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4/01/31 23:03:55
Name   양라곱
Subject   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호들짝 놀랐습니다. 분량조절 실패로 4화까지 쓰는 마당에, 크게 알맹이는 없을 내용을 너무 늦게 올려서 받게 될 지탄이 두렵습니다만, 모튼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 이후 Supplementary Information에서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된 잡다한 지식을 모아놓겠습니다.

—————————

D+6 오후

150만원 짜리 견적서를 받고나서 드는 생각은 어이없을 무. 그러던 차에, 주택관리업체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충 [아이고 사장님.. 야랄맞은 일 겪으시느라 고생이십니다.. 그래도 적당히 마무리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정도의 이야기. 업체 사장님은 실무자가 GG 후 SOS를 쳐서 일단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당에 내가 좋게 끝내는 선택지는 없었고, 무엇보다, 지난 일주일을 지나면서 느꼈던 본질적인 궁금증을 물었다.


도대체 집주인은 왜 저한테 직접 연락을 안합니까?


생각해보면, 작금의 분쟁 상황에서 관리업체가 나와 집주인을 중재해야할 의무나 책임은 하나도 없다. 합의를 하든, 끝장을 보든, 집주인이 나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게 이치에 맞지 않은가. 아무런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들이 가운데에서 고통받고 있는걸 보면서 더 짜증이 났다.

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 합당한 보상뿐. 업체 사장은 이자와 법정비용 관련 내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에, 실무자에게 다시 한번 알아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D+6 퇴근길

수 시간 뒤, 퇴근하는 중 업체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체: 그.. 이자 명목으로 N만원 정도로 해주시고 마무리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드디어 전향적인 스탠스가 나왔다. 낮에는 감정 상해서 길길이 날뛰었을 집주인이, 결국 지금이라도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D+7 오전

다음 날 오전, 집주인 측에서 제시한 이자 명목의 비용이 그 날까지의 이자에 준하는 정도였기에, 모든 비용을 돌려받은 후에 등기명령 해제 신청을 해주겠다고 합의하였다. 업체와 조율하여, 다음 날 바로 대전에 내려가서 짐을 정리해주기로 하였다.


D+8

연차를 쓰고 내려가서 짐을 모두 정리하고, 보증금+지연이자 명목+내용증명 및 임차권 등기명령 소요 비용 일체의 입금을 확인한 후, 짐을 챙겨서 나왔다.

————————

집주인은 왜 나와 이런 분쟁을 일으킨 것 일까.

초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을 때의 판단은(1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방식을 활용하여 세입자들을 자주 등쳐먹었고, 이번에도 동일하게 해먹으려는 심산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였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의 모든 중요한 순간마다 집주인은 어느 하나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 했다. 만약 집주인이 자신의 이익에 집중하고 이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법적대응을 구체적으로 진행할 의향을 비친 그 순간, 빠르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ㅎㅎ..ㅈㅅ!를 외치며 끝냈어야 한다. 혹은, 보증금 일부만을 강제로 돌려주고 분쟁의 영역을 원상 복구 비용만으로 제한하는 식으로 접근하였다면, 작금의 상황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것이다(=내 머리털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집주인에 대해 한줄평을 하자면 [비이성적인 타조]였다. 문제 상황을 직면하지 못하고, 이를 해결할 의지도 없이 그저 모래에 머리를 쳐박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 일방적인 연락 두절, 비이성적인 상황 판단, 업체를 낀 간접적인 의사교환 등,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간주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아버지뻘이었다는게 함정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며칠 뒤에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를 신청했다.

————————

아마도 그나마 집주인이 빠르게 나와 합의를 진행한 이유는, 주변 누군가의 조언이 있어서였을 수 있다.
[님, 임차권 그거 설정되서 등기 남으면 골치아프다? 뭐? 이미 결정됐다고? 아직 결정정본 안읽었지? 그거 절대 읽지말고, 최대한 빨리 세입자한테 돌려주고 해제해달라고 해. 그러면 등기에는 안올라가니까]

맞다. 법적서류의 원칙은 도달주의라 하여, 해당 서류가 당사자에게 [도달]한 순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차권 등기설정의 당사자(=나 + 집주인)들이 모두 해당 결정정본을 [송달받아야] 그 이후에 법원은 등기국에 등기촉탁(=야 임차권 설정됐으니까 등기부에 올려줘)을 하게 된다.

근데, 뭔가 억울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집주인이 잘못해서 임차권 설정하는 마당에, 집주인이 맘먹고 시간끌면 등기에 늦게 올라간다고?=내 전출신고가 계속 늦어진다고?

…라는 부조리를 굽어살피신 나랏님께서, 작년 7월에 이렇게 법령을 개정하셨다.



[다만, 주택임차권등기명령의 경우에는 임대인에게 임차권등기명령의 결정을 송달하기 전에도 임차권등기의 기입을 촉탁할 수 있다.]

