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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7/09 19:50:28 |
Name | 절름발이이리 |
Subject | 한국의 능력주의는 ‘입신양명’이자 ‘합격주의’다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945 그러나 수능 상위 10~15%의 청년들이 아무리 공정을 내세운다 해도 이를 미국식 능력주의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끊임없는 자기 착취와 노동을 통해 스톡옵션을 획득한다거나 혹은 더 높은 몸값과 대우를 찾아 끊임없이 이직하는 삶을 하나의 표준으로 본다. 이에 비해 10~15%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한’ 혹은 ‘정의로운’ 결과는 ‘시험 합격으로 인생역전한 뒤엔 그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동아시아식 입신양명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능력주의가 아니라 ‘합격주의’ 혹은 ‘시험주의’라고 부른다. ~ 저려미 또는 엘리트 이민자 및 온라인 재택 외국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후달리면 해고당하고 능력 좋으면 인센 팍팍 받는 세상이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취향이긴 합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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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능력주의적 경쟁이 가장 확발하고 혹독하게 이루어지는 때는 지위를 취득할 때지요.
K-고용이 버티고 있는 한 K-능력주의와 K-온정주의가 맞붙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K-고용이 버티고 있는 한 K-능력주의와 K-온정주의가 맞붙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953842811558504&id=100007984419688
이 포스팅이 관련해서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이게 딱 한국과 미국의 능력주의 차이라 본다. 어느 시험에 합격했는지, 자격증 어떻게 취득했는지에 따라 인생 경로가 달라지고 그 레일 위의 인생만 사는 족속들하고 앞으로...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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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게 딱 한국과 미국의 능력주의 차이라 본다. 어느 시험에 합격했는지, 자격증 어떻게 취득했는지에 따라 인생 경로가 달라지고 그 레일 위의 인생만 사는 족속들하고 앞으로...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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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게 딱 한국과 미국의 능력주의 차이라 본다. 어느 시험에 합격했는지, 자격증 어떻게 취득했는지에 따라 인생 경로가 달라지고 그 레일 위의 인생만 사는 족속들하고 앞으로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생산해서 사회를 발전시킬지를 따지는 애들하고 다르다고. 물론 그래서 미국 수시제도나 이런게 엘리트들, 기득권들 대학 보내는 통로가 됐지만 어쨌든 두 사회에서의 능력주의가 완전히 다르잖아. 삶의 결도 다르다고. 저러니까 다양성 어쩌고 하는거야. 다양한 삶의 과정을 겪으니까..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이제 미국 안 가도 된다고? 옛날이나 미국이라고? 어이가 없다 어이가.. 난 이거 좋은 사회라 생각하지 않지만 능력 면에서 비교가 안돼.."
그래서 초장부터 언론입네 어디 뫄뫄대 교수입네 하는 양반들이 잘못했어요. 담론을 엉뚱하게 소화하면서 능력주의라는 낱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없이 능력주의 vs 반능력주의라는 구도를 만들어버리니까 실상 능력 없는 폰능력주의인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진영전만 반복하게 되는 꼴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양반들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사회 모델이 부재하다 보니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학력 평등 vs 학력 불평등이라는 얄팍한 틀밖에 없기 때문이고요. 사회가 가진 인적 자본의 총 누적량을 배증시킨다는 것에 대한 공리적/공익적인 관념이 없으니까 그에 필요한 수단과 제도는 아예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죠. 워낙 논의가 질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서 언급하기도 쪽팔리는 논제가 되어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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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게 딱 한국과 미국의 능력주의 차이라 본다. 어느 시험에 합격했는지, 자격증 어떻게 취득했는지에 따라 인생 경로가 달라지고 그 레일 위의 인생만 사는 족속들하고 앞으로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생산해서 사회를 발전시킬지를 따지는 애들하고 다르다고. 물론 그래서 미국 수시제도나 이런게 엘리트들, 기득권들 대학 보내는 통로가 됐지만 어쨌든 두 사회에서의 능력주의가 완전히 다르잖아. 삶의 결도 다르다고. 저러니까 다양성 어쩌고 하는거야. 다양한 삶의 과정을 겪으니까..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이제 미국 안 가도 된다고? 옛날이나 미국이라고? 어이가 없다 어이가.. 난 이거 좋은 사회라 생각하지 않지만 능력 면에서 비교가 안돼.."
그래서 초장부터 언론입네 어디 뫄뫄대 교수입네 하는 양반들이 잘못했어요. 담론을 엉뚱하게 소화하면서 능력주의라는 낱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없이 능력주의 vs 반능력주의라는 구도를 만들어버리니까 실상 능력 없는 폰능력주의인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진영전만 반복하게 되는 꼴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양반들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사회 모델이 부재하다 보니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학력 평등 vs 학력 불평등이라는 얄팍한 틀밖에 없기 때문이고요. 사회가 가진 인적 자본의 총 누적량을 배증시킨다는 것에 대한 공리적/공익적인 관념이 없으니까 그에 필요한 수단과 제도는 아예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죠. 워낙 논의가 질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서 언급하기도 쪽팔리는 논제가 되어버렸음
사회의 너비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인맥과 이너써클의 중요성은 한국도 명함 못 내밀 정도겠죠. 다만 한국에서 자격증이나 학벌로 배타성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급은 미국에서는 그 안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넘쳐 나기에 그 안에서 능력주의의 경쟁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과거제의 비유보다는 게임적 인식에 가깝다고 봅니다. 굳이 따지면 Mmorpg적 세계관이랄까요. 정해진 성장코스를 착실하게 따라 간 사람은 그 성실성만큼 비례적으로 보상을 받는게 마땅하다고 보는거죠. 과거제와 이게 다른 이유는 합불로 신변이 결정되는 이항변수가 아니라는 점이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사람들이 딱히 시험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그게 아무리 무쓸모한 짓거리라고 하더라도 알아주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합과 동시에 다 물거품이 되는 시스템을 좋아할리가요. 다만 저러한 게임적 환상과 가장 닮아있는게 모두가 떠먹여주듯 주입시켜주는 정형화된 커리큘럼을 사교육을 통해 소화하면서 경쟁하는 구조일 뿐인 것이죠.
