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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07 20:08:53
Name   알료사
File #1   2017_10_07_20_10_07.jpg (525.1 KB), Download : 9
Subject   미로의 날들


이문열 소설입니다.

줄거리 요약에 스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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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 사이에 좋지 못한 거래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신과장은 건드리지 마세요. 무서운 사람이에요. 사장님도 그만은 어쩌지 못할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 ... 이제 회사 얘기좀 그만 해요 ! 일주일만에 만났는데 그런 얘기만 하다 헤어질거에요?'

'알았어요...'

그렇게 그 얘기를 마무리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로 내 궁금증이 없어진게 아니라 서글퍼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반짝 하고 피어오르는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우리 관계는 애매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석 달째 만나고 있는데 동료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였다.

나는 1공장 경리이고 그녀는 본사 경리로, 근무지가 달라서 제3의 장소에서 만나다보니 동료의식은 엷어졌다.

우정이라기엔 만날 때마다 설랬고

연인이라기엔 석달 동안 손도 한번 못잡아봤다.

어색한 느낌이 들때면 직장 동료라는 관계 뒤로 뛰어들듯 숨어 버리는 우리였다.

그녀는 일체 자신의 세계를 나에게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형제가 있는지 부모가 무얼 하는지 같은 것들도..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저녁을 먹고 맥주집으로 갈 때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우리도 좀 이렇게 걸어요.'

'... 오늘 웬일이에요?'

'쌤 ~ 우린 뭐죠? 우리 왜 만나는거죠?'

'그건...'

'일 때문에? 그것 때문에 석달씩 계속 만나요?'

'그럼 현씨는 뭐땜에 나와요?'

'내가 먼저 물어봤어요'

'나는 그냥 좋아서 나와요. 이상하게 포근하고.. 공장에서 긴장했던 것들이 현씨 얼굴 보면 풀어져요'

'그게 다에요?'

'또 있긴 한데.. 그런데..'

'그런데 뭐요?'

'이제 내가 하나 물을께요. 현씨는 왜 그렇게 자신을 내보이길 싫어해요?'

'그게 쌤 대답하고 뭔상관이에요?'

'나는 거기서 우리 사이의 한계를 느껴요..'

'...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정년 퇴직한 수학선생하고 구멍가게 아줌마인 제 부모가 그렇게 궁금해요? 대학도 못가고 상고 졸업해서 경리로 눌러앉은 삐뚤어진 경리 아가씨가 그렇게 궁금해요! '

높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찔러오는 목소리였다.

'그게 뭐 어때서. 좋은 성적으로 상고 졸업했잖아요. 부끄러운거 아니잖아요.'

'꼭 알아야 할거 아니면 모르는대로 좀 나둬요.. 신비감이 있잖아요..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쌤도 말해줘요.'

'남편 죽고 그 유산으로 겨우겨우 아이들 안 굶기고 교육시킨 과부의 4남매중 장남이에요.. 평범하게 사는게 꿈이고 발령 기다리는 예비교원.. '

'ㅋㅋㅋ 좋아요. 환상이 없어져서 섭섭한데 그런대로 우리 어울리네요. 그럼 지금부터 우리 사겨요.'

'사귀면 뭐하는데요'

'일단 여기 옆에 와서 앉아요 ㅋ'

'옛날부터 그러고 싶었는데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백화점 점원 같은 말투도 집어치우시구요'

'알았어... '

그날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집 앞 가로등 그늘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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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판 미생 + 범죄와의 전쟁이 짬뽕으로 섞여 있는듯한 느낌의 소설입니다.

교대를 졸업하고 몇년간 발령이 나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던 주인공이 어머니의 먼 친척이 사장으로 있는 목재소 공장 서기로 일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미생의 장그래가 스펙 좋은 기존 직원들과 인턴들에게 소외당한다면, 미로일지의 주인공은 노가다꾼들이나 다름없는 공장 인부들의 텃세에 고생합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불같이 성내고 미친듯 슬퍼해서 일과가 끝나면 마시고 취하고 취하고 마시고 그러다 싸우고 하루도 모두가 출근하는 일이 없었어요.

그럼 그 한둘 빠지는 빈자리를 넘보는 잡역부들의 다툼과 그들을 손아귀에 넣고 농간을 부리는 공장장이 심심찮게 일을 벌여 그 치다꺼리를 모두 주인공이 했습니다.