즉, 집주인들이 자꾸 일부러 안받고 트롤링하면서 질질 끄니까, 주택임차권등기명령의 경우에는 집주인이 결정 송달 안받아도 바로 등기국에 촉탁이 가능해졌다.

얼마나 이런 양아치짓들을 많이 했으면 이렇게 개정해줬을까..

덕분에, 나의 경우에는 등기명령 결정과 보증금 반환 사이의 시간은 단 사흘이었지만, 그 사이에 이미 법원에서는 등기국에 [자, 등기 드가자~]하면서 이미 촉탁을 한 것이다. 이후에 내가 등기명령 해제 신청을 진행하더라도, 이미 등기부에는 임차권 설정 기록이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

자, 이제 정말로 모든 사건이 끝났다. 최종 결산을 해보자.

양라곱이 잃은 것: 이직 이후의 두근두근한 초기 한달의 평온함, 약간의 머리털
양라곱이 얻은 것: 나를 도와준 많은 분들, 지연이자, 주택임대차 분쟁시의 법률지식 및 경험치, 추게행 티켓 2개 [감사하다]

집주인이 얻은 것: null
집주인이 잃은 것: 지연이자 및 법정 비용, 양라곱이 협조하지 않음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한 수리비용 150만원, 등기부에 남은 건물 전과 및 미래 세입자



이래저래, 내가 훨씬 남는 장사였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
Supplementary Information

S1. 내 글에서는 실제로 내용증명이나 전자소송을 진행하는 절차를 많이 생략하였다. 이 부분은 구글링하면 많이 나온다. 아래는 내가 참고한 다른 분들의 후기 및 절차 관련 레퍼런스들이다.

가장 많이 참고한 민달팽이 유니온의 글 (내용증명, 임차권등기명령, 민사소송까지)
https://minsnailunion.net/consultlist/?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jt9&bmode=view&idx=418951&t=board

내용증명 방법 및 후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1269521?sid=102

임차권 등기명령 후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756623&memberNo=22213349


S2.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전세보증보험은 꼭 들어라. 나는 다행히 전세사기는 아니었기에,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임대인이 변제능력이 없어서 배를 째버리면 머리털이 다 빠질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전세보증보험은 꼭 들어라]

S3. 말로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계약 만료일 전부터 분쟁이 생기거나 조짐이 보인다면 미리 증빙자료를 준비해두자.

S4. 만약 계약 만료일에 보증금 전액 혹은 일부를 돌려받지 못했다면, 지체없이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자. 며칠 뒤에 준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기다려봤자 돈 돌려받는 시일만 늦어진다. 집주인이 해당 내용을 공증해주지 않는 이상, 계약 만료일이 지나는 순간 임차권 등기명령을 무조건 신청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S5.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전세보증보험을 통해서 구제받으려면 어차피 임차권 신청해야 한다.

S6. 등기부에 임차권 설정이 완료된 후에 전출신고를 해야 우선변제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

S7. 법원 지정 은행은 신한은행이다. 등기명령 신청할 때는 상관 없었는데, 해제할 때는 송달료를 신한은행으로만 납부 가능하더라.

S8. 요즘은 내용증명도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다. 굳이 3부 프린트해서 우체국에 직접 찾아갈 필요가 없다. 돈만 내면 우체국에서 알아서 인쇄부터 송달까지 원스톱으로 다 해준다.

S9. 공인중개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으로 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이 폐업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S9. 송달료 등은 블로그 글 참고해서 적당한 액수를 넣어두면, 나중에 다 끝나고 차액만큼 돌려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대충 떠오르는 것은 이정도네요. 나중에 파편적으로 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두겠습니다.

그럼, 정말로, 안녕!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2-12 20:48)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7
  • ㅊㅊ
  • 경험담은 개추
  • 메데타시 메데타시!
  • 늦어서 미안합니다 추천추천
  • 이글을 참조할일이 없길 바라면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055 36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516 15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090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12 35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142 29
1391 일상/생각방문을 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9 kaestro 24/04/29 2117 11
1390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12 자몽에이슬 24/04/24 2644 19
1386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7 와짱 24/04/17 2144 13
1381 일상/생각육아의 어려움 8 풀잎 24/04/03 1943 12
1379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2481 9
1378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2285 28
1376 일상/생각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2368 19
1371 일상/생각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1930 20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4008 37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7576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7236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6697 14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3661 21
1350 일상/생각아보카도 토스트 개발한 쉐프의 죽음 10 Soporatif 23/12/31 2380 19
1347 일상/생각빙산 같은 슬픔 10 골든햄스 23/12/17 2395 37
1344 일상/생각비오는 숲의 이야기 38 하얀 23/12/14 2813 56
1342 일상/생각이글루스의 폐쇄에 대한 잡다한 말들. 10 joel 23/12/03 2750 19
1337 일상/생각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10 tannenbaum 23/10/30 2765 48
1333 일상/생각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자들과 솎아내기의 딜레마 12 골든햄스 23/10/01 3325 20
1332 일상/생각나의 은전, 한 장. 6 심해냉장고 23/09/30 2756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