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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8/17 20:18:32 |
Name | moira |
Subject | 저자 약력의 의미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6039.html 열린책들 김영준 주간의 저자 약력에 관한 생각은 이러하군요. "책의 저·역자 소개가 자기표현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학교, 고향, 나이가 독자에게 반드시 공개되어야 할 필자의 신상정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군요. 책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그 정보가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극적인 맥락을 갖는 정보라면 밝힐 가치가 있다 하겠지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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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아닙니다만, 모 책의 역자 소개입니다 :
전직 애니메이션 PD이면서 Rock Drummer. 한국판 Newtype 편집부 기자.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아카데미인 <한겨레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1기>이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전사 라이안」을 비롯한 각종 장ㆍ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 현재 한국판 Newtype으로부터 「파이널 퓨전」을 승인받은 상태이다.
전직 애니메이션 PD이면서 Rock Drummer. 한국판 Newtype 편집부 기자.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아카데미인 <한겨레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1기>이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전사 라이안」을 비롯한 각종 장ㆍ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 현재 한국판 Newtype으로부터 「파이널 퓨전」을 승인받은 상태이다.
이거슨 이제 인쇄에 들어간 제 박사논문의 주제중 하나인데... ㅎㅎ 중국 문헌에서 사람소개할때 반드시 예외없이 출신지랑 출신가족 소개로 시작하는데 그건 왜그런걸까 탐구했어요. 여기에 소개하고싶지만 여백이 부족해서 그만
제 연구질문은 '나는 상산 조자룡이다'와 같이 자기소개하는 거였어요. 저기서 '상산'이 왜 나올까 싶은 거지요. 말하는 사람도 저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한 거고 듣는 사람도 나름 무언가를 들은 거 아니겠어요. 오늘날 우리는 '안녕하세요 전주 이상혁입니다'와 같이 자기를 소개하지 않으니 저자 소개에서 고향 자리를 빼자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상하지 않겠네요.
오잉 출신학교 고향 나이가 꼭 밝혀야 하는 정보이려나요? moira님 말대로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라면 밝히고 아니면 밝힐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지역 방언에 대한 책이라면 밝혀야겠지만 소설에서 밝혀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출신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학술서라면 밝혀야겠지만 소설이나 수필에서 굳이 밝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흠...신원 보증 측면에서라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기획의 습관- 같은 책을 떠올렸을 때 어느학교 출신인지보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경력정보면 충분하다고 느꼇던 거 같고. 여행 수필은 더더군다나 ... 더 보기
기획의 습관- 같은 책을 떠올렸을 때 어느학교 출신인지보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경력정보면 충분하다고 느꼇던 거 같고. 여행 수필은 더더군다나 ... 더 보기
오잉 출신학교 고향 나이가 꼭 밝혀야 하는 정보이려나요? moira님 말대로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라면 밝히고 아니면 밝힐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지역 방언에 대한 책이라면 밝혀야겠지만 소설에서 밝혀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출신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학술서라면 밝혀야겠지만 소설이나 수필에서 굳이 밝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흠...신원 보증 측면에서라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기획의 습관- 같은 책을 떠올렸을 때 어느학교 출신인지보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경력정보면 충분하다고 느꼇던 거 같고. 여행 수필은 더더군다나 이 사람이 어떤 여행 에세이를 써왔는지 정도면 충분하고 출신학교는 궁금하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흠.
저자의 신상을 밝히고 신원을 보증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그게 학교 고향 나이 세개 모두를 밝히는 형태일필요는 없는거같아요.
기획의 습관- 같은 책을 떠올렸을 때 어느학교 출신인지보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경력정보면 충분하다고 느꼇던 거 같고. 여행 수필은 더더군다나 이 사람이 어떤 여행 에세이를 써왔는지 정도면 충분하고 출신학교는 궁금하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흠.
저자의 신상을 밝히고 신원을 보증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그게 학교 고향 나이 세개 모두를 밝히는 형태일필요는 없는거같아요.
출판사도 상품을 파는 곳이니까요... 외주 제작자가 신원을 공표하는 형식으로 책임져 주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걸 수도 있죠 =ㅅ=...