그들이 망설임 없이 내뿜는 원색적인 감정과 직선적 표현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끈끈한 삶의 열기를 느끼게 하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싸워나가는 그들을 보며 주인공이 지향했던 정신적 성취가 사치였던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첫 고비가 찾아옵니다. 월급날이 찾아와 사장이 주인공에게 내일 직원들 월급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려요. 총액인 280만원을 휙 던저놓고 이걸로 주라는데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주인공은 지급 내역과 액수도 산출 방식도 모릅니다. 다행히 본사의 현씨가 공장장이나 작업반장과 상의하면 될거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칠흙 같은 밤길을 걷다가 등불을 얻은 기분으로 주인공은 현씨의 말 몇 마디에 얼굴조차 모르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자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사무실 동료 강서기,공장장,트럭운전수 등등 좀 오래 일했다 싶은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알아서 주는대로 받겠다며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다.

다급한 주인공은 어쩔수없이 현씨에게 다시 구조신청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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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주시면 돼요'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산출됐나요?'

'일당 얼마. 임시 얼마. 시간제 얼마. 가족수당 얼마'

'그런건 알죠.. 적용 방법 말이에요...'

'신경쓰지 말고 대충 주세요. 총액만 맞추면 돼요. 그게 직원들 통솔하는데도 편해요. 여기 사람들.. 어떤지 알죠?'

아.. 그러고보니 인부들이 자기들끼리 난폭했던거에 비해 나한테는 비교적 고분고분했던 이유를 알겠다.. 내가 지난 월급 물어볼때도 뚱 하게 대답 안해주건것도.. 어차피 맘대로 줄거 뭐땜에 유난떠냐는 거였겠구나.. 사장 돈에서 안 나온거 내 주머니 털어서 보태줄 것도 아닌거 알테니까..

'한심하네요'

'오래된 관례에요. 약간 차액이 나도 공장 직원들 말도 못해요. 나섰다가는 다음달에 더 피해볼테니'

'내가 참 대단한 자리에 앉았네요. 그런 내가 막 오십만원씩 줘도 돼요?'

'그래서 사장님이 총액 정해놨잖아요'

'그럼 내가 한푼도 안주고 다 떼어먹으면요?'

'그러고도 이 공장 돌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세요. 그사람들이 쌤 제재기에 집어넣어 버릴걸요'

'그럼 애매한 수당 같은 것들만 전부 ...'

'알아서 잘 해보세요. 약간의 여유는 있어요. 사고 같은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깎아도 돼고 작업량이 유별나게 많았으면 얼마쯤 초과해도 사장님이 봐줘요.'

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그녀는 나보다 네 살이나 어렸지만 오히려 네 살 연상 같았다.

헤어질때 여친 있냐고 물어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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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씨의 조언을 받아 총액 280만원에 딱 맞춰서 직원들 월급을 줬는데, 다음날 사장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월급 주고 얼마 남았냐고. 다 줬다고 대답하자 사장한테 완전 개박살이 납니다. 그걸로 끝난게 아니라 사장은 공장 직원들 한명 한명에게 월급 얼마 받았냐고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을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며 주인공이 공장 살림 거덜낸다고 욕을 직살나게 합니다.

주인공은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그것은 모두 사장의 설계였습니다. 그날부터 공장 사람들의 저항적 태도나 적대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거든요. 월급 많이 주다가 사장한테 심하게 욕먹고 미움받게 되었다면서 동정과 위로까지 받았답니다.

그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기는데 사장 부인이 주인공한테 와서 80만원을 가져갑니다. 주인공은 사장 부인인데 어떠랴 싶어 돈을 내주고, 나중에 사장은 또 길길이 날뛰며 회사돈을 왜 마누라한테 주냐고 그거 니 월급 가불로 처리하라고 합니다. 그 소문은 공장에 쫙 퍼집니다. 사모님한테 돈 내주고 다섯달치 월급 떼었다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은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격려해줘요. 사장 친척도 별거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얘가 사장한테 뭘 고자질할 위험인물이라는 의심까지 벗어지게 됩니다. 그러고선 월급은 사장 부인이 주인공 엄마한테 따로 가져다 줍니다.

뭐 그런 식으로 일에 사람에 적응해 가던 주인공은 우연히 1공장 영업서기 강씨와 본사 신과장과의 야합으로 대규모 부정횡령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포착하게 되고 그것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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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씨, 이거랑 이거 좀 이상해서 그런데 확인좀 해줄래요.'

'그거 확인해서 뭐하게요?'

'뭐하다니? 이거 부정 가능성 있는 문제야'

'아는데, 그걸 왜 쌤이 캐냐구요. 쌤이 덮어쓸까봐서 그래요?'

'그렇기도 한데, 그걸 떠나서 이대로 보고 넘길수 없는 문제잖아'

'회사를 위해서?'

'당연하지. 회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그걸 그냥 넘겨?'

'그게 정의에요?'

'그럼 그놈들하고 한패 되는게 정의야?'

'아직 증거 아무것도 없어요.'

'협조 못하겠다는 말이야?'

'쌤 ~ 쌤 여기서 눌러앉아 나무장사 서기로 늙으거에요?'

