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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04 12:56:14수정됨
Name   어제내린비
Subject   그녀는 나를 좋아했을까?
저는 모태솔로 입니다.
긴 시간 동안을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문득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혹시 저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은 친구가 있네요.
물론 당시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죠.


대학교에 다닐 때 였습니다.
그곳은 이공대만 따로 분교가 있는 대학이었고, 이공대 특성상 여자는 매우 적었습니다.
저희과만 해도 총원 144명중 여자는 10명 뿐이었죠. 그 열명중에 한명 입니다.
이 친구 K는 외모가 출중한 편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정말 좋았습니다.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이라 모두와 두루두루 친했습니다.
저도 그런 K가 마음에 들었지만.. 이성으로서 좋아했던건 아니었어요.
그 당시 저는 저 따위를 좋아해 줄 여자는 없다고 생각해서 제가 좋아해봤자 소용이 없을거라 싶어
어떤여자도 이성으로 보지 않았거든요.
1학년때는 그리 많이 친하지도 않았어요.
마주치면 인사하고 가끔씩 시덥지 않은 얘기도 주고받긴 했었지만 그뿐이었죠.


우리 대학은 가을에 체육대회를 했어요.
아마도 그때 과 사람들이 저를 조금 달리 보게 됐을거에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때도 저는 제법 뚱뚱했었어요.
얼굴도 별로에 키가 엄청 큰것도 아니고 뚱뚱하기만 했으니.. 성격 무난한 것 빼고는 별거 없었거든요.
저는 농구동아리에 가입 해 있다는 이유로 체육대회때 농구 대표로 뽑혔어요.
그리고 경기에 나가 눈에 확 띄는 활약을 했죠.
후보선수들 뛰게 해준다고, 짧은시간동안 모든 힘을 쏟아붓고 교체로 나왔어요.
블럭슛에 이은 속공 레이업 득점, 스틸에 이은 3점 슛, 수비를 두명 제치고 슛 등등..
겨우 10분정도 뛰면서 혼자서 20득점 넘게 했어요.
그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저를 조금이나마 달리 보게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거1
2학년이 되면서 남자동기들은 군대를 가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복학생 선배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저랑 친해진 복학한 형이 뜬금없이
"만약 너랑 사귄다면 여자친구로서 K 어떨것 같냐?" 라고 물었어요.
"훌륭하죠. K 성격 정말 좋아요."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혹시 K가 물어봐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형은 평소에 그런얘기 하고 다니지 않아서 정말로 뜬금없었거든요.


근거2
3학년이 되고.. 저학년 우선 배정 정책 때문에 기숙사에서 밀려나서, 걸어서 10분정도 걸리는 곳에 자취를 하게됐어요.
K도 역시 기숙사 탈락을 했고, 버스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집에서 통학을 하게됐어요.
K는 학기초에는 집에서 통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왔다갔다 하기 귀찮다며
저랑 같은 건물에서 자취하던 과 친구 L의 방에 얹혀살면서 거기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수업 들으러 가는길에 가끔 마주쳐서 K와 L과 같이 얘기하면서 가는날이 생겼어요.


근거3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어느날 부턴가는 L은 없고 K만 마주쳤어요.
K와 L은 수업 시간표가 같고, 같은집에서 다니니까, 보통은 같이 다니는게 정상일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했지만.. 그때는 별 신경을 안써서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렇게 어느날은 K랑 얘기하면서 같이 수업 들어가고..
어느날은 마주치지 않아 강의실에 도착해서야 얘기를 했는데..
뒤에서 저를 불렀는데 제가 못 듣고 가버렸다더라고요.
제가 걸음이 더 빨라서 따라잡지도 못했다며 아쉬워 했어요.


근거4
4학년이 됐고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습니다.
3학년 때까지는 비슷한 시기이긴 했어도 조금 비껴가긴 했는데..
4학년때는 제 생일이 시험기간 안에 들어가버렸어요.
그래서 오늘 생일인데 시험때문에 맘편히 쉬지도 못한다고 푸념을 했더니 제 생일인줄 몰랐다면서 K가 파티하자고 하더군요.
다음날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거절했지만.. 제 자취방으로 K, L, C가 쳐들어 왔어요.
준비한게 없어서 음식은 배달시키고.. 여자 셋에 둘러쌓여 강제로 파티를 했네요.
그와중에 K만 선물을 준비 해 왔더군요.
K에게 선물로 작은 곰돌이 인형을 받았습니다.
별로 할것도 없는 제 자취방에서 뭐하고 놀았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무척 즐거웠었다는 기억은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 졸업을 하게 되었고, 그때까지도 K와 저는 그냥 친구였어요.
졸업식 날 K를 봤습니다.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제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빌어주더군요.
그 날 본 모습이 마지막이었어요.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직 K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네요.
이렇게 K가 저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는 걸 보면..
단지 제 마음을 제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 K를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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