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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0/14 12:45:58수정됨 |
Name | 호라타래 |
Subject | 사랑을 쓰려면은 연필로 써야 하나요?: 폴리미디어라는 이론적 관점 |
- Madianou, M., & Miller, D. (2013). Polymedia: Towards a new theory of digital media in interpersonal communic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Studies, 16(2), 169–187. https://doi.org/10.1177/1367877912452486 의 요약입니다. - 번역이 아니고 이해한 바를 주절주절 다시 적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활용하실 분은 꼭 원문을 봐주세요. 단, 이론적인 틀을 제시할 때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원문을 병행합니다. - 언제나처럼 저작권을 위해 일부만 밝힙니다. 들어가며 우리의 일상적인 대인 의사소통은 다양한 수단들로 가득 차 있어요. 인스턴트 메세지, 전화, 영상통화, 편지, 면대면 대화, SNS, 블로그 등 ICT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여 풍부한 미디어(media)들이 삶 전반에 흐르고 있지요. 한국은 전세계에서 스마트폰/인터넷 보급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고 이런 환경 속에서 선택지는 넘쳐나요. 수많은 방식들이 양립하는 상황에서, 대인 의사소통의 도구로 무엇을 선택하는가? 달리 말하자면 무엇을 가지고 타인과 어떻게 의사소통하는가?는 단순히 기술 자체의 속성에 의해 결정되지만은 않아요. 얼마 전 친한 형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잘 안 되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자세히 들어보니 편지로 고백을 했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거기서 찾고 있었고요. 저는 그건 매개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위로하면서, 동시에 가급적이면 얼굴 보고(면대면으로) 다음에는 얘기하라고 당부했지요. 당연한 이야기라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관계의 시작이든 끝이든 얼굴 보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당연의 감각을 공유한다 느껴요. 그런데 한국과 미국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가 봐요. Gershon(2010)이라는 학자는 미국 대학생들의 이별 경험을 연구했어요. 헤어지는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이별을 통보했는가는 각 개인을 평가하는 도덕적 지표가 된대요. 한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더 '도덕적'인 걸로 취급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화에서는 합의된 원칙이라는 게 없다 하더라고요. 이별을 문자로 통보했다고 해도, '억떡계 그럴수있어?' 같은 감각이 약하다는 거지요. 며칠 전 예전 직장 인턴 선생님이 급하게 메신저로 부탁을 해오시더라고요. 예전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끼리 편의를 위해 쓰던 비대중적인 메신저 계정이 남아 있었거든요. 생경한 느낌에 돌이켜보니 전화번호도 모르고, 카카오톡 연락처도 몰랐어요. 우리끼리는 회사에서 통제하는 사내메신저와, '개인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카카오톡/전화가 아닌 그 중간지대 어딘가의 미디어(media)를 사용하고 있었지요. 이 메신저에서는 '퇴근하고 싶다', '오늘 밥 뭐 먹을까요', '쌤 이거 자료 좀 보내주세요', '끝나고 술 드실 분?' 같은 공식적/비공식적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오갔지요. 이러한 미디어 선택은 동료들끼리의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직장 동료'로서의 영역을 구분하는 방식이에요. 참치잡이를 하며 매일 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려요. 부모님의 걱정을 줄여들이기 위해 하루를 소상히 적어요. 언제 일어났나, 밥은 뭐 먹었나,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나, 오늘은 무엇을 했나, 자기 전에는 무엇을 했나 등등이요. 일기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기실 일지나 보고서에 가깝지요. 감정적인 정보는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만 통제해서 올려요. 표현을 통한 해소가 필요할 경우 비밀글로 주저리주저리 적고요. 그렇다고 카톡이나 영상통화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정기적인 하루의 기록은 부모님이 매우 좋아하세요. 까먹으면 다시 확인할 수도 있고, 영상통화를 할 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할 수도 있고요. 블로그 일지는 저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누는 한 형태이기도 해요. 감정은 영상통화나 카톡으로 전달하면 되고, 정보는 일지로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제 원칙이지요. 위 세 가지 사례는 저라는 한 사람이 대인관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고려하여 관리하고 실천하는 모양을 그려내요. 