'물론 내 길은 따로 있어. 하지만 아무리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직장이라도 잘못된건 바로잡아야 돼. 이건 월급 주는 사람에 대한 의무면서 사회 전체에 대한 의무야.'

'...... 알았어요. 확인해 볼께요. 그대신 그사람들하고 싸우지 마세요. 이기고 지고랑 상관없이 쌤이 그러는거 싫어요.'

'안싸울거면 현씨가 뭐하러 그걸 확인해'

'상황 알고 대처하는거랑 모르고 억울하게 덮어쓰느건 차이가 있으니까요'

'내한몸 지키라 이거네'

'모르겠어요.. 제 느낌상 그게 제일 현명한 처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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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씨의 도움을 받아 부정의 증거를 추적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신과장이 눈치채고 현씨는 곤란한 입장에 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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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일이야 이시간에?'

'왜요? 나는 이렇게 찾아오면 안돼요? 보고 싶어서 왔어요.'

'다른 이유도 있는거 같은데?'

'...... 피난 왔어요. 신과장 피해서..'

'왜? 혼났어?'

'쌤... 우리 결혼해요.'

'.....?!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제 정말 직장생활 싫어졌어요. 너무 쉬고 싶어요'

'집에서 쉬면 되잖아'

'그게 안되니까 그렇죠! 제 집안사정 몰라요? 직장 그만두면 구멍가게 골방에 처박혀서 눈칫밥이나 먹어야 하는데!'

'아니 그렇다고...'

'그래요. 안되는거죠.'

'저기.. 결혼이란게 그렇게 쉽게 할수 있는게 아니잖아.. 나 이제 스물 다섯이고 여기 정식 직원도 아니야.. 나도 결혼 할수 있으면 하고 싶어.. 차분히 생각을 좀 해봐... '

'좋아요. 그럼 결혼식은 나중에 해요. 그대신 오늘 나랑 자요'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오늘 집에 안들어간다구요. 나랑 자자구요. 뭔말인지 몰라요?'

......

'알았어요. 사람은 결국 혼자서 걷는거죠'

현씨는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고 나는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내가 소홀했던 점을 깨달았다.

몇년동안이나 잘 지내온 신과장과 갑자기 사이가 나빠졌다면 당연히 현씨가 나 부탁을 들어주는걸 신과장이 알게 된 것이다. 후회하고 다음날 연락했지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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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진 주인공은 본사를 찾아가 현씨 자리 옆에 가 섭니다. 현씨는 주인공을 외면하면서도 결정적인 서류를 책상 위에 펼칩니다. 금방 신과장이 다가와서 주인공은 자리를 떠야 했지만, 순간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외워서 1공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이런저런 확실한 증거들을 준비해 신과장과 야합하고 있는 강서기에게 들이밉니다. 강서기는 처음에는 발뺌하지만 점점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오자 한번만 봐달라고 빕니다.

주인공은 고민합니다. 사실 사장은 그렇게 충성심을 바치고 싶을만한 인물이 아니었거든요. 노동자들의 처우를 생각하지 않는 난폭한 경영방식을 주인공은 싫어했습니다. 거기에 밀고자가 되기 싫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무리 부정을 저질렀어도 6개월 넘게 함께 일해온 동료들에게 사전 경고도 없이 바로 사장에게 일러바치고 싶진 않았어요.

강 서기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주인공은 강 서기에게 그동안 야합했던 사람들과 상의해서 조용히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루의 시간을 주는데 이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그 하루 동안 강서기와 신과장 패거리들은 모든 증거를 인멸해 버린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부정을 저지르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주인공은 어쩔수없이 사장에게 모든걸 털어놀기로 결심하는데 그시점에 현씨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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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뭐 달라진거 없어요?'

'많이 변했네'

'어떻게 변했어요?'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어른스러워졌어'

'나쁘게 말하면요?'

'...... 약간 때묻은 것도 같고...'

'이제 손도 안잡아줘요?'

......

'신과장 나쁘게만 보지 마세요. 최소한 용기와 솔직함에 있어서는 쌤보다 나아요'

'?'

'잊으셨어요? 제가 결혼하자고 했던 날'

'그건 용기 문제가 아니잖아. 현실이란게 있는데'

'현실요? 말 잘하셨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구멍가겟집 장녀가 그때 내 현실이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갑자기 여섯 식구 거느린 가장으로 변한게 현실이었어요.'

'...... 그랬었구나...'

'쌤, 부탁해요. 신과장 부정 캐는거 그만두세요'

.......

'부정은 그들만이 아니에요. 어쩌면 세상 모두가 부정으로만 이루어져 있는지도 몰라요. 저를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긴다면 제발 그 일에서 손 떼주세요'

'현씨랑은 이제 상관없어'

'...... 저도 그들과 한패라면 놀라시겠죠... 일이 터지면 저도 무사하지 못해요...'

