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주목해서 현미경 배율을 높였을 때 보이는 것들과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군집으로 행동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해서 현미경 배율을 낮췄을 때 보이는 양상은 사뭇 달라요.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는 개인의 에이전시가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에 내면의 고뇌 이념적 갈등 구국의 결단 따위가 강조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걍 그런 거 없이 다 거대한 조류 속의 레밍즈로 보이기 때문이죠. 얼핏 보면 이 두 양상이 상호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나로 잘 통합된 전체에 불과해요. 가격과 효용을 따져서 각자의 개인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모여서 이번분기 버거킹 가격을 5% 할인한 결과 매출이 7% 오르는 등의 결과가 나오는 거지요.

그래서 각 이슈벌로 국회의원 개개인의 선택에 집중해서 (마치 오지에 파견된 인류학자처럼)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보면 300명의 선택이 모두 고심 끝에 나온, 매우 개인적인, 구국의 결단처럼 보이지만 그런 결단이 모여서 나온 표결결과를 보면 놀라우리만치 여론추종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마법이 펼쳐지지요. 단적인 사례가 지난 탄핵 투표인데 새누리 의원이 다수인 상황에서 탄핵표결이 안 될 거라는 '정치공학적'인 전망을 비웃기라도하듯 실제로 상자를 까보니 국회 탄핵 투표 결과가 1의자리까지 완벽하게 탄핵찬성여론과 일치하는 기적이....

(수정/계속) 그래서 당시에 '아니 대의제가 이토록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네' 같은 반응들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대의제 짱짱맨이네.

근데 이 댓글 결론 어떻게 내야하지... 아무튼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능수능란한 '여론'플레이를 통해 여론 자체의 향방에 영향을 주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겠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도 그럴 거구요. 그런데 그런 정도의 리더십을 모두에게 기대하기는 어렵죠. 팀보다 뛰어난 선수,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 같은 걸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각자의 미시적 결단이 거시적으로 여론에 맞게만 형성되어도 전 평타는 쳤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