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4/25 18:45:02
Name   Jace.WoM
Subject   (스포일러) 가슴과 머리로 보는 엔드게임

가슴 )

시리즈의 마무리로서의 성의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습니다.
프리가, 하워드 스타크등과의 씬도 그랬지만 심지어 제인 포스터가 다시 등장할줄이야

마블은 이후에도 MCU를 이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차기 시리즈들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이 영화에 부여할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오로지 여태까지 써온 서사에 대한 예의에만 집중했습니다.

쿠키 영상도 없고 차기작 떡밥도 없으며 페이즈 4의 메인 히어로들인 가오갤 닥스 스파이더맨 캡마 블팬의 비중은 정말 쥐똥만큼밖에 안되고
그나마 개중에 제일 많이 나온 캡틴 마블도 작품내에서 어떠한 서사도 없이 그저 쌈박질만 몇번 할 뿐입니다.

이런것까지 했네 싶을 정도로 자잘한 오마쥬가 많아 관객들을 보는 내내 향수에 젖고 즐거워 하게 만듭니다.
인물들의 마무리도 감동적이고, 무엇보다도 처음에 말했던것처럼 여태까지 고생한 히어로들과 팬들에 대한 과분할정도의 성의가 느껴져서 심정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고 영화관에 나오면서 꽤 깊은 여운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 )

그러나 사실 차갑게 머리를 식히고 이 영화를 개별적인 작품으로 바라보면 거의 하자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시리즈물을 한편만 똑 떼어놓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하다 뭐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라
그냥 영화 자체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말 핵심적 내용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플롯을 볼때 이 영화에서 어벤저스 대원들이 맞서는 상대는 타노스가 아닙니다.

현재의 타노스는 영화 10분만에 토르한테 모가지가 썰려 퇴장하고
과거의 타노스는 폭격으로 시작되는 파이널 시퀀스 전에는 아예 어벤저스 멤버들에게 안중에도 없는 존재거든요

영화에서 대원들이 맞서는 상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포함한 인류의 절반을 일순간에 허망하게 잃은 패배감과 상실감이고
실제로 5년 후 시퀀스를 보면 이에 대해 묘사하려는 노력이 어느정도 보이긴 해요

근데 그 묘사가 솔직히 깊이가 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너무나도 가볍고 헐겁게 묘사 되어 있죠.

상처치유 모임에 나간 캡틴을 보여주는 씬에서 캡틴이 같이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보였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별로 그래보이지 않았죠. 자조적인 대사를 치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그냥 괴로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영웅입니다.

토르의 시퀀스는 그 위엄있고 완벽하던 토르마저 상실 후 5년이라는 세월동안 이렇게 망가졌다!
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싸구려 유머로 떡칠되어 프리가를 만나기전까지 그 텐션을 유지하고

가족을 잃은 호크아이가 맛탱이가 가서 범죄자들을 사적으로 처단하는 파트는 로드 중령의 대사로 나왔을때도 붕 떠보여서 웃겼는데
아예 한 파트를 일본 로케까지 해가면서 거기다 투자했고 영화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도 이 장면은 혹평일색이죠. (미쟝센이나 연기-레너말고-는 좋았습니다.)

이렇게 5년간 상실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은 히어로들을 구원한것은 짜잔!하며 양자 세계에 같혀 있다가 쥐느님덕에 우연히 빠져나온 스콧 랭입니다. 뭐 전문가를 찾아가네 마네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모든걸 다 해결한거나 다름 없죠.




왜 이렇게 아무런 깊이 없는 플롯이 탄생했냐면... 이 영화에서는 극초반 이후 어떠한 요소를 의욕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분노와 복수를요. 영화 제목은 어벤저스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복수심을 불태우며 분노하는 캐릭터는 딱 셋 뿐입니다.

1. 현재 타노스의 모가지를 날릴때의 토르
2. 눈앞에서 비전을 잃고 금방 소멸했다가 살아나자마자 포탈타고 와서 과거 타노스를 만난 완다
3. 사적제재 하고 다니는 호크아이

감독은 이 분노와 복수심이 거세된 자리를 감독은 정말 철저하게 가족애로 채웁니다.

원래 히어로 영화 - 헐리우드 영화 - 대자본 블록버스터에서 가족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 하고
실제로 마블 영화에서도, 어벤저스 시리즈에서도 형제애나 어벤저스 멤버들 사이에서의 가족같은 유대에 대해서 많이 다루긴 했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해요

영화의 시작을 호크아이의 가족 씬으로 시작해서

가족 포츠에게 보내는 토니의 영상 메시지
모가지 썰리기 직전 타노스의 네뷸라에 대한 부정
캡틴의 상담치유 모임 참가자의 입을 빌린 가족애 찬가
블랙 위도우의 어벤저스에 대한 가족애
양자 세계에서 나온 스콧랭와 딸의 감동 재회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헐크의 가족애에 대한 연설
딸과 포츠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토니의 가족애 + 피터 사진 한번 쳐다봐줌
과거로 가서 엄마를 다시 만난 토르
과거로 가서 아빠를 만난 토니
보로미르에서의 블랙 위도우의 어벤저스에 대한 가족애 2
헐크의 핑거스냅 이후 로라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서 보여주는 가족회합
포탈에서 슈리와 같이 나오는 블랙 팬서
쓰러진 어린 스파이디에게 건틀렛을 받아서 길을 뚫는 A포스의 모성애
뒤지면서 타노스를 바라보는 에보니 모
아이언맨의 조촐한 장례식에서 가족단위로 클로즈업 되는 히어로들
아이언맨이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대놓고 남긴 이야기

아마 빼먹은 장면도 있을겁니다 그 만큼 심하고 과해요
무슨 명절 가족 신파영화도 아니고 저 장면들 정말 다 100% 필요했던거 맞습니까?

