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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3/05 21:44:18
Name   눈시
Subject   삼국통일전쟁 - 13. 다시 요하를 건너다


645년,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물러납니다. 그는 패인을 분석하면서 대규모 침공 대신 소모전으로 방식을 바꿨고, 수만 정도의 병력으로 지속적인 공격을 가했죠. 그리고 수군으로 요동방어선 후방부터 압록강 사이를 노리면서 상륙전을 연습했구요. 당이 이긴 것 위주로 기록돼 있지만 결정적이다 할 승리는 없었고, 고구려의 승리 역시 적지 않았겠죠. 고구려의 힘을 빼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긴 어려웠구요.

고구려의 힘이 빠졌겠다 싶었던 그는 648년 다시 대규모 공격을 준비합니다. 불만을 억누르며 함선을 대규모로 건조하고, 30만을 동원하려 했지만 그 다음 해에 죽고 말죠. 요하를 건너지 말라, 즉 요동=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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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은 당고종, 아버지의 유언을 따를 생각은 없었죠. 그렇다고 성급하게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660년까지 그는 주로 서쪽과 북쪽을 먼저 정리합니다. 주적은 돌궐이었죠. 그 동안 동쪽으로는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협박하면서 거란을 끌어들입니다. 고구려를 고립시키려는 거였죠. 고구려는 이에 맞서 신라와 거란을 공격하죠. 물론 거란은 이에 맞서 싸웠고, 당이 지원해줬죠. 655년 정도부터는 소모전은 거란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고구려는 거란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죠. 그래도 전장이 거란의 영역으로 옮기면서 소모전의 피해를 줄였다는 장점은 있었습니다.

657년, 소정방의 공격으로 서돌궐의 수도가 함락되고 멸망당합니다. 고종 즉위부터 계속된 긴 작전이 끝난 것이고, 이제 고종은 동쪽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죠.

660년 4월, 설인귀는 흑산에서 반기를 들었던(혹은 고구려 편이었던) 거란왕 아복고를 격파, 생포합니다. 이제 북쪽에서 고구려를 도울 세력은 없었죠.

그리고 660년 7월, 백제를 멸망합니다. 이렇게 해서 당의 우군인 신라를 고구려 공격에 동원할 수 있게 되었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옛 백제 세력 역시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백제 공격의 의의는 하나 더 있습니다.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수도를 직공하는 것에 대한 경험을 쌓은 것이죠. 멋지게 성공합니다.

강력한 요동방어선에 대한 답은 역시 수도 직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나라 때부터 그 방법은 실패했죠. 육지에서 가는 건 답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해 봤던 게 수나라 때 내호아가 평양성을 공격한 것이었죠. 계략이긴 했지만 4만으로도 외성으로 들어갔으니까요. 그럼 그 수를 크게 늘린다면? 배를 이용하는 만큼 물자운송도 훨씬 쉬웠죠. 여기에 신라와 웅진도독부라는 보험도 들어놨습니다. 해볼만 한 상황이었죠.

661년, 이제 당에 거역하는 세력은 고구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수나라 때부터 감히 중국에 거역했고, 수양제는 물론 아버지 태종조차도 이기지 못한 고구려를 칠 때가 왔죠. 그가 즉위하고서부터 10년 넘게 꿈꾸고 계획했던 일을 벌일 때였죠.

고구려 역시, 연개소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당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라는 걸요. 그 역시 10년 넘게 준비한 결과를 보여줘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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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군이 동원한 총병력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35군을 동원했다 하는데 각 군마다 최소 5천, 최대 1만 이상으로 보고 최소 20만, 최대 40만 이상 수준으로 봅니다. 태종이 30만을 동원하겠다 한 것, 다방면으로 공격한 것을 보면 30만 이상은 충분하겠구요. 백제 공격 때 동원한 병력의 두 배 이상, 최대 세 배 이상까지 가능하죠. 그리고 이들 중 다수를 수군으로 동원했습니다. 태종 때부터 계속 건조한 수군의 힘을 드디어 보여 준 것이죠.

