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1/01 12:16:59
Name   1일3똥
Subject   오랜만에 어머니와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울한 얘기가 있습니다.
새해 밝은 기분을 해치기 싫으신 분은 스킵해주세요-


어머니께서 대전에서 올라오셨습니다.
왜 올라오시는지는 진작 알고 있었지요.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벌어오는(이제 은퇴한 지 좀 돼서 벌어오는 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지만) 아빠, 일을 못 구해서 직원 뽑아놓고 3달째 월급 안 주는 엄마 회사, 그러다 알게 된 동생의 성적지향, 몇 달째 백수로 사는 아들.
그중 그나마 저랑 대화가 되니 오셨겠지요. 다른 가족들하고는 이 속 얘기를 한마디도 못 하는 수준이라... 그래서 그냥 올라오시라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오지말라 오지말라 얘기했을낀데.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되더라구요. 아래 쓰게 될 얘기를 하나 빠짐없이 다 했습니다. 하고 나니 안 해야 했나 싶긴 한데 그래도 하고 나니 제 속은 편하네요. 이기적이지만.

"

우리 집안 사람들은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몰라요. 그나마 엄마가 좀 나은 편인데 그것도 가족 중 낫다뿐이지 평균 이하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은퇴 이후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고 동생은 부모님에게 말로 비수를 던집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했고 그렇게 외롭게 20대 후반까지 살아왔어요. 제 문제를 얘기해주는 여자친구를 만나 문제가 뭔지 알고 고치는 노력을 하고는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여자친구는 이제 떠나고 없네요.

저는 제 욕심을 부려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정확히는 물욕은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뚜렷한 목표도 없어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어요. 그게 가족이기도 했고 여자친구이기도 했죠. 그래서 끊임없이 연애를 해왔던 것 같아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나니 세상 살 이유가 없더라고요. 될 대로 되라.. 가족들이 힘들건 어쩌건 난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살다 죽어도 상관없어. 하는 마음으로 2년 가까이 방구석에서만 살았습니다. 간간이 아무도 없는 새벽에 산책하러 나와 사진을 찍기는 했네요. 한창 홍차넷에 새벽 사진 올릴 때입니다.

그러다 집에 수입이 한 푼도 없는 상황이 됐어요. 동생은 시험에 떨어져 1년 더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 당장 몸 굴릴 사람은 저밖에 없었죠.
그래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핸드폰 대리점에서 말이죠.
한 달 월급에서 월세 빼고, 교통비 식비 빼고, 동생 용돈 주고 나니 적게 벌 땐 마이너스도 나고 많이 남으면 10만 원 남더군요.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내가 뭘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 어찌하다 매장이 커져서 월급이 좀 올랐습니다. 그래서 동생 용돈을 올렸습니다. 마침 홍차넷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 오프돌이가 되어 열심히 놀았습니다. 나를 위해 살다 보면 욕심이 생기겠지 싶었어요.

크게 옮긴 매장이 잘 안됐습니다. 월급이 적게 나오는 달이 많아졌고 마침 동생은 시험에 합격해서 취직까지 했습니다. 일을 더 지속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이 되어 일을 그만뒀습니다. 다시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건 아닌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냥 예전처럼 다시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다 죽지 뭐. 인생 뭐 있나.
내 게으름에 대한 핑계를 대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어쩌겠어요. 내가 이런걸. 난 사회에 던져져서 살기 싫고 더는 상처받거나 상처 주기 싫은걸.

그래서 엄마 난
엄마랑 아빠가 너무 불쌍하지만, 곧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엄마한테 너무너무 미안한데 그냥 그래. 서울 생활 다 접고 대전에 내려가서 엄마아빠 생활비만큼만 일할까도 생각해봤어. 근데 뭐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엄마아빠때문에 살아야 된다고 한번 생각해볼게. 그게 잘 안될 것 같지만 노력은 해볼게.

"


그래도, 작년은 억지 노력이었지만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구나 싶은 한해였네요. 홍차넷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에 밝게 살 수도 있었고요.
올해 목표는 일단 살만한 이유 찾기. 그리고 살기입니다.
기대되진 않지만 어떻게든 되겠죠. 목표가 이뤄지도록 해봐야죠.



37
  • 기운냅시다. 가즈아!
  • 춫천
  • 어려운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똥을 하루에 하나 더 늘리면 삶이 더 좋인질겁니다
  • 가즈아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978 일상/생각포맷과 탄띠 10 quip 18/01/21 4461 13
6959 일상/생각방금 전 모 할머니와의 대화 10 메존일각 18/01/17 3293 4
6949 일상/생각이불킥하게 만드는 이야기. 28 HanaBi 18/01/16 3808 20
6939 일상/생각2년간 썼던 스마트폰 바꾸었습니다. 7 집에가고파요 18/01/13 4003 0
6933 일상/생각날이 얼마나 추우면 물도모자라서 창문까지 6 제천대성 18/01/12 4009 0
6919 일상/생각재능을 나누는 이들에게 감사를. 13 세인트 18/01/09 3856 17
6918 일상/생각60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딸 뿐만은 아닌것 같다 7 그렇다고 했다 18/01/09 4650 3
6915 일상/생각타미플루의 추억;; 14 켈로그김 18/01/08 3913 2
6909 일상/생각친구랑 싸웠어요. 15 풉키풉키 18/01/06 4809 0
6908 일상/생각하루지난 델리만쥬~ 5 호리호리 18/01/06 6568 0
6898 일상/생각외국어를 공부하는 어른의 시간 5 quip 18/01/04 3971 18
6897 일상/생각고3담임이 느낀 올해 입시 17 당당 18/01/04 4637 22
6890 일상/생각본진이동 2 제로스 18/01/04 3256 5
6883 일상/생각사투리 36 tannenbaum 18/01/03 5887 7
6878 일상/생각최근 팟캐스트 시장 동향? 4 커피최고 18/01/03 5059 5
6877 일상/생각영화관의 비상구 계단과 관련해서 3 Liebe 18/01/02 3368 1
6876 일상/생각집 근처에 고등학교 야구부 있으면 좋은점 7 사람사람 18/01/02 3481 0
6868 일상/생각오랜만에 어머니와 새해를 맞았습니다. 32 1일3똥 18/01/01 5455 37
6866 일상/생각고등학교 교사 체험기 (1) 4 루아 18/01/01 3943 4
6864 일상/생각2017년 마지막날 써보는 뻘글. 8 Darwin4078 17/12/31 5279 18
6857 일상/생각헤어졌어요. 27 알료사 17/12/30 5905 23
6844 일상/생각1987을 보고 왔습니다 (약스포 5 성공적 17/12/28 2994 1
6841 일상/생각할머니가 돌아가셨다. 5 SCV 17/12/28 4383 25
6837 일상/생각오늘의 일기 3 사나남편 17/12/27 4044 2
6826 일상/생각덴마크의 크리스마스 8 감나무 17/12/25 3806 1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