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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7/25 14:15:20
Name   소요
Subject   <20대 남성 53% "키스는 성관계 동의한 것">이라는 기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보고서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https://kongcha.net/news/30505

파이어 되어 잠겼던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원데이터*를 살펴보니 기사에서 프레이밍한 접근을 다르게 봐야 할 필요가 있어보이네요. 또한 기사에서 프레이밍한 접근-댓글에서 드러난 반응 양상이 원 보고서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느꼈습니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1). 폭력예방교육의 효과성 증진방안 연구: 남성참여자를 중심으로 (https://www.kwdi.re.kr/publications/reportView.do?p=5&idx=126850)

1. 자료의 배경을 보기

만 19세 이상 공공기간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입니다. 근무 기관 및 성별에 따른 비례표본할당을 실시하였습니다. 대충 나쁘지 않게 배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소속기관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학교(초중고), 학교(대학)입니다. 따라서 사회 평균치보다는 교육수준이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간 의무교육을 참여한 (횟수 구분 없이) 사람들 대상으로 교육 만족도, 교육에 대한 의견, 인식하는 효과, 성폭력 및 성역할 인식을 설문한 자료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평균을 포착하기 보다는 교육수준이 높고 성폭력 교육을 수강한 경험이 최소 1번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입니다.

2. '성폭력 인식' 항목은 잘못 구성되었는가?

제 의견은 '아니다'입니다.

원 보고서 부록 249 페이지에 있는 설문 항목은

1. 남녀가 모텔에 함께 들어간 것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늦은 밤 여성이 자기 집에 남성이 들어오게 한 것은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다.
3. 남녀가 키스와 애무를 한 것은 성관계에 동의한 것을 의미한다.
4. 전에 성관계를 나눈 적이 있어도 이후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성관계는 성폭력이다.
5. 성행위 도중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상대가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성폭력이다.
6.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것은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
7. 부부 사이라도 폭력에 의한 강제적 성관계는 성폭력이다.
8.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사람과 성관계하는 것은 성범죄다.
9. 상대의 성적 사진・동영상을 동의 없이 찍거나 촬영하는 것은 범죄다.
10. 사귀는 사람이 보낸 성적인 사진・동영상을 그 사람의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은 범죄다.
11. 16세 미만 청소년이 동의했어도 성인이 이들과 성관계하는 것은 범죄이다.
*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그렇지 않은 편이다, ③ 그런 편이다, ④ 매우 그렇다 로 구성된 4점 척도 설문

입니다. 문항개발에 관련된 정보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지금 접근이 큰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개인의 인식과 판단이 고맥락적인만큼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접근(비네트 기법)이 적합하지 않은가 하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지난 번 올렸던 글(https://kongcha.net/free/12958)에서 연구자들이 택했던 것처럼요. 하지만 각각의 항목에 대한 세부적인 조사가 아니라, 11개 항목 전체를 묶어서 섹슈얼리티 + 성폭력 인식을 살피는 것이기에 문항은 단순하게 가고 요인분석을 통해 개인 수준에서의 비체계적 오차를 통제하는 방식이 타당해보입니다.

3. 그럼 20대 남성이 더 문제가 있는가?

이건 좀 애매합니다. 설명을 위해서는 일단 항목 하나를 자세히 까보고 시작해야 합니다.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1). 폭력예방교육의 효과성 증진방안 연구: 남성참여자를 중심으로. p. 134

전체 평균은 2.1입니다. 4점 척도 기준으로 2.16이라는 건 남녀가 모텔에 함께 들어간 것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20대에서 남녀 차이는 뚜렷합니다. 유의성 검정을 따로 해봐도 매우 유의하고, 효과 크기를 따로 계산해봐도 크지요.

근데 표를 보면 남성들 사이의 세대별 편차보다 여성들 사이의 세대별 편차가 큽니다. 해당 질문에 동의하는 정도는 50대 남성이 가장 크지만, 50대 여성들이 해당 문항에 동의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성별 편차가 약해지지요. 20대 남성과 50대 남성을 비교하면 유의성 검정에서는 p = 0.0832가 나옵니다. 현재 데이터로는 차이를 일반화 하기가 힘들어 보이네요.

즉, 20대 남-녀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다른 각도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20대 남성이 특별히 높다가 아니라, 20대 여성이 특별히 낮다로요.

물론 이게 20대 여성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표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여성들은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모텔에 함께 들어간 것과 / 성관계 동의 여부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반대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둘을 덜 구분하고요). 여성들의 신체결정권 인식이 젋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뚜렷하다고 접근할 수도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이 항목에서는 20대 여성들이 '젠더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Standard 하지만, 20대 남성들이 Average에서 더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

위에서 살펴본 Standard vs Average 틀은 다른 항목의 반응을 이해할 때도 도움이 되요. 임의로 데이터를 재계산해서 표를 만들었습니다. Average 정보를 보기 위해 남성, 여성 각각의 전체 평균과 표준편차 정보를 활용해서 20대 남성/여성 평균이 몇 표준편차 떨어져 있는지 계산해봅니다 (표준화). 평균치를 무식하게 그대로 때려넣었기 때문에 패턴을 잡아내기 위한 힌트로만 보셔야 합니다. Standard는 평균치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1). 폭력예방교육의 효과성 증진방안 연구: 남성참여자를 중심으로. pp. 134-148 페이지 표 재구성

우선 평균치로 나오는 standard 측면부터 봅시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젠더 감수성'이라는 가치체계 하에서 어떤 응답이 더 각광받는지는 대부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모든 항목에서 20대 여성들이 젠더 감수성 standard에 부합하는 의견을 동일 성별 내 다른 세대, 동일 세대 내 다른 성별에 비해 평균적으로 강하게 견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20대 남성들이나 남/녀 평균은 젠더 감수성 standard에서 벗어나는 의견을 가지는가?라고 묻는다면 충분히 standard에 부합합니다. Yes or No라는 이분법으로 바꾸어서보면 20대 남성들 또한 젠더 감수성 standard에 부합하지요*. 이 점은 확실하게 박아두고 가야 아래 average 차원의 비교가 호도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 키스와 애무 = 성관계 동의에 대한 인식은 제외. 여기서는 20대 남성들이 젠더감수성 standard에서 벗어나는 입장을 지닌다 할 수 있음.

그럼 average 측면으로 갑시다. 1부터 6까지 상위 5개, 그러니까 성행위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 중 명시적 동의 + 자유로운 중단을 강조하는 항목*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average에서 벗어난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여성 평균에서 20대 여성이 벗어난 정도가, 전체 남성 평균에서 20대 남성이 벗어난 정도보다 강합니다. 
* 이 항목 중 4번과 5번은 당연히 성폭력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성행위에 대한 의사결정 연장선에서, 여성은 성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건 모텔 -> 늦은 밤 자기 집 -> 키스/애무로 넘어갈 때 20대 남성이나 20대 여성이나 '이 정도면 동의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은 정도가 커진다는 거네요. 20대 남성이 -0.022 -> 0.237로 남성 평균에서 벗어난 정도가 커지는 동안 (+0.259), 20대 여성은 -0.350 -> -0.206으로 커집니다 (+0.144). 그래도 20대 남성이 더 커지고요.

노란색으로 칠한 표준편차는 20대 남녀 내에서 서로 의견이 얼마나 다양하느냐를 볼 수 있는 정보예요. 모텔, 늦은 밤 자기 집, 키스/애무에서는 20대 남녀 모두 공히 의견이 와리가리 한다는 지표로 삼아야 해요. 무엇이 섹스에 오케이 하는 거고 아닌 건지는 성별/연령과 상관없이 복잡한 게임인거죠. 

근데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여성들 의견의 표준편차는 줄어듭니다. 무엇이 동의인가 아닌가를 고민할 때는 남/녀 모두 헷갈려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의견으로 넘어가면 20대 여성들이 뚜렷한 담론을 지닌다고 이해할 수 있을 듯해요. 20대 남성들은 전체 남성들보다 더 다양한 의견을 지니는 반면, 20대 여성은 전체 여성들보다 훨씬 단일한 의견을 지니지요.