전군은 6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서돌궐과 백제 공격 때 활약을 보여준 소정방이 평양도행군을 이끌었고,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수군으로 대동강에 상륙, 평양성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고, 주력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임아상의 패강도행군, 패강은 대동강이 통설입니다. 역시 수군으로 평양으로 향했을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방효태의 옥저도행군, 평양 근처로 간 것을 보면 역시 상륙한 것으로 보이구요. 움직임을 보면 대동강에 상륙했을 수도 있고, 청천강 등 북쪽에 따로 상륙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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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에서 보이는 건 계필하력(글필하력)의 요동도행군, 이들은 압록강까지 치닫는데 정작 그 전의 전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 역시 압록강 근처에 상륙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죠. 그리고 정명진의 누방도행군과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육지로 향한 것으로 보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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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필하력까지 요동방어선 후방에 상륙한 거라면 전군의 절반 이상이 배를 타고 이동한 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명진과 소사업의 부대는 조공, 혹은 고구려의 시선을 요동으로 돌리기 위한 미끼로 봐야겠죠.

계필하력은 압록강을 장악, 평양과 요동 사이를 차단합니다. 요동방어선에 투입된 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컸을 겁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고구려군을 막는 것은 물론, 압록강을 건너서 공격할 수도 있었죠.

만약 방효태가 청천강 등에 상륙했다면 이걸 이중으로 한 게 될 겁니다. 고구려 서쪽의 주요 강인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이 다 장악당하게 되는 거니까요. 군대, 물자의 흐름을 막고 주변을 공격해서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시 최고의 장군이었던 소정방이 직접 평양성을 점령하는 거죠. 서돌궐에서 그랬듯, 백제에서 그랬듯. 작전은 완벽해 보였고, 이제 실행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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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년 4월, 고종은 고구려 원정을 시작하면서 그 역시 친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울주 자사 이운구가 이렇게 반대했다 합니다.

"고구려는 작은 오랑캐인데 어찌 중국의 온 힘을 기울여 이를 도모하신단 말입니까? 고구려를 멸망시킨다 하더라도, 반드시 군사를 동원하여 지켜야 하는데, 적게 동원하면 위엄이 떨쳐지지 못하고, 많이 동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할 것입니다. 이는 군비로 천하를 피폐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은 정벌하는 것이 정벌하지 않는 것만 못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멸망시키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꽤나 비관적인 전망을 보여주죠. 차라리 안 치는 게 낫다, 깨뜨려도 지키기 힘들다는 말로요. 공들이긴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게 당 내부에서도 인정된 것 같습니다. 특히 친정에서 나오는 정치적 부담을 없애려 했을 겁니다. 수양제도 당태종도 친정했다가 실패했으니까요. "아니면 말고" 라는 느낌을 넣어서 무조건 멸망시키겠다에서 한 발 물러난 모습도 넣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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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황후인 측천무후까지 반대하면서 친정은 포기하게 되죠. 좀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원정 자체에 반대한 건 아니었으니 그러려니 했을 겁니다.

이게 현재는 좀 더 아쉬운 결과를 낳게 되는데 -_-; 1차에 비해 기록이 영 부족합니다. 안 그래도 패했으니 기록이 부족할 건데, 이건 더 하죠.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소정방의 평양도행군 뿐, 그 외에는 추측의 영역이 너무 크죠. 1차 때도 태종이 직접 겪은 주필산, 안시성 전투는 자세했지만, 역시 큰 싸움이었다는 신성과 건안성 전투는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근데 이번엔 친정도 없었으니...

승패를 떠나서 그 과정이 제대로 나왔으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있는 거라도 어떻게 맞춰보고, 그 빈 부분을 추정해 볼 수밖에 없죠.