'무슨 소리야? 너도 그들하고 야합했다고?'

'야합이요? ...... 그래요... 맞아요. 쌤이 처음 들어왔을때 이미 저는 그들과 한 배에 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쌤을 알게 되고 그 배에서 뛰어내릴까 고민했었어요. 그만큼 저 쌤 좋아했어요..  그런데 쌤이 저를 못뛰어내리게 했어요. 제가 결혼하자고 했을때, 저랑 자자고 했을때 쌤이 좀만 저를 끌어당겨 주셨어도 저는 바로 뛰어내렸을건데.. 그래서 쌤하고 같이 파도에 휩쓸려 죽는다 해도 좋았는데.. '

'나도 후회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 배에서 내려. 할께. 결혼. 사표내고 결혼하자'

이제 늦었다며 현씨는 내 품에 기대어 흐느꼈다.

나는 잠시 그 일을 미루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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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1공장 사무실 조 양에게 현씨의 이야기를 듣는다.

'쌤. 현씨 신과장하고 사귀는거 알아요?'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마. 신과장 45살이야... '

'알아요. 근데 남녀일은 그런걸로 단언 못해요'

'참나. 그럼 조양도 45살하고 사귈수 있어?'

'꼭 그런건 아닌데 그럴수도 있죠. 제 친구중에 유부남만 골라 사귀는 애가 있어요. 돈도 잘쓰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아무때나 버려도 후환없고'

'너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

'원칙적으론 나쁘죠. 그런데 키스 한번 했다고 남편이라도 된듯이 함부로 대하는 철부지들, 돈 좀 있다 싶으면 난잡한 부잣집 개망나니, 아니면 빈털털이에 자기 감정대로만 여자 대하다 수틀리면 폭언하는 한심한 애들보다는 훨 나아요'

'잘들 논다'

'못믿겠으면 쌤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제가 이런말 했다는거 말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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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감에 드디어 사장에게 모든걸 이야기하는 주인공.

사장이 취한 조치는 세무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본사에 들여 모든 경리 업무를 그의 통제하에 둔 것과 주인공을 1공장 총무과장으로 올려 강서기를 주인공에게 직속시킨 것이 전부였어요.

지금까지의 부정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 다만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하라, 가 사장의 뜻이었습니다.

강서기는 주인공 밑에서 일 못하겠다며 사표를 내고, 신과장은 조용히 새 상사 밑에서 일하다가 그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 알고 있었던 회사의 약점을 무기삼아 사장과 싸우게 됩니다. 그 전에 신과장은 주인공을 불러 나에게 이러이러한 무기가 있다며 회유하는데 주인공은 나는 사장편 아니다, 사장도 너도 망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 학교 발령나서 회사 그만둔다, 니들끼리 잘먹고 잘살아라, 하고 떠납니다.

6년 정도 지나서 주인공은 회사가 어찌됐나 알아봅다. 사장과 신과장 둘이 싸우다 한쪽은 감옥 갈줄 알았는데 둘다 잘나가고 있습니다. 사장은 회장이 됐고 신과장은 전무가 됐습니다. 현양과 신과장은 결혼했습니다. 나이차이때문에 불행한 파국을 맞았을거라 예상했는데 금슬 좋은 대저택 마나님으로 자알~ 살고 있었습니다.

신과장의 부정을 추적하는 메인 스토리 외에 중간중간 노조 형성 시도에 대한 이야기, 일하다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안해주려는 사장과 다리를 절단한 직원과의 분쟁, 회사가 금전적 어려움에 처했을때 사장이 위기를 극복하고 돈을 끌어모으는 수법 등등이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노조와 산재 문제에 있어 주인공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지만 나약하고 비굴한 노동자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해 마지않았던 야비한 사장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 결과적으로는 사장의 방식이 효율적이라는걸 어쩔수없이 인정하게 됩니다.

이문열 전성기에 쓰여진 작품 치고는 묻혔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참담하게 실패한 소설입니다.

이문열 자신은 그 실패에 대해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시대의 유행에 맞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런저런 장부대조 이야기를 통해 부정을 밝혀가는 과정이 학생시절 읽을땐 너무 지루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책 덮은 사람이 많았을 거에요. 저도 처음 읽을때 1/3정도 읽다가 포기했었구요.

그런데 직장생활 하다가 어느날 생각나 다시 이 책을 잡았을 때, 소설에서 그려지는 직장 내의 정치싸움이 너무나도 박진감 넘치고 스릴있는겁니다.. ㅋ 한병태가 엄석대랑 싸울때 느꼈던 조마조마함이 그 무대를 학교에서 직장으로 옮겨 재현되는 느낌이었어요 ㅋ 거기에 주인공과 본사 경리 현씨와의 로맨스가 달달해서 그 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요약해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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