6번째 항목인 노출에 관한 의견은 특이합니다. standard에 가까운 낮은 평균치는 '내가 당당하게 노출하는 건데 너희들이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다'라는 변화된 여성들 사이 담론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데, 의외로 표준편차가 전체 여성 평균과 차이가 적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일치된 의견까지 감안하여 가설을 제기해보면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유교걸 모델, 그러니까 성에 대한 방어적 담론과 갈등하는 경우에는 여성들 사이 입장의 내부 분산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아래 7부터 11까지 5개, 성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항목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여성들 사이 내부 분산이 적습니다. 그리고 위의 5개와 다르게 20대 남성들이 남성 전체 average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여성들보다 훨씬 커져요*. 20대 남성이 왜 이러한 입장을 지니는지는 주어진 자료만 가지고는 알기 힘듭니다. 다만 젠더 이슈를 독립적인 성별이 아니라 젠더 간의 상호작용/관계로 해석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20대 여성들의 뚜렷하고 단일한 모델에 대한 방어적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 여성의 average가 더 커지지 않는 것은 4점 척도이기 때문에 상방 이동이 막혀 생기는 천장효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 이러한 해석은 한국 사회에서 최근 7년 간 젠더 이슈의 부각이 2030 여성 중심의 '래디컬' 페미니즘 발흥 -> 사회 및 2030 남성 집단의 응답이라는 과정을 거쳤다는 진단에 기초합니다.

다만 20대 남성들 사이의 분산이 큰 건 주목할만 합니다. 20대 남성들이 성폭력에 대해 내놓은 의견은 전반적으로 다른 남성 평균에 비해서도, 여성 평균에 비해서도 내부 이질성이 큽니다*. 위에 짚었듯이 standard에 가까우나 내부 혼란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교육을 들은 이후에도요. 
* 이러한 이질성을 비슷하게 보여주는 집단은 40대 여성입니다. 표집에 구조적 오차가 생긴건지, 일반화 가능한 패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후자라면 자녀가 딸이냐 아들이냐에 따른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을 요약해보겠습니다.

- 설문에 참여한 집단 대부분은 젠더 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 1개를 제외하면 모두* standard에 가까운 인식을 지닌다 (2점 척도 yes or no로 재구성 했을 때).
* 반올림 기준으로 볼 때 키스와 애무 = 성관계 동의에 대한 인식은 제외하는 걸로 수정합니다.
- 해당 성별 집단의 평균/표준편차 데이터를 가지고 20대 남녀의 평균을 표준화해서 보면, 문항에 따라 20대 남성들이 남성 평균에서 벗어난 점도, 20대 여성들이 여성 평균에서 벗어난 점도 있다.
- 성행위에 대한 의사결정 내에서 명시적 동의 + 자유로운 중단을 지지하는 문항들에서는 20대 남-녀의 큰 차이는 20대 여성들의 급진성으로 (혹은 젠더감수성에서 standard 지향성)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 성폭력에 관련된 문항들에서 20대 남-녀의 큰 차이는 20대 남성들의 보수성으로 (혹은 젠더감수성 standard에 대한 거부감 혹은 유보적 태도)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 표준편차 비교를 가지고 짐작해보면, 20대 여성들은 성에 대한 방어적인 담론을 지향할 때는 보다 동질적인 의견을 지니지만, 그 외의 문항들에서는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 20대 남성들은 20대 여성들 뿐만 아니라 남성 집단 전체보다도 성폭력 담론에 대한 반응에서 이질성이 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설문은 [교육을 들은 사람들]에 대한 설문입니다. 교육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으리라 예상할 수 있고요. 따라서 젠더감수성에서 standard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20대 남성들이 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고서에서 인터뷰한 내용은 20대 남성들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남성 전반의 서사와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4. 성폭력 교육을 이수한 남성들의 목소리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1). 폭력예방교육의 효과성 증진방안 연구: 남성참여자를 중심으로. p. 8

이하에서는 본문을 일부 옮긴 후 제 생각은 나중에 적습니다. 이 연구 참여자들은 위의 설문참여 인구 집단과 비슷합니다. 사회 전반을 대표하기보다는 공공기관 특유의 젠더 이슈에 엄격한 분위기 + 어느 정도의 교육 수준 + 지속적인 교육을 거친 인구 집단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도 해당 인구 집단의 의견으로 생각하시고, 바로 위 설문 분석에서 나왔던 이질성들의 배경을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으시면 될 듯합니다.

교육 내용 중 일부만 적고, 남성과 성폭력에 관한 인식 + 남성 역할에 대한 인식을 주로 옮깁니다.

교육내용

<성희롱과 성폭력의 개념>

본 심층면접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폭력예방교육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의 개념을 소개하고 성인지성 감수성을 높여 수강자 인식을 개선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남성 입장에서 모호하게 생각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성폭력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한다.

"우선은 교육내용이 어떤 거였냐면 성폭력이 왜 일어나고, 그다음에 주로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이게 대학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보니 사실 학부생들에게 중점이 맞춰져 있는데 저희도 같은 걸 듣거든요. 학부생들한테 중점이 맞춰진 게 요즘에 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을 중점적으로 교육시켜주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보면 학부생하고 대학원생하고 같이 수업을 듣다 보니까 이걸 해결하는 방식들이라든지, 전반적인 내용은 굉장히 좋거든요.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해서 지식이 없는 분들이 들어도 굉장히 이해가 쉽게 되도록 만들어주셨는데, 다만 해결하는 방식, 학생으로서 대처하는 방식들의 경우 주로 (해결방법이 학부생) 학생들한테 초점
이 맞춰져 있는." (사례 2)

"50~60명을 나눠서 강당에 모여서. … 우선 사례가 있었고, 설문지에 '어떤 게 성폭력이다, 아니다' 생각하기에 자기 의견 적고, 나중에 확인. 전체적으로 '이건 성폭력이다, 아니다', 이렇게 결과로 나오게끔 그렇게 했습니다. 종이 가져와서 각자 거기에 체크하게끔 하고 토의하고. 5명 정도 토의하고. 그 다음에 결과를 전체적으로 알려주시고. … 제 경우는 20문항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 두 문항만 틀리고.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한 거는 두 개를 틀렸고 나머진 다 맞췄습니다. … ‘사무실에서 대화하는 도중에 여직원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성폭력의 대상이냐, 아니냐?’. ‘고의로 얘기한 게 아니고 남자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 ‘음담패설을 하는데 여직원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걸 했는데 제가 틀렸어요." (사례 14)

"주로 성희롱 관련된 게 많았어요. 성희롱 이 부분이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잖아요. 상대방에 따라서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서 성희롱인지 아닌지, 이런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 저희 입장에서 그 부분을 확실하게 구분해줄 수 있는 그런 부분에 초점이 많았어요. ‘이 부분은 성희롱이고 이 부분은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부분을 사례별로 설명해줬던 교육들이 많았어요. 평소에 저희가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까진 아니겠지? 직장생활하는데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을 때, 남직원이 여직원 어깨에 얹었을 때 이 부분이 성희롱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모호할 수 있는데 이런 걸 정확하게 명확하게 ‘아니다, 이게 성희롱이다’라는 부분을 심어주는 교육이었어요. 저희가 평소에 인지하고 못 하고 있다가 말투나 단체방에서 업로드하는 그런 내용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지시하거나 가르쳐주면서 교육하면서 터치하는 이런 것들이 ‘어느 부분이 성희롱이고 어느 부분이 성희롱이 아닐 수 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대부분이 성희롱에 포함됐었거든요. 그런 인식을 바꿔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교육했었던 거 같아요." (사례 16)

pp. 40-41

<긍정적 인상을 준 교육>

심층면접참여자들은 수강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강사에 의한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수강자들 사이의 토론이 교육 몰입도와 이해도를 높인다고 보고 있다. 강의식 교육이라 하더라도 이수자들의 참여 기회를 적절히 제공하면 흥미와 효과 모두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 남는 건, 계속 질문을 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서로. … 10명이었나? 그룹으로 하니까. 10명이 그룹으로. … 전체 그룹이 한 100명 넘었겠죠. 소그룹으로 나눠서 의자에 앉혀놓고 주제를 하나 던지는 거예요. “성폭력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면, 서로 막 얘기하는 거죠.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생각한다”. … (자료) 없어요. 그대로. 모든 자료는 전혀 주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되어야 성폭력으로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서로 얘기한 걸, 종합해서 토론하는 거예요. 이분이 얘기한 거에 대해서는 어떻다, 저떻다 이렇게 서로. … 차라리 그게[자료 없이 하는 것이] 더 나은 거 같아요. 자료를 주면 괜히 그걸 읽어봐야 하고, 그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 보면, 나중에 얘기할 때 서로 소그룹 모여서 얘기할 때…. 자연스러운 거죠." (사례 12)