결론엔 수긍하지만 중간 다리엔 시비 걸고 싶은 부분이 많네요.
심지어 저 역시 최근 화두인 '청년층의 공정'에서 청년층과 공정이란 단어 둘 다 의문시하는 사람임에도,
본 글은 능력주의와 '공정'을 말하는 한국청년들의 현재에 대해 지나치게 잘못 말하고 있는 점이 많아
길게 댓글 적습니다.
우선,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의미는 소위 이대남의 불만과 더 일맥상통합니다. 본인이 추천사를 썼다는 책을 오독했다고 반박하고 싶진 않은데, 머코비츠의 책 《Metricracy Trap》에서 보여주는... 더 보기
심지어 저 역시 최근 화두인 '청년층의 공정'에서 청년층과 공정이란 단어 둘 다 의문시하는 사람임에도,
본 글은 능력주의와 '공정'을 말하는 한국청년들의 현재에 대해 지나치게 잘못 말하고 있는 점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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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의미는 소위 이대남의 불만과 더 일맥상통합니다. 본인이 추천사를 썼다는 책을 오독했다고 반박하고 싶진 않은데, 머코비츠의 책 《Metricracy Trap》에서 보여주는... 더 보기
결론엔 수긍하지만 중간 다리엔 시비 걸고 싶은 부분이 많네요.
심지어 저 역시 최근 화두인 '청년층의 공정'에서 청년층과 공정이란 단어 둘 다 의문시하는 사람임에도,
본 글은 능력주의와 '공정'을 말하는 한국청년들의 현재에 대해 지나치게 잘못 말하고 있는 점이 많아
길게 댓글 적습니다.
우선,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의미는 소위 이대남의 불만과 더 일맥상통합니다. 본인이 추천사를 썼다는 책을 오독했다고 반박하고 싶진 않은데, 머코비츠의 책 《Metricracy Trap》에서 보여주는 엘리트들의 혹사는 능력주의의 정의라기 보다는, 능력주의 사이클이 가져온 하나의 부작용 혹은 능력주의 헤게모니를 쥔 쪽에서도 왜 승리의 축배를 들지 못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쉽게 말해 능력주의가 엘리트 계층에도 이롭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이 곧 능력주의의 본질이고 시험 성적과 학벌로 대표되는 휘황찬란한 CV가 우선시되는 능력주의가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심지어 "미국식 능력주의(고전적 엘리트가 아니라 최근 엘리트들의)"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이러한 표현 역시 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 엘리트들의 능력주의가 아니라 미 능력주의 내 최근 엘리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피동적인 모습을 드러내 주는 부분입니다. 이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와는 여노간이 없습니다.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맥락을 재편집한 것이던, 혹은 본인 스스로도 잘못 읽었던 것이건 서순을 올바르게 적는 것,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기본적으로 엄격하게 체크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쉽습니다.
두 번째 잘못된 점은 현재 불공정한 사회라 느끼는 계층을 자의적으로 수능 성적 10~15% 계층으로 한정 짓고 있는 점입니다. 우선 저자는 마치 10~15% 선에 위치한 취업준비생들이 자신들에게 합당히 주어져야할 것을 빼앗겨서 분노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미 취업 시장은 박살나서 서울대 나온 이공계 학생들도 취업 시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를 알기 어려운 시점에서 10~15%정도의 인서울 학생들만 당사자로 한정 짓는 것은 너무 자의적입니다.
끝으로 글쓴이의 입장이 마치 10~15% 인서울 학생들에게 "고마운줄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개인적 느낌이 들어 불쾌했습니다. 현 '공정' 논란이 85~90%의 청년들과 관련이 없다며 ‘원하청 차별’ ‘위험의 외주화’ ‘중소기업의 미숙한 경영’ ‘인사 청탁’을 그 예시로 꼽고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 어차피 지금 대다수의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하청 받아 일하는 숫자이니 아무래도 대기업, 공공기관, 공기업, 공무원 등이 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건 배가 부른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로 들렸어요. 중소기업의 처우 문제는 심각하다는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청년들이 성토하는 '공정' 화두는 중소기업의 처우와 단절지어 볼 게 아니라 연장선에서 봐야하는 겁니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공기업 취업까지도 이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지, 고고하게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모르면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중소기업에 가게 될 시 겪게 되는 비인격적 대우와 현 취업 시장의 무한경쟁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공정'이란 이슈에 목매달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저 역시 최근 화두인 '청년층의 공정'에서 청년층과 공정이란 단어 둘 다 의문시하는 사람임에도,
본 글은 능력주의와 '공정'을 말하는 한국청년들의 현재에 대해 지나치게 잘못 말하고 있는 점이 많아
길게 댓글 적습니다.
