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 22/05/27 14:17:21 |
Name | Profit |
Subject | 詩를 쓸 자격이 없는 당신 |
https://www.chosun.com/opinion/every_single_word/2022/05/25/5SWSHJO26NGVVJU7SFJAPWIF6M/ 나는 시(詩)를 못 쓴다. 노력은 했다. 대학 1학년 때는 ‘시의 이해’라는 이름의 강의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시를 써오라길래 짧은 시를 썼다. 나팔바지 입던 우리 엄마가 이제는 앞치마를 입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끔찍했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소리는 절대 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20년 전 쓴 시들을 보면서 그때의 다짐이 떠올랐다. 그의 ‘전동차에서’라는 제목의 시는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보고 엉덩이도 만져보는’ 행위라고 노래한다. 많은 사람이 성(性)추행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이라 지적하고 나섰다. 나는 그렇게 구린 시를 종이책으로 내는 것은 교토기후협약 위반이라고 먼저 지적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몇십 년간 그런 시는 익숙하게 봐왔다. 어느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던 ‘목련꽃 브라자’라는 시도 비슷한 이유로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다.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 송이만 할까’. 어떤 유머 감각을 지닌 지하철역 아재 관리자가 이 시민 투고 시를 선정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시들을 묶어서 ‘토속 아재 시’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젖줄 같은 강과 누이의 젖가슴 같은 능선으로 아재의 추억과 민족의 한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세상에는 아마추어가 많다. 아재가 많다. 시인이 많다. 개별적으로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아마추어 아재 시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걸 방지하려면? 방법이 하나 있다. 마흔 넘은 아재가 자가 출판으로 시집 내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법을 만들 수 없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자가 검진을 해보는 것도 좋다. 뒷산을 보는데 여성의 가슴이 떠오른다면? 쓰지 마라. 당신은 시를 쓸 자격이 없다. 강을 보고 있는데 분만의 생명력이 떠오른다면? 쓰지 마라. 당신은 정말 자격이 없다. 당신의 시는 아직도 고집스레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있는 수첩 속에 머무를 때 가장 아름답다. **** 찰지게 패네요.. 마치 우베 볼보고 영화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감성입니다. ㅋㅋㅋㅋ 7
이 게시판에 등록된 Profit님의 최근 게시물
|
윤재순의 시가 저질인 것과 별개로 김도훈의 이 글도 굳이 써야 했을까 싶습니다. “토속 아재 시”에 대한 단편적 혐오말고 내용이 무엇이 있습니까. 관찰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건 틀렸습니다. 탈맥락적으로 사이다 발언하는건 언제나 멋있어 보이지만 칼럼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군데 올라간다는 걸 고려하면 트위터 가계정으로도 쓸만한 내용을 굳이 이렇게 배포하는 것은 과연 친환경적일까요?
'아직도 고집스레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있는 수첩' ㅋㅋ
만년필과 수첩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모습을 과시하는 자기애가 문제이지요.
박원순이 난닝구를 입는 것 자체로 우스운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난닝구 입으며 소탈하게 서민적으로 여름을 보내는 인덕 있는 위정자라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우스운 것이듯
'낮은 데로 임하소서'인 건데 그걸 위해 여체나 매매춘을 경유해야만 한다는 인습적인 태도인 거고, 이건 그에 대한 비판조차도 낡아서 반복하는 것도 겸연쩍을 지경.. 그 점에서 용주골 김성모나 나쁜 남자 김기덕이나 다를 건 없죠. 글 쓸 때마다 '시인' 타이틀 빼먹으면 안 되는 박진성도 마찬가지
만년필과 수첩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모습을 과시하는 자기애가 문제이지요.
박원순이 난닝구를 입는 것 자체로 우스운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난닝구 입으며 소탈하게 서민적으로 여름을 보내는 인덕 있는 위정자라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우스운 것이듯
'낮은 데로 임하소서'인 건데 그걸 위해 여체나 매매춘을 경유해야만 한다는 인습적인 태도인 거고, 이건 그에 대한 비판조차도 낡아서 반복하는 것도 겸연쩍을 지경.. 그 점에서 용주골 김성모나 나쁜 남자 김기덕이나 다를 건 없죠. 글 쓸 때마다 '시인' 타이틀 빼먹으면 안 되는 박진성도 마찬가지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알아들을" 얘기를 못알아듣는 자들이 넘쳐 흘러 성경으로 남았음을 떠올려보면, 굳이 찰지게 맞아서라도 윤재순의 시 같은 90년대, 많이 와야 2000년대 초반에 머문 성의식을 아직도 가지고 계시고 저 시가 문제 없다고 생각할 한국사회의 어떤 부분이 리프레쉬 되기를 바랍니다. 시를 쓰고 안쓰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2022년에도 저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걸 고쳐야죠.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올바름과 항상 대척에 있죠.
예술은 예술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과 만남으로 예술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떤 미학책에서 본 것 같은데 감상평으로써가 아니라 작품의 존재의 의의를 개인이 과연 부정할 수 있는가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네요.
예술은 예술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과 만남으로 예술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떤 미학책에서 본 것 같은데 감상평으로써가 아니라 작품의 존재의 의의를 개인이 과연 부정할 수 있는가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네요.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