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9/16 14:53:37
Name   tannenbaum
Subject   이별의 종류.
사람은 만나고 헤어집니다.

영화에 간혹 나오는 서로 죽도록 사랑하지만 서로의 행복을 위해 헤어지는 사람들부터 한평생 함께한 노부부가 시간이 다해 이별하기도 하지요. 그중에 과연 아프지 않은 보냄이 있을까... 덤덤한 헤어짐이 있을까...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이별이 있을까...

작년이었나..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지요. 친구놈이 늦둥이라 아흔을 바라보시던 아버님께서는 잠들듯 새벽에 가셨다 합니다. 천수를 누렸다 할만한 헤어짐이었겠죠. 하지만... 환갑이 훌쩍 넘은 친구 큰형님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무에 그리 한이 많아 무너지듯 비통해하셨는지 저로서는 헤아리기 힘들었습니다. 쉬이 보낼 수 있는 이별이 있기는 할까....

17년전 제 생모가 떠났을 때입니다. 일곱살 적 이혼한 이후로 18년만에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굳이 하고 싶지는 않네요. 헤헤... 아무튼.... 도대체 제 번호를 어찌 알았는지 이모님께서 근 20년만에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 생모가 돌아가셨다구요. 장례식장은 걸어서 30분 거리였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한껏 멋을 내 클럽으로 갔습니다. 미친듯이 놀았지요. 단지, 생물학적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니 생모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었기에 일말의 동정도 슬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망설이지 않고 장례식장 대신 클럽을 선택했었죠.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동틀 무렵까지 술을 마시고 낯선 사람과 부대껴 춤을 추고 키스를 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어느날처럼 즐거운 밤을 보내고 동이 서서히 터올 무렵..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현관출입구가 보이자 이유 모를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렇게 한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운동 나가던 주민들이 저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열 걸음만 걸으면 엘리베이터였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한참을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지금 또 천천히 이별을 준비합니다.

마흔 넷 해 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았던 내 삼십년지기 친구.... 좋은 아빠, 성실한 남편, 믿음직한 아들의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이 못된 병에 걸렸다 연락을 했습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가끔 시간날때 00이랑 00이... 한번씩 들여다 봐주라는데..... 무에 그리 급하게 서두르는지.. 짐작이야 하지만 짐작만큼 무의미한 게 없겠죠. 다만...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 마냥 웃고 떠들던 내가 미안했습니다.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녀석이 연락을 백번을 망설이고 망설일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었습니다.

이별에도 종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사 종류가 있더라도... 그 결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헤어짐 앞에 담담할 때 어른이 된다 하던데 전 어른이 되지 못했나 봅니다. 아직은 담담할 자신이 없네요.



19
  • 가족에 대한 글은 추천이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943 일상/생각이상형은 직감인가? 신기루인가? 6 순수한글닉 20/09/09 4561 0
13610 일상/생각이상한 판결들에 대해 21 커피를줄이자 23/03/01 3381 0
4708 기타이상한 사람은 계속 이상한 사람일까? (롤계층) 6 집정관 17/01/27 4500 0
6806 일상/생각이상하게도 슬리퍼를 살 수가 없다 21 소라게 17/12/21 4349 18
4033 기타이산화탄소 배출증가 '덕분에' 일어난 일? 13 눈부심 16/10/29 3954 1
4878 일상/생각이사하게 되었네요. 5 집에가고파요 17/02/15 3112 0
11 기타이사왔어요. 5 JISOOBOY 15/05/29 9192 1
13254 일상/생각이사를 오고 나니 옛 동네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보고 싶습니다. 1 큐리스 22/10/21 2234 0
5157 일상/생각이사는 힘들군요. 11 8할 17/03/12 3692 2
10524 일상/생각이사 후기 16 한썸머 20/04/23 3857 0
14988 일상/생각이사 후 이상한 셈법 경험 2탄 3 루카와 24/10/17 970 0
5671 게임이브 온라인 이야기 – 2 3 한아 17/05/19 6783 9
5617 게임이브 온라인 이야기 - 1 7 한아 17/05/12 6867 12
6949 일상/생각이불킥하게 만드는 이야기. 28 HanaBi 18/01/16 3806 20
1787 기타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장기 묘수풀이 <25> (댓글에 해답있음) 13 위솝 15/12/16 6393 0
12210 일상/생각이불 덮고 자야지 7 JJA 21/10/27 3197 7
479 기타이분 왜이러나요? 27 스파이크 15/06/30 11122 0
4528 꿀팁/강좌이북리더(크레마 카르타) 싸게 구입하는 팁 (by 상품권) 9 기쁨평안 17/01/03 11137 0
2592 의료/건강이부프로펜, Cyclooxygenase, 아스피린 이야기 46 모모스 16/04/11 14375 6
3224 게임이볼브 무료화 선언 5 Anakin Skywalker 16/07/08 4823 1
592 음악이보쇼 거기서 뭐합니까... 8 레지엔 15/07/15 7661 0
13232 음악이별중독 7 바나나코우 22/10/16 2094 3
6293 일상/생각이별의 종류. 5 tannenbaum 17/09/16 4336 19
9832 일상/생각이별의 시작 16 멍청똑똑이 19/10/13 4423 20
10878 철학/종교이별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나는 오랜 친구에게.. 25 사나남편 20/08/24 5045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