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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1/18 17:35:13 |
Name | 제로스 |
Subject | 국가유공자등록거부처분취소 소송의 경험 |
전화로 보훈처에 재심신청을 해서 6차례 거부되었던 신청이 11년만에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보훈처의 국민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누구는 전화로도 할 수 있는 일을 무능한 변호사를 만나 다방으로 노력해봤으나 결국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할아버님에 대해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어디까지나 의뢰인이십니다. 제 할아버지가 아니세요. 사실 국가유공자등록거부처분을 다투는 의뢰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의뢰인과 이야기하면서 이분은 진짜 유공자시구나 마음깊이 동감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소위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으로 할아버님은 담당변호사인 저를 넉넉히 설득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판사를 설득하지 못했지요. 할아버님은 6. 25. 당시 임진강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허벅지, 팔, 머리에 부상’을 입고 만성 뇌경막하 혈종, 뇌경련성 질환을 입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하였습니다. 6. 25. 당시 개성송도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중학생이었던 할아버지는 6. 25. 전쟁 발발 후 공산군에 의하여 신의주까지 연행되었다가 탈주하여 다시 개성으로 왔으나 이미 개성이 북한군에 점령되어, 서울에 있는 작은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역시 만나지 못하고 홀로 겨우 대구까지 피난가서 단신으로 걸인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학군단에 배속되었고, 당시의 군번은 안타깝게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군단으로 편성되어 낙동강의 다부동 전투에도 투입되었으며 이후로는 군경 합동으로 지리산, 마산, 수원의 공비토벌에도 동원되었습니다. 학도병으로 수원에 있던 중, 당시 전쟁 중 상황이 극히 좋지 않아 학도병에게 제대로 식량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 나라를 지키기 위해 1953. 당시 나이 18세로 군 입대할 나이가 되지 않았으나 나이를 속이고 정식으로 군입대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53. 봄 경 김포에서 성명 ***, 1933. 5. 4. 생으로 생일을 거짓으로 신고하여 육군에 입대하게 되었으며 8240유격대에 배속되었습니다. 8240유격대는 일명 KLO국제유격대로서 한국군으로 군번이 없었으며 이전까지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하다가 2010.부터 인정되게 된 특수부대입니다. 8240유격대에 배속되어 태청도에서 훈련을 받다가, 다시 강화도의 유격대 대대본부에서 훈련을 받은 뒤에 1953. 8. 강화에서 개성쪽으로 진입하는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함께 있던 전우들에 대해서도 다른 기억은 없으나, 당시 소대장은 김태진 소위로 할아버지와 군 입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다. 김태진 소위는 45인 무명용사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김태진 소위가 어디에 언제부터 살았으며 자기를 많이 봐줬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걸 무마해줬다는 거죠. 할아버지는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어 중공군과 전투가 벌어졌으며 근처에 포탄이 떨어져 의식을 잃고 크게 다쳤으며, 온 몸에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1년 넘게 의식불명인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는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억 뿐 어떻게 부상을 입게 되었는지, 어떻게 병원에 후송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상처를 보아 포탄 파편에 의한 것이라 추정할 뿐입니다. 할아버지의 상처는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라 포탄 파편에 의한 강한 화상 등이라는 의사진단도 있었습니다. 천만다행히도 할아버지 수년간의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었으나, 기억도 혼미하고 의식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의식불명이던 할아버지를 수도육군병원에서는 군번A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자기 자신의 군번이 기억이 안 났던 할아버지는 군번이 바뀐 상황을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부상 당시 다른 전우의 군번줄과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일 뿐입니다. 당시 할아버지의 동생이 수도육군병원에 병문안을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퇴원 후에 재향군인 일제신상 신고를 할 때 병원에서 확인되던 군번으로 신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1956. 할아버지의 작은 어머니가 동생과 함께 수도육군병원에 찾아왔었다는 진술도 있습니다. 1954.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하여 3년 8개월가량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불명확한 기억 속에서도 일관성 있게 자신의 복무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며 복무한 부대의 훈련 지역, 작전 지역에 대해서도 한국전쟁 기록과 일치되는 진술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중학 시절부터 전쟁에 휘말리고 뇌손상 등으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영악하지도 못하고 이미 그때 나이가 78세의 고령이었습니다. 진짜 기억도 잊지 않으면 다행일 판에 없는 사실을 꾸며 거짓 진술을 하고 다른 사람의 군번이나 수십년 전의 치료기록을 입수할 능력이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군번이 존재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재향군인회에 등록한 군번 A는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름이 다름)이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사실조회,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그 군번 A인 사람의 병적기록표와 병상일지를 발급해달라 했는데 타인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할아버지의 병상일지 등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재향군인 일제신상신고필증에는 할아버지 이름이 있지만 그 군번은 할아버지의 군번이 아니므로 할아버지의 진술만으로는 믿기 어렵다고 국가유공자등록거부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의 흉터는 일반적인 사고등으로는 생길 수 없다는 진단이 있었는데도. 이정도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있었고, 다른 군번이라 해도 할아버지 이름으로 재향군인일제신상신고를 마쳤는데도.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기나 할지 모르겠군요. 씁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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