어벤저스에서 분노 그 자체를 상징했던 헐크는 이번작에서 아예 등장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브루스 배너의 전투씬마저 헐크버스터를 탄 전작보다도 줄어들었고 가장 큰 복수심에 불타 타노스의 모가지를 친 토르는 가장 큰 백리쉬를 겪고 영화의 90%를 허접한 모습만 보여줍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작전에서 조차 자기 할 일 내팽겨치고 엄마한테 가서 질질 짜고 있어요.

분노와 복수가 아닌 소중한것을 지키고 되찾으려는 마음과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으라고 영화 마지막에 대놓고 나레이션으로 훈수하는 장면에선 어지간한 마블 팬이 아니라면 순간 내가 휴머니즘 가족 영화를 보러 왔나 하는 착각까지 들겁니다.

아마 감독은 영화 시작 10분만에 타노스의 모가지를 썰면서 동시에 히어로들이 분노와 복수심을 불태울 대상을 잃어서 의욕을 상실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은데, 과도한 과잉과 결핍으로 그 묘사가 별로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극 내내 긴장감도 없고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 너무 강했어요. 실패입니다.



여튼 종합적으로 어벤저스 엔드게임에 대한 제 평점은

가슴 : 5/5
머리 : 2/5

해서 평균인 3.5점 정도 될거 같네요.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125 일상/생각(스포 없음)결국 어벤저스 스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탄 11 오리꽥 19/04/26 3947 1
    6856 영화(스포) 김조광주 퀴어영화 후기 7 tannenbaum 17/12/30 7603 2
    1280 영화(스포) 마션 읽고 보고 하면서 느낀 점들 13 Azurespace 15/10/17 9097 0
    3361 영화(스포) 부산행 후기 4 Raute 16/07/26 3798 1
    9128 영화(스포) 엔드 게임 엔딩은 의도된 것이다? 28 우주견공 19/04/26 5366 0
    9266 영화(스포) 영화 '기생충' 개조식으로 짤막한 감상정리 해보려고요 18 미스터주 19/06/01 6232 7
    3526 영화(스포) 터널 - 애미야 국이 싱겁다 14 Raute 16/08/17 4878 0
    1360 영화(스포) 현전불가능한 대상에 대하여 : 베넷 밀러 <폭스캐처>(2015) 9 구밀복검 15/10/28 9658 2
    2104 도서/문학(스포)'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리뷰 5 Yato_Kagura 16/01/24 6284 2
    6244 문화/예술(스포)수명을 팔았다. 1년당, 1만엔에. 3 콩자반콩자반 17/09/07 7294 0
    556 영화(스포없음)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보고 왔습니다 18 사탄 15/07/10 6511 0
    9120 영화(스포일러) 가슴과 머리로 보는 엔드게임 9 Jace.WoM 19/04/25 3935 4
    12350 영화(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후기 (스포있음) 57 Cascade 21/12/15 4626 1
    7660 영화(스포있음) 미니어처일까? 디오라마일까? 영화 <유전> 2 Weinheimer 18/06/11 5406 1
    5583 영화(스포있음주의, 덕내주의) 가오갤1을 복습하며 쓰는 의식의 흐름 가득한 아무말 글 15 elanor 17/05/06 4909 5
    12545 게임(스포주의) Nerdlegame에서 느끼는 "신뢰" 6 dolmusa 22/02/25 3236 2
    14958 게임(스포주의) 뒤늦게 활협전을 하다가 내상을 쎄게 입었네요 3 겨울삼각형 24/10/04 647 1
    14024 과학/기술(아마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한 이유 15 매뉴물있뉴 23/07/09 2943 12
    8127 스포츠(아시안겜 뽕뽑기) 아마추어 전술기: 자 2제 2차원 8 다시갑시다 18/08/28 4246 6
    4938 꿀팁/강좌(아이폰) 메신저 앱 리뷰 18 elanor 17/02/20 4900 0
    6084 스포츠(야구) 김재환과 금지약물과 메이저리그 40 kpark 17/08/09 5979 3
    1148 문화/예술(야자) 이 할머니의 패션 43 눈부심 15/10/01 12653 0
    1455 영화(약 스포주의) 더 랍스터 - 결핍과 결합의 묘한 앙상블 4 레이드 15/11/04 8532 0
    1208 영화(약 스포주의) 마션 - 리들리 스콧의 유쾌하고도 묵직한 메시지 6 레이드 15/10/08 6090 0
    878 영화(약 스포주의) 베테랑 - 에피타이저가 너무 맛있어도 8 레이드 15/08/31 394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