"아까 얘기했듯이 토론 교육인데, 저도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받으면서 늘 하는 생각은 ‘저건 나하고 거리가 먼 거야, 나하고는 상관없는 거야’, 이런 생각을 갖고 교육에 참여한 거죠. ‘나는 해당이 안 돼’. 교육의 집중도를 높이려면 아까 얘기했듯이 어떤 사례를 하나 줘요. 사건 사례를 줌으로써 여기에 대해서 서로 간의 수첩을 주고받고 토론을 하는 거예요. 각각의 생각이 다 다를 거 아니에요. 다른 걸 나중에 종합적으로 합쳐서 결론을 내리고 끝나는데, 아주 인상 깊었어요." (사례 12)

"저는 지난번에 0월 00일에 받은 건, 그건 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전에는 동영상이나 보고 PPT로 해서 쭉 설명 듣고 끝났었는데, 설문지를 해서 다 항목별로 해서 ‘아니다, 성폭력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먼저 체크 해놓고 토의하고, 그다음에 최종적으로 그건 ‘맞다, 아니다’, 이렇게 결과를 내주니까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사례 14)

성폭력 개념과 성인지 감수성 관련 수강자의 고정관념과 통념을 깨뜨리는 효과가 있다. 사례 11은 성폭력을 판별하는 프레임과 인식 차이를 깨닫게 하는 교육을 높게 평가하였다. 남성과 여성이 사건과 행위에 대해 갖는 인식 차이를 폭력예방교육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례 3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을 이해하는 데 폭력예방교육이 도움되었다고 강조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육받았던 거 중에 제일 좀 유레카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던 부분은 좀 전에 말씀하셨던 모텔에 갈 때의 시그널과 같이 여자는 분 단위로 모텔 입구 들어갈 때랑 방문 들어갈 때랑 침대 앉았을 때랑 누웠을 때 랑 이걸 쪼개서 생각하는 관점과 남자는 “쉬러 갈래?”라면서 손잡아 당겼을 때, 끌려졌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나올 때까지 통째로 생각한다는 갭의 차이가 크다고 예시를 들어주셨던 거처럼, 어떤 사례를 이야기할 때, “남성은 이렇게 이해를 했었는데, 여자는 이렇게 이해했었더라”라고 하는 이해의 차이를 설명할 때 제일 크게 와닿았었거든요. 남성의 이해 포인트를 설명할 때는, 저도 남성이기도 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걸 다르게 어떻게 이해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뒤에 나오는 예시를 들어보면 ‘저걸 저렇게 생각했다고?’라고 하면서 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있고,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넘겨 넘겨 이성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아, 저렇게 다르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결국에 세밀한 마지막 지점에서의 어떤 갭을 꺼내서 딱 설명해주는 게 핵심인 거 같아요." (사례 11)

"저는 인상적이었던 게, ‘성폭력은 성차별과 폭력이 함께 들어있는 개념’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면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되게 여러 번에 걸쳐서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리고 그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성폭력을 알기 쉽게 만화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게임을 하자고 했다가 안 한다고 해서 그걸 강요할 수 없다’든지, ‘차를 빌려준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허락 없이 마음대로 빌려도 되는 건 아니고’.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빌려주겠다’고는 했는데 언제 쓴다 허락없이 쓰는 거죠. … 성적 자기 결정권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교육하더라고요). … 그렇죠. 알고 있던 내용인데 ‘이렇게 접근하면 되게 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많이 떠도는 말 중에 차 마시는 걸 가지고 비유한 게 있는데, ‘차를 마시겠다고 했다가 차를 탔는데 안 마시겠다고 한다고 해서 그걸 마시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성폭력을 비유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추상적인 걸 구체적으로 잘 표현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례 3)

"우리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잖아요, 성적으로 고정 관념있는 발언들이. 그러다 보니 저도 그런 것들을 계속 몇십 년 동안 듣다 보니 무뎌지기도 하고 요즘 들어 동거인 통해서 그런 쪽으로 이것저것 많이듣다 보니 관심 갖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아, 이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껴지는 것들이 좀 있어요." (사례 9)

pp. 43-45

<강사에 대한 평가>

폭력예방교육 진행 강사의 전문성에 대한 불신도 심층면접 참여자 사이에서 발견된다. 사례 16은 외부 강사가 소속기관과 업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일반론을 펼친다며 반감을 표명한다. 반대로 조직에 대한 이해가 높은 기관 내부 강사의 교육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네, 편차가 큰 거 같아요... 주욱 읽어주고 단순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열정적으로 호응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의 외부 강사들 열에 여덟은 생각보다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어요. 오히려 내부 강사가 더 잘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부 강사는 같은 동료가 강사를 맡아서 하는 경우인데, 우리들이 어느 부분에서 반응하고 안 하고를 잘 아니까 그런 걸 잘 끌어내시더라고요. 약간 충격적이었어요.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내부 강사가 대신했었는데, ‘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강사 하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구나’하고. 조직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서 이해하고 반영해서 교육하는 것이랑 그냥 자기가 준비한 것을 어느 기관이든 똑같이 강의하는 거랑은 집중도랑 반응이 다 갈리더라고요." (사례 16)

개인별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성 메커니즘을 자신의 기준으로 단정하는 여성 강사에 대한 불만도 발견된다. 사례 17은 여성 강사가 남성의 심리를 피상적으로 상정하고 교육을 진행한다고 불평한다.

"여성 강사가 얘기했을 때, 남성의 성 메커니즘을 전부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남자는 대충 그런 성행위를 하고 무조건 좋고…”. 이렇게 얘기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게 아니고 사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남성에 대해서는 좀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대부분의 여성 강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례 17)

pp. 48-49

남성과 성폭력에 관한 인식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의견>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입장에 대해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언론에 보도되는 성범죄 대다수가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뉴스에 나온 것도 그렇고 범죄자들이 거의 남자잖아요, 성범죄 관련된 건. 남자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거 같아요, 제 주위에서는. 저도 그렇고. … 저도 여자친구도 있고 하니 여자친구 생각하면 남자들이 자꾸 무서워 보이기도 하죠. 제 동생도 여동생도 있고." (사례 1)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봐야죠. 가정폭력은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비율을 봤을 때, 남성이 많고. 성폭력은 남자가 압도적이라고 봐야죠. … 숫자로 보나 비율로 보나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죠. … 가끔가다 얘기하는 사람이 있죠. “왜 남자만 가지고 그러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객관적으로 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 (사례 15)

다수는 ‘남성 잠재적 가해자’ 표현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나타냈다. 통계적 수치에 근거하여 일부 남성 중 잠재적 가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수용하지만, 남성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해자라는 건 굉장히 좀 불쾌하게 다 여기는 거 같아요. …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가해자라는 느낌 안에 약간 ‘범죄자’라는 느낌이 굉장히 포함되어 있거든요. 맞는 말이라도 용어를 달리하면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 저의 경우에는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진 않았죠. 아까 말씀하신 부분들은 있긴 있는 거 같아요. 뭐냐면, “네가 가해자야!”라는 그 말은 사실 편하진 않아요, 들었을 때." (사례 2)

