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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20 18:30:13수정됨
Name   호라타래
Subject   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완) - 시너지: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매개의 실천으로 읽기
6장은 방법론적 귀결이라 생략했습니다 ㅎㅎ 말미에 발제하면서 참석하신 선생님들과 주고받았던 내용을 더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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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다른 사회학의 창시자들 보다 더 세세하게 추상화의 실천(practices of abstraction)이 작동하는지 설명했어요. 뒤르켐의 [노동분업론],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놓친 것은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문제였거든요(the matter of what matters). 예를 들어, 우리가 펜이나 종이 같은 매개(media)를 단순히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다면, 펜이나 종이가 지닌 속성이나 이들이 빚어낼 수 있는 차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 서류를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까요? 

계약법을 통해 신뢰를 공적으로 외현화(the externalization of trust to the state by means of contract law)하는 것은 오직 확실한 약속을 실제적으로 기록된 그리고 서명된 문서로 위임(delegation)하여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를 계약이라 부릅니다. 매개하는 것들은 중요하지요(The medium matters). 이 매개들은 ‘단순히’ 실용성의 문제가 아니며, 무엇보다도 주장(the claim)과 같이 가상적인 것(the virtual)과 주장하기(the claiming)과 같은 실질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약속과 의무 사이에서 법적으로 구속된 연결(trace)을 설립하기 위해 매우 중요해요.

서명된 문서의 매개물들 - 손, 펜, 잉크, 종이, 봉인, 증인의 어셈블리지 - 은 오직 각 측면이 연결될 때야만 동의를 유효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 중 하나라도 어셈블리지에서 이탈한다면, 전체 과정은 그 힘을 시험 받는 상황에서 붕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힘을 시험 받는 상황이라 함은 서명의 진정성 확인과 같은 상황입니다. 왜 사람들이 종이에 약속을 저장(commit)하는지, 왜 서류의 진정성을 의심하는지를 탐구하는 사회적 설명은 앞선 과정들을 대체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 서명의 확인은 결코 관습 혹은 절차에 따른 무작위적인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절차는 무작위적일 수가 없어요. 앞서 언급하였듯이 종이, 펜, 잉크, 증인, 그리고 개인 서명의 어셈블리지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대신 죽간을 썼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이는 저장의 매체예요. 종이의 기능은 저장하기입니다. 종이는 펜에 의해 기입되는 잉크의 선을 저장해요. 종이의 특별한 성질은 잉크를 빠르게 흡수하고, 그 자신의 개별 조직에 잡아두는 것입니다. 종이가 “단지 매체일 뿐이다”라는 주장은 한 가지 질문을 야기해요. 왜 그리고 어떻게 정확하게 이러한 종류가 진화했는가(evolved)?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서는 중국, 이집트 같은 고대의 장소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이니스(Innis, 1950)의 연구는 왜 당대의 진보한 제국에서 종이를 죽간이나 점토판 보다 선호했는지 알려줘요. 또한 기입과 서명, 잉크와 기입 도구에 대해 알려 줍니다. 속도, 효율성, 지속성 그리고 진정성은 기록된 종이 문서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이었지요. 

계약서에 서명하는 실천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의를 자리잡게 하고, 제도화시키기 위해(to be settled and institutionalized), 지속성, 진정성, 속도, 효율성, 편안함에 대한 이해관계가 합쳐져 특정한 어셈블리지가 되었습니다. 기록되고 서명된 서류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으고, 이들이 ‘순수한’  사회적 사건(면대면의 구두 동의나 약속 - 물론 이 또한 신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혀, 소리, 공기 등의 물질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에 ‘순수한’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습니다)에서 법적으로 뿌리박힌 실질적 사건으로 전이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전이하기는 또한 번역이에요. 서명된 동의는 구두 약속에 악수를 더한 것과 동일하지 않아요. 매개가 차이를 빚어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관료제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사회의 제영역 속에서 서류의 규모가 얼마나 늘어나는지도 추적해볼만한 과업일거예요.

