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9/13 20:16:26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게임중독
초중등레벨에서의 학업이란 티어부심을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하면 그런 게 없는 건 아닌데, 즐거운 레벨을 넘어서서 (배움) 몰입하고 경쟁 (공부)하게 만드는 동인은 필시 티어부심입니다. 내가 상위티어고 내 친구가 하위티어면 기분이 가히 나쁘지 않지요. 그 기분이 '보상'으로 작용해서 공부에 매진합니다. 스노우볼을 굴려서 나와 친구 간의 격차를 확대시키고자 하고, 이를 위해 사교육도 하고...마 그렇습니다.

부모가 시켜서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애들이 그렇게 부모 말 잘 안 들어요. 초등학생들이 사교육 받으러 다니는 데에는 물론 부모의 역할도 있지만 애들 본인이 그걸 (최소한 어느 정도는) 원해서이기도 합니다.

티어부심은 타고나요. 부모와 사회의 역할은 '무엇'을 가지고 티어부심을 부릴 것인가를 알려주는 정도. [얘야, 롤(LOL) 티어부심보다는 공부 티어부심을 부려보는 게 어떠니. 그게 진짜 열라 짱이다?]

티어부심이 다른 동기부여요소로 대체되는 시기는 (제 경우엔) 중고등학교 전환기였던 것 같아요. 단순히 경쟁의 도구인줄로만 알았던 이 게임이 실은 장차 내 생존경쟁에 직결된 거라는 걸 그 때 즈음 깨달았거든요. 언젠가는 독립해서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살아야하는데 어쩐지 공부티어 딸리면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어요.

먹고사는 일이 공부티어와 유관하다는 생각은 부모와 사회가 심어준 거지만, 그와 별개로 아이들이 나이먹고 먹고사니스트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독립을 생각하고, 경제적 자립을 꿈꾸고.... 당연한 수순이지요. 또 공부티어=생존티어 공식을 부모와 사회가 심어줬다고 해서 그게 꼭 틀렸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뭐... 그게 다소간 맞을 수도 있지요. 다소간 아닐 수도 있고.

부모 입장에선 초등레벨 아이들이 공부로 티어부심을 부리는 걸 보면 자못 안심이 돼요. 왜냐하면 결국은 공부로 상위티어를 유지하면 졸업 후에 펼쳐질 생존게임에서도 상위티어를 획득할 거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애들이란 부모 맘대로 안 움직이죠 ㅎㅎ 티어경쟁은 재밌지만 공부는 재미 없을 수가 있지요. 그래서 공부티어와는 다른 종류의 티어 스탠다드를 찾아내서 그 쪽으로 도망쳐버리는 경우가 생겨요. 남자애들의 경우 게임이 여기에 해당해요 (여자애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음. 남돌 팬덤 화력전? 잭키 vs 쵸티?).

그래서 부모가 게임을 마약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소간 진실이 숨어있어요. 마약이란 인간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설계된 보상체계를 교란하는 것들이에요. 모르핀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걸 주사로 꾹꾹 맞아가면서 히히거리면 생존에 지장이 오지요. 애들의 경쟁-보상 심리가 공부를 기준으로 설립될 경우 애들의 생존도모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최소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지만), 스타, 롤, 오버워치 따위가 그 경쟁-보상 체계를 [해킹]할 경우...음... 생존에 지장이 오지요 (혹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지요).

그래서 어쩌면 프로게이머의 존재가 더 중요했던 걸지도 몰라요. 공부티어부심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는 공부티어가 생존티어로 태환된다는 믿음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게임티어부심을 정당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게임티어가 생존티어로 태환된다는 걸 입증하는 거였어요.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이 태환을 시도한 선구자들이었지요. 이들이 성공한다고해서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이들의 성공으로부터 내 학창시절이, 내 인생이, 내가 게임을 하며 느껴왔던 뜻모를 불안과 죄의식이 구원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자꾸 부모님께 '봐봐, 프로게이머가 얼마나 잘나가는데. 억대연봉 받는다니까'라며 [억대연봉]을 강조했는지도 몰라요. 그런의미에서 임요환과 1세대 후로게이머들은 그들과 시대를 공유했던 모든 스타1 게이머들의 세대투쟁, 인정투쟁의 전위였어요. 그들 대부분이 엇나가지 않고 이렇게 번듯하게 잘 살고 있다는 데서 전 지금도 큰 위안을 받아요.