"가해자로 취급한다고 해서 분노하는 걸 동의하지 않거든요. 잠재적 가해자 취급당해도 되지 않나? 워낙 너무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저도 그런 말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겠죠, 저를 적시해서 “넌 잠재적 가해자야”. 제가 화를 느끼는 부분은 ‘왜 저런 나쁜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일반화돼서 나한테까지 화살이 날아오지?’, 그런 식의 기분 나쁨은 당연히 있겠죠." (사례 6)

"전 그냥 그게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져요. … 그렇죠. 많은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제가 일상생활에서 성적으로 문제 일으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아, 나는 잠재적 가해자니까 조심해야겠다’라기 보다는 도덕적이고 매너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하는 거지, ‘잠재적 가해자니까 가해자가 되기 싫어서’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잠재적 가해자란 설명하기 유리한 개념 같은 거 같아요. … 누구나 화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애매하잖아요. 잘못하진 않았지만, 잘못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데, 그게 뭔가 자기의 인격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누구나 화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례 8)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표현은 성폭력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누가 1:1로 만나서 “넌 잠재적 가해자야!”, 이러면서 계속 몰아붙인다면 당연히 기분 나쁘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잠재적 가해자’란 말에 압박을 느낄 정도로 많은 메시지가 들어온다고 느끼지 않거든요. 좀 과대해서 해석하는 거로 생각해요. ‘잠재적 가해자’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물론 존재하겠지만, 교육을 들으면서나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런 걸 좀 과잉해석해서 더 반박할 근거로 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제가 일상적으로 보기에 불편함을 느낄 만큼은 아니에요. … 일단 그럼 메시지에서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많이 듣는다고 느끼지 않아요. … 그거 자체로 기분이 나쁠 만한…. 지금 당장 “네가 가해자고, 그거에 따라서 책임져야 한다”라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대해서만 가지고 기분 나쁜 이유는 없는 거 같아요." (사례 7)

"일부 남자지만, 가해자의 성별 구성을 보면 90% 이상이 남자이기 때문에 ‘이건 남자의 문제’라고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접근해야 일단 시작이 되는건데, 그걸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 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벌써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가 껴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 저는 불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문제라고 느껴지지만 그렇게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아요. …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기 위해서 이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렇게 얘기하는 건, 본인이 찔려서 하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례 11)

<성폭력에 대한 남성 간 인식차>

참여자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성범죄 사례를 ‘비정상적 예외’로 간주하고 이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강남의 성매매 업소를 예로 들며 남성 성문화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성범죄가 자신을 포함한 남성들 모두의 문제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저랑은 완전히 다른 남자라고 생각을 해요. … ‘아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좀 놀라웠어요. 저도 야동 같은 것도 보고하지만, 그런 야동들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전문적으로 누가 제작하고 유포하고 돈을 벌고. 그런 걸 들었을 때 놀라웠어요. 그리고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만 해도 40, 50대 아저씨들, 깡패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조 직적으로 그런 분들이 할 줄 알았는데, 어리잖아요, 저보다. 그래서 좀 무서웠어요. … 같은 남자라도 이해가 안 됐어요."(사례 1)

"그래서 저는 더 놀랐던 게 JTBC 보도를 봤는데 강남 테헤란로에 성매매 업소가 2000개인가 그렇대요. 오피스텔 그런데. 그래서 ‘와, 이게 말이 돼?’ 이러고 지나갈 때마다. 그런 건 좀 있는 거 같아요. 그냥 하는 얘긴데, 그룹 그룹별로 성향별로 사람들이 모이는 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 성매매는 진짜 소수인 거 같고. 극소수. 그 다음에 품평하는 애들은 그래도 좀…. 절반은 아닌 거 같고 글쎄요…. 연령에 따라 다르긴 한데, 제 또래에서는 없어요." (사례 2)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주위의 성폭력과 성차별에 둔감한 남성 집단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이들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며 분별 있게 행동하려고 한다.

"저는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않는지 좀 돼서 그런 얘기가 별로 안 나오는데. …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가 그렇게 되고 있는데 그래도 얘기가 나오면 사실 저의 경우는 ‘이 사람이랑 계속 연락할 가치가 있는가’하고 생각을 하고, 그게 아니고 ‘그래도 같이 지내고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 좀 둥글게 얘기를 하는 거 같아요. ‘이런 말은 좀 그런 거 같다, 너무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 카톡에다가 얘기할 거 같아요. 그런 걸 말할 때 어느 정도는 ‘이걸 말함으로써 내가 은근히 배척당할 수 있다’라는 걸 각오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사례 3)

"그룹별로 차이가 꽤 큰 거 같아요. 모이고 나면 오히려 모이는 사람들이 그걸 기준으로 나누어질 수 있을 정도로 그룹들이 분류되어 있어요. … 하고나면, 친구가 되고 나면 이 그룹에서는 섹슈얼리티 존중감이 더 크고, 이 그룹은 더 낮고. 그렇게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 제가 느끼기엔 제가 속해 있는 그룹의 베리에이션이 좀 큰 편인 거 같은데, 젤 심한 케이스도 최근에는 말씀하신 대로 리얼 포르노라고 하면, ‘위험하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게 ‘잘 못 됐다’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보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게 어느 만큼의 비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건 최근에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사례 7)

"전 안 만나긴 하는데…. 확실히 살다 보면 생기는 거 같아요. 사람들 계속 만나다 보면 일정 비율은 그런 식으로. … 그런데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사례 8)

주위에 만연한 남성 성폭력 문화가 자신에게도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보며 반성하려는 사례도 확인된다. 사례 9는 만연한 “음란물” 문화에 대한 성찰을, 사례 17은 성범죄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N번방’ 사건이 그게 사실 저한테는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불법 음란물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음란물이라는 게 불법인 거고. 우리나라에는 합법적인 음란물이라는 게 없죠. 그러다 보니 그런 게 좀 잘못된 거 같아서 “음란물을 접하는 게 잘못된 거 같다, ‘N번방’ 사건은 당연히 잘못된 거”고. 거기에 이어서 “음란물을 접하는 거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인 거 같다”라고 했죠." (사례 9)

"그 가해자 남자에 대한 분노가 제일 많죠. ‘왜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 찌질하고 못난 놈이다’. 일단 그런 분노가 드는 게 1번이고, 그다음은 ‘저 자신도 잘하고 있는 건가?’. 제 자신도 돌아보고 결과적으로 ‘아, 저런 거에 대해서 조심해야지’. 그렇게 가는 거 같아요. 약간 죄인 모드로 가게 되는 거 같아요, 잠재적인 가해자처럼." (사례 17)

pp. 56-57

<조심하며 거리두기>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언행을 삼가며 성추행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생・대학원생보다 공공기관 종사자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시빗거리를 겪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데, 이는 조직 차원에서 성범죄가 위중하게 다뤄지는 현실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도 성희롱일 수 있다’는 것도 들은 거 같아요. … ‘조심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술자리든 어디든 말조심해야겠다’. … ‘말을 좀 잘못하면 성추행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거로 누가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크게 와 닿진 않았는데 그래도 ‘조심해야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 ‘말할 때 생각하고 말해야겠다’." (사례 1)

"그럼요, 조심해야죠. 지금도 사실 제 또래 친구들하고 얘기해도 직장에서도 많이 조심한대요, 서로. 서로 조심하고. 정치나 사회 여론이 전 사실 다 비슷하다고 보는데, 굉장히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눈에 막 보여서 그렇지,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수용하는 사람도 저는 굉장히 많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반반인데…. 어쨌든 조심해야죠." (사례 2)