대인관계 속 미디어 실천이 사회문화적인 기대에 영향을 받고(고백과 편지), 관계의 성격에 따라 미디어 선택이 달라지며(직장 동료들과의 특별한 메신저), 미디어에 따라 교류하는 정보의 성격이 달라지고, 교류를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미디어 간에는 상호 의존적인(감정 - 영통과 카톡, 정보 - 블로그 일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지요. 이하에서는 앞서 언급한 상황을 보다 파고들기 위해, 폴리미디어(polymedia)라는 이론적 틀을 기술해요. Mira Madianou와 Daniel Miller는 모두 영국의 학자들이에요. 영국에서 발원한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의 전통을 떠올리실 분들이 있을 텐데, 위 연구는 동시에 과학기술사회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라는 관점 속에서 상황을 살핀다 느낍니다. 필리핀 / 카리브 해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가족들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에스노그라피로 연구하고 이를 비교하여 이론을 뒷받침하지요. 다만 논문의 목적이 새로운 이론적 시각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감안해주시기 바라요. 본문 서론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먼 거리에서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되었어요. 비싼 국제전화를 사용하거나, 편지를 적어야 했지요. 비용도 문제거니와 관련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 커뮤니케이션은 힘들었지요.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상황을 조금 달리 만들었어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산되었고, 인터넷 회선도 좋아졌지요.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지형의 변화는 전지구적 이민의 확산이라는 상황 속에서 중요성이 커져요. 많은 이민의 경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인 경우가 많은데1), 이제 전지구적 남부라 하더라도 메신저, 영상통화의 비용이 낮아지고 가용성이 높아졌거든요. 연구자들은 대인적 상호작용을 둘러싼 이러한 미디어 지형을 그려내기 위해서 폴리미디어(polymedia)라는 개념을 요청해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멀티미디어(multimedia)일 거예요. 용어가 다르니 다른 용어를 통해 표현해내고자 하는 차이도 있겠지요? 조금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조금 더 저자들의 표현을 따라가보자면 '폴리미디어 환경을 탐색하는 것은 대인적 관계가 어떻게 일어나고, 경험되는지와 불가분적인 연관을 지닌다(navigating the environment of polymedia becomes inextricably linked to the ways in which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re enacted and experienced, pp. 170-171)고 해요.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가보도록 합시다. 폴리미디어: 이론적 기반과 영향(Polymedia: theoretical foundations and influence) 폴리미디어 개념은 멀티미디어 개념과 달라요. 멀티미디어 개념이나 폴리미디어 개념이나 문자, 영상, 음성 등의 다양한 미디어 매개를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는 건 같지만, 멀티미디어 개념은 이 미디어들 사이의 위계를 상정해요. 위계를 가정한다는 것은 무엇이 특정 미디어의 성격인지 적절하게 알 수 있다는 거지요. 페이스북이 사진도 올리고 글도 쓸 수 있지만 글이 주가 되는 SNS 라는 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더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최근 미디어의 변화는 수렴(covergence)2)으로 나가고 있고, 특정 미디어 내에서 무엇이 주가 되는가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어요. 제 사촌동생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페이스북 그 자체보다 더 많이 쓰거든요. 홍차넷 사이트 또한 티타임이 메인이었다가, 타임라인 도입 이후 플랫폼의 성격이 변했지요. 이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각각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어졌어요. 폴리미디어는 이러한 구분과 위계를 거부하지요. 대신에 연구자들은 폴리미디어를 '의사소통적 환경(communicative environment)'이라고 바라봐요. 미디어 생태학(media ecology)3)과의 비교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유용해요. 미디어 생태학 기반의 초창기 연구들은 미디어나 기술 환경이 사회와 인간 활동을 조형해 나간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최근 연구들은 기술결정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의사소통 체계를 포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고요. 교통, 보건, 정부와 같은 보다 큰 사회적 시스템과 연관하여 의사소통 체계의 '활용'을 바라본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점이라 해요. 보다 최근의 관점에 따르면, 미디어 생태학은 '그 속에서 요소들이 상호 분리/분해되지 않는 총괄적인 기술, 사회, 문화 그리고 장소 기반 시스템의 특징을 강조(Ito et al., 2010:31 p. 172에서 재인용)' 한다고 해요. 