 태종이 그랬고 선조가 그랬죠. 세종이나 세조가 세자에게 선위하려 했을 때도 많은 반대를 받았고, 정말 몸이 안 좋다는 걸 강조하고 나서야 받아들여졌습니다. (태종이 상왕으로 살았던 건 좀 특이한 케이스였죠)

경종 1년에 벌어진 건저(세제 책봉)의 문제 역시 여기서 나왔습니다. 왕이 한다고 해도 신하들이 죽어라 반대해야 했는데 노론은 왕에게 그걸 요구했고, 나중에 반대해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죠. 경종은 모든 걸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노론에게 커다란 죄를 얹어 버립니다. 소론은 이걸로 노론을 역적으로 몰면서 강하게 공격했구요.

이렇게 되자 세제 역시 궁지에 몰립니다. 자기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했던 노론이 몰락했고, 역적 취급 받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언제 자기에게 칼날을 겨눌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헌데 이 때 세제는 역으로 치고 나갑니다. 노론이 쫓겨난 지 얼마 안 된 12월 말의 일이었습니다.

"내관이 정사에 간여하여 이번 처분의 내관의 범한 바가 많이 있으니, 청컨대 핵실(조사)해 내어 죄를 바르게 다스리소서."
"이번 처분은 내가 스스로 한 바인데 어찌 내관이 간여한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동궁의 말이 만약 그러하다면 핵실해 내도록 하라."

승지들이 소론의 접근을 막은 상황에서 내시들을 통해 왕과 만났었죠. 이런 공을 세우고 경종이 힘을 찾으니 내관들도 기를 펴게 됩니다. 그들이 세제를 노린 모양이구요. 그들이 이번 처분(신임옥사)에도 관계됐다는 것인데... 일단 쉽게 꺼낼 말이 아니었죠. 경종 자신이 한 일이 틀렸다는 것까지 흐르는 상황입니다.

일단 경종은 허락했고, '자기를 보면 얼굴빛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문유도와 박상검을 지목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지만, 경종은 못 하게 하죠. 그러자 세제는 더 세게 나왔고, 경종 역시 세게 나옵니다. 되려 세제의 내관이 벌을 받았죠. 하지만 세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궁 안의 일을 제대로 끌고 나왔죠.

"한두 환관이 나를 제거하려 하자, 대비께서 나로 하여금 대조(왕)께 들어가 고하게 하시므로 내가 울면서 대조께 청하였는데, 처음에는 조사하라 명하셨다가 돌아서서 또 도로 거두셨다. 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발생한 뒤에는 임금 곁에 있는 악한 자를 없애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진달하였더니, 갑자기 감히 듣지 못할 하교를 내리셨다."

이미 대비와도 이에 대해 말을 나눈 상황이고, 이제 신하들에게도 다 알리면서 세제를 그만두겠다 나선 것입니다. 어느새 내관들의 죄는 세제를 죽이는 단계까지 올라갔구요. 이렇게 되자 왕이고 소론이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세제를 죽이려 한 상황이니까요. 내관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고, 대비도 그들과 손 잡은 궁녀들을 말해줍니다. 궁녀들은 자살, 문유도는 끝까지 부정하다가 고문 끝에 죽었고 박상검은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하고 죽었죠.

경종이 왕이듯이 세제도 세제였습니다. 경종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명분을 들고 나왔고, 실제 그들이 일을 꾸몄든 아니든 경종의 수족을 잘라낸 것이죠. 자기가 세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요.

하지만 그 다음엔 더 큰 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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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정권을 잡으면 분열되는 건 이제 익숙한 패턴이죠. 소론의 강경파들은 준론이라 불렸고, 온건파들은 완론이라 불립니다. 완론은 세제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았고, 위의 일에서도 세제 편을 들었죠. 하지만 준론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노론을 다 쓸어버리고 세제까지 쓸어버릴 큰 사건을 들고 왔죠. 경종 2년 3월 27일의 일입니다.

"역적으로서 성상(聖上)을 시해하려는 자가 있어 혹은 칼로써 혹은 독약으로 한다고 하며, 또 폐출을 모의한다고 하니,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입니다. 청컨대 급히 역적을 토벌하여 종사를 안정시키소서.”
"역적 중에 동궁(세제)을 팔아 씻기 어려운 오욕을 끼치려 하는 자가 있습니다. 역적의 정상을 구명해서 누명을 씻어 국본(國本)을 안정시키소서."

그 자는 목호룡, 남인 서얼 출신으로 역모를 꾸미던 자들과 함께 했고 모든 정보를 들고 나왔다는 거였죠. 노론 핵심의 자제들부터 세제의 측근들이 모여서 숙종 말부터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자객을 보내거나 가짜 폐위 교지를 만들어 폐출시키거나 독살한다는 세 가지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이 '목호룡 고변'으로 궁궐은 다시 요동치게 됩니다.