우선,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의미는 소위 이대남의 불만과 더 일맥상통합니다. 본인이 추천사를 썼다는 책을 오독했다고 반박하고 싶진 않은데, 머코비츠의 책 《Metricracy Trap》에서 보여주는 엘리트들의 혹사는 능력주의의 정의라기 보다는, 능력주의 사이클이 가져온 하나의 부작용 혹은 능력주의 헤게모니를 쥔 쪽에서도 왜 승리의 축배를 들지 못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쉽게 말해 능력주의가 엘리트 계층에도 이롭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이 곧 능력주의의 본질이고 시험 성적과 학벌로 대표되는 휘황찬란한 CV가 우선시되는 능력주의가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심지어 "미국식 능력주의(고전적 엘리트가 아니라 최근 엘리트들의)"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이러한 표현 역시 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 엘리트들의 능력주의가 아니라 미 능력주의 내 최근 엘리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피동적인 모습을 드러내 주는 부분입니다. 이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와는 여노간이 없습니다.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맥락을 재편집한 것이던, 혹은 본인 스스로도 잘못 읽었던 것이건 서순을 올바르게 적는 것,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기본적으로 엄격하게 체크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쉽습니다.
두 번째 잘못된 점은 현재 불공정한 사회라 느끼는 계층을 자의적으로 수능 성적 10~15% 계층으로 한정 짓고 있는 점입니다. 우선 저자는 마치 10~15% 선에 위치한 취업준비생들이 자신들에게 합당히 주어져야할 것을 빼앗겨서 분노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미 취업 시장은 박살나서 서울대 나온 이공계 학생들도 취업 시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를 알기 어려운 시점에서 10~15%정도의 인서울 학생들만 당사자로 한정 짓는 것은 너무 자의적입니다.
끝으로 글쓴이의 입장이 마치 10~15% 인서울 학생들에게 "고마운줄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개인적 느낌이 들어 불쾌했습니다. 현 '공정' 논란이 85~90%의 청년들과 관련이 없다며 ‘원하청 차별’ ‘위험의 외주화’ ‘중소기업의 미숙한 경영’ ‘인사 청탁’을 그 예시로 꼽고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 어차피 지금 대다수의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하청 받아 일하는 숫자이니 아무래도 대기업, 공공기관, 공기업, 공무원 등이 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건 배가 부른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로 들렸어요. 중소기업의 처우 문제는 심각하다는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청년들이 성토하는 '공정' 화두는 중소기업의 처우와 단절지어 볼 게 아니라 연장선에서 봐야하는 겁니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공기업 취업까지도 이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지, 고고하게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모르면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중소기업에 가게 될 시 겪게 되는 비인격적 대우와 현 취업 시장의 무한경쟁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공정'이란 이슈에 목매달고 있는 것이죠.
"현재 불공정한 사회라 느끼는 계층"이란 jazz님의 해석이고, 구체적으로 저 글쓴이가 말하는 10~15%란 정규직 해자로 보호되는 직장에 진입할 때 시험이나 학력과 같은 객관적 요건을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직장(공무원, 공기업)이 전체 직장 중 10~15% 정도를 구성하기 때문에 이상한 퍼센테이지 제시는 아닙니다. 10~15%의 상위 자원들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배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갑자기 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긍정하냐 부정하냐로 확대시켜버리면 논점 이탈이지요.
그리고 고마운줄 알아야지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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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불공정한 사회라 느끼는 계층"이란 jazz님의 해석이고, 구체적으로 저 글쓴이가 말하는 10~15%란 정규직 해자로 보호되는 직장에 진입할 때 시험이나 학력과 같은 객관적 요건을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직장(공무원, 공기업)이 전체 직장 중 10~15% 정도를 구성하기 때문에 이상한 퍼센테이지 제시는 아닙니다. 10~15%의 상위 자원들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배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갑자기 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긍정하냐 부정하냐로 확대시켜버리면 논점 이탈이지요.
그리고 고마운줄 알아야지 라고 느끼신건 정말 개인적 느낌일 뿐인 것 같습니다. 한편 만약 "현 취업 시장의 무한경쟁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공정'이란 것에 목매달리고 있는 것" 이라면, 그 공정의 원칙으로 능력주의란 단어를 꺼내는 것이 엉뚱하다는 원문의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겠지요.
그리고 고마운줄 알아야지 라고 느끼신건 정말 개인적 느낌일 뿐인 것 같습니다. 한편 만약 "현 취업 시장의 무한경쟁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공정'이란 것에 목매달리고 있는 것" 이라면, 그 공정의 원칙으로 능력주의란 단어를 꺼내는 것이 엉뚱하다는 원문의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겠지요.
입시의 목적도 안정된 직장 취득이라고 본다면 결국은 고용시장의 문제같아요.
지금 취업시장이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과 기타 직업들 (중소기업, 그냥 한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서비스업 등)이 양분화 되고 있는데 앞선 그룹에 대한 박탈감을 눈에 보이는 점수로 설명할수 있다면 국가나 개인이나 뭐 합리적 해결책아닙니껴
그거랑 별개로 앞선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취직 한번으로 남은 인생 꿀빨겠다는 생각"을 공정과 정의로 포장하는 현실을 잘 정리한 글이라 생각해서 추천드립니다
지금 취업시장이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과 기타 직업들 (중소기업, 그냥 한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서비스업 등)이 양분화 되고 있는데 앞선 그룹에 대한 박탈감을 눈에 보이는 점수로 설명할수 있다면 국가나 개인이나 뭐 합리적 해결책아닙니껴
그거랑 별개로 앞선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취직 한번으로 남은 인생 꿀빨겠다는 생각"을 공정과 정의로 포장하는 현실을 잘 정리한 글이라 생각해서 추천드립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글쓴이의 지금 청년들의 불만에 대한 문제 인식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년배들 가운데 10~15%(서울 소재 4년제 대학+지방 거점대학 출신)들은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요구한다.]