또한 참여의 장르(geners of participation)이라는 관점도 나타나요. 미디어 활용을 젠더, 나이, 사회경제적 지위, 사용빈도, 플랫폼 종류와 같은 것들에 의해 구조화하여 유형화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거든요. 뭔가 말이 어렵기는 한데 뭔가 어쨌든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만 염두에 두고 넘어가봅시다. 저자들은 폴리미디어가 최근 미디어 생태학과 많은 점을 공유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폴리미디어가 이러한 의사소통 기회의 환경을 '어포던스의 통합된 구조'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해요. 저자들이 원문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는 않아요. 디자인 / UX / UI 쪽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좀 더 익숙할 개념일 거예요. '물건의 쓰임새에 대한 이해'라고 해야할까요4). 저자들은 폴리미디어가 단순한 환경이 아니며, 각 사용자들이 감정과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어포던스를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적어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왔으니 단순히 이거는 사용자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겠지요? 사용자들 간의 협상이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해요. 이러한 협상과 그 사회적, 감정적, 도덕적 결과는 기술과 사회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이해를 돋우는 단초가 되고요. 저자들은 폴리미디어 개념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사회적 활용을 둘러싼 논의에 의미(meaning), 기능(functions), 파급(consequences)이라는 층을 더하는 효과가 있다고 적습니다. 그 외에도 본문에서 폴리미디어 관점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론적 비교들이 나오지만, 제가 이해하기에 주목해야 할 지점은 Mediation과 meditization 이론의 수렴이었어요. 한글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ㅠㅠㅠ 일단 mediation은 의사소통을 위한 미디어 활용을, meditization은 미디어가 사회적 제영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사회적 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가리킨다고 보면 되요. 두 관점의 수렴은 의사소통 미디어가 사회적 과정을 변화시키고, 그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의사소통 미디어가 조형되는 다분히 변증법적인 과정을 포착해요. 예를 들자면, 미디어가 일대 다수의 환경에서 다대 다수의 환경으로 변화한 결과 우리는 '원치 않는 폭로'가 야기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될 수 있는 상황에 빠졌어요. 이러한 폭로가 미디어를 통해 일어난다는 건 '폭로당하는 경험'을 전혀 다른 현상(다른 규모, 다른 감정적 공명, 다른 결과) 속에 놓는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경험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와 연락하기 위해 특정한 방법을 선택할 때, 우리는 그 특정한 방법이 부분적으로 관계를 구성한다는 걸 알게 되지요. 썸 탈 때 너무 카톡 연락에 의미부여하기보다 실제 만남에 주목하라는 형/누님들 말씀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능. 이론 설명의 마지막 지점에서 재미있는 용어가 하나 나와요. 미디어 속의 삶(living in media)라는 개념이에요. 인간의 사회적 삶이 서로 다른 형태의 미디어 실천과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간다는 입장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또한 이 데이터 더미로의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어떠한 매개를 통해 글을 읽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입장을 제가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폴리미디어의 지도(The contours of polymedia) [본문 중 media as an integrated structure와 precondition: access, affordability, literacy는 일부만 적습니다.] 기술 발전 덕분에 미디어에 대한 접근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리터러시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이주민과 본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 초기 연구들은 기술적인 불평등에 주목했지만, 이제는 리터러시의 불평등에 주목해요. 실증 연구는 필리핀이나 서인도제도 트리니다드토바코의 고령층들이 블로그 작성처럼 미디어 내에서 컨텐츠를 생산하기보다, 음성통화 같은 익숙한 방식에 더 의존한다고 밝혀요. 논문 본문에서는 위와 같은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를 들면서 자신들이 제시하는 폴리미디어 개념은 접근성(access), 비용(cost) 뿐만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까지도 해소된 상황에 적용하기 좋은 프레임이라 밝혀요5). 