'책 내용의 신뢰성을 보증'할지 여부와 구체적으로 그걸 실현하는 방식은 각자 선택하기 나름인 것이므로 저자 약력의 양식을 표준적으로 의무화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봐요. 하지만 작가론의 관점에서 독자가 작품에 접근할 때 출생년과 출생지가 출신 대학이나 이름/필명 등에 비해 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싶어요. 가령 쿤과 알튀세르라든가 베버와 후설이라든가 아인슈타인과 바슐라르처럼 문외한이 보기엔 영향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지적 연관성을 상정할 수 있는 경우, 이들이 동시대인이며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정보를 아는 건 어마어마한 도움... 더 보기
'책 내용의 신뢰성을 보증'할지 여부와 구체적으로 그걸 실현하는 방식은 각자 선택하기 나름인 것이므로 저자 약력의 양식을 표준적으로 의무화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봐요. 하지만 작가론의 관점에서 독자가 작품에 접근할 때 출생년과 출생지가 출신 대학이나 이름/필명 등에 비해 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싶어요. 가령 쿤과 알튀세르라든가 베버와 후설이라든가 아인슈타인과 바슐라르처럼 문외한이 보기엔 영향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지적 연관성을 상정할 수 있는 경우, 이들이 동시대인이며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정보를 아는 건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니까요. 혹은 링컨과 레오폴드 2세가 같은 해에 태어났다든가 간디와 스콧이 동년배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네들이 갖고 있던 '동시대성'에 대해 능동적 이해를 할 수 있고요. 이런 훈고학적인 옛날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김사과와 김영하가 머리채 잡고 싸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네들의 세대차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전 이름보다 출생년이 훨씬 중요한 정보라 생각해요. 누군가 가명이나 필명으로 글을 쓰는 건 별문제가 없지만, 56년생 작가가 42년생 작가인 척하며 비트 세대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썼다면 독자에게 혼선을 야기할 수 있죠.
출신지는 한국이 서울공화국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출생년에 비해서는 모-던하지 않은 정보기는 하다 싶어요. 적어도 70년대생 이후로는 지역이 출신성분이나 ethnic 지표로서 기능하진 못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에는 70년대생 이하의 세대만 사는 게 아니며 인구의 절반은 여전히 그런 지역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대죠. 50대들만 해도 상대방의 출신지를 모르면 그 사람을 아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흔하니까요. 물론 그건 해묵고 너절하며 정치적 의제를 연상시키는 지역주의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그 자체로 그네들의 세계관이고 사회 이해의 수단이기도 하지요. 또 지역성과 향토성의 복고와 유지와 재창출이 무수한 방언작가들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출신지를 천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질 수 있기도 하겠죠. 그리고 모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지는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요. 신진 저자의 출신지가 성남인지 인천인지 부천인지 고양인지 의정부인지 수원인지 화성인지 용인인지 노원구인지 금천구인지 송파구인지 대림동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저자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유추할 수 있고 가정사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유년기 경험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원미동 사람들'이 왜 그리 각광받았는지만 생각해봐도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출신지를 생략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출신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되려 너무 민감한 개인정보라서, 바꿔 말하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밑천을 드러내게 하는 정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출신지는 한국이 서울공화국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출생년에 비해서는 모-던하지 않은 정보기는 하다 싶어요. 적어도 70년대생 이후로는 지역이 출신성분이나 ethnic 지표로서 기능하진 못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에는 70년대생 이하의 세대만 사는 게 아니며 인구의 절반은 여전히 그런 지역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대죠. 50대들만 해도 상대방의 출신지를 모르면 그 사람을 아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흔하니까요. 물론 그건 해묵고 너절하며 정치적 의제를 연상시키는 지역주의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그 자체로 그네들의 세계관이고 사회 이해의 수단이기도 하지요. 또 지역성과 향토성의 복고와 유지와 재창출이 무수한 방언작가들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출신지를 천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질 수 있기도 하겠죠. 그리고 모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지는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요. 신진 저자의 출신지가 성남인지 인천인지 부천인지 고양인지 의정부인지 수원인지 화성인지 용인인지 노원구인지 금천구인지 송파구인지 대림동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저자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유추할 수 있고 가정사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유년기 경험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원미동 사람들'이 왜 그리 각광받았는지만 생각해봐도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출신지를 생략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출신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되려 너무 민감한 개인정보라서, 바꿔 말하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밑천을 드러내게 하는 정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중국은 같은 이름이 너무 많아서 고향에서부터 친척 소개가 있어야 누구인지 특정될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하네요.
네 맞아요. 작가의 출생연도와 고향이 독자에게 적극적인 정보가 되는 경우들이 많지요. 작가 현기영은 자신이 1941년 제주 출생이라는 것을 저자 약력에서 절대 지울 수가 없겠지요. 듀나 같은 경우도 그의 실제 이름보다는 그의 출생연도를 아는 것이 독자에게 더 큰 정보일 것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가 영어로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역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로 활동하면서 자기 출신지를 적극 활용하는 영국남자나 소련여자도 있지요.
물론 그런 신변의 좌표들이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별 ... 더 보기
물론 그런 신변의 좌표들이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별 ... 더 보기
네 맞아요. 작가의 출생연도와 고향이 독자에게 적극적인 정보가 되는 경우들이 많지요. 작가 현기영은 자신이 1941년 제주 출생이라는 것을 저자 약력에서 절대 지울 수가 없겠지요. 듀나 같은 경우도 그의 실제 이름보다는 그의 출생연도를 아는 것이 독자에게 더 큰 정보일 것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가 영어로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역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로 활동하면서 자기 출신지를 적극 활용하는 영국남자나 소련여자도 있지요.
