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4/06/21 15:32:40
Name   카르스
Subject   정의당은 왜 원외로 내몰렸나
김기동·이재묵이 2020년에 발표한 논문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은 한국종합사회조사(Korean General Social Survey) 데이터를 기반으로 2003∼2018년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에 따른 정치이념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진보정당 입장에서 특히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진보정당의 독자적인 지지 블록이 유권자층에서 사라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6년 전인 2008년 제18대 총선 무렵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 진입에 성공한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의 유권자층이 ‘보수-중도-민주당(리버럴)-진보’라는 4개 그룹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시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어서,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그래프가 거의 수렴한다. 두 정당 지지자들의 이념적 차이는 이후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이후 두 정당의 지지자들은 함께 진보성향이 더 강해졌고, 2016년 촛불 이후에는 완전히 수렴했으며, 2018년에는 오히려 정의당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진보성이 더 강한 상황까지 나타난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어땠을까? 한국정치학회와 한국정당학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 정치의식조사’에서 정당일체감과 정치이념 평균을 보면, 10점 척도(진보0-보수10)에서 무당파는 5.21을, 미래통합당은 7.47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 3.08이었는데, 정의당은 4.67로 나타났다. 정의당 지지자들의 평균값이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더 중도적이었다. 앞서 2018년 무렵 정당일체감에 따른 이념성향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자들이 역전됐던 현상이 2020년에도 그대로 확인된다. 연구자들은 주관적 이념성향 외에 실제 복지·노동·젠더·북한·환경 등 개별 정책 이슈에 대해서도 태도를 확인해봤는데, 여기서도 정의당 지지자들은 민주당과 다른 독립적인 차별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주관적 이념 성향이나 정책 이슈에 대한 태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일단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했으니, 투표는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실제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 행태에서 정의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 차이가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비례대표에서도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는 진보정당 지지자가 지역구 투표에서는 소선거구제의 특성 때문에 당선 가능한 민주당 후보를 찍고 비례대표에서는 진보정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e)와 분할 투표(split vote)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아니었다. 지역구는 물론이고 비례대표에서도 정의당 지지자들이 특별히 더 정의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정의당에 표를 나눠준 사람이 있었고, 정의당 지지자 중에서도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2020년 총선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됐고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훼손했는데도, 정의당 지지자들의 투표 행태는 민주당 지지자들과 차별성이 없었다.

정의당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막 원내 진입을 해서 첫 국회의원 임기를 끝내던 바로 그 시기부터, 2010년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에서 무상급식 조례가 통과되던 때를 거쳐,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박근혜가 모두 복지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경쟁하던 시기, 그리고 2016년 촛불과 2020년 총선을 거치면서, 정의당의 독자적인 지지층은 신속하고도 분명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진보정당은 20년 가까이 원내 정당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여러 연구와 조사 결과들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것은 한국의 민주진보 진영에서 일부 유권자가 ‘원내에 진보정당도 하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자면, 정의당은 원내정당 진입에 필요한 독자적 지지 기반을 가졌던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잠재적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정의당의 역할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표를 받아서 의석을 유지했던 셈이다. 이것이 정의당이 ‘2중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였다.

(중략)

이 지점에서 필자는 한국의 진보정당이 하나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도 만능주의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은 위성정당을 탓했다. 그러나 이번 제22대 총선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일단 3% 이상을 득표해야, 표를 얻은 만큼의 의석을 배분받지 못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녹색정의당의 득표율은 2.14%로 많이 못 미쳤다. 심지어 3.61%로 비례에서 2석을 얻은 개혁신당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위성정당이 있었음에도 조국혁신당은 24%를 넘게 득표했다. 제3지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3지대에 정의당이 설 자리가 없었다.

이렇게 원내 정당 정의당의 역사는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또는 누군가에 의해 주장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하나의 사실이 드러나면서 끝을 맺었다.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변화는 정의당을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제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정의당은 15석이나 20석을 넘는 의석을 가진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이 되었을 것이라고. 물론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추가돼야 한다. 소선거구제의 문제, 의원 정수의 문제, 비례대표의 의석수가 너무 적다는 것, 그래서 양대 정당도 비례의석을 얻고 싶으면 의원 정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등 할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위성정당이 없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키지 않더라도 최악을 막기 위해 정의당에 표를 나눠줄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수정당의 경우에는 애초에 그럴 정당이 없었다. 이 제도를 호락호락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이 모든 조건을 다 고려할 때, 정의당이 처음부터 고려했어야 하는 전략은 단 2개뿐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민주당의 당내당이 되거나 혹은 민주당과 협력·경쟁·견인하는 진보정당이 되든지, 아니면 정의당의 독자적 지지 블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정의당은 대체로 이상적으로는 후자를 지향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고, 현실적으로는 전자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둘 사이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통합된 지도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정의당을 원외로 내몰았다.