"위협감이 들죠. ‘말조심, 행동 조심, 진짜 똑바로 하고 다녀야지’하는 생각들죠. … 질문지에도 나와 있는데, ‘가해 사건들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냐?’라고 하셨는데, 일단 ‘잘 챙겨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 많이 들죠. 언론이나 아니면 주변에서 시빗거리가 생겼다거나 할 때,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했길래?”라는 궁금증이 드는 이유가 ‘그걸 하지 않기 위해서’가 되는 거 같아요. … 그건 비슷하게 하죠. “야, 이거 조심해야 된다”(라고 서로들 얘기하죠). … “잘못하면 큰일 난다”, “조심해야 된다”, “요즘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런 얘기하죠." (사례 11)

"차이를 잘 모르겠는 게, 오히려 지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어서 ‘그러면 큰일 난다’는 인식은 공유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남자 경찰들만 있을 때, 살짝 야한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면 여경들 앞에서는 아예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런 거는 확실히 있어요. 조심하는 거는 있어요. … 연예인 얘기라든가, “이번에 이거 봤냐?”라는 식으로. “괜찮지 않았냐?”라는 식으로. 여경이 있으면 굳이 그런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느낌이에요." (사례 10)

남성들이 이같이 조심스러워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폭력예방교육을 통해 성인지 감수성이 제고돼서라기보다 처벌 강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강화된 거 같습니다. 일단 그걸 대하는 상사 지휘관들의 태도나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입장도 많이 바뀌었고요. 부서에 여성이 소수기 때문에 소수의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도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요. 일반적으로 회식문화도 여경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그러한 말도 하지 않고, 2차까지도 웬만하면 가지 말자는 분위기예요. 거의 대부분이 그래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교육의 효과라기보다는 시대 상황이 변한 거 같고, 직원들의 인식이 변한 거예요. 그런 문제가 일어나면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으니까. 가해자로 몰릴게 됐을 때, 자기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게 되는지도 알고. 제 주변 얘기만 들어도 그런 일을 겪어서 자살한 사람도 꽤 있거든요. 일단 무조건 가해자로 몰리게 되면 유부남의 경우는 더 심하고. 그러한 사례들 위주로 저희는 교육을 많이 받고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은 아침에 그 얘기를 하면서 지휘관이 “이러한 일이 있는데, 조심합시다”라고 얘기하면서 자기 옛날 사례도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교육을 많이 하는 편이고 다들 조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례 17)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동료 여성에 대한 거리두기로 귀결된다. 여성 동료가 “기분이 나쁘면 진정을 넣어버린다”라고 하듯이, 성희롱 언행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기보다 문제의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내의 암묵적인 ‘펜스룰’은 여성 종사자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도 있고 요즘에는 아무래도 성에 관한 문제가 엄청 예민해서 평상시에 이성이지만 친하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말실수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게 어느 순간 기분 나쁘면 진정을 넣어 버려요. 그런 사람도 본 적 있죠. 평소에 같이 잘 지내다가. 서로 사이좋을 때는 괜찮게 넘어가는데, 좀 기분이 나쁘면 ‘너 잘 걸렸다’ 하고 진정을 넣으면 상대 남자는 한 방에 가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간혹 있어요. …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을 아예 안 섞어요. 왜냐면 언제 말실수할지 모르니까 아예 멀리하고 말을 안 하기도 해요.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사례 15)

"일단 지금 제 상황에서 제 경우는 여성 직원과 사적인 만남을 안 가지려고 해요. 업무적으로만 대하려고 하고 있고, 여직원 또한 그런 거 같아요. 여직원 또한 그러한 사고가 일어나면 자기가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제가 지구대에서 일할 때는 여경이 한 명씩 있었거든요. 지구대 인원이 15명 되는데, 여경이 1명 있었으니까. ... 친하게 잘 지내다가 ‘얘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냐? 얘도 우리를 청문 부서에 찌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일단 그 여직원하고 멀리하게 되고 여직원은 고립되게 되죠.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돼요. 여직원 성향이 잘 지내려고, 밝게 지내려고 다가가게 되면 그 여직원은 ‘저 직원은 남자를 좋아하고 문제가 있는 직원이다’, 그렇게 낙인이 찍히는 경우도 많고. 저희 조직은 그런 경우가 많아서 더 조심하게 되는 거 같아요. … 항상 고민하고 얘기하면서도 ‘혹시 기분 나쁘지 않을까? 성희롱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 미투 현상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한 것들이 시발점이 돼서 지금 조직도 정말 조심하고 있고,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전부 다 되게 조심하는 거 같아요. … 그래서 저는 아예 이야기를 안 섞으면서 극단적인 상황까지 왔어요. 아예 저는 여경을 업무적으로만 대하고 그런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요. … 저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은 분리되고 고립되는 상황인데, 교육을 통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준다면, 도움이 확실히 더 될 거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순 교훈이 처벌, 그다음에 분리, 고립. 서로 이해한다기보다 서로 접촉을 안 하는 거죠.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는 게 맞는 방향인지 저도 생각하고." (사례 17)

pp. 57-60

<상대의 동의 구하기>

남성들 사이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진전되었으나, 이러한 인식 변화에 동의하는 남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 사이의 간격이 존재한다. 여행을 같이 가거나 모텔에 같이 머무는 것이 반드시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가 아니며, 이것을 위해서는 동의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알면서도, 여성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확대 해석하는 남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젠더 주제와 관련된 인식의 갭이 그만큼 큰 거라 생각해요.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거나 하는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길 하면서 “나도 네가 지금 얘기하는 것처럼 억울한 거라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론은 이렇게 지어놔야 되지 않겠냐”라고 이야길 해 봐도 전혀 공감을 끌어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성들 사이에서도 개별 편차는 굉장히 큰 거 같아요." (사례 11)

"(모텔에 갈 때) 그때 거부 표시를 하면 알 거 같은데, 전 같이 들어가자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갈 거 같긴 해요. … 쉬더라도 그렇게 말했을 때, 여성분이 그런 관계를 안 하고 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자고 할 수 있잖아요. 모텔 말고도. 영화 보러 간다든지, 카페를 간다든지, 그렇게 돌려서 말할 수 있는데…. (사례 1)

"여자들이 하는 액션이 크게 해석되는 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여자가 남자에게 “둘이서 술 먹자”라고 하면 (남자) 열에 여덟, 아홉은 ‘나한테 호감이 있나?’라는 정도로 생각할 거 같아요. 여자분들은 안 그럴수 있겠죠. (남자는) 그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생기겠죠. 여러 자리에 ‘같이 가자’가 아니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사례 7)

"꼭 같이 여행 같다는 거, 이꼬르(equal) 성관계 동의는 아니거든요. 물론 암묵적인 룰로 여행 간다는 게 그런 인식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예를 들어 명백하게 “오늘은 힘들 거 같아”라고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다면 그건 명백하게 강간이죠. 그건 되게 조심해야 되는 것 중 하나예요, 남자들이. …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하는 세상인데, 법률이 그렇게 바뀌고 있고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그걸 못 따라가면…. 본인들이 공부했어야죠. 알아야 하는 거" (사례 10)

사례9와 사례2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여성의 당연한 권리이고 성적 행동에 있어서 상대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보는데, 상대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거 가지고 트러블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건 당연한 권리이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그런 것들은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인 거죠. 상대 의사를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례 9)"

"굳이 따지면, 제가 언뜻 들었을 때 얘기는, 그게 동의했냐 안 했냐를 따지면…. 그 상황까지 가야만 동의를 사실 한 것이거든요. 저희 또래는 사실 얘기를 많이 해요. 제 여자 친구랑도 얘기 많이 하고. … 제 생각에는 여자 친구를 오래 만나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다 말을 직접 하기 때문에 그런 의견들이 은유적으로…. 만약에 상황이 혹시라도 “나는 관계를 하고 싶지 않은 데 네가 할라 그래” 그러면 다 얘기해요. “난 싫어” 그러면 “그렇구나”. 그게 어느 정도 다 패턴이 돼서…." (사례 2)

