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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09 11:13:41
Name   눈부심
Subject   메갈리안..
메갈리안을 한 번 둘러봤을 때, 두 번 둘러봤을 때, 세 번 둘러봤을 때 다 느낌이 달라요. 오늘 제가 메갈리안을 세 번째 둘러봤답니다. 오늘 글은 모든 걸 내려놓고 쓰는 것이라 특정인이 등장합니다..

메갈리안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얼마 전 저쪽 커뮤니티 피지알을 통해서였어요. 링크를 따라가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베같은 더러운 커뮤니티는 남성들의 전유물에서 그치고 말지.. 란 아쉬움이 정말 컸습니다. 여자가 다 천사인 건 아니지만 여자들은 저런 모습 안 보였음 좋겠다, 아쉽다 이게 저의 첫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맥심잡지의 트렁크사진을 계기로 메갈리안이 다시 대두되었어요. 그 글타래에서 저는 트렁크 속에서 맨살을 드러내 놓고 발목이 묶인 채 갇혀 있는 여자 사진을 보면 강간이 떠오른다고 댓글을 달았어요. 어떤 분이 왜요?라고 물으셨죠. 이때 너무너무 놀랐습니다. 여성들이 가지는 강간에 대한 공포는, 제아무리 성이 다른 남자일지라도 '그럴 수 있지'라고 공감되는 상식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그 분은 제게 메갈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셨어요. 이 때 저는 또 한 번 놀랐답니다. 내가 단 댓글내용에 비추어 내가 여자일베들을 옹호하리란 의심이 들어 사상검증이 필요했단 말인가. 모든 남성도 아니고 나쁜남자 대해 강간의 공포를 느끼면 메갈리안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단 말인가.. 어찌 이럴 수가 있지.. 이 때의 글타래는 심사가 고약한 일개 회원분과의 해프닝이라고 가벼이 넘겼어요. 그런데 운영자분께서 그 분에게 권고댓글을 공개적으로 다시자,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감정의 짐인데 그 분 기분 많이 나쁘시겠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운영자분께서는 커뮤니티의 건강을 위해 제재하신 것이고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마땅히 그러실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개인인 제게는 매우 고마운 일이지요. 그에 더해 글타래의 당사자인 제가 나서서 죄송한 마음을 표하면 더 건강한 커뮤니티가 될 거란 생각에 권고 받으신 분께 쪽지를 드렸어요. '저는 딱히 갈등을 겪는 것이라기보다 서로 의견을 개진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긴 글타래정도로 생각했는데 운영자님께 권고받으신 건 제가 죄송하게 됐습니다. 혹시 제 댓글내용에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면 해프닝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생각해 주시길 바래요.' 이렇게요.

그리고 삼공파일님께서 글을 올리셨고 그 글타래에 나온 링크를 따라 메갈리안을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됩니다. 이 땐 남성성기를 지칭하는 희대의 온갖 욕들을 신세계처럼 경험하고 룸싸롱에 가보았다던 게시자의, 룸녀들을 짠하게 바라보던 시선들 밑에 성을 사고 파는 남녀를 모두 통들어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을 보게 되었어요. 그치만 구밀복검님께서 링크 걸어주신 패러디글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제대로 안쓰럽기도 하면서 이게 일베와 다를 것이 무엇이냔 양가감정을 느꼈고 전체가 나아가야할 길은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저는 열심히 댓글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오늘 전, 메갈리안이라는 커뮤니티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다른 사이트에서 메갈리안 펌글을 목격했어요. 아마 전에도 이런 펌글이 가끔 있었지만 제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http://www.megalian.com/search/94513
그래서 드디어 세번째 메갈리안을 방문하게 됩니다. 링크를 따라 가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댓글들을 읽으면서 '일베 소리듣는 너네들이 할 줄 아는 욕이 저것밖에 없냐!'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메인페이지를 클릭 해 지난 번 보다는 꼼꼼하게 게시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통통 뛰는 젊은여자들인 것 같은 이들의 멀티오르가즘에 관한 글이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대한 글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게걸스럽게 떠들고, 주거니 받거니 욕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이네들의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운 거예요..  물론 남자들이 하는 '짓거리'를 똑같이 재현해 보이겠다는, 미러링이라고 하는 도발적인 의도의 걸걸한 욕지거리가 대부분이지만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남자랑 똑같은 수준으로 여성의 욕구를 세상 편하게 재잘재잘 떠드는 온라인글을 본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저런 장면을 본 적이 없어요. 어쩌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속상해하며 스스로를 저주하는 주부님의 한탄소리는 들어봤지만요. 그렇게 멍석을 깔아놓고 신나게 판을 즐기고 있는 그네들이 거의 사랑스러웠어요. 제가 쟤네들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이므로 다들 내 새끼일 것같은 모성애가 느껴지기도 했어요. 물론 인상찌푸려지는 내용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절 압도한 건 여전히 그네들에 대한 안쓰러움이었어요. 그리고 그네들은 곧 저이기도 하고요.

