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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1/28 22:55:17
Name   化神
Subject   [서평]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 최고요, 2017
최근 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주제는 집 값이다. 언제부터인가 집은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일산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미 집 값이 안정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다면 일산에서 터를 잡고 적당한 장소에 위치한 적당한 크기의 집을 구매해서 그곳에서 평생 살고 싶다. 이런 나의 소망을 들은 사람들의 절반은 '아직 네가 어려서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 하는 반응이고 다른 절반은 '그러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 않지.' 하는 반응을 보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집을 갖기 쉽지 않은듯 하다.

몇 년 전부터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이다. 나는 네이버 웹툰 '유미의 방' 을 통해서 셀프 인테리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비록 나는 웹툰 작가처럼 금손도 아니고 미적 재능이 있는것도 아니고 셀프 인테리어에서 등장하는 용어와 개념에 통달할 정도로 열정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몇몇 어플들과 책을 찾아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내 방과 집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플은 제품 카달로그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고 인터넷이나 블로그들은 완성된 모습 위주로 보다보니 내가 따라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들이라 기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잘 정리된 책을 찾던 때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스스로를 공간디렉터라고 칭한다. 그는 앞서 말한 웹툰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던 시절 '하루를 살아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면서 그 기록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셀프 인테리어 경험을 쌓는다. 블로그를 통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의뢰를 하나 둘 해결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고 현재는 공간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보니 마침내 프로가 되었다고 하면 과한 칭찬일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비록 하루에 절반 이상은 자신의 일터와 길에서 보내지만 대략 1/3 은 집에서 생활한다. 어쩌면 1/4 까지.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지만 그 집과 자신의 삶이 연동되어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것 같다. 대부분은 이사할 때 꾸며놓은 모습 그대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변화를 주는 부분은 적은 편이다. 어쩌면 내가 사는 공간을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바꿔나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더 나아가 그런 생각조차 해본적 없어서 그런것 같다. 하지만 알쓸신잡을 통해 유명해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지금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저자는 처음 상경하고 어쩔 수 없이 허름한 월세방에서 생활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월세방을 조금씩 꾸며갔던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멋진 모습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태반일테지만, 전혀 그럴필요가 없다고 격려한다. 처음에는 많이 실패하겠지만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을 수정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의 모습을 구체화시키면 된다. 내가 사는 공간이니 내 마음에 들어야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할 건 없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시작은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을 정리하고 깔끔해진 상태를 경험한다. 그리고 어떤것을 채우고 어떤 것을 비울것인지 생각하고 공간의 작은 부분부터 고쳐본다. 인터넷에서 편집샵 등을 살펴보면서 어떤 소품이 자신의 취향에 적합한지, 이러한 것들이 채워진 공간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그 때 해야지...' 라고 모든 여건이 갖춰진 후에 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그 동안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공간을 누리지 못한다고 안타까워 하면서 비록 내 집이 아닌 전세나 월세를 살기 때문에 100% 원하는 공간을 만들지 못 하더라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감각으로 바꿔나갈 것을 권한다. 저자가 만들어내는 행복은 집이 멋있게 꾸며질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찾아온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책이라서 그런걸까, 표지에서 느낄수 있는 색감부터 차분하고 평화롭다. 이러한 분위기는 문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사근사근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다면 나도 용기를 내서 시도할 수 있을것 같은 분위기다. 읽는 동안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저자의 성향을 느낄수 있는 책인데 굳이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다보니 부담스럽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책과 인터넷 블로그들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만든 공간의 사진을 책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삽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 편 독자들에게 따라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시킨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에게 의뢰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그건 이 책이 원하는 바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투르더라도 본인이 직접하고 자기가 배관이라던가 전기같이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만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식으로 최대한 타인의 손길을 덜 타게 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많이 입혀보자.

그리고 책 말미에 저자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는 온-오프라인 공간들에 대한 리스트가 있다. 이 리스트를 따라가면서 계속 보는 눈을 높여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이 책은 셀프 인테리어의 장점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아파트 리모델링처럼 큰 일이 아니라 내 방의 책장을 정리하고 커튼의 색깔을 바꿔보고 전등을 바꿔보면서 소소하게 변화를 주는 것, 그렇게 해서 누릴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먼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책장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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