기존 이성 관계에서 ‘로맨틱’하다고 여겨졌던 방식들이 변하는 것이 관찰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모텔에 쉬었다 갈까?’ ‘같이 있고 싶다,’ ‘라면 먹고 갈래?’와 같은 발언을 성적 제안으로 이해했다면, 이보다는 성적 행위에 앞서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마다의 소통 방식이나 소위 말하는 신호 같은 것들이 다르니까. 그건 있는 거 같아요, 그거를 캐치하고 ‘대충 그렇구나’라고, 예를 들면, 전에 만났던 친구는 “쉬었다 갈까?”라고 안 하고 “같이 있고 싶다”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저도 어느 정도 포괄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또 막상 들어가서 상황과 무언가에 따라서 매 순간 협상하고 새로 구성되는 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큰 틀에서의 신호라든지, 그런 것들은 정해두되, 결국은 동의 여부라든지 하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계속 결정되는 거 같아요. 저는 이런 식으로 정하고 생각하고 한다고 하지만 그건 상대방 입장도 들어봐야 되는 거죠. 제 경우에는 약간 주기적으로 이게 괜찮았던 건지 물어봤던 거 같아요." (사례 3)

"제가 이 얘길 들으니까 생각나는 건, 처음에 그 표현이 너무 싫었어요. “라면 먹고 갈래?”가 전 너무 싫거든요. 왜냐면 라면을 먹고 가는 애가 왜 이코르(equal) “하고 싶니?”로 연결되는 걸, 왜 미디어에서도 용인하고, 왜 그게 민(mean)*이 되는지 너무 싫거든요. 그런데 약간 그런 식으로 다들 묻어가는 거 같아요. 그런 로맨틱이라고 하는 정서에 자꾸 묻어가는 게 싫어요. … 그런 분위기 자체가 너무 싫어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할래?”라고 했다고 해서 분위기가 개판이 됐다고 하면 당연히 그건 안 되는 분위기인 거죠." (사례 6)
*밈의 오타로 추정

"저는 직접적으로 물어봐요. 그걸 물어봐서 깨질 분위기였으면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거 하나 물어봤다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깨질 분위기였으면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사례 8)

pp. 64-66

남성 역할에 대한 인식

<전통적 남성성에 대한 태도>

‘남성성’으로 인식되던 기존 가치 규범에 대해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복합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릴 때부터 체득한 남성성 가치가 익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남성성 가치를 생계부양자 역할, 정신적・육체적 강인함, 감정 표출의 절제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생계부양자 역할은 남성들이 주요한 부담으로 여기는 남성성의 주요 가치들 중 하나이다.

"그동안 항상 경험하고 살았죠. “남자가 울면 안 돼, 남자가 이 정도는 해야지, 칼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등. … 일상적으로 어떤 말을 들어도 지금 와서는 나이가 좀 차니까 그런 거 다 흘려듣게 되더라고요. … 청소년기에는 의식하게 되죠. 왜냐하면, 또래집단에서는 워낙에 그게 중요하니까. …“남자가 그래서 되겠냐?”라는 말을 되게 많이 하죠." (사례 9)

"보통 지금은 맞벌이하잖아요. 맞벌이해서 여자들도 경제력 있고 그러니까. 저도 그렇고 만약 여자 친구가 돈을 더 잘 벌고 안정적이라면 저는 제 일을 그만두고서라도 제가 살림을 하고 여자가 돈을 버는 것도 괜찮은 거 같기도 해요. … 그런데 조직 내에서는 남성성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해요. … 야근 같은 거 많이 하시고. ‘결단력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게 남성성이 아니긴 할 텐데…. … 저도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게 보통 잘 안 보여주려고 하죠. 너무 나약해 보이기도 하고 그걸 누가 풀어주지도 않잖아요. 말해도 저는 저 혼자 잠을 잔다든지, 혼자 생각을 하지,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니고, 저한텐 해결이 안 돼서 표현을 안 해요. 여자 친구도 답답해하기도 하고. 혼자 결국 끙끙 앓다가 여자 친구한테 말을 하긴 하거든요." (사례 1)

"이게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도 남자가 가정을 이뤄서 자기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남성성의 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들도 출산 우울증이 있듯이 남자들도 일하면서 우울증도 많고 예민한 문제가 많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케어해주거나 그 문제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그냥 대부분 남성들은 그러한 문제를 술로 많이 이기려고 하는 거 같습니다." (사례 17)

"은연중에 아버지가 당연히 그런 걸 저한테 기대하시는 거 같아요. 그게 비단 저희 아버지가 은퇴하실 나이가 곧 다가오니까 이제 하는 말이 “네가 이제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라고 농담 삼아서, 본인은 농담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서 꼭 덧붙이는 말이 “그런데 그렇다고 네 돈으로 살진 않은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버지가 그런 얘길 해서 제 머릿속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사례 6)

"와이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런 압박보다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뭔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제가 여동생이 있는데 혼자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나눠서 하는 게 아닐까. 그 정도예요." (사례 7)

"저는 부모님께서 “부잣집에 장가가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거든요. … 아버지도 그러시고.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부터 엄청 강박적으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지금까지 일하시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항상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그렇게 못 살 거 같다는 생각이 요새 들어요. 결혼해서도 아빠처럼 살게 될 것 같은…. 생계를 책임지게 될 것만 같은, 운명적으로 원하지 않더라도. 너무 오랫동안 보고 자라서. … 결혼 얘기할 때에도 “아내보다 많이 벌어야 된다, 집을 해야 된다”라는 그런 압박도 있는 거 같아요." (사례 8)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남성성의 가치 규범을 족쇄로 여기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주위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양가적 태도를 보인다.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도 언급하는데, 이것은 병역 의무가 여성의 탓인 듯 여성을 혐오 대상으로 환원해 바라보는 데에서 기인하고, 사회생활에서도 남성이 힘쓰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사고에서도 기인한다고 본다.

"그것도 있는 거 같고, 같은 또래 집단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저는 남고 나왔었는데, 제가 졸업할 때인가 언젠가 그쯤에 유행했던 게, ‘루저 발언’이 되게 유행 건이었어요. 그러면 우리들끼리는 반응이 비슷한 것만 하면 다 루저로 바꿔가지고, 일종의 밈처럼 만들어서 놀리고 그랬는데 그 안에 깔려있는 건 일종의 패배의식이나, 자조 의식 그리고 여성 혐오가 같이 중첩돼 있는 거죠. 얘길 들어보면 그런 식으로 얘길 한다고 해요. 10대인데 계속해서 평등이나 젠더 성 평등, 이런 걸 얘길 할 때 계속해서 군대 얘기나 정수기 얘기로 가는 건, 자기가 겪지도 않은 거 혹은…. 그러니까 군대 경우는 겪었으니까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거고 정수기 경우는, 자꾸 정수기 얘기는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정수기 물통을 남자가 간다’, 그 얘기를 엄청 하더라고요." (사례 3)

"자기들이 굉장히 손해 본다는 느낌, 그 느낌이 저는, 아까 말씀하셨지만, 군대가 좀 커요. 그 징병이 너무 큰 거 같아요. 이게 사실 여성들의 잘못은 아니거든요. 그 군대를 남자들이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징병이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 남성들 대부분이 트라우마로 강하게 갖고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상식적으로 우리나라의 징병이 개판인 거랑 여성분은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요, 사실. 그런데 이걸 등치시켜서 '혐오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거 같아요. ‘내가 징병을 한 게 남자라서 당한 굉장한 불합리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다 여성의 탓인 거예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데." (사례 2)

"군대에 대해서 되게 양가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군대에 가서 결국은 속된 말로 ‘삽질하고 온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전문적인 기술을 터득해 왔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왔다’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되게 있어요. 그래서 항상 ‘내 부대가 더 빡셌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다 일종의 변이적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례 3)

남성성 규범 준수에 대한 요구를 역차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부 조직 내에서 직종의 배분이 성별 분업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 사무직이나 내근직이 여성에게 배정되어 남성은 거칠고 육체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저희는 남성적인 것을 많이 요구하는 집단인데, 저는 그러한 요구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도 많은 거 같아요. … 남성들은 거친 일을 해야 하고 여성들은 내근직, 사무직을 해야 한다는 걸 가르는 듯한 게 싫은 거 같아요. 왜냐면 그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지금은 남자들이 남자한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좀 느끼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 언론에서도 나오잖아요. ‘강도 잡은 경찰, 여경’. 강도는 경찰이 다잡는 건데, 여경이 잡았다고 이슈되는 것처럼 그러한 사항이 지금도 많이 일어나요. 여성 우호적인 것도 많이 일어나고. 그리고 남자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도 많고. ‘남자는 참아야 된다’, 이런 거." (사례 17)

남성성은 위계 서열이나 조직 혹은 또래 문화와 관련이 있다. 또래 남성 집단의 보이지 않는 서열과 유대감, 그리고 의리 있는 행동이 남성성에 해당된다고 본다.