"8월 갑술(자치통감은 7월) 소정방과 고구려가 패강에서 싸워 고구려를 격파해 마읍산을 빼앗고 드디어 평양을 포위하였다." - 신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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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방의 평양도행군은 역시 빠르게 평양을 공격합니다. 상륙 전 위도(청천강 쪽 하중도로 추측합니다)와 패강(대동강)에서 고구려군을 무찔렀고, 평양성 서남쪽 마읍산에 진지를 차립니다.

시작부터 장군이었죠. 백제의 선례를 봤음에도 여기엔 제대로 대응을 못 한 것 같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무시했을 수도 있고, 알고도 당한 것일 수도 있겠죠. 요동으로 향하는 병력은 아무리 적어도 5만은 넘었을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고구려에겐 충분히 위협적입니다. 적의 상륙이 예상된다고 쉽게 빼기 힘들었죠. 정말 확실한 정보를 받았다 하더라도 다름 아닌 국경이라 결정을 내리기 더 힘들었을 거구요.

그나마 요동과 평양으로 나뉘어졌다면 한반도 내의 병력이라도 긁어모을 수 있었을 텐데, 당군은 그것조차 막아버리죠.

9월, 계필하력의 요동도해군은 압록강으로 육박합니다. 위에서 썼듯 정확한 경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요동방어선을 뚫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낮겠고, 그냥 성을 무시하고 달려서 압록강에 다다랐을 수도 있고, 요동방어선 후방에 상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간의 상황을 보면 상륙 쪽이 더 가능성이 높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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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첫째 아들 연남생에게 압록강을 막게 합니다. 평양에서 병력을 딸려 보낸 것일 수도 있고, 3차 전쟁 때의 상황을 보면 원래 국내성, 압록강 쪽을 맡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든 방어를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추위가 빨리 와 버립니다. 압록강이 얼었고, 당군의 공격에 무려 3만이나 되는 피해를 입고 패하게 됩니다. 이들이 평양성 공성에 합류한다면 더욱 힘들게 될 것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평양에서의 지원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거였죠.

남생은 이런 패배를 겪고도 28세 된 해에(634년생입니다) 막리지 겸 삼군대장군이 됩니다. 그냥 보면 이긴 김에 후계를 더 공고히 한 것이다 볼 수 있겠는데, 워낙에 기록이 없으니 뭐가 더 없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죠. 이 패배가 3차 때의 상황에 어떤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식으로요.

이런 상황은 단순히 요충지가 당한 수준이 아닙니다. 당은 가을을 노려서 왔고, 가을의 추수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당했다면 서쪽의 곡식은 당의 손에 넘어갔거나 그대로 썩어버렸을 것이고, 청야작전을 펼쳤더라도 고구려가 얻지 못 할 건 마찬가지였죠. 만약 신라가 제대로 올라왔다면 고구려 제3의 지역이라 할 황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렇지 못 해도 어차피 평양성에는 올라오지 못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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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덜 지금 평양성 앞에서 쪽수 자랑하나?"

고구려가 기댈 것이 있다면 장안성, 평양성의 강력한 방어력이었습니다. 대동강이라는 방어벽이 지켜주는 4중으로 구성된 평양성 말이죠.

그래도 당의 전략이 예정되로 됐다면 고구려는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겠습니다만... 고구려가 예상 못 한 만큼, 혹은 알면서 당한 만큼, 당에서도 그런 게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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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께서 이미 소정방을 보내 수군과 육군 35도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하고, 임금께 병사를 일으켜 서로 응원하라고 명하였습니다. 비록 상중이지만 황제가 직접 내린 명을 어기기는 어렵습니다." - 삼국사기 661년 문무왕 원년

당에 있던 김인문과 유돈이 와서 직접 이렇게 고합니다. 슬퍼할 여유도 없었죠. 병력은 물론이고 당군의 군량도 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7월 중순에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한 대군을 편성합니다. 헌데 문제가 또 생겼으니...