이부분이 글쓴이의 논지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 더 보기
[그러나 동년배들 가운데 10~15%(서울 소재 4년제 대학+지방 거점대학 출신)들은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요구한다.]
이부분이 글쓴이의 논지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 더 보기
바로 그 부분에서 글쓴이의 지금 청년들의 불만에 대한 문제 인식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년배들 가운데 10~15%(서울 소재 4년제 대학+지방 거점대학 출신)들은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요구한다.]
이부분이 글쓴이의 논지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 요구"로 줄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문제 계층을 설정했기 때문에 논리전개가 매우 이상하죠. 이미 스스로 현재 거국적인 불공정 담론을 청년층 중 10~15%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시험'에 대한 열망을 하위 85~90%에 해당되는 노동시장 및 입시 시장에 위치한 청년들의 현실과 관련성이 없다고 읽을 수 밖에 없는거죠. 실제로 연결고리를 스스로 삭제한 상황으로 문제를 읽고 있으니까요. 현 상황에 대해 거칠게 해석하자면 청장년 대다수가 본인이 일하는 중소기업이 공정하고 올바른 공간이 되는건 바라지도 않는다는겁니다. 자기나 자기 자녀들이 혹여나 갈 수 있을 희망의 유토피아마저 더럽히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직접 이득 계층이 글쓴이가 말한 10~15%라도 대다수가 그들의 주장과 처지에 공감을 하는겁니다.
끝으로 전체 직장 중 안정성이 보장되는 비율이 10~15%라고 해서 그걸 단순히 10~15%의 문제로만 환원해 보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실제 성폭행 당사자의 비율이 10%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걸 10%의 문제로 보는 것과 다를바 없지요.
저는 그래서 원문의 결론엔 오히려 수긍합니다. 근데 한 가지 또 글쓴이가 또 간과한게 있다면, '공정'과 '능력주의'의 발화주체가 다르다는겁니다. '능력주의'라고 말하는 쪽은 주로 불공정을 외치는 청년층의 발언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고자 할 때 주로 표현됩니다. 그들의 실질적 의식이 어떤지를 살펴보니 '능력주의'더라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거죠. '능력'에 따른 선발을 강조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그런 주장이 곧 '능력주의'는 아니지요. 사실 청년층의 발화를 살펴보면 여러 지점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공정' 자체가 무엇인지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하나의 균질된 목소리가 아니라는 틀에 박힌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냥 말그대로 그들이 말하는 공정 역시 딱히 일관성이 있는건 아니라는거죠.
끝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게, 아무튼간에 모두의 결론은 어느 책, 논문, 기사가 다 그렇듯 아주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청년들의 발화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낙인이 불평등과 차별과 백래시 선동의 정치적 조직화를 허용한다. 그러니 우리는 개념들을 엄밀하게 작동시켜 새로운 정치를 재조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말이니까요.
[그러나 동년배들 가운데 10~15%(서울 소재 4년제 대학+지방 거점대학 출신)들은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요구한다.]
이부분이 글쓴이의 논지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 요구"로 줄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문제 계층을 설정했기 때문에 논리전개가 매우 이상하죠. 이미 스스로 현재 거국적인 불공정 담론을 청년층 중 10~15%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시험'에 대한 열망을 하위 85~90%에 해당되는 노동시장 및 입시 시장에 위치한 청년들의 현실과 관련성이 없다고 읽을 수 밖에 없는거죠. 실제로 연결고리를 스스로 삭제한 상황으로 문제를 읽고 있으니까요. 현 상황에 대해 거칠게 해석하자면 청장년 대다수가 본인이 일하는 중소기업이 공정하고 올바른 공간이 되는건 바라지도 않는다는겁니다. 자기나 자기 자녀들이 혹여나 갈 수 있을 희망의 유토피아마저 더럽히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직접 이득 계층이 글쓴이가 말한 10~15%라도 대다수가 그들의 주장과 처지에 공감을 하는겁니다.
끝으로 전체 직장 중 안정성이 보장되는 비율이 10~15%라고 해서 그걸 단순히 10~15%의 문제로만 환원해 보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실제 성폭행 당사자의 비율이 10%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걸 10%의 문제로 보는 것과 다를바 없지요.
저는 그래서 원문의 결론엔 오히려 수긍합니다. 근데 한 가지 또 글쓴이가 또 간과한게 있다면, '공정'과 '능력주의'의 발화주체가 다르다는겁니다. '능력주의'라고 말하는 쪽은 주로 불공정을 외치는 청년층의 발언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고자 할 때 주로 표현됩니다. 그들의 실질적 의식이 어떤지를 살펴보니 '능력주의'더라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거죠. '능력'에 따른 선발을 강조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그런 주장이 곧 '능력주의'는 아니지요. 사실 청년층의 발화를 살펴보면 여러 지점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공정' 자체가 무엇인지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하나의 균질된 목소리가 아니라는 틀에 박힌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냥 말그대로 그들이 말하는 공정 역시 딱히 일관성이 있는건 아니라는거죠.
끝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게, 아무튼간에 모두의 결론은 어느 책, 논문, 기사가 다 그렇듯 아주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청년들의 발화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낙인이 불평등과 차별과 백래시 선동의 정치적 조직화를 허용한다. 그러니 우리는 개념들을 엄밀하게 작동시켜 새로운 정치를 재조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말이니까요.