폴리미디어의 차원들: 리메디에이션(Dimensions of polymedia: remediation) 폴리미디어는 리메디에이션 과정과 궤를 같이해요. 리메디에이션은 Bolter와 Grusin이라는 다른 학자들의 이론이래요. 새로운 미디어 기술은 짜잔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발전해요6). 필리핀 초국적 가족의 생애사를 들여다보면, 음성통화 기술은 처음에는 마을 안에 한 대 있는 전화기 -> 이웃집 전화기 -> 집에 깔린 유선 전화기 -> 비싼 모바일 폰 -> 인터넷 전화(VOIP) 순으로 변화한 것을 볼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전화는 크리스마스 같은 이벤트 때나 사용하던 특별한 도구에서, 어머니들이 청소년 딸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밤새도록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도구로 변화했지요. 리메디에이션은 통시적으로 미디어 수용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어요. Nisha라는 사람은 처음에 이메일을 단순히 컴퓨터 기반의 편지로 생각했대요. 그래서 처음에 이메일을 작성할 떄 3~4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글을 보내고, 맞춤법도 매우 신경을 많이 썼대요. 이러한 이메일 활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문자 메세지 같이 변했지요. 기술의 발전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동일한 기술의 수용 방식 또한 천천히 변화해요. 위에서 언급했던 접근성과 비용의 불평등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불평등으로 오래도록 이어지는 매커니즘을 엿볼 수 있지요. 실증 연구에 참여한 많은 필리핀 사람들은 이제 손주를 보았어요. 웹캠 기술의 발전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손주와 조부모 사이의 국경을 넘는 새로운 관계를 열었지요. 목소리만 가지고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던 손주들이, 웹캠에 나오는 사람들에는 보다 빠르게 반응했거든요. 2012년에 연구자들이 실행한 연구는 조부모들이 효과적으로 여러 시간 동안 자녀를 돌보고, 이러한 관계에서 양쪽 모두 상호 만족을 느낀다는 걸 보여줬어요. 웹캠 기술은 꼭 조부모들이 아니더라도 타이핑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나,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축복이지요. 저희 부모님만 하더라도 카톡문자 메세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어색해 하세요. 구어를 통한 의사소통, 대면을 통한 감정 확인과 표현이 훨씬 익숙하시거든요. 인간의 기초적인 상호작용 형태가 문자를 통한 소통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는 오성의 작용이니 자연스러운 거예요. 영상통화 기술은 부모님에게 기술적 적응 비용이 최소화 되는 방식인 것이지요. 폴리미디어의 차원들: 어포던스 그리고 감정적 관리(Dimensions of polymedia: affordance and emotional management) 한 관계를 위해서 동원되는 미디어는 다양해요. 관계의 여러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미디어를 활용하고, 이 때 미디어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지요. 폴리미디어는 개인적 관계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자, 그 자체가 개인적 관계가 되요.트리니다드토바코 출신의 30살 Raj는 트리니다드에 있는 부모님과 스카이프로 연락을 유지하지만, 그러면서도 부모님에게 아침마다 문자 메세지를 보내요. "[제가 아침에 보내는 메세지는 다음과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조심하세요, 쉬어가면서 하세요, 식사 잘 하세요, 물 챙겨드세요 - 왜냐면 어머니가 물 마시기를 싫어하시거든요 -, 살펴다니세요, 항상 그리워요, 사랑해요, 다 잘 될 거예요, 항상 당신을 생각해요."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말다툼이 시작될 것 같으면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메신저 기능이나, 다른 메신저를 활용하여 개인적인 영역으로 연락수단을 바꾼다고 해요. 산드라는 자신의 아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안심하기 위해 스카이프 연락을 선호하지만, 화가 나거나 슬플 때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고요. 이 때는 이메일을 작성해서 자신의 의사소통을 통제하고, 비밀)security)을 확보하지요. 위에서 봤듯이 미디어는 관계 그 자체를 구성하는 특징을 지녀요. 이메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목소리는 우리의 감정을 보다 면밀하게 보여주거든요. 부모에게 돈을 부탁해야 하는 아이들은 전화 대신에 문자 메세지를 선호해요. 문자 메세지를 보내면 부정적이거나 스트레스에 가득찬 부모의 반응(목소리)을 피하기도 편하지요. 텍스트 / 목소리의 구분은 연구참여자들이 폴리미디어 활용에서 영역을 구분하는 큰 특징 중 하나에요. 폴리미디어는 미디어 간의 구분에만 대응하지 않아요. 한 '미디어' 내에서도 활용은 달라질 수 있지요. 연구에서 한 젊은이는 친구들과는 일반적으로 Myspace를 쓰고, 본국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는 페이스북을 쓴다고 답했어요. SNS라는 동일한 범주에 들어가더라도 관계에 따라 영역을 달리하는 건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광경이에요. 