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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1/21 13:02:56
Name   DrCuddy
Subject   커피클럽을 꿈꾸며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보에서 일차적인 책임과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기관입니다. 안보리는 유엔 헌장과 강행국제규범 위반과 안전에 관한 내용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며 회원국에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5개국과 다른 회원 국가가 2년 임기로 돌아가면서 맡는 비상임이사국 10개국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회원국 수는 1945년 유엔이 50개국으로 창설되던 때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유엔 회원국 수는 창설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7년 현재, 창설회원국 수의 4배에 가까운 193개국에 달하면서 그 양적 확대에 맞춰 안보리 회원국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안보리, 특히 안보리에 상정된 주요의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의 확대는 국제정치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임이사국 확대를 주장하는 국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로 논의의 진척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중요하고 유엔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가 주요 국제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안보리와 상임이사국 확대는 유엔총회에서 총 회원국의 2/3이상의 동의, 안보리에서 기존 상임이사국 전부의 동의를 포함한 2/3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워낙 중대한 사안인만큼 한번 바뀌면 향후 기약없을 정도로 그 제도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어느 국가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탈냉전으로 인한 다극구도 국제질서의 새로운 흐름은 그에 맞는 안보리의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안보리의 새로운 상임이사국 후보로 일명 G4로 불리는 인도, 브라질, 일본, 독일이 유력했고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맞서 1995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확대를 반대하는 파키스탄, 멕시코, 이집트, 이탈리아 주 유엔 대사들이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념하며 '커피클럽'을 결성하였고 상임이사국 확대 대신 비상임이사국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첫 모임을 가진 4개국은 상임이사국 확대 반대라는 큰 틀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파키스탄, 독일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브라질에 반대하는 멕시코 등 각자 지역의 유력한 추가적인 상임이사국을 반대하는 등 이해관계가 달랐고 이집트는 G4 중심의 상임이사국 확대가 아니라 아프리카 몫의 상임이사국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자국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국가들은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것'과 같이 G4에 대항하여 상임이사국 반대를 위한 논의를 나누었으며 커피클럽의 주장에 동참하며 상임이사국 확대 자체에 반대하는 캐나다, 일본에 반대하는 한국 등 상임이사국의 확대를 반대하는 국가의 참여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커피클럽을 바탕으로 1998년, '합의를 위한 연합(Uniting for Consensus, 이하 UfC)'이 결성되었으며 2011년에 120개국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한편, 상임이사국 확대를 목표로 한 논의와 모임이 구체화되어 2005년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제출한 유엔 개혁보고서에서 상임이사국을 6개국, 비상임이사국을 4개국 더 늘려 현재 15개국에서 총 25개국으로 하는 안보리 개혁안이 제안되었습니다. 하지만 UfC의 반발과 상임이사국 전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UfC의 기원이 된 모임에 '커피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단순히 첫 모임에서 이탈리아 대사가 커피를 권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매우 일반적으로 쓰이는 '커피'와 '클럽'을 결합한 '커피클럽'이라는 이름은 워낙 흔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커피가 전세계로 확산된 현대에는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고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커피가 지금의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16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사회에 전파되면서 대중화 될 때에는 그 기원과 효능,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커피와 커피하우스, 커피클럽은 논쟁을 몰고 다니는 특별한 이름이었습니다. 커피의 각성효과와 더불어 커피를 즐기는 커피하우스가 이슬람제국의 메카, 시나이반도를 건너 북아프리카 카이로까지 곳곳에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 종교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자 이를 사회적 해악이라고 생각한 이슬람 지도자들은 커피가 사람들을 방종하게 만들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커피의 풍미와 이를 즐기기 위해 곳곳에 생겨난 커피하우스의 확산을 그와 같은 빈약한 논리로 막을 수 없었고, 커피는 북으로는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넘어 지금의 오스트리아 지역까지 퍼져나갔으며 지중해를 통해 17세기에 서유럽, 멀리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커피를 처음 접한 유럽의 기독교인들 또한 이슬람교도와 같이 그 해악을 경계하며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전해준 지역이 서아시아 이슬람교 지역이라는 점, 흙과 같은 검은빛이라는 점, 역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는 점에서 사탄의 음료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커피를 접한 교황 클레멘트 8세는 그 향과 맛에 매료되어 오히려 기독교의 음료로 선포하라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커피는 더욱 빠르게 유럽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런던과 파리에서는 계층과 상관없이 많은 지식인들이 커피하우스를 이용하며 다양한 커피클럽을 결성했습니다. 커피가 전해진 17세기까지 선술집 외에는 공공이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커피의 전래로 생겨난 커피하우스는 각종 모임과 대화, 토론, 무역거래의 흥정까지 다양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면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당시 선술집에서 마실 것으로 유행하던 포도주나 맥주는 감정을 북돋우며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지만 커피는 마실수록 명민해지며 활기차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식인들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커피하우스마다 단골로 모이는 사람들이 정해지면서 다양한 클럽이 형성되었고 커피하우스 안에서도 테이블마다 토론 주제가 정해질 정도로 토론과 지식공유의 마당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쳐 훗날 당시 시대를 희극으로 표현한 작품에는 커피하우스에 들어오자마자 "어디가 반역 모의 테이블이오?"라고 외치는 청년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친구가 결혼 청첩장 돌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 느지막이 점심 먹고 남자 넷이서 가로수길 카페 2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년에 한두번씩 만나는 친구들인데 결혼을 앞둔 모임이기도 하고 마침 다들 결혼 할 시기이기도 하니 다른 일반적인 모임과 마찬가지로 대화는 결혼생활, 재테크로 흘렀습니다. 반포 재건축 투자하면 무조건 이득이다, 광교는 언제 완성되냐, 광명 집값이 어떻더라. 결혼과 재테크에 능력이 된다면 언제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결혼과도 거리가 멀고 돈도 못벌고 재테크에 관심 없는 저는 이런 대화에서 방청객1이 되거나 맞장구 처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주변 테이블을 돌아봅니다. 커플, 커플, 커플. 커피 한잔씩 테이블에 놓고 사랑을 속삭입니다. 커플이 커피를 소비하는지 커피가 커플을 소비하는지 헷갈립니다. 18세기 카페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당시에도 연인들은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을까. 볼테르는 커플로 가득한 카페속에서 사람들과 토론했을까. 아니, 그 때 자유연애가 존재하긴 했나. 4차 산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니 문득, 혁명을 이야기하는 커피클럽이 있는지 외치고 싶어지는 카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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