애초에 공정 전체에 대한 논지가 아닌 것을 먼저 공정으로 해석하고 출발하시니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 요구"로 줄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가 아니라, 애초에 10~15%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jazz님이 갑자기 공정 전체의 얘기로 확대해 놓은 다음, 왜 그 중 일부의 문제만 자의적으로 잡아 얘기하냐고 말씀하신 겁니다. 글의 제목은 '공정'이 아니라 '능력주의'입니다.
"현 '불공정'에 관한 문제 인식은 남녀노소 이념 및 소득을 불문하고 60~80%에 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공정 화두 전체를 "청년들 중 10~15%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 요구"로 줄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가 아니라, 애초에 10~15%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jazz님이 갑자기 공정 전체의 얘기로 확대해 놓은 다음, 왜 그 중 일부의 문제만 자의적으로 잡아 얘기하냐고 말씀하신 겁니다. 글의 제목은 '공정'이 아니라 '능력주의'입니다.
사실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자기 유리한 대로 필요할 때 써먹는 전가의 보도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반대의 입장에서 썰 푸는거 보면, 내가 이득보면 공정한 시스템이고 내가 손해보면 불공정한 시스템이죠.
취업시장의 경우 교원임용시험처럼 시험 선발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직무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선발이 더 유용한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식이 더 나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 2030이 외치는 공정과 능력주의 문제는 '일자리 파이 나눠먹기' 문... 더 보기
취업시장의 경우 교원임용시험처럼 시험 선발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직무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선발이 더 유용한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식이 더 나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 2030이 외치는 공정과 능력주의 문제는 '일자리 파이 나눠먹기' 문... 더 보기
사실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자기 유리한 대로 필요할 때 써먹는 전가의 보도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반대의 입장에서 썰 푸는거 보면, 내가 이득보면 공정한 시스템이고 내가 손해보면 불공정한 시스템이죠.
취업시장의 경우 교원임용시험처럼 시험 선발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직무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선발이 더 유용한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식이 더 나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 2030이 외치는 공정과 능력주의 문제는 '일자리 파이 나눠먹기' 문제라 생각하고, 노동유연성 확보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유연성 확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취업시장에서 공정과 능력주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오게 될 듯요.
취업시장의 경우 교원임용시험처럼 시험 선발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직무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선발이 더 유용한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식이 더 나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 2030이 외치는 공정과 능력주의 문제는 '일자리 파이 나눠먹기' 문제라 생각하고, 노동유연성 확보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유연성 확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취업시장에서 공정과 능력주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오게 될 듯요.
미국 최고 엘리트나 한국 엘리트는 비슷하게 사는듯합니다.
여기 분위기만 봐도 전문직분들 사는 모습이 미국 전문직분들과 다를바 없고 엔지니어들도 비슷하구요.
대신에 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에서는 직원복지가 법적으로 강제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고요. 휴가, 병가, 노동시간 등등... 그 부분만 개선되면 좀 더 노동유연성도 생기고요.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못하겠는데요. 능력주의에 덧붙이면...
미국은 엘리트가 되는 두 갈랫길이 있는데요. 아래 이야길 주로 안해요.
공교육시스템이 워낙 엉망인데요. 대... 더 보기
여기 분위기만 봐도 전문직분들 사는 모습이 미국 전문직분들과 다를바 없고 엔지니어들도 비슷하구요.
대신에 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에서는 직원복지가 법적으로 강제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고요. 휴가, 병가, 노동시간 등등... 그 부분만 개선되면 좀 더 노동유연성도 생기고요.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못하겠는데요. 능력주의에 덧붙이면...
미국은 엘리트가 되는 두 갈랫길이 있는데요. 아래 이야길 주로 안해요.
공교육시스템이 워낙 엉망인데요. 대... 더 보기
미국 최고 엘리트나 한국 엘리트는 비슷하게 사는듯합니다.
여기 분위기만 봐도 전문직분들 사는 모습이 미국 전문직분들과 다를바 없고 엔지니어들도 비슷하구요.
대신에 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에서는 직원복지가 법적으로 강제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고요. 휴가, 병가, 노동시간 등등... 그 부분만 개선되면 좀 더 노동유연성도 생기고요.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못하겠는데요. 능력주의에 덧붙이면...
미국은 엘리트가 되는 두 갈랫길이 있는데요. 아래 이야길 주로 안해요.
공교육시스템이 워낙 엉망인데요. 대신에 그래서 적자생존하든지 부잣집 성골로 되어서 엘리트로 길러지든지인데.. 기업 시장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들어가긴 같이 엘리트로 들어가서는.. 일하는 이들은 엉망인 교육시스템을 혼자서 뚫고 올라온 적자생존한 이들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개인생각) 보아요.
덧붙여.. 아이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시골서 온 아이인데요.
공부 안하면 친구들이랑 목장에서 평생 소키우면서 살아야해서 그게 싫어서 공부만 딥다리 했다고 물리천재라고 저희집아이가 이야기해주더라구요. 그런 공교육이 무너진 미국에 그런 아이들이 성공하게 해 주는 시스템이 어디 비밀스레 있는데요. 그 점을 벤치마킹해야한다고 보아요.
보통은 기부를 통해 다양한 인재채용 보조제도 같은건데요.
엔지니어들 짤리고 살아남기... 그 동네는 전세계 인재들이 와서 경쟁하는곳이어서 좀 예외적으로 봐야하는 것 같아요. 거기 미국 아니라고? 보는게 더 편하지 싶어요.
나머지 미국 ...내면은 양극화에 관료주의에 이너써클에 정치싸움에 한국과 별다를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 분위기만 봐도 전문직분들 사는 모습이 미국 전문직분들과 다를바 없고 엔지니어들도 비슷하구요.
