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3/12/26 14:53:09
Name   카르스
Subject   14세기 유럽의 흑사병과 21세기 한국의 인구문제
21세기 한국이 직면한 인구문제의 본질은 14세기 유럽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흑사병 시대에 각인된 극심한 혼란과 공포의 이미지도, 역병이 사라진 뒤 서유럽의 인구와 사회가 빠르게 회복했다는 낙관적인 사실도,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인구 변화의 미래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은 14세기 유럽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 한국의 인구 위기는 중세 흑사병의 충격보다 심각한가?

나쁜 소식부터 시작하자. 21세기 한국은 인구 규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사회경제적·제도적 불균형이 확대될 것이다. 모든 연령층의 사망이 늘었던 흑사병 시대의 유럽과 달리, 한국은 가파른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해 인구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또한 사회보험, 복지제도, 의료시스템, 교육기관 등 중세 유럽에는 없었던 제도들이 형성되면서 인구 변화의 영향도 달라졌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21세기 한국의 인구 변화는 14세기 유럽의 인구감소보다 더 복잡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한 국가의 각종 제도는 대체로 매년 태어나는 인구(출생 코호트)의 규모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 보육시설과 학교의 교사 수, 군대의 징집 인원과 총병력 규모, 특정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서비스의 공급량 등은 나이에 따른 인구수와 어느 정도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출생 코호트의 규모가 급격하게 변하면, 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다양한 제도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 수가 10년 전의 절반, 30년 전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의 출생 코호트 규모는 빠르게 줄고 있다. 소아청소년과가 폐원하고, 대학은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군은 병력자원 부족에 직면하는 등, 총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전에 이미 사회경제적 불균형의 징후가 뚜렷한 것은 인구 구조 변화의 영향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술, 시장, 제도 변화에 힘입어 21세기의 세계는 700년 전에 비해 인구 변화의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늘었다. 노동력 확대 여력이 없었던 14세기 유럽과 달리, 현재의 한국에서는 여성과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외국 인력 유입을 늘림으로써 노동인구 감소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교육·훈련의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자동화나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는 방안도 중세 유럽인에게 없었던 새로운 선택지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14세기 유럽의 인구감소는 외부에서 유입된 강력한 역병으로 말미암아 사망자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던 반면, 21세기 한국의 인구감소는 결혼과 출산의 비용은 늘고 편익을 줄어든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한 개인들의 선택을 반영한다. 이러한 차이가 좋은 소식인지 혹은 나쁜 소식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14세기 유럽인들은 “신의 징벌”처럼 다가온 재앙이 지나가기를 무력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21세기 한국에는 사람들의 선택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 결과 현재의 암울한 장래 인구 전망이 훗날 예측 오류로 판명될 가능성도 있다.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재앙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일과 인구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일 가운데 어떤 쪽이 더 쉬울까?

=============================================================================================
믿고 보는 이철희 교수의 비평.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2010 사회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갓갓'에 무기징역 구형 6 Schweigen 20/10/12 4291 2
21501 경제코로나 최대 타격 업종, 뭔지 보니.."두달간 1600곳 폐업" 3 은하노트텐플러스 20/08/26 4291 0
4352 문화/예술술 취해 첨성대 오른 '철없는' 여대생들 8 벤젠 C6H6 17/08/05 4292 0
14890 방송/연예정준영 복귀 책임 1박2일 제작 중단..VOD서비스도 중지 4 Darker-circle 19/03/15 4292 0
34641 사회‘스폰남’ 만나던 10대, 수억원 받고 “증여세 못 내” 소송했으나 8 Beer Inside 23/05/15 4292 0
27733 국제중국, 베이징 올림픽 참가 선수 '인권문제' 발언 처벌 경고 10 카르스 22/01/21 4292 0
25964 정치대장동 녹취록 19개 나왔다…"성남도공 측에 10억 전달" 11 lonely INTJ 21/09/30 4292 0
22399 사회"마스크 써주세요"에 버럭한 손님, 알고 보니... 4 swear 20/11/26 4292 0
25765 경제삼성 돌풍 겨냥, 핑크폰 꺼냈다..베일 벗은 아이폰13 가격은 [영상] 23 Regenbogen 21/09/15 4292 0
10419 과학/기술'미드'처럼..감기약으로 필로폰 제조 시도한 사위·장인 적발 10 맥주만땅 18/05/28 4292 0
27830 정치손학규, 대선후보 사퇴…오늘 기자회견 8 레게노 22/01/27 4292 0
20925 사회"내 앞에서 딸 때려" 감독 강요에 최숙현 모친은 울면서 쳤다 20 swear 20/07/07 4292 0
23997 의료/건강산두릅인 줄 알았는데…독초 데쳐먹었다 병원행 5 하트필드 21/04/19 4292 0
20433 기타"닛산, 한국시장서 철수한다…인니 공장도 폐쇄" 8 ebling mis 20/05/28 4292 0
20946 사회폐기할 고기 "빨아서" 손님상에…갈비 체인 S사 직원 폭로 11 이브나 20/07/09 4292 0
14554 사회버닝썬 성관계 동영상 무차별 유포…이문호 대표 “버닝썬 맞다” swear 19/02/08 4292 0
20706 사회복지부장관 : "의료진이 방호복 좋아해서 문제" 28 그저그런 20/06/19 4292 0
36853 경제14세기 유럽의 흑사병과 21세기 한국의 인구문제 10 카르스 23/12/26 4292 3
14876 스포츠롯데도 강한 2번? 이대호 거부로 무산..사제 케미는 뿜뿜 4 맥주만땅 19/03/14 4293 0
23588 사회극단적 선택한 확진자 오보 낸 인사이트 2 닭장군 21/03/12 4293 1
21291 국제일본 '사랑의 불시착' 신드롬…"모테기 외무상도 전부 시청" 12 다군 20/08/10 4293 0
28460 사회울진서 강풍타고 큰 산불…한울원전 주변까지 불씨 날아들어(종합2보) 11 다군 22/03/04 4293 0
20297 국제일본, 코로나19 경증 확진자 '2주 지나면 무검사 격리종료' 논란 3 다군 20/05/20 4293 0
21836 사회나영이 아빠의 절규 “빚내서라도 조두순에게 이사비 주고싶다” 25 swear 20/09/22 4293 0
23388 사회 아파트 전기차 충전구역도 일반차 주차하면 과태료 물린다 8 먹이 21/02/21 4293 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