자학 드립을 쏟아내던 트위터를 부모님과 공유하고 싶어할 사람은 얼마 없겠지요. 이러한 정체성 관리와 정보 통제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는 더욱 민감한 이슈가 되기도 해요. 몇몇 남성 동성애자 연구참여자들은 다른 SNS 서비스를 활용하거나, 같은 SNS 속에서도 다른 프로필을 활용해서 같은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과 가족들과의 교류를 분리했지요. 이렇게만 보면 폴리미디어를 특정 관계에 더 적절하고 덜 적절한 종류의 미디어를 가리키는 걸로 보기 쉬운데, 그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요. 모든 관계는 특정한 미디어 환경(a particuclar configuration of media)을 형성하게 되요. 이 환경은 그 관계 속의 특정한 의사소통적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형태로 형성되고요. 들어가며에서 저는 제가 가족들과 협상한 의사소통 방식을 설명했지요. 블로그 일기로 최대한의 정보를 공유하고, 가끔씩 카톡과 영상통화으로 감정적인 교류를 보완하는 방식이요. 아마 해외에 나와있는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러한 방식은 제 개인적인 삶의 역사나 기질, 부모님의 필요가 결합된 방식인 것이니까요. 예시를 바꿔보자면 연인 간 의사소통 견해 차이를 들 수도 있어요. 연락 문제는 커플 간의 보편적인 다툼 주제 중 하나지요. 연락의 빈도, 한 번 연락했을 때의 길이, 교류하는 정보의 깊이, 연락해도 될 때와 되지 않을 때의 구분, 연락의 수단 등등은 각자가 지나간 경험과 개인적 기질을 종합하여 협상해나가는 영역이에요. 이 논문은 장거리 커플인 Burton과 Fay가 이메일 연락과 전화라는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갈등했던 경험을 보여줘요. 본문을 찾아서 보시는 분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비교해서 읽어보셔도 재미있을 거예요. [이어 저자들은 Polymedia as increased moral responsibility라는 장을 통해 폴리미디어가 지닌 도덕(moral)적인 특징을 설명해요. Gershon(2010)이 연구한 미국 학생들의 이별 경험이 등장하는 것도 여기지요. 한국 싸이월드의 사례도 언급합니다. 골자는 문화적인 차이와 폴리미디어 사이의 연관에 관한 지점이에요.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지점이여요. 이 소개글에서는 생략합니다.] 폴리미디어와 메디에이션(Ploymedia and mediation) 폴리미디어는 사회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요. 이미 이 연구의 주제인 초국적 가족들간의 의사소통 변화라는 주제 자체가 이를 증명하지요. 단지 하나의 미디어 변화에만 주목하면 안 되요. 필리핀 이주자 부모와 그 자녀들이 맺는 관계 위에 서 있는 통합된 구조로서 폴리미디어의 전반적인 결과를 이해해야지요. 저렴한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이 분리로 인한 부정적인 이슈들을 해결할거라고 기대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지요.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참여한 자녀들이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도래 이후 부모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보고했어요. 커뮤니케이션의 양 쪽 끝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서로를 통제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가를 살펴야 해요. 미디어는 관계 속의 상연이자, 경험으로 포함되어 있어요. 마닐라의 한 자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요. "부모님들은 절대로 저에게 다가오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걸요. 저는 항상 저를 지키거든요. 이메일을 쓸 때면 항상 답장을 늦게 해요. 오늘 이메일을 읽어도, 답장은 다음 주에 하는 것이지요. 종종 아버지가 저를 들들 볶고는 해요. '너 답장이 없구나. 우리가 니 부모가 맞기는 맞는거니?'" 반대로 런던에 있는 한 어머니는 이메일을 선호하는 이유가 매일 술 먹고 돈을 요구하는 자녀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요. 그 자녀는 반대로 어머니에게 모성을 자극하기 위해 폴리미디어를 활용해요. 다시 우리는 어떤 미디어를 대인 관계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와요. 동시에 이 현상을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 국면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고요. 이 사례에서는 초국적 이주와 그 결과가 되겠지요. 초국적 이주 외에도 폴리미디어와 연관되어 우리의 삶을 조형하는 역사적 국면은 다양해요. 연구자들은 Qiu (2009)의 Working-class Network Society를 예로 들어요. 도시화가 진행되는 중국에서 내부 이주자, 은퇴자, 실업자, 영세자영업자 등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저소득계층 공동체의 노동과 삶이,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카페, 모바일 폰 등의 기술적 조건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파고든 연구이지요. 폴리미디어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이론적 개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과 유리되어 개념 그 자체만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나가며 당장 제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용이한 개념이라 흥미롭게 읽었어요. 