대신에 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에서는 직원복지가 법적으로 강제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고요. 휴가, 병가, 노동시간 등등... 그 부분만 개선되면 좀 더 노동유연성도 생기고요.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못하겠는데요. 능력주의에 덧붙이면...
미국은 엘리트가 되는 두 갈랫길이 있는데요. 아래 이야길 주로 안해요.
공교육시스템이 워낙 엉망인데요. 대신에 그래서 적자생존하든지 부잣집 성골로 되어서 엘리트로 길러지든지인데.. 기업 시장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들어가긴 같이 엘리트로 들어가서는.. 일하는 이들은 엉망인 교육시스템을 혼자서 뚫고 올라온 적자생존한 이들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개인생각) 보아요.
덧붙여.. 아이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시골서 온 아이인데요.
공부 안하면 친구들이랑 목장에서 평생 소키우면서 살아야해서 그게 싫어서 공부만 딥다리 했다고 물리천재라고 저희집아이가 이야기해주더라구요. 그런 공교육이 무너진 미국에 그런 아이들이 성공하게 해 주는 시스템이 어디 비밀스레 있는데요. 그 점을 벤치마킹해야한다고 보아요.
보통은 기부를 통해 다양한 인재채용 보조제도 같은건데요.
엔지니어들 짤리고 살아남기... 그 동네는 전세계 인재들이 와서 경쟁하는곳이어서 좀 예외적으로 봐야하는 것 같아요. 거기 미국 아니라고? 보는게 더 편하지 싶어요.
나머지 미국 ...내면은 양극화에 관료주의에 이너써클에 정치싸움에 한국과 별다를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엔지니어들은, 우리 나라는 그래도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인력을 거의 반 값에 쓸수 있어요.
실리콘 밸리에서 오퍼받는데 안 가는 친구들 생각보다 많거든요. 적극적으로 안알아보기도 하고. 어학만 해결되면 거기서 중상위권 실력 인정받을 사람들 많죠.
바보같은 글이네요.
실리콘 밸리에서 오퍼받는데 안 가는 친구들 생각보다 많거든요. 적극적으로 안알아보기도 하고. 어학만 해결되면 거기서 중상위권 실력 인정받을 사람들 많죠.
바보같은 글이네요.
진보측 능력주의 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일종의 사회적 해킹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환하고 일반화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수시, 의전원, 입학사정관제 등에 대한 반발은 조민을 비롯한 상류층의 사회적 해킹 행위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걸 단순히 시험주의라고 부르면 똑같이 시험이 중심이 되는 내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험지 유출 사고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내신 위주의 입시에 대한 비판이 많이 이뤄졌었죠. 능력주의 담론 뭐 그런게 아니죠.
물론 시험점수를 강력한 해자로 쓰고... 더 보기
물론 시험점수를 강력한 해자로 쓰고... 더 보기
진보측 능력주의 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일종의 사회적 해킹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환하고 일반화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수시, 의전원, 입학사정관제 등에 대한 반발은 조민을 비롯한 상류층의 사회적 해킹 행위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걸 단순히 시험주의라고 부르면 똑같이 시험이 중심이 되는 내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험지 유출 사고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내신 위주의 입시에 대한 비판이 많이 이뤄졌었죠. 능력주의 담론 뭐 그런게 아니죠.
물론 시험점수를 강력한 해자로 쓰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대나 연세대 캠퍼스간 분쟁, 수시나 고졸,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차별행위 이런건 예전부터 있었죠. 근데 이런 목소리가 주류가 된 적이 있었나요?
공정, 능력주의 담론에 대해 거대담론화 하고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 봅니다. 결국 본질은 사회제도를 이용해서 편익을 취한 해킹 행위에 대한 분노이고, 공정에 대한 요구라는 것도 이런 편법행위들 강하게 처벌하든지 조작이 어려운 시험 위주로 하라는 목소리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시험점수를 강력한 해자로 쓰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대나 연세대 캠퍼스간 분쟁, 수시나 고졸,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차별행위 이런건 예전부터 있었죠. 근데 이런 목소리가 주류가 된 적이 있었나요?
공정, 능력주의 담론에 대해 거대담론화 하고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 봅니다. 결국 본질은 사회제도를 이용해서 편익을 취한 해킹 행위에 대한 분노이고, 공정에 대한 요구라는 것도 이런 편법행위들 강하게 처벌하든지 조작이 어려운 시험 위주로 하라는 목소리가 대부분이거든요.
대중이 분노하는 본질은 언급하신 것처럼 이기심이라기보다 편법에 대한 분노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투사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중에서 '시험'이 특정층에게 유리하고 사회적 효용은 떨어지는 방식일 수 있으며, 특정 계층의 이기심은 그것을 더 선호하는 형태로 발현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혁명을 일으켜 왕을 끌어내린 후에 어떤 곳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떤 곳은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었죠. 둘다 본질은 구시대에 대한 분노로 같으니까 그게 그거인가요? 어떤 해결책이 바람직한가를 따지는 것은 별개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시대의, 한국도 포함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전문직이고 시장의 수요가 워낙 강하며 성공 보상도 (분야상) 커서 한국의 경직된 제도에도 '불구'하고 노동 유연성이 상당히 높은 직군입니다. 노조 활동이나 투쟁등이 거의 없는 이유도 그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다른 직군들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군과 같이 자유 노동시장의 성질이 강해 진다면, 본문에서 지적하는 정규직 해자효과는 큰 의미가 사라지고 미국식 능력주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직군의 현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님이 시험을 확대하는 주장을 한다고 말하는 내용도 제 댓글에 없습니다.
