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1/28 15:56:12
Name   메존일각
Subject   한가로운 일요일, 집주인과의 푸닥거리
* 집 주변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짜증이 나서 집주인에게 화풀이 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2층에 사는 나는 며칠 간 지방출장을 다녀와 토요일 새벽에 귀가했다.
피곤에 쩔어 있었고 어제 오늘 빨간 날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일요일인 오늘 윗층에서 온갖 공사 소음이 들린다.
아내의 얘기를 통해 3층 세입자 분들이 엊그제 이사를 나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할 생각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를 왜 하필 일요일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밤새 틀어놓았던 수돗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보일러가 얼어서 뜨거운 물만 안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변기물을 포함해 찬물도 안 나온다.
얼마 전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서 기사가 다녀간 터라 며칠째 보일러를 펑펑 틀고 물도 졸졸졸 틀어놓고 있었다.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문제 없이 물이 흐르는 걸 인지한 상태였다.
신경이 많이 쓰여서 헤어드라이어기를 들고 보일러 연결 호스 부분들을 30분간 데웠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물이 안 나온다.

아내에게 집주인에게 전화해보라 했다. 3층 공사랑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를 지하-1층이 함께 쓰고, 2-3층이 함께 쓰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지하에 살고 있었다. 정확히는 언덕 중턱에 위치한 집이라 지하 집의 반대편은 지면과 닿아있는 구조지만.
현명한 아내는 집주인과 연락하고 나서 보일러회사에도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은 3층 공사하는 기사님에게 내가 사는 2층에 내려가도록 한다고 했고,
보일러회사는 찬물까지 안 나오는 건 수도관이 터졌거나 일부러 막아놨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10여 분이나 지났을까, 윗층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화장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물을 잠가놨어요" 한다. 역시.
집 구조를 설명한 후 "물을 써야 하는데 안 나옵니다." 했더니,
"오늘 물을 안 쓰시거나 필요할 때만 밸브 잠갔다 풀었다 해드리는 건 안 됩니까?" 한다.
"설거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이용 못해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니까 10분 뒤에 밸브를 풀어드리겠단다.
"일요일에 사람들이 있는데 물을 쓰지 말라는 게 말이 됩니까?" 하니까
"일 나가신 줄 알았습니다." 하네.

일요일에 일? 휴일에 출근하는 분들이 물론 있지만 그걸 상정해서 일을 진행하나? 날짜는 당연히 집주인이 정한 거겠지.
이쯤 되니 눌러놓고 있었던 게 터지기 직전. 집주인에게 내가 전화를 했다.

1. 물이 안 나오는 원인을 알고 보니 수도 밸브를 잠갔기 때문이었다. -> "아 그랬냐, 몰랐다."
2.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화장실 공사를 하신다던데 꼭 휴일에 하셔야 했냐. -> "모레 새집이 이사를 온다. 공사 이제 다 끝난다. 조금만 참아라."
3. 반드시 공사를 해야 하는 사정이면 최소한 얘기 한 번만 해주셔도 되지 않느냐. -> "미안하다."

전체적인 뉘앙스가 별로 미안하지 않고 공사 다 끝나가니 참아라 이런 투네.
끊고 나니 오전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30분간 생쑈한 것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다.
현관 문을 열고 계단통로에 대고 3층과 지하에 모두 들리도록 쩌렁쩌렁 악을 질렀다. (1층에는 현재 사람이 없다)

"아니 쉬는 날에 공사를 해야 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니 살 수가 없네."
"꼭 해야 되면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물 좀 쓰게 해주라고!"

적막이 흐르고 10분쯤 지났을까, 틀어놨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곧이어 윗층에서 기사님이 내려오셔서
"물 나오죠? 미안합니다. 3층을 막으면 2층 물도 안 나오는지 전혀 몰랐어요. 화장실 공사는 내일 하기로 했습니다."
"아뇨. 사장님은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사모님(=집주인)이 얘기를 안 해주신 거니까요."

내지른 악소리를 집주인이 듣고 기사님과 두 쪽에서 통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내한테 "이해는 하겠는데 꼭 소리 질러야 되느냐"고 야단 들으면서 이 일은 마무리됐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054 창작저기요, 제가요 26 열대어 17/03/02 3642 6
    7263 게임LCK도 슬슬 마무리네요. 이번 시즌 짧은 감상 5 Killy 18/03/22 3642 0
    8399 게임[LOL] 퐁부가 쏘아올린 작은 스노우볼 - 8강 1일차 장문 후기 2 Leeka 18/10/21 3642 2
    11176 창작괴물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4) 1 메아리 20/11/26 3642 4
    11457 기타IEM 카토비체 2021 결승전 우승 "레이너" 4 김치찌개 21/03/02 3642 0
    13386 육아/가정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세계관 최강자가 66 문학소녀 22/12/09 3642 71
    892 음악Yann Tiersen - Esther 5 새의선물 15/09/02 3643 0
    5100 음악하루 한곡 038. LiSA - 一番の宝物 2 하늘깃 17/03/07 3643 1
    5778 스포츠170612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추신수 시즌 9호 솔로 홈런,오승환 시즌 15세이브) 4 김치찌개 17/06/12 3643 1
    5931 IT/컴퓨터iOS캘린더앱 나눔 28 jk25d 17/07/12 3643 5
    6102 일상/생각중고등학생 시절 사교육 받은 이야기 12 공대왜간공대 17/08/13 3643 5
    7616 스포츠현재까지 KBO 외국인 용병 성적표 6 손금불산입 18/06/02 3643 2
    8900 음악[클래식] Telemann Fantasia No. 1 in C major ElectricSheep 19/02/23 3643 1
    11713 도서/문학불평등주의체제의 역사, <자본과 이데올로기> 완주했습니다! 3 21/05/23 3643 22
    12587 경제음식진공밀폐기 팝니다 20 흑마법사 22/03/07 3643 0
    13007 과학/기술쿨러에 관하여 (에어컨 아님) 21 매뉴물있뉴 22/07/19 3643 5
    11841 오프모임모객) 7/11 일 점심 평양냉면 54 even&odds 21/07/02 3644 1
    5157 일상/생각이사는 힘들군요. 11 8할 17/03/12 3644 2
    6574 일상/생각미국 고등학생 축구 진로문제 21 Liebe 17/11/11 3645 5
    7013 일상/생각한가로운 일요일, 집주인과의 푸닥거리 4 메존일각 18/01/28 3645 1
    8759 일상/생각나는 아직도 깍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5 swear 19/01/13 3645 2
    12901 도서/문학달의 뒷편으로 간 사람 [마이클 콜린스] 10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08 3645 16
    11730 사회자녀약취, 자녀양육자의 체류허가 8 私律 21/05/28 3646 9
    3941 IT/컴퓨터갤노트7 해외여행 대책이 공개되었습니다 2 Leeka 16/10/18 3646 0
    6047 음악Orchestral Jazz - 주류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재즈 9 Erzenico 17/08/03 3646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