출처: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582.html
====================================================
제가 읽었던 진보정당 몰락 비평 중에서 정의당 측에 제일 냉혹한 분석글입니다.
저와 생각이 굉장히 유사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최소한 몇몇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민주당과 이념 및 정치세력이 명확히 다른 진보정당'이라는 관념이 허상이었음을 지적하고,
위성정당 비판에만 매몰되어 비례대표 선거제도 변화를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했던 사고의 허상을 지적하지요.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1172 정치김건희 도이치모터스 녹취록 공개... 대통령 거짓말 드러났다 25 야얌 22/09/02 5034 0
30025 의료/건강독일 다녀온 30대 '원숭이 두창' 확진 6 tannenbaum 22/06/23 5034 0
29036 스포츠히딩크 감독, 2002 이탈리아전 비화 밝혔다…"전날 밤, 군면제 가능 전화 받아" 9 swear 22/04/13 5034 0
27144 국제독일 언론 “한국 인구 감소는 지나친 교육열 탓” 26 swear 21/12/23 5034 1
26603 정치유시민 공판 반전, "검찰 계좌조회 사실…조건달아 불충분한 답변" 43 알탈 21/11/19 5034 0
25374 국제美보수논객, 아프간 빗대 "美지원 없으면 한국도 붕괴" 트윗논란 12 다군 21/08/17 5034 0
24924 과학/기술모기에 물리지 않는 옷 개발..굶주린 200마리 100% 차단 13 매뉴물있뉴 21/07/14 5034 5
24268 방송/연예'굿바이' 여자친구, 6년 만에 해체 (종합) 12 Rokine 21/05/18 5034 0
24099 과학/기술전기차 초급속 충전기 100개?…숫자 부풀리고 왜곡하는 정부 17 먹이 21/04/29 5034 2
24046 의료/건강“이재용, 정부에 화이자 회장 연결해줘 협상 실마리” 9 Groot 21/04/23 5034 2
23979 정치민주당 박용진, 여성도 100일 군사훈련 의무화 21 매뉴물있뉴 21/04/18 5034 4
23630 의료/건강정은경 "국내도 AZ백신 접종후 혈전생성 보고…사망사례 중 1건" 9 empier 21/03/17 5034 0
23499 IT/컴퓨터‘게임 조작’ 시인한 넥슨 "모든 아이템 확률, 실시간으로 공개하겠다" 8 이그나티우스 21/03/05 5034 0
23446 기타윤석열 "진보 표방한 정권의 권력자·부패범죄 수사하면 보수인가?" 72 empier 21/03/02 5034 1
23361 기타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우린 불법사찰 DNA 없다? 靑의 해괴한 나르시시즘" 21 empier 21/02/18 5034 3
22247 과학/기술벤틀리, '10년 후 내연기관 만들지 않겠다' 선언 11 먹이 20/11/09 5034 1
21920 의료/건강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10 세란마구리 20/10/01 5034 15
20913 경제워렌 버핏, 도미니언 에너지 천연가스 부분 인수 3 존보글 20/07/06 5034 1
20659 국제플로이드외 또다른 흑인 2명 죽음, 시위 격화시킬지 관심 6 자공진 20/06/15 5034 2
17658 정치靑 민정비서관실 출신 檢수사관 사망..'하명수사 의혹' 참고인 24 맥주만땅 19/12/01 5034 7
16450 방송/연예구혜선-안재현 측 "여러 문제로 결혼 생활 유지 불가, 상의 끝 이혼 결정" 4 The xian 19/08/18 5034 0
16190 국제日 관방장관 "한일 관계 힘들지만 GSOMIA는 유지돼야" 8 세상의빛 19/07/29 5034 0
14737 게임게임피아, 『역전재판 123 나루호도 셀렉션』 PS4/Switch, 2019년 4월 10일 출시 예정 4 포르티시모 19/02/27 5034 0
11178 방송/연예아이돌 산업 곳곳엔 여성혐오가.. 극한직업 걸그룹 37 월화수목김사왈아 18/07/04 5034 0
8126 의료/건강변비약 못구해 `발동동`…약가인하탓 생산포기 1 맥주만땅 18/02/19 5034 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