시험을 통한 투명한 선발 방식이 공정한 것이다고 강조하고 그것이 능력주의다 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에 대하여 따지는 것이 저 글이니, 그 주제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국가와 사회가 어떤 해결책을 택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문제 파고드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일이 아닙니다.
시험을 통한 투명한 선발 방식이 공정한 것이다고 강조하고 그것이 능력주의다 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에 대하여 따지는 것이 저 글이니, 그 주제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국가와 사회가 어떤 해결책을 택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문제 파고드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일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취급해줄만한 주장이 아니라 분노에 따른 반사적 반응에 불과 하다는 말씀인데, 설령 그렇다 한들 한자문화권 국가들이 시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고 그런 경향성이 민주주의 사회인 이상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반대로 다른 문화권의 타국이라면, 같은 문제에서도 다른 형태로 압력이 작용할 것입니다. 그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낸다면 따져볼 가치가 있습니다. 담론이란 것이 뭐 꼭 대단한 것이어야 하는건 아니고, 포장지란게 내용물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내용물을 다루기 편하게 담는 봉다리 정도의 수단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행복이 성적순이냐고 현대판 과거제 철폐 논의하던 시절에서 왜 후견주의가 부당하다는 논의로 더 후퇴해버린겁니까... 그걸 꼭 말해야 압니까... 그럴거면 차라리 과거제나 지키세요... 이런 불만인 건데,
그걸 과거제가 유일무이 최고의 무결점 제도라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라고 후려치니까... 사회적논쟁을 이런식으로 후퇴시켜놓은 주제에 적반하장이다, 어처구니없다!! 이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체감상 진짜 과거제가 공정하고 과거제에 따른 신분제도 공정하다는 젊은 사람들도 은근 많긴 해요 ㅎ
그걸 과거제가 유일무이 최고의 무결점 제도라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라고 후려치니까... 사회적논쟁을 이런식으로 후퇴시켜놓은 주제에 적반하장이다, 어처구니없다!! 이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체감상 진짜 과거제가 공정하고 과거제에 따른 신분제도 공정하다는 젊은 사람들도 은근 많긴 해요 ㅎ
애초에 과거제가 별로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서 논의가 후퇴했다기보단 전장이 바뀐거죠. 시험주의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시도는 시장의 효율을 더 호출하려는 우파 진영과 다원성과 공평을 더 호출하려는 진보, 거기서 제삿밥이나 챙겨먹는 일부 엘리트들의 니즈가 섞여있는데, 이 중 마지막에 집중해 버리면 사회적 효용은 가장 뒷전이 되겠지요.
도발적/거친 표현 사용에 시정권고 드립니다.
https://redtea.kr/?b=8&n=51
틀딱이라는 표현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정체성에 대한 공격성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거친표현을 삼가주십시오.
https://redtea.kr/?b=8&n=51
틀딱이라는 표현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정체성에 대한 공격성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거친표현을 삼가주십시오.
수시 입학사정관제,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공공의대 등 ‘시험 이외의 방식’
역사왜곡은 진보세력의 전매특허인가요. 인국공 논쟁이 단순 시험이 아니기때문에 발생한 이슈였는지? 공공의대는 어떤지? 불과 몇년전 이슈도 이딴식으로 왜곡하는데 내가 살아보지 못한시대는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참
역사왜곡은 진보세력의 전매특허인가요. 인국공 논쟁이 단순 시험이 아니기때문에 발생한 이슈였는지? 공공의대는 어떤지? 불과 몇년전 이슈도 이딴식으로 왜곡하는데 내가 살아보지 못한시대는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참
내로남불이나 왜곡은 어느 세력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어느 세력의 전매특허로 보인다면, 내가 그 세력을 많이 싫어해서 해당 세력의 잘못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인증일 뿐이지요.
"능력주의(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정’과 짝을 이루는 개념"
우선 저자의 능력주의에 관한 위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능력주의와 공정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최근 20대들이 '공정'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Meritocracy가 미국에서 화제가 된 시기, 한국에 번역된 시기를 고려할 때 지난 6월 이후 갑자기 언론에서 '능력주의' 언급이 늘어났지요. 능력주의 자체가 비판 대상인 시점에서 그들의 '공정'을 '능력주의'란 단어로 치환해서 바... 더 보기
우선 저자의 능력주의에 관한 위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능력주의와 공정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최근 20대들이 '공정'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Meritocracy가 미국에서 화제가 된 시기, 한국에 번역된 시기를 고려할 때 지난 6월 이후 갑자기 언론에서 '능력주의' 언급이 늘어났지요. 능력주의 자체가 비판 대상인 시점에서 그들의 '공정'을 '능력주의'란 단어로 치환해서 바... 더 보기
"능력주의(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정’과 짝을 이루는 개념"
우선 저자의 능력주의에 관한 위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능력주의와 공정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최근 20대들이 '공정'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Meritocracy가 미국에서 화제가 된 시기, 한국에 번역된 시기를 고려할 때 지난 6월 이후 갑자기 언론에서 '능력주의' 언급이 늘어났지요. 능력주의 자체가 비판 대상인 시점에서 그들의 '공정'을 '능력주의'란 단어로 치환해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저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글의 제목은 '능력주의'이지요. 단어 사용 자체가 '공정'을 외치는 집단을 의도적으로 프레임하는 경향이 들어갔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통해 현상을 꾸준히 왜곡합니다.
1. "‘이 능력주의는 한국의 능력주의와 다른 이야기다.’'