아.. 이제 뤼야님이 왜 탈퇴하셨는지 알겠더군요. 어제 메갈리안을 일베라 폄훼하고 잔뜩 깎아내린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일베와 메갈리안이 대결구도를 보이면 새누리가 낭패스럽겠네요~라며 흥미로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어요. 그래서 이 메세지를 전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평생을 살면서 성적으로 함한 꼴을 당하거나 기억에 남는 성희롱을 당했다거나 하는 기억이 거의 없어요. 여고 다닐 때 학교 파하고 가는 길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까까머리 남자놈이 제 가슴을 치고 지나간 기억은 있어요. 그 때 전 세상이 다 폭발했으면 싶을 정도로 분노에 떨었죠. 마찬가지로 여고생이었을 때 친구들이랑 영화보러 갔다가 시커먼 극장에서 저보다 몇 칸 동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제게로 쭉 뻗어 허벅지를 꾹꾹 찔러대서 친구들이랑 극장을 나가버린 적이 있어요. 그리고 풋풋한 대학생이었을 때 버스에서 어떤 아저씨가 제 엉덩이를 스윽스윽 만져서 제가 일시 얼어버렸다가 용감하게 째려본 기억이 나구요. 이것 외엔 화나는 성희롱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저는 운이 좋아도 상당히 좋은, 탑 몇퍼센트에 속하지 싶습니다. 모두 한국얘기예요.  

그리고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10여년 전에 한국에 계신 친정부모님을 방문하기 위해 저 혼자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했죠. 그 때가 명절이 낀 날이었던지 이미 버스는 만원이었고 자정이 되어 시골로 내려갈 방도가 없었어요. 그치만 명절이 끼었던 덕에 봉고차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해서 감히 의자에 앉기는 커녕 이미 사람들로 꽉 찬 의자들 아래 바닥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쭈그리고 앉아 시골로 향했답니다. 여자분도 계시고 남자분도 계시고.. 모두들 피곤한 얼굴로 닭장 같은 봉고차 안에서 숨죽여 실려 가고 있었어요. 제 앞 쪽에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몸이 점점 느슨해지더니 아예 코를 골며 근처 다른 여자분의 무릎에 뒷통수를 들이대고 세상 편하게 자더군요. 피곤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고 눕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그 좁고 숨막히는 곳에서 남자가 남의 집 여자무르팍을 제 베게라도 되는 양 편하게 베고 드러눕지는 않잖아요. 너무 졸리고 피곤한 나머지 자신이 얼마나 민폐가 되는지 모를 수도 있죠.. 그 여자분이 불만어린 소리로, 그치만 존댓말로 머리를 치워달라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남자가 '씨바...'이러면서 치우더군요. 그리곤 다시 제 무릎을 편안히 베고 다시 곯아 떨어졌는데 무서워서 머리를 치워달란 말을 못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어요. 그 남자가 잠이 깨서는 저 들으라는 듯이 '좀 미안하네..'라고 혼잣말을 하더군요. 저는 안 따지고 참으니까 좋게좋게 넘어가는구나.. 뭐랄까 큰 갈등을 초래하지 않은 자신이 현명하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 남자의 행동이 사무치게 폭력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절 한 대 친 것도 아니고 피곤에 쩔어서 좀 드러누워 간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의 대담함은 제 상식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례거든요. 그 "자신만만함", "대담함"이 허용되는 사회가 너무너무 폭력적인 거예요. 이런 자신만만함, 대담함, 무신경함은 한국 여기저기에서 목격되는 일이고 도시보다는 봉건적일 확률이 높은 지방에선 더 심해요.

그리고 떠오른 다른 한 가지는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경험이었어요. 남초사이트에 잘 안 가던 저는 무지하게 규율이 깐깐한 다른 남초토론장에 자주 글을 올리곤 했어요. 거기에 계시던 다른 남성회원분이 재밌있는 글을 올리곤 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성욕이 들끓는다고 했던가.. 여튼 비슷한 표현을 하셨는데 제게는 너무 신선한 거예요. 여자인 저로선 공개토론장의 자유게시판일지라도 스스로의 성욕이 어떻단 이야기를 꺼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 분의 자연스런 멘트가 너무너무 신선했어요. '와.... 남자분들은 이런 말을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편하게 하시는군요. 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라면서 그런 남자들의 자유를 경탄해 마지 않았죠. 이건 '나도 뜨거운 성욕 있거든!'하고 풀어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강제한 적이 없는 금기를 갑자기 깨닫고 너무 신기해한 거였어요. 그런 자유를 저는 누려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런 자유가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그래서 메갈리안의 글들을 읽으면서 커다란 해방감을 느꼈어요.

제가 사과쪽지를 보냈다던 그 분(답이 없으신^^)과 봉고차에서 유감없이 위용을 자랑했던 남자가 생각나면서 갈등을 키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만 생각한 옛날의 저와 며칠 전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뤼야님이 탈퇴하신 게 공감돼요. 남자분들은 그런 여성을 보내선 안 돼요. 저는 이 글이 저격성을 띠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단 걸 알아요. 그치만 상관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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