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8/16 17:33:14
Name   소맥술사
Subject   LTV-DTI 규제 강화는 현 여당에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드나?
블로그에도 같이 올려야 하는 글이라, 편의상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바쁘신분들은 ( )의 글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일종의 논문 소개글 입니다만, 최대한 복잡한 경제이론 설명은 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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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페북에서 한 이코노미스트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8.2 부동산 대책을 보며 ‘좌파정권은 없는자가 가진자로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로 LTV, DTI비율을 깎아 새 주택 구입을 어렵게 한 정책을 비판한 글이다.

(LTV: 주택담보대출 비율.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가능 한도를 말한다. 즉,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집의 자산가치를 얼마로 보는가의 비율을 말하며, 보통 기준시가가 아닌 시가의 일정 비율로 정한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비율이 60%라면 시가 2억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최대 1억2천만원까지만 대출해주는 식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DTI: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소득으로 따져서 대출한도를 정하는 계산비율을 말한다. 대출상환액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기 위해 실시한다. -출처 네이버 두산백과)

정책 자체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대출을 많이 못 받게 돼 집을 못 사게 되면 정말 ‘분배’를 중시하는 현 여당에 유리한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는가?”라는 것이다. ‘자산의 소유 여부’가 정치적 선택, 특히 진보/보수로 일반적으로 갈려있는 대다수 민주주의 정치 지형에서 분명 하나의 변수로 작동한다는 건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이론적으로도 뒷받침이 된다. 소득수준과 자산수준에 따라 지지정당이 달라진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가 나와 있다.

(유독 한국에서는 소득수준과 정치적 선택이 통계적 유의성을 갖지 못한다. 소득수준이 높다고 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패턴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수준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나,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지금의 여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크나, 이 역시 큰 변수로 취급될 수준은 아니다. 한 GIS 전문가는 개인적인 연구차원에서 지도와 공시지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서울에서 2014년에 6억원 아파트가 여야 투표를 가르는 기준이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즉 6억원이 넘는 아파트 소유자들은 2014년 당시 친여성향이 강했고, 6억원 이하 아파트 소유자나 무주택자는 친야성향이 강했다는 거다.)

그런데 필자가 의문을 품은 건 이게 ‘대출’하고 연결 될 때의 문제였다. 변수를 엄밀화 하고 측정가능하게 제대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변수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걸 고려 않고 국가별 주택담보대출 비율과 정당지지의 패턴변화, 불평등 지수등을 그냥 쫙 펼쳐놓고 나면 흔히 ‘내생성’이라 부르는 ‘전도된 인과관계의 문제’, ‘변수의 기능적 등가성 확보 문제’ 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코노미스트 함정(※ 참고할 것)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건 ‘자산의 소유’를 위해서 ‘빚을 얼마나 내는가’와 연결된 문제다. 즉 ‘대출의 비중’은 논리적으로 ‘자산 소유 여부’와는 정당지지패턴에 있어 반대의 방향성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논리다. 논리에는 논리로 맞서 반박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관련 연구에서 계량적으로 이를 반박하는 게 존재한다면 그 역시 좋은 반론일 것이다. 그래서 뒤져봤다. [세상에, 연구가 있다!]

정치경제분야에서 가장 왕성한 논문저술 활동을 하는 권혁용 고려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신의 논문모음집 <선거와 복지국가>에 “부동산과 복지국가”라는 논문도 실었다. 권 교수는 우선 앤젤이라는 경제학자의 연구결과를 가져와 ‘경제적 자산은 자기보험의 측면을 갖고 있기에, 자가 소유 주택(근로소득자가 사실상 생애에서 거의 유일하게 취득할 수 있는 자산)이 있는지에 따라 분배정책에 대한 태도가 변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 케메니 등 다양한 학자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부동산을 소유한 개인은 노후에도 노령연금 대신 역모기지론 등을 활용하기에 세금을 늘려 분배를 하는 정책에 대한 선호가 낮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문제는 ‘부채’다. 가계의 재무구조상 자산과 부채는 본질적으로 다른 효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자산은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상승과 하락의 교차가 일어나는 반면, 부채는 개인과 금융기관 혹은 다른 개인과의 계약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득 중 일부 혹은 자산 상승분의 일부를 상환하지 않는 이상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가구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고 자산 가격 또한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면, 가계의 대차대조표상 전체이익률은 하락한다는 거다. 자산가격이 하락할 경우 가계의 순자산 자체가 감소하기도 한다. 대부분 1가구 1주택자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부채와 자산의 관계는 상당부분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권 교수는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2009 데이터를 활용해 직접 통계분석에 나선다. 일단 글로벌 데이터부터 살펴보는데 주택담보부채가 주택자산을 초과한 집단과 아예 주택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집단부터 비교해본다. 글로벌 비교 결과, 직관대로 자산을 소유했지만 부채가 많은 집단이 아예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집단보다 재분배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았다.

<표 1> 재분배선호와 자산현황


통계적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사실 <표 1>과 같은 교차분석표는 ‘인과관계’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다만 사고의 직관적 흐름이 맞다는 간단하고 불확실한 확인의 과정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권 교수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주장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고 인과관계 분석을 실시한다. "유권자(국민들)는 가계의 부채레버리지가 높을수록 분배정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종속변수는 ‘한국복지패널조사’에서 나타난 ‘재분배 정책 선호 여부’를 ‘매우 동의(5점)’부터 ‘매우 반대(1점)’까지 나타낸 문항에 대한 결과다. 설명변수(독립변수)는 부채를 자산으로 나눈 값, 즉 가계의 부채비율이다.(이 역시 응답을 토대로 함) 통제변수로는 성, 연령, 소득(가처분소득), 교육수준, 직업, 종교 등을 넣었다. 그리고 ‘순서로짓 모형’을 만들어 회귀분석을 실시한다. <표 2>는 그 결과다.