- 이 표현이 상당히 이상한데, 미 엘리트 계층의 모습을 나열한 이후 갑자기 '이' 능력주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지시하는 능력주의의 원형이 문단 내에 존재하지 않으며 엘리트 계층이 곧 능력주의라 본다해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Meritocracy Trap('엘리트 세습'이란 한국어 제목은 책의 내용인 능력주의의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합니다)에서 나오는 능력주의의 엘리트 계층은 한국에도 존재하니까요. 한국의 명문 로스쿨, 사시 출신 변호사 및 설카포연고 출신 엔지니어 및 기업가는 미국의 엘리트들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규모 커뮤니티 X차넷 회원들만 보더라도 엘리트 계층의 신체적 정신적 혹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2. "수능 상위 10~15%의 청년들이 아무리 공정을 내세운다 해도 이를 미국식 능력주의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 (중략) . 이에 비해 10~15%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한’ 혹은 ‘정의로운’ 결과는 ‘시험 합격으로 인생역전한 뒤엔 그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중략) 10~15% 청년들은 역설적으로 ‘공정’을 부르짖지만, 그 공정의 실질적 내용은 ‘정규직의 울타리(대기업·공기업)’ ‘고용과 승급에 법적 보호를 받는 지위 획득(공무원)’ ‘연공서열제로 정년까지 꾸준히 임금 상승(대기업·공무원·공기업 공통)’ 등의 조건을 지키겠다는 것 아닌가?"
-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10~15%의 청년들의 행동과 발언을 바탕으로 그들이 요구하는 '능력 기반의 공정'이 고전적 입신양명의 개념에 기반하며 '합격주의' 혹은 '시험주의'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선후관계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인데, 애당초 선발 과정에서 부조리가 발생하는 경우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채용 상황이었기에 그 부분을 비판하는 것이지, 그쪽의 부조리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조건인 '연공서열제'의 경우 많은 사회초년생이 겪는 고충의 주요 래퍼토리로 등장하며 임금피크제가 무난히 도입된 것만 해도 청년층이 이를 딱히 보장받고자 하는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해자를 사수하고자'가 아니라 '해자에 자격 없는 사람이 들어가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하는게 옳습니다.
끝으로 10~15% 청년들이 지배적 서사를 구축했으며 나머지 85~90% 청년을 '다양하고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혹은 낼 수 없다고 설명하는 부분 역시 그 근거가 빈약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받아들여지려면 최소한 어떻게 나머지 청년들의 의식과 담론을 주도하는 청년들 사이의 인식 차이를 보여줘야지요.
우선 저자의 능력주의에 관한 위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능력주의와 공정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최근 20대들이 '공정'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Meritocracy가 미국에서 화제가 된 시기, 한국에 번역된 시기를 고려할 때 지난 6월 이후 갑자기 언론에서 '능력주의' 언급이 늘어났지요. 능력주의 자체가 비판 대상인 시점에서 그들의 '공정'을 '능력주의'란 단어로 치환해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저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글의 제목은 '능력주의'이지요. 단어 사용 자체가 '공정'을 외치는 집단을 의도적으로 프레임하는 경향이 들어갔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통해 현상을 꾸준히 왜곡합니다.
1. "‘이 능력주의는 한국의 능력주의와 다른 이야기다.’'
- 이 표현이 상당히 이상한데, 미 엘리트 계층의 모습을 나열한 이후 갑자기 '이' 능력주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지시하는 능력주의의 원형이 문단 내에 존재하지 않으며 엘리트 계층이 곧 능력주의라 본다해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Meritocracy Trap('엘리트 세습'이란 한국어 제목은 책의 내용인 능력주의의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합니다)에서 나오는 능력주의의 엘리트 계층은 한국에도 존재하니까요. 한국의 명문 로스쿨, 사시 출신 변호사 및 설카포연고 출신 엔지니어 및 기업가는 미국의 엘리트들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규모 커뮤니티 X차넷 회원들만 보더라도 엘리트 계층의 신체적 정신적 혹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2. "수능 상위 10~15%의 청년들이 아무리 공정을 내세운다 해도 이를 미국식 능력주의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 (중략) . 이에 비해 10~15%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한’ 혹은 ‘정의로운’ 결과는 ‘시험 합격으로 인생역전한 뒤엔 그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중략) 10~15% 청년들은 역설적으로 ‘공정’을 부르짖지만, 그 공정의 실질적 내용은 ‘정규직의 울타리(대기업·공기업)’ ‘고용과 승급에 법적 보호를 받는 지위 획득(공무원)’ ‘연공서열제로 정년까지 꾸준히 임금 상승(대기업·공무원·공기업 공통)’ 등의 조건을 지키겠다는 것 아닌가?"
-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10~15%의 청년들의 행동과 발언을 바탕으로 그들이 요구하는 '능력 기반의 공정'이 고전적 입신양명의 개념에 기반하며 '합격주의' 혹은 '시험주의'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선후관계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인데, 애당초 선발 과정에서 부조리가 발생하는 경우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채용 상황이었기에 그 부분을 비판하는 것이지, 그쪽의 부조리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조건인 '연공서열제'의 경우 많은 사회초년생이 겪는 고충의 주요 래퍼토리로 등장하며 임금피크제가 무난히 도입된 것만 해도 청년층이 이를 딱히 보장받고자 하는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해자를 사수하고자'가 아니라 '해자에 자격 없는 사람이 들어가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하는게 옳습니다.
끝으로 10~15% 청년들이 지배적 서사를 구축했으며 나머지 85~90% 청년을 '다양하고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혹은 낼 수 없다고 설명하는 부분 역시 그 근거가 빈약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받아들여지려면 최소한 어떻게 나머지 청년들의 의식과 담론을 주도하는 청년들 사이의 인식 차이를 보여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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