"남고에 있었을 때, 남고 문화가 그렇게 됐었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얘기하거나 그런 건 없는데, 일종의 애들 사이에서 무엇이 남자다움이고 잘 나가는 것인 거에 대한 위계 같은 게 은근히 정해져 있었던 거죠. 일단 싸움 잘하는 거였던 같고." (사례 3)

"멋있는 게 아니라 위계가 있는 거죠. (학생들 사이의) 비공식적 세계에서의 위계가 있는 거죠. … 폭력적이라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괜히 따르고 싶은 사람’은 있거든요, 분명히. ‘리더십 있다’ 그러죠. 뭐라고 해야 될까, 우리나라에서 남자다운 리더라고 그러면 통이 크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딱 따르게끔 이렇게 좀. 뒤에서의 은근한 감동, 말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내 빚을 갚아준다거나, 묵묵하게 사주거나. … 지금 저희도 ‘남자답다’ 약간 이건 좀 있는 거 같아요. … 그 어렵다는 게 이제는 그런 거죠.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남자답다’ 그러면 보통 누가 보더라도 ‘이 사람이 어려워’, 그런데 너무 대놓고 도와주지 않고 뒤에서 뭔가 내색안 하고 조용하게 (도와주면) ‘남자답다’." (사례 2)

위계 서열과 조직에서 ‘부조리를 참고 견디는 능력’이 ‘남자다움’의 표상이고 이것이 남성성으로 여겨진다. 조직 문화에 순응하고 따르는, 소위 말해 ‘사회생활 잘한다’라는 것이 남성에게 당연시되는 것으로 본다.

"힘들다기보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거에 굉장히 불만이 많거든요. 옛날에 남성성이라는 게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강하게 해야 된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부조리한 걸 잘 버티라’는 뜻으로 들려요, 사실. 그러니까 뭔가 되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도 “남자가 뭐 그거 갖고 그러냐!”고. “따지지 말라, 잘 따르고!”, 정신승리(하라는 거죠). (사례 2)

"그리고 ‘남자다움’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묵묵히 견디고’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거 같아요. … 그러니까 ‘부조리를 잘 견디는 자체를 남자답다, 사회 생활 잘한다, 처세 잘한다, 눈치 잘 본다’, 이런 식으로 연결 짓는 문화가 있는 거 같아요. 이게 되게 ‘강건한 남성성’과도 거리가 있죠." (사례 3)

신체적으로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주도하는 것에 대한 선망도 남성성의 특징이다. 이는 성희롱・성폭력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맥락과도 연관이 있는데,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기보다 주도권을 발휘하는 것이 남성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답다’도 사람들마다 그룹마다 다르게 통용되는 거 같은데, 일단 대표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남자다움’의 척도로 근육 같은 게 있겠죠. 소위 말하는 ‘헬창’들. … ‘울면 근 손실 온다’, 이런 식으로 막 농담하면서 엄청 근육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남자다움에 대한 어떤 경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례 3)

"거리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암암리에 남성성이라고 입혀져서 그런 거죠. 사실 성희롱, 성폭력과도 저는 이게 연관이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것들이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남성성인데, ‘여자들은 뭐만 하면 이런다, 뭐 한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성희롱 성폭력 제기하는 분들이. 그러니까 왜곡된 남성성이 성폭력 성희롱에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성성, 세 보이고 그런 건 그냥 사람의 멋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도 있거든요." (사례 2)

"“남자답게 좀 정해라!”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게 전 부족했다고 생각했죠. ‘내가 남성성이 부족한가?’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 근육이 있고 몸이 좀 커지고 싶은데,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해봤는데 저는 안되더라고요, 체격적으로. 조금 만들어도 빠지고 그래서 그냥…. 그런데 남성성이라고 하면 저는 체격도 큰 부분인 거 같아요. ‘남자답게 보인다’는 게. … 그래서 다들 헬스를 하고 그런 거예요. 남자들은 보통 운동하는 이유가 근육 키우려고." (사례 1)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전통적 젠더규범의 변화에 긍정적 입장을 취한다. 종래 젠더규범이 구시대적이고 남성성을 강요하기에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생계부양자로서의 전통적 남성 역할에서 탈피하여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하는 최근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지금 온갖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노동력을 거의 무상으로 특혜를 남성 중심으로 누려왔던 구조가 남성 중심적 구조인데, 그 구조로 인해서 사회적인 효용이나 이런 것들을 온갖 과실을 다 따먹고 살았던 우리 아버님 세대에 비해서는 효용이 떨어져 있죠, 우리 세대는. … ‘남자라면 이렇게 해야 돼’라는 이런 것들이 밑에 저변에 깔려져 있고 이거는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 역할 변화에 따른 어떤 나의 역할을 확대해야 된다는 것들이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죠. 그런데 이론적으로,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원래가 이렇게 했어야 되는 거고 이거는 쓸데없는 부담감이었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지만 반대로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게 해소가 안 된 상태에서 추가적인 프레셔로 다가오는 거죠." (사례 11)

"그리고 본인이 싫은 건, 안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돈도 싫다는 거예요. ‘돈도 많이 줘도 싫다, 나 이 정도면 딱 적당히 좋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 갖고 있는 게 요즘 애들은 대부분이에요. 상당히 생각 차이도 많이 나고 가치관도 상당히 차이 많이 나고. 그러니까 나는 오히려 ‘요즘 세대 애들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 그동안 무식하게 살아왔다, 힘들고 무식하게 살아왔다’. 난 오히려 우리 애들한테도 권장하고 있어요." (사례 12)

"(남성 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묻는다면) 네. 저도 보면 젊은 친구들이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늦게 낳으려고 하는 거 같고, 혼밥, 혼술. 그런 것도 요즘에는 많이 하잖아요. 저는 혼밥, 거의 웬만하면 식당에도 안 가요. 집에 가든가, 늦게 돼서 먹든가 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혼밥도 잘하고. 원하는 대로. 그러는 걸 보니까 ‘아! 많이 달라졌구나’. (사례 14)

"그동안의 우리 인식들의 그런 말에 담겨져 있었던 거 같아요.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말이. 남자는 힘이 세야 하고, 강해야 하고, 울어도 안 되고, 여자는 나약해야 하고 가냘파야 하고. 이런 것들이 예전의 시대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는 거 같아서 그 내용만 들었을 때는 좀 불편한 점이 있어요." (사례 16)

반면, 남성성 규범에 대한 태도에 있어 연령대별 차이가 발견된다. 50대 심층 면접 참여자는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한 모습보다는 전통적 남성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세대 차이가 많이 나죠. 많이 나는데, 저는 제 방식이 옳다고 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맞다고 생각 들어요. 그런데 얘기하면 다 들어주고, “그러니? 맞다”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아니야, 그게’. … 너무 자유분방하니까." (사례 13)

pp. 67-72

<젠더폭력 해결에 있어 남성의 역할>

참여자들은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남성의 역할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동안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 조력자로서 목소리를 내왔던 여성에 비해 남성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해시태그 운동이나 시위 참여는 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여성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대체적으로 피해자가 여성이니까 어쨌든 당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된 거 같은데, 그거에 대해서 공감을 하는 남성이라면 똑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N번방’ 사건 일어났을 때, 한창 유행을 했던 게 해시태그 운동이었어요. 압도적으로 해시태그 게시글을 올리는 사람은 여성이 많았는데, 제 주변에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공감하고 슬퍼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 또한 있더라고요." (사례 5)