그러던 어느날, 두구두구둥, 제가 최근에 애들에게 (만4세) Wii U (게임기)를 사줬어요. 진짜 정신나간 것처럼 해대는 걸 보니 한 편으론 제 선물이 먹혀들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이거 [중독]되는 거 아냐 싶어서 무섭더라구요 ㅋㅋㅋㅋㅋ

그래서 넘나 오래한다 싶으면 적당히 달래서 끄고, 하고 싶다고 졸라도 밖에 나가 놀라고 하고 안켜주고 막 그러거든요? 그러다보면 애들이 막

[아빠 너무해! 진짜 나빠! 아빠랑 안놀거야! 왜 게임 못하게해!!] 이러면서 막 울부짖고 난리가 나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다 제가 치던 대사들인데 ㅋㅋㅋㅋ 진짜 아니꼽고 더러워서 빨리 독립해서 죽어라 게임만 하고 싶었는데 ㅋㅋㅋㅋ

미안하다 얘들아 ㅋㅋㅋ 꼬우면 늬들도 빨리 내집에서 나가든가ㅋㅋㅋ



10
  • 부모부심 앞에선...ㅜㅠ
  • 그 때부터였을까요..독립을 다짐한게..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41 일상/생각최근 성매매 합법화 의견에 대한 짤막한 생각. 26 와인하우스 17/09/26 6795 3
6339 일상/생각평등 31 알료사 17/09/26 4287 24
6335 일상/생각과호흡 환자 목격담 6 사악군 17/09/25 4246 0
6332 일상/생각다른 곳에서 보고 은근히 생각하게 되는... 2 알겠슘돠 17/09/25 3362 0
6325 일상/생각애 키우다 운 썰 풉니다.txt 20 Homo_Skeptic 17/09/23 4970 15
6317 일상/생각조카사위 이야기. 46 tannenbaum 17/09/21 5977 22
6316 일상/생각극한직업 _ 회의 예약.. 5 CONTAXS2 17/09/21 3186 0
6314 일상/생각부족하면 찾게 된다. 로오서 17/09/21 2889 6
6309 일상/생각불혹의 나이는 .. 개뿔. 19 한달살이 17/09/20 5378 7
6306 일상/생각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몇 가지 문제 15 二ッキョウ니쿄 17/09/19 8625 6
6299 일상/생각언론, 섹스토스, 행복 22 우리아버 17/09/17 5269 6
6298 일상/생각영화 딥 워터 호라이즌을 보고 있는데.. 6 CONTAXS2 17/09/17 3504 1
6297 일상/생각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다문화의 매력 3 Liebe 17/09/17 3935 5
6293 일상/생각이별의 종류. 5 tannenbaum 17/09/16 4339 19
6280 일상/생각폰팔이 이야기 16 1일3똥 17/09/14 4290 3
6275 일상/생각게임중독 28 기아트윈스 17/09/13 4979 10
6268 일상/생각친구의 결혼 6 aqua 17/09/13 3907 10
6265 일상/생각유리할땐 두괄식 불리할땐 미괄식. 13 켈로그김 17/09/12 5711 5
6253 일상/생각프로가 되서도 그 일의 실력이 계~속 꾸준히 느는건 만화가 27 콩자반콩자반 17/09/09 5380 0
6251 일상/생각숙취 처음 느끼고 생각한 점 6 콩자반콩자반 17/09/09 3839 0
6250 일상/생각 5 삼공파일 17/09/09 3256 4
6247 일상/생각그때 미안했어요. 정말로. 10 알료사 17/09/08 4773 17
6245 일상/생각예비군 동원훈련 갔다왔네요. 7 콩자반콩자반 17/09/07 7416 3
6243 일상/생각Open to.. 12 벤젠 C6H6 17/09/07 3096 7
6241 일상/생각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다녀와서 11 tannenbaum 17/09/06 5554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