"만약 먼저 평양으로 군량을 보낸다면, 웅진으로 가는 길이 끊어질 것이 걱정입니다. 웅진 길이 끊어지면 그곳에 남아있는 중국 병사가 곧바로 적의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 답설인귀서 중

백제부흥군은 다시 세를 넓혀 웅진으로 가는 길을 막았고, 당군이 굶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신라군이 그랬듯 유인원도 일정 병력으로 고구려를 치러 북상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 유인궤가 이끄는 병력은 더욱 줄어드는 거겠죠.

8월, 남천정(이천)까지 북진하던 신라군은 근처의 옹산성(대전 대덕구)가 적의 손에 넘어간 걸 알게 됩니다. 가는 길이 머니 달래보려 했지만 듣지 않았죠. 이 시기 신라군이 사비성을 무시하고 고구려로 가느냐, 사비성을 구원하느냐로 갈려서 혼란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혹은 이걸 핑계로 시간을 끈 것일 수도 있구요. 결국 사비성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9월 25일에 공격, 27일에 점령합니다. 김유신은 이 때 공성을 시도하면서 이렇게 달랩니다.

"너희 나라가 공손치 못하여 대국이 토벌하게 되었으며, 명령에 순응하는 자는 상을 받고, 순응치 않은 자는 살상을 당하였다. 지금 너희들은홀로 외로운 성을 지키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중에는 반드시 참혹해질 것이니, 나와서 항복하여 생명을 보전하고 부귀를 기약함만 같지 못하리라"

이러자 성에서는 이렇게 나왔다고 하죠.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성이지만 병기와 식량이 모두 넉넉하며 군사들은 의롭고 용감하다. 차라리 죽기로 싸울지언정 맹세코 살아서 항복하지는 않겠다."

당시 부흥군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비슷한 시기에 김품일은 우술성을 쳐서 점령합니다. 백제 달솔 조복, 은솔 파가가 항복하는 성과도 있었구요.
이러면서 다시 웅진으로 가는 길을 뚫습니다. 여기에 웅현성을 쌓아서 그 길을 강화한 것으로 보이구요.

이러면서 신라군이 황해도를 넘어 평양성을 함께 공격하는 게 막힙니다. 신라 입장에서는 아무리 문무왕이 준비된 왕이었다 해도 큰 일은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상복을 입어야 할 때고, 정치적으로도 경주를 지켜야 할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경주를 떠난 상황이었으니... 거기다 명분은 당이 줬습니다. 황제의 명령도 명령이지만, 웅진, 사비를 지켜달라는 당군의 요청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니 당도 신라군이 북진하지 않은 걸 딱히 문제삼지 않습니다.

신라의 움직임을 보면 솔직히 태업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왕이 다스리는 시대에 왕이 죽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당의 책봉이 중요했을 상황인데, 문무왕이 책봉받은 건 662년이 돼서입니다.

신라의 이런 상황을 당이 알아주긴 힘들었을 겁니다. 십 년 넘게 준비해 왔고, 본격적인 준비만 해도 660년부터 했을 거니까요. 웅진도독부의 상황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진행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남쪽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충분하다 여겼겠죠. 오히려 신라에게 대가를 주지 않아도 될 테니 다행이었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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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포위, 소정방은 승리의 예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지금껏 없었으니까요. 당에게는 수나라 때부터 숙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순간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당군은 오래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겨울이 빨리 찾아왔지만, 그건 오히려 천혜의 방어벽인 대동강이 얼어붙는다는=평양성을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다 줬죠.

하지만 평양성은 겨울이 다 가도록 버팁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움직였고, 고구려에 큰 타격을 줬지만, 당군은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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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그는 이 전쟁에서 최소한 자신의 군사적 능력만은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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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쟁은 정말 인지도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영화 평양성에서 정작 평양성이 포위되고 연개소문이 활약한 2차 대신에 안시성 얘기만 두 번 하고 있으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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