우리는 매우 일반적이고 논쟁적이지 않은 사례를 활용하여 순수하게 사회적인 설명이 매우 무기력하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특히 추상화의 실천이나 번역의 실천을 고려할 때, 이러한 설명이 차이를 빚어내는 물질적인 것들을 설명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서명된 계약을 통해 약속은 제도화 되고, 법적으로 배태되요. 이것은 결과적으로 베버주의자들이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에 관해 알아낸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요. 바로 정당성(legitimacy)이지요. 정당성은 매개(medium)로부터 파생되지만, 베버주의자들의 사고에는 이 점이 결여되어 있지요. 베버주의자들은 법적이고 행정적인 절차(관료제) 내 정당성의 제도적 배태화(the institutional embedding of legitimacy)를 지적할 뿐입니다. 말하자면 번역 과정 없이 추상화를 실시하는 것이지요(abstraction without translation). 하지만 이러한 “맥락”은 오직 문서를 따라서만 추적될 수 있습니다. 저장의 매체로서, 문서는 향후 다시 찾아보기 위해 저장되고, 분류되고, 기록될 필요가 있거든요. 따라서 문서는 우리가 정당화 과정(the process of legitimation)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추적해야 할 우선적인 행위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유물론은 문서에 서명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다른 이해관계들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어요. 주택 판매 계약을 예로 들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재산권을 담지하는(securing) 기록된 계약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어요.  절대 왕정 국가의 조세 독점과 궤를 같이 하여, 법적 권리가 (사적) 재산에 접합되는(anchoring) 변화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유럽에서, 상기한 법적 변화는 중세 말기에 봉건주의가 종식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어요. 후기 자본주의의 클렙토크라시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고요. 아무리 부도덕한 부자라 하더라도 조세 회피를 위한 그들의 조직적인 실천이 사유재산권이라는 명칭 하에 법적 기반을 지닐 필요는 커요. 달리 말하자면, 번역의 실천을 추상화의 실천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분석하는 것은 가능한 연결(association)의 범위를 제한합니다.

역사적 유물론은 금융적 흐름을 ‘추적’ 하기 위해 부동산의 구매와 판매에 연관된 서류를 쫓을 수 있어요(번역의 실천). 이를 통하여 40년에 걸친 소위 ‘신용 규제’를 형성해나갈 수 있지요(추상화의 실천). 계약을 담은 종이 없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돈이 부동산 거래에서 중요한 행위자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금융 흐름에 대한 사회적 설명은 추상적인 ‘돈’이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해내는데 실패해요.

매개는 물질이며, 물질은 중요해요. 물질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육체를 지니고, 이러한 육체는 인간 의도, 인식, 양심의 확장(extension)이거나 혹은 인간이 신체의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 기술적 도구를 사용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물질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은 4장에서 언급한 세 원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요. 이러할 때야만 무엇이 중요한가(무엇이 차이를 빚어내는가) 하는 질문이 완전히 경험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들을 받아들여, 역사적 유물론적 실천 이론은 거칠고 때로는 추측성이 짙은 연결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연결들은 클렙토크라시 자본주의와 전지구적인 자기 붕괴를 이루는 작금의 지정학적 질서를 형성하지요. 종이의 흔적과 돈의 흔적을 따르는 것은 확실하고, 경험적인 탐색적 실천입니다. 이러한 실천은 몇몇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의 세계 속에서 맥락을 건설하는  ‘사회적 설명’을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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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

1) 저자의 역사적 유물론 이해는 해석의 하나일 뿐이며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저자는 맑시즘 혹은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에 입각하여 ANT와의 시너지를 꾀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 유물론에서 인간 본성을 '노동하는 존재'로 정의했다는 점이나, 거기에 담긴 본질주의적 함의를 경시한다. 맑시즘에 관한 정전적 해석에 얽매이는 것도 곤란하지만, 편의적으로만 이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듯하다.

2) 저자의 페미니즘 이해나 언급에는 어폐가 있다.

역사적 유물론은 페미니즘의 한 분파인 마르스크주의 페미니즘과 연결될 뿐이다. 가부장제 비판에 주력하는 페미니즘을 역사적 유물론과 연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3) 역사적 유물론과 ANT가 저자의 야심처럼 행복하게 조화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

저자의 도식 속에서, ANT는 세계를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방식, 역사적 유물론은 비판적 문제의식을 조형하는 방식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면 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묘사를 위해 각각의 이론 속에서 많은 부분을 잘래냈다는 점은 유념하면서 글을 읽어야 한다.

4) 맑시즘이 나왔을 때의 '물질'과 지금의 '물질'은 다르지 않나?

역사적 유물론이 나왔을 때 인간과 물질이 관계를 맺는 방식, 현 시점에서 인간과 물질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르다. 인간이 물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더욱 다양해졌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물질을 인식하는 방식 또한 달라졌다. 변화한 '인간(물질이기도 한)-노동-물질' 관계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방법일 듯하다. 

5) 윤리적 실천의 문제?

윤리적 실천의 주체로서 인간을 소환하는 접근은 클라이브 해밀턴 류의 '신인간중심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다. 하지만 ANT 등의 신유물론에서는 인간을 윤리의 주체로 호명하더라도, 윤리적 실천을 행하기 위해서는 비인간들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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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리송하기는 하네요. 세미나 이후 저자의 역사적 유물론 이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거나, 윤리적 실천의 주체로 인간을 호명하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신인간중심주의'라는 관점에서 포괄될 수 있다는 걸 배우기는 했습니다.

짬날 때 또 이것저것 정리해보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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