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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5/07/16 14:37:24수정됨 |
| Name | 카르스 |
| Subject | 동남아시아, 장애인 이동권, 그리고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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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글은 장애 없는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작성되었기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당사자의 실제 경험과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 2년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몇몇 동남아 국가들을 여행했습니다. 많은 경험과 감상을 했고, 언젠가 시리즈물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의 관점에서도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1) 최근 몇 년간 장애인 이동권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2) 경험자들은 모두 느끼시겠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보행자로서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많이 험합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사지 멀쩡한 성인도 돌아다니기 버거운데, 휠체어 이용자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 경제 발전과 그에 뒤따르는 생활영역의 변화에 관심있는 한국인 경제사, 경제발전 전공자로서, 동남아시아 여행은 생활수준이 크게 다른 국가들을 비교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생활영역의 비교대상 중 하나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존재합니다. 4) 무엇보다도, 휠체어 이용 당사자들이 일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이동권을 한국과 비교한 것은 많이 봤는데, 반대로 한국을 개발도상국과 비교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이유가 커 보입니다. 1] 개발도상국엔 휠체어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수준인 지역이 꽤 있어서 휠체어 이용자 측면에서 코스짜기 힘들고, 2] 자칫 '우리가 그래도 OO국보단 낫더라' 같은 얄팍한 국뽕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과의 비교가 무의미한 것도 아닌 것이, 한국은 일본, 유럽과 달리 후발주자로 압축성장을 한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OO국보다 낫지' 하는 얄팍한 국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같은 후발주자들끼리 비교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예: OO국의 장애인 이동권 수준은 한국의 몇 년도 수준과 비슷할까) 그래서 한번 제가 동남아 장애인 이동권을 호기심 차원에서 한국과 비교해보았습니다. 우선 요약하자면 개인적으로 체감한 장애인 이동권 수준은 캄보디아 ≒ 베트남 <<< 태국(방콕 한정) < 말레이시아 << 한국 순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거리에서 휠체어(더 나아가 유모차) 이용자를 본 빈도 역시 이 순서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이동권 수준이 장애인들의 사회적 가시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분석틀을 세워 등급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장애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장애인 이동권 수준을 체감에 따라 아래처럼 분류했습니다. 1단계: 이동권이 실질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명목적으로도 보장되지 않는 단계. 2단계: 이동권이 명목상 보장은 되는데, 실질적인 보장과는 거리가 먼 단계. 3단계: 이동권이 명목상은 물론이고 실질적으로도 잘 보장되는 단계. 그리고 이를 0.5점 단위의 4개 구간으로 세분화하여 1.0-1.5단계, 1.5-2.0단계, 2.0-2.5단계, 2.5-3.0단계의 네 구간으로 나누어 국가별로 분류하였습니다. 1. 베트남, 캄보디아: 1.0-1.5단계 (휠체어로 도보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 ![]() [베트남, 하노이 Old Quarters - 지금까지 경험한 곳 중 돌아다니기 제일 혼잡했습니다] ![]() [캄포디아, 프놈펜] 이 두 국가는 사실 일반인이 보행자로서 지나가기에도 경험이 매우 나쁩니다. 휠체어 이용자는 말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휠체어를 길거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 태국(방콕 한정), 말레이시아: 1.5-2.0단계 (휠체어로 일부 지역에 한정하여 불완전하게나마 이동할 수 있는 수준) 태국(방콕 한정) ![]() [태국, 방콕 차이나차운] ![]() [태국, 방콕 아이콘시암 쇼핑몰] 관광지에서 휠체어를 빌려주는 경우가 많고, 도보에 경사로가 보이거나 저상버스가 운행하는 등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시설이 일부 보입니다. 보행자로서 겪는 혼잡성 문제도 앞선 두 국가보다는 괜찮습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훨씬 험하지만 말입니다. 주요 쇼핑몰이나 관광지, 공공시설 등 괜찮은 곳에 한정해서는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쇼핑몰 위주로나마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쇼핑몰 밖에서는 휠체어 탄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었고, 이건 방콕의 도시 구조와 발전 양상에 대해 많은 걸 함의합니다만... 자세한 건 나중에. 다만 방콕만 다녀왔기에 다른 도시는 다를 수 있습니다. 태국의 극심한 지역 격차를 생각하면 방콕 외 지역은 더 열악할 가능성이 커 보이긴 합니다. ![]() 그래도 캄보디아에서 방콕으로 가는 버스에서 들렀던 휴게소에 위 사진처럼 장애인용 화장실과 경사로가 있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태국이 전반적으로는 캄보디아, 베트남보다는 위일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 쪽] ![]() [말레이시아, 페낭] 태국과 비슷하지만 도로가 덜 혼잡하고, 경사로나 장애인 시설이 더 많이 보이는 등 이동권의 저점은 태국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태국보다는 한 단계 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에서 본 버스는 거의 모두가 저상버스였습니다. 