노론이 줄줄이 잡혀옵니다. 끝내 인정하지 않고 죽은 자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얘기도 나왔습니다. 독을 만들고, 궁녀들과 손을 잡아서 음식에 탔다는 것까지 말이죠. 심지어 한 번 시도했는데 경종이 토해서 실패했다는 말이 나왔고 실제 경종이 음식을 먹다 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조는 왕이 된 후 여기에 가담해 있던 (자신의 처조카) 서덕수가 자신에게 이 얘기를 했다는 걸 밝혔구요. 이것이 '삼수의 옥'입니다. 이후 영조의 재평가 과정에서 임인국안으로 이름이 바뀌고, 작년의 일과 함게 '신임옥사'로 불리죠.

소론 준론은 어느때보다 강경하게 나옵니다. 목호룡과 손 잡은 김일경이 중심이었죠. 이를 통해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4대신이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노론을 완전히 잡아야 했고, 노론의 왕인 세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명분은 충분했습니다. 이들과 손을 잡고 왕을 죽이려 했던 김씨 성의 궁인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궁 안에 아직 있을 역적을 찾아야 왕의 안전이 확보되구요. 세제도 이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덤빌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세제에서 물러나게 해 달라고만 하고 있었죠. 세제 자리는 둘째치고 목숨을 걱정해야 될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경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인의 일을 사문하는 것은 많은 김씨의 사람 가운데 정확한 이름이 없으니, 조사하여 알아낼 길이 없다."
"김씨 궁인의 일에 대해서는 궁중에 반드시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나 실로 찾아낼 길이 없으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이 일이 있은 후 경종이 죽을 때까지 준론은 줄기차게 김씨 궁인을 조사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경종은 김씨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거부하죠. 죽을 때까지요.

세제의 친척까지 연루된 역모, 계속 조사하면 굳이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세제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의외지만 답은 간단히 나오죠. 경종이 세제를, 동생을 지켜줬다는 것이요. 역모에 연루된 왕족의 운명은 뻔했습니다. 죽음이죠. 그런데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세제를, 역적의 우두머리로 해도 억울할 게 없을 세제를 보호한 것이죠. 목숨을 겨우 건지는 건 약간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멀쩡히 왕이 된 경우는 영조가 유일할 겁니다.

둘이 친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내관들을 쫓아내는 모습은 형한테 정치적으로 덤빈 거나 다름없었죠. 그런 동생을 경종은 지켜줍니다. 개인적인 우애일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삼종의 혈맥'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도 했을 거구요. 숙종의 아들 중 남은 건 그와 세제 뿐이었습니다. 자식이 없던 상황에서 세제를 죽이면 그 혼자밖에 남지 않습니다.

정말 동생을 아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으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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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동궁(세자)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을 이루었고, 해를 지낼수록 깊은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한 증상도 있었다."

경종의 몸은 갈수록 악화됩니다. 경종 4년 8월이 되자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죠.백약이 소용이 없었죠. 그러다 게장과 생감을 먹었는데 간만에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이 둘을 같이 먹으면 안 되고 그것 때문에 죽음까지 갔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조에게도 이게 꽤나 크게 다가왔구요.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말도 못 하는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급히 세제를 비롯해 모든 신하들이 모였죠. 여기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의원 중 이공윤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전의 의원들이 병을 고치지 못 하자 특별히 불러온 자라 합니다. 그런데 그의 약들도 효과가 없긴 마찬가지였고, 성격이 더러워서 다른 의원들과 싸우기만 했죠. 이 때도 자기 주장만 했나 봅니다. 이 때 세제가 나서죠. 인삼을 올리라구요. 이공윤은 자기가 만든 약을 먹고 인삼을 먹으면 안 된다고 반대했고, 세제는 '때가 어느 때인데 자기 의견만 고집하느냐'면서 윽박지릅니다.

인삼차를 먹자 '눈빛이 안정되고 콧등이 따뜻해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제는 이렇게 말했다 하죠.

"내가 의약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인삼과 부자가 양기를 능히 회복시키는 것만은 안다"

그렇게 말을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몸은 다시 악화되었고 다시 눈을 뜨지 못 하죠. 8월 24일, 그는 그렇게 한 많은 생을 끝 냅니다. 동생에게 거대한 짐을 안겨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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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도 참 지옥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노론에 의해 세제가 되긴 했지만 곧 소론이 정권을 잡았고, 형이 죽는 그 날까지 소론 준론은 자신을 노렸습니다. 복수도 복수지만, 그 자신의 정통성에도 치명적이었죠. 형은 그의 목숨을 지켜주었고, 그를 왕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왕일 뿐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노론의 왕일 뿐이었죠.

영조는 이 모든 것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의 형이 남겨준 너무나도 큰 유산과 말이죠. 일단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복수를 시작합니다. 노론에서는 좋다구나 하고 동참했죠. 하지만 여기서 그가 쓴 방법은 노론의 기대와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탕평이라는 구호를 꺼내들기 시작한 것이죠. 그 이름으로 정말로 오랜 전쟁을 시작합니다. 반쪽이 아닌,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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