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에 목숨 걸고 염치도 체면도 없이 살아가는 건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그 현상 밑에 생각해볼 만한 함의가 있기도 해요. 집값에 목매는 현상이 결국 집값으로 대표되는 '재력'을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특수 집단에서만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생 때는 시험 성적을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곤 합니다. 한줄로 쭉 줄 세워서 성적 잘 받으면 인정받고 칭찬받습니다. 당연히 학업 성취가 좋으면 높은 티어의 인생을 살아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서울대 나와도 별 거 없는 인생이 많다는 걸 듣고 보고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가치들에 고개를 돌립니다. 암만 공부 잘해봐야 타고난 외모 뛰어난 사람이 훨씬 각광받는 걸 보고 '이거다' 하면서 외모에 목매기도 하고요. 여하튼 어떤 평가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하고 줄세우고 티어 매기기는 지속됩니다. 누가 어떻게 사는 게 더 나은 인생인지를 정해주지 않으면 불안하거든요.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도착하는 가치 기준의 종착역은 재력입니다. 야 그거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해? 돈 잘벌어? 서울대 왜가? 삼성전자 취업 왜함? 결국 돈 잘 벌려고 그러는거지. 나 열심히 살았어. 괜찮은 사람이야. 그 증명? 나 강남 살아. 나 포르쉐 타.

여기서 강남과 포르쉐는 그냥 주거지와 차가 아니고 내 인생의 성적표로 받아들여집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시험을 잘 치러냈다는 성적표.

그런데 사실 재력이 됐든 다른 뭐가 됐든 한두 가지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고 티어를 가르기엔 인간은 너무나도 다면적인 존재지요. 돈 많을 때는 참 괜찮은 사람이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돈이 없어지면 안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학력이 어쨌건 외모가 어쨌건 재력이 어쨌건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인 겁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으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참 많아 보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