저상버스 보급률에 한하면, 보급률이 가장 높은 서울이 70%대인 한국보다 말레이시아가 나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에서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종종 보였고, 방콕과 달리 특정 지점을 넘어 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보행자로서의 경험이 한국보다는 많이 험하고, 시설이 (저상버스 보급을 빼면) 한국보다 부족해서 평균적으로는 아직 한국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3. 한국: 2.0-2.5단계 (대체로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나, 크고작은 불편함이나 애로사항이 있어 실질적 평등과는 거리가 먼 단계) 한국의 도보 경험은 태국과 말레이시아보다 확실히 덜 혼잡하고, 경사로와 장애인 시설은 더 많이 보이며 저상버스도 어느 정도 보급되었습니다. 실제로 휠체어 이용자도 위 국가들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고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이 태국, 말레이시아보다는 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상버스가 완전히 보급되지 않았고, 구시가지에 경사로가 없는 건물이 여전히 많으며, 장애인 시설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등,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실질적 평등까지 큰 틀에서 보장되는 2.5-3.0단계에는 미치지 못하며, 2.0-2.5단계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좀 오래전에 방문하여 판단하기 조심스럽지만, 과거 경험과 타인의 리뷰 등을 종합하면 대만이 한국과 비슷한 2.0-2.5단계 수준 같습니다. 대만은 일부 휠체어 시설은 한국보다 잘 되어있지만 보행자로서의 경험은 더 혼잡하므로, 종합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순위를 보면 1인당 GDP와 장애인 이동권의 순위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잘 사는 국가일수록 장애인 이동권이 좋은 셈이지요. 그리고 한국을 유럽, 일본, 미국과 비교하면 생활수준 대비 이동권이 모자란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후발주자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이 특별히 뒤처지는 국가는 아니라는 추측도 해 봅니다. 늦게 성장한 국가들이 가진 태생적인 페널티인 걸까, 여러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절대 이 수준에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휠체어 이용객 유튜버들이 선진국 대비 한국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괜한 투정이 아닙니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국가들은 4. 명목상 휠체어 이동 가능을 넘어 실질적으로도 편리한, 실질적 평등까지 보장되는 2.5-3.0단계인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곳은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상버스 보급 하나만이로도 말레이시아가 한국보다 앞설 수 있다는 사실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저상버스가 많다고 해서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편히 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한국의 예가 그렇지 않습니까), 일부분이나마 우리가 쉽게 생각했던 개발도상국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사실은 씁쓸했습니다. 많이 발전한 것 같아도, 절대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덤) 저는 장애인이 아니기에 장애인 이동권을 보행자로서의 경험으로 간접 유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방식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지만, 동시에 장애인 이동권이 비장애인의 보행 환경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덤2) 장애인 이동권이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걸 장애 없는 성인 남성으로서 여행하며 몸으로 느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네 단계론을 이용하자면, 경험상 2.0단계에 못 미치는 국가들은 장애 없는 성인 남성들도 보행자로서 작지 않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장애 없는, 성인, 남성 세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어려움은 더더욱 늘어나겠죠. 추가 - 덤3) 싱가포르, 브루나이,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비방콕지역), 미얀마[내전 종식 후]도 가보고싶은데, 갔다오면 그 국가들도 추가해서 비교해보고 싶네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5-07-29 15:08)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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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가본지가 오래되서 공정한 비교는 아니겠지만..적어도 지금 한국은 제가 갔을때 미국보다 장애인이동권 보장 잘되어있을겁니다. 웬만한 산에 가도 무장애길이 다 깔려있고 전동휠체어 90%가 지원되는데..
사회적 가시성으로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휠체어 사용자들을 더 자주 보게 되더라고요.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미국을 비교하는 것이니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요. 이동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가시성을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는 걸 수도 있고 (장애를 은폐하는 사회적 압력),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아직 다루지 못한 어떤 병목이 있는 걸수도 있고요. 이건 휠체어 이용자들에 대한 에스노그라픽 관찰과 인터뷰를 진행해야 잡아낼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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