물론 그런 신변의 좌표들이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어중떠중한 경우들도 많은데 말씀하신 것 중에 신상정보가 작가에게서 '노골적으로 밑천을 드러내게 하는' 경우들이 그런 경우들이 아닐까 싶어요. 출신지는 아니지만 듀나의 경우 예를 들어 그가 부천 사람이라 치고 '부천에 거주중'이라는 정보가 약력에 들어간다면 그의 (부천을 무대로 하는) 작품들에 생기가 부여될까 아니면 도리어 거두어질까? 오히려 작품 감상의 방해물로 작용할 듯싶지요. 그건 듀나뿐 아니라 그 정도의 밀도를 목표로 소설 쓰기 전략을 선택한 모든 작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열린책들은 한국 현대 소설을 출판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물론 그런 신변의 좌표들이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어중떠중한 경우들도 많은데 말씀하신 것 중에 신상정보가 작가에게서 '노골적으로 밑천을 드러내게 하는' 경우들이 그런 경우들이 아닐까 싶어요. 출신지는 아니지만 듀나의 경우 예를 들어 그가 부천 사람이라 치고 '부천에 거주중'이라는 정보가 약력에 들어간다면 그의 (부천을 무대로 하는) 작품들에 생기가 부여될까 아니면 도리어 거두어질까? 오히려 작품 감상의 방해물로 작용할 듯싶지요. 그건 듀나뿐 아니라 그 정도의 밀도를 목표로 소설 쓰기 전략을 선택한 모든 작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열린책들은 한국 현대 소설을 출판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어쨌든 저분은 독자에게 가지는 정보의 유효성 같은게 아니라 저자소개란을 의견표출 또는 자기홍보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저자들에 대한 경계에서 저런 말씀 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여. 본문과 서문 또는 역자후기는 저자/역자의 공간이지만, 저자/역자소개는 편집자의 공간이고, 따라서 그곳에서 발생한 오류나 표출된 의견은 전부 편집부의 책임이 되는 거니까요.
사실 정형화된 양식이 존재하면 거기다 더하고 빼서 양식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의견표출이 되는 셈이라서...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부 또는 편집자 개인이 리스크를 지기 싫을 때는 기존 양식을 따라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기도 할 테고요. 사실 저자들이랑 얼마나 신나게 싸워 왔길래 저러시나 하는 생각도 들고 ㅋㅋㅋ
사실 정형화된 양식이 존재하면 거기다 더하고 빼서 양식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의견표출이 되는 셈이라서...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부 또는 편집자 개인이 리스크를 지기 싫을 때는 기존 양식을 따라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기도 할 테고요. 사실 저자들이랑 얼마나 신나게 싸워 왔길래 저러시나 하는 생각도 들고 ㅋㅋㅋ
무슨 책의 번역자분이랑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되게 궁금해요 ㅋㅋ 중쇄를 찍은 책이라니 우리도 알 만한 잘 나가는 책 같지요? 에디터 입장에서는 자기 고유 영역을 저자/역자가 침해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불쾌할 수 있지요.
네 그래서 김영준 씨의 썰은 가만 놔둬도 그리 잘 먹힐 것 같진 않지만 만약 그걸 굳이 놔두지 않고 반박을 한다면 나이나 출신지 등의 정보는 현대=예술=개인과 불연속적이라는 식의 모던 자유주의 논변보다는 - 물론 부분적인 이유는 되겠지만 -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의 외연 축소를 막고 반영론과 유물론에 의해 작품이 형해화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서 접근하는 게 맞지 않나 싶네요. 떠오르는 사례를 들자면.. 전 하이데거가 독일 축구와 베켄바워의 예찬자였으며 예술보다 축구를 더 중시했던 답없는 축빠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하이데거가 쓴 텍스트는 뭘 봐도 웃음만 나오더군요 ㅋㅋㅋㅋ https://redtea.kr/?b=31&n=183180
사실 책을 내는 일이 저자에겐 직접적 리스크가 아닐 수 있지만 저자의 선별부터 기획 제조 홍보 유통을 모두 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기 땜에.. 책 본문 내용이 아닌 만듦새의 디테일 같은 것들은 보통 출판사가 더 잘 알고 있는 영역이고 거기서 결정할 몫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자가 아주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거나 해서 완전 갑이면 몰라도요. 사실 칼럼을 쓴 저분은 좀 꼰대스럽기는 하지요. 아마도 후배 편집자분이 기싸움을 하지 않고 역자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어서 화가 나신 것 같기도... 게다가 요즘은 꼭 책에 인쇄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으로도 저자 정보를 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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