<표 2> 재분배선호도와 부채레버리지(출처: <선거와 복지국가> 중 4장 "부동산과 복지국가")


권 교수는 수도권 더미변수 추가 여부, 자산가격 변수 존재 여부등을 갖고 네 개의 모형을 만들어 동일하게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재분배 선호도가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모든 모형에서 99% 신뢰수준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한다. 다만 자산가격 증가는 재분배태도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는 이후 다시 글로벌 분석을 시도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ISSP 2009 자료를 활용해 한국복지패널연구와 기능적 등가성을 가질 수 있는 문항을 찾아내 이를 종속변수로 놓고 16개 국가의 변수를 합산해 통계분석을 실시한다.(물론 한국도 포함돼 있다. 한국만을 따로 떼내어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보유한 순자산의 크기가 커질수록 재분배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3 참조)

<표 3>16개국 순자산과 재분배태도(출처: 상동)


이는 어디까지나 자산소유여부와 부채비율에 따라 ‘누구에게 혹은 어느 정당에 투표했나’라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는 아니다. 그러나 ‘분배정책’을 기준으로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보와 보수로 진영이 나눠지고, 현재의 여당이 분배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당이라는 걸 대다수 국민이 인식한다는 전제하에서 보면, 현 정부의 LTV-DTI 규제 강화(비율 하향 조정)정책은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규제를 완화해 각 가계의 부채비율을 늘려놓을 경우, ‘부채의 부담’이 재분배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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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함정과 사회과학 방법론

‘이코노미스트 함정’은 제가 그냥 만든 말입니다. 흔히 증권사 등에 계신 이코노미스트들이 빠르게 글로벌 트렌드나 각종 수치를 모아서 쫙 펼쳐놓고 설명할 때 빠지는 함정을 말합니다. 일단 이코노미스트들은 경제학 최소 석사이상 출신에 똑똑한 분들이기 때문에 좋은 수치를 잘 뽑아 와서 내적 일관성과 논리성이 좋은 글을 씁니다. 문제는 변화하는 시장에 맞게 재빠르게 분석을 써내야하는 그분들의 직업특성상 ‘엄말한 변수와 개념의 조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조작’이라는 건 나쁜 뜻이 아니고 사회과학 연구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설명변수(현상의 원인이 되는)나 종속변수(현상의 결과로 나타나는) 잘 정의하고 측정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사회과학에서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데요, ‘비교의 기능적 등가성’확보 문제 때문입니다. 각 국간 수치나 통계를 가져와 분석을 할 때에는 그 같아 보이는 이름의 수치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적 차이까지 고려해서 변수를 동등하게 놓고 설명을 해야 우리는 ‘기능적 등가성’을 확보했다고 말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드니 버바와 가브리엘 알몬드 하버드대 교수가 수 십년전 ‘시민 문화’라는 걸 연구하기 위해, 시민문화의 성숙정도를 측정하는 글로벌 설문을 실시합니다. 10년간에 걸친 연구 프로젝트였고, 시민문화의 성숙도를 측정해 그것이 높을수록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건데요, 여기에서 민주주의 발전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이냐가 종속변수를 잘 조작해, 조작적 정의를 만드는 것과 연결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시민문화 성숙도 측정입니다. 그 중에 이런 변수가 있습니다. 설문을 활용한 통계연구에서는 각 문항이 이론적 베이스에 따라 잘 조작돼 있는데, 그 중 “당신은 지난 한 달(정확하게 이 시기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간 공무원을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공무원을 접촉한 적이 있다면 몇 번입니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적극적으로 공무원을 만나 뭔가 대화를 하는 정도의 시민이라면, 정치참여도 내지 관심도가 높다’라는 가정 위에 서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해서 60~70년대 한국에서 사용했다고 칩시다. 어마어마하게, 미국보다 훨씬 더 높은 정치참여율과 관심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왜냐면 한국은 ‘과대성장국가’의 전통 속에서 이사를 하거나 뭐 어딘가 민간기업에 서류를 하나 낼 때에도 주민등록등본을 떼거나 전입신고를 하거나 해야하는 즉, ‘동사무소 공무원’을 엄청 자주 만나는 나라였기(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문항을 통해 만들어지는 변수는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서구 국가(특히 미국)와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는 기능적 등가성을 확보하지 못한 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서구 유럽 국가의 ‘LTV’는 무려 90%가 넘는다. 그게 ‘경제 정의나 복지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LTV 수치만 봐서는 안 되고 한국에서 그 대출이 갖는 의미와 서구 복지국가에서 그만큼의 대출이 갖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나하나 다 따지다보면 연구 자체가 진행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최대한 기능적 등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부분에는 ‘이런 이런 맥락적 차이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각주 형식으로 달아 오해의 여지는 없애줘야 합니다.
제가 ‘이코노미스트 함정’이라고 하는 건, 이코노미스트 분들이 시간적 압박 속에서 바로 이런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수치를 뽑아 글로벌 트렌드 비교분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고 사후적으로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논문을 쓰는 학계의 경제학자들은 좀 더 개념의 조작적 정의, 변수의 기능적 등가성 확보 등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편입니다만, 경제 수치 자체가 주는 명쾌함이 주는 착각에 시간적 압박이 더해져서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얘깁니다. 물론 제가 팔로우하고 좋아하는 상당수의 이코노미스트들은 그래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수치 쫙 펼쳐서 하는 비교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조심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논리적이고 똑똑한 분들이라 글 자체의 내적 일관성, 논리가 치밀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맥락을 파악하지 않은 채 ‘단정적’인 어법에 그대로 넘어가기가 쉽고 그래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일수록 그 ‘이코노미스트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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