미디어 이론이나 문화 연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이론의 적합성이나 내적인 합리성을 따지고 들 깜냥은 되지 않는데, 연구에서 기술하는 폴리미디어 현상이 두드러지는 사례가 한국이라 느끼다 보니 이것저것 막 떠오르더라고요. 당장 조국 사태만 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SNS를 통한 법무부 장관의 과거 자기 현시, 사회 참여, 언론 활동과 자녀 교육 매니지먼트 사이의 괴리가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을 자아낸 지점이 있으니까요. 소개글에서 생략한 한국의 문화적 특징도 얽혀들고 말이지요. 어포던스 관점은 한국 식자층 담론에서 자주 유통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래도 전공 영역에 따라 익숙하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저는 교육학 중 상황학습(situated learning)을 다루는 문헌에서 처음 접했었어요. 예전에 정리했던 동기(motivation) 이론에서도 사람 - 행위 혹은 사물 사이의 결합체(nexus)를 언급했었는데 그 당시 어포던스 개념을 접해서 머리 속 멧돌을 굴렸던 기억도 나네요.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다 포괄하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으로 지각된 어포던스라는 관점으로 확 축소해버리는 것 같다는 말이지요 흠... 2014년에 제시된 이론적 관점이니 상당히 따끈따끈해요. 대인 관계망 속에서의 미디어 구성(configuration)을 둘러싼 협상 과정은 보다 자세히 파고들 여지가 많아 보여요. 본문에서는 협상이라는 용어만 쓰지 않고 영향력(power), 통제, 변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저는 이러한 다원적인 접근 방법이 맞다고 생각해요. 관계 속에서는 수많은 전략들이 약동하거든요. 이 전략들은 항상 의식적이지 않으며, 성찰을 통해 그 상을 그려내기 전에 다른 국면으로 확 전환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지요. 오늘 누군가에게 카톡으로, 문자로, 쪽지로, 전화로 연락하기 전에 이 글을 읽으셨다면, 한 번쯤 내 행동의 의미와 이유를 돌이켜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각주 1) 저자들은 전지구적 남부에서의 이민에 초점을 두지만, 최근의 UN 보고서는 이민의 경로가 남부 -> 북부 일변도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2) 수렴 현상에 대해서는 구밀복검님이 탐라에 종종 잘 설명해주셨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셔요. 3) 미디어 생태학은 예전에 다른 글 ( https://kongcha.net/?b=3&n=6713 )에서 언뜻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 끌어왔던 정의는 '사람의 심리나 사회조직의 방법을 그 문화 특유의 정보 유형의 산물로 보는 학문'이었어요. 당시에는 포스트만의 정의를 끌어왔지만, 아마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학자는 마셜 맥루한이 아닐까 싶네요. 4) 보다 자세히 적자면 어포던스는 물건 혹은 환경이나 사람 사이의 특정한 관계에 따라 제시 가능한 사용, 동작, 기능의 연계 가능성을 가리키는 개념이에요.. 이 가능성은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지각된 어포던스를 중심으로 행위하면서 살아가요. 우리가 살면서 축적한 물건의 쓰임새에 대한 이해가 다른 물건의 쓰임새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고, 물건을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관점을 고려하여(그러니 자연스레 UI / UX 개념과 이어지고) 제품을 만들지요. 어포던스 간의 위계에 대해서는 신경망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듯한데, 어려워서 아직은 정리를 못하겠더라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George Lakoff. (2014). Mapping the brain's metaphor circuitry: metaphorical thought in everyday reason를 참고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5) 저는 한국의 미디어 생태계를 들여다보기 딱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 주변을 둘러볼 때 한국 같은 경우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에서 세대 간 큰 차이가 있는지 갸우뚱해요. 유튜브 이용 층의 연령 분포 자료나, 송가인에 대한 열광이 보여주는 고령층의 온라인 팬덤 활동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양적인 접근을 넘어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를 제시하지 않나 싶네요. 6) 구글 검색을 통해 나오는 remediation의 정의는 이보다는 훨씬 넓네요.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연관을 맺고 있고, 그것의 새로운 이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듯해요. https://mitpress.mit.edu/books/remediation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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