"그런 문제에 있어서 남자가 먼저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항상 해온 게 여자들이었고, 시위하는 자리에서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여자 10명 있는 거보다 남자 1명 있는 게 훨씬 더 임팩트가 있다”라는 얘기도 일하는 사람 쪽에서 들었거든요." (사례 9)

"피해를 당해 봐야 나선다니까. 그러니까 여성단체도 피해를 봤기 때문에 뭉쳐서 한 목소리를 하고 단체 부르고 하는 거죠. 남자들도 자기 딸들이 만약 그런 걸 당한 사람들이 많다면 똑같은 생각 갖고 있는 사람들이 까페라든지 만들잖아요. 만들어서 활동하는 거죠." (사례 12)

그렇지만 몇몇 심층면접 참여자는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남성 참여의 필요성을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여성단체 등의 급진적 입장에 대한 불편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들 단체가 남성에 배타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 문제는 백인이 해결해야 된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뭐가 나올까요? 뭔가 약간 이상한 거 같아요. ‘해결해야 된다’라는 게 너무 애매한 거 같아요. ‘남성들이 조심하면 된다, 남성들이 제도들을 만들어야 한다, 해결해야 된다’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사례 8)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유튜브나 뉴스로는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오히려 더 나서야 되지 않을까. 여성들이 여성의 입장에서만 얘길 하다 보면 분명히 젠더 문제나 페미니즘이라고 왜곡하면서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남녀 구분하면서 평등 얘기 나오고 군대 얘기 나오면서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받은 남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이런 부분을 해결하자고 하면 젠더 문제나 성평등, 군대 문제 부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제대로 된 내용이나 본질을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그런 여성 우월주의자만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고 이런 범죄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에 대한 정책들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런 내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남성들이 나서서 이런 운동을 펴고, 여성 우월주의 단체 지지를 받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더 얼마든지 토론하고 좋은 정책이나 연구 자료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례 16)

"주변에서 본 적은 없고, 언론이나 집회에서는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너무 여성 보호적인 입장이었어요. 중립적인 입장에서 남성들이 일반적인 사람에 대해서 공감하고 상담한다면 그런 범죄 예방을 남성들이 하는 게 오히려 효과를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집단이라든지, 집회라든지, 언론에 나오는 모습은 너무 여성 우호적이라서 오히려 너무 페미니즘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좀 거부감이 들어요. … 일단 신고, 고소가 접수됐고, 성희롱인지 성폭력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증인이 있다면 그 죄가 명확하게 밝혀지겠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재판 내리기 전까지는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가해자로 몰고 나가면서 자살을 해버린단 말이죠. 그게 지금 문제인데, 그거에 대해서 가해자 편을 들라는 게 아니라 피해자, 가해자 간 중립적인 상황에서 서로를 봐줄 필요가 있죠." (사례 17)

남성의 적극적 참여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현실적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도 있다. 성폭력 문제를 남성 자신이 직접 겪는 피해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해당 문제에 적극적 역할과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남성단체가 구축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폭력 예방교육의 질과 저변 확대를 통한 인식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요즘에 하도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되잖아요. 요 근래도 박원순 사건으로 여성단체에서 앞장서서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성폭력에 대한 범죄자들을 보면 동조할 마음도 없어요. 나쁜 놈이죠. ‘나쁜 놈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언론에서 여성단체에서 막 할 거 하니까 남자들이 주춤하는 거죠. 그에 대한 동의는 하지만…. … 여성단체가 워낙 활발하게 활동하니까 남성단체가…. 남성단체 자체도 없어요. 왜냐면 여가부도 생기고 여성단체도 있지만, 남성단체 뭐 없잖아요. 이 집합할 수 있는 어떤 컨트롤 타워라고 그럴까? 이렇게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이거죠. 국회의원, 정치인들이다 하는 거고. 여성은 피해자다 보니까 자기들 여성들의 인권이라든지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모여서 단체를 만들잖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그걸 만들 명분이 없는 거죠. 약자도 아니고." (사례 12)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인식변화가 되어야 할 거 같아요. 결국, 그건 교육이죠.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교육이고 모임 단체에서도 하는 게 교육인데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교육이 편할 텐데, 교육밖에 없는 거 같아요." (사례 15)

pp. 73-75

//

보고서에서는 기술적인 내용 외에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딱히 설문조사와 연관해서 무언가를 분석하지도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 결과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만한 지점은 많습니다. 스크롤을 무작정 여기까지 내리셨으면 다시 올라가서 몇 개라도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들은 전반적으로 젠더 이슈에서 '젠더감수성'을 의식하거나 혹은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양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조심해야겠지... 정도의 인식에 그치고 여전히 남성성에 부여되는 짐이 덜어지지는 않았다 느낍니다. 성폭력에 대한 교육이 젠더 관계 그 자체를 다루기는 분량이 부족하지만, 남성성/여성성을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없으면 한계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성폭력 문제를 일으키는 다수가 남성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남성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남성의 비정상적 행위로 규정하는 태도는 주목할 만합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성폭력 교육에서 적대감과 방어적 대응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남성을 가해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 파트너로 보아야 한다는 선행 연구들을 인용합니다. 남성 대부분은 강간이나 폭력을 저지르지 않지만, 남성들의 폭력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하는 남성들이 많지요. 보고서에서는 그 배경에 여성의 심판이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 공포,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부'의 비정상적 행위로 규정하고 그 이상의 논의를 거부하는 태도 또한 겹쳐지는 데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공포를 넘어 자신의 도덕적 자아를 지키고자 하는 당연한 마음도 함께 들어오겠고요.

종합해보면 연구에서 다룬 남성들은 standard에 가까운 인식이나 행동을 요구받고 따르지만, "왜?"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혼란을 성폭력 인식 교육은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요. 교육의 효과는 일부 있지만, 사회적인 공포의 영향이 인터뷰에서 드러납니다. 뉴스게시판 댓글 반응은 이러한 혼란에 공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바꾸라는 모습은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고 살아가는 타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지요.

남성성의 대안적인 모델은 남성의 입장과 경험을 고려해서 개발되어야 하고, 동시에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검토되고 지지되어야 사회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에요. 동시에 남성들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입장을 지닌다는 걸 남녀 모두 주목해 나가야겠고요. 하지만 남성들이 성폭력 문제를 일부 남성의 비정상적 행위로만 간주하는 접근은 벗어나야 합니다. 그건 젠더 이슈에 대한 원죄론적 주장을 받아들여서 '여성' 전체가 말하는 걸 맹종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피해자-가해자 서사의 재생산에는 명확하게 선을 긋되, 남성성-여성성을 재구성하는 논의에는 성찰적 태도로 접근하자는 것에 가깝지요. 이런 문장을 적는 저라고 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고요.

해당 기사의 프레이밍은 많이 아쉽습니다. 언론에서 유통해 왔던 이대남 서사의 재생산에 가깝거든요. 세대 X 남녀 문제가 지닌 복합성을 이대남이라는 서사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여성정책연구원이 작년에 내놓은 방침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여성정책연구원 (2021). 청년세대 ‘젠더갈등’ 대응을 위한 성평등 정책의 과제'를 소개합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보고서가 271페이지 짜리다보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다음 보고서는 135페이지 짜리니 좀 더 간락햐게 적을 수 있을 듯합니다. 거기서는 여초/남초 커뮤니티에 대한 여론 분석을 실시했으니, 이번 보고서에서 보지 못했던 영역도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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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량 정성 복합분석은 무조건 춫천
  • 언제나 좋은 분석글 감사드립니다. 후속글도 많이 기대되네요!
  • 제목만 보고 중복글이라고 댓글달으러 헐레벌떡 들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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