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7/13 18:07:31
Name   tannenbaum
Subject   알바생과 근로기준법 이야기
초창기에 채용했던 저녁 알바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불성실했지요. 습관적인 지각에, 마감청소도 한하고 퇴근하는것도 부지기수.... 급기야 어느날 술을 마시고 출근까지까지 했습니다. 술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그 총각을 보는 순간 제 인내심이 바닥 났습니다. 내일부터 안나와도 된다고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총각은 어이없다는 듯 한참을 절 노려보더니 '후회하실겁니다. 두고 보세요. 그때가서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소리치고 가게를 나가더군요. 저야말로 어이가 없었지만 이번달 일한 날자 계산해서 그자리에서 바로 그 총각 통장에 입금했습니다. 빨리 끝내는 게 백번 이득이니까요.

역시... 규모가 크던 작던 직원관리...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인적자원관리가 사업의 흥망을 가르는 것 같습니다. 다음날 그 총각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습니다. 요약하면...

1. 내일 노동청에 신고하러 갈테니 기대하시라.
2. 해고는 30일 이전에 해야 하는데 사장님은 어제 바로 잘랐다. 부당해고다.
3. 내 근무시간은 6시부터 11시 30분까지 이니 야간근로시간이다. 그런데 야간근로수당 50%를 추가로 지급하지 않았다.
4. 그러니 벌금 때려 맞기 전에 30일치 해고수당+미지급한 야간근로수당+정신적 위자료 00000원 포함 00000을 당장 내 통장으로 보내라.
5. [당장 보내지 않으면 나는 끝까지 합의(?)해주지도 용서하지도 않을것이다.]

그 문자를 보고 말 그대로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냥 피식.. 이렇게 웃은게 아니라 아주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더랬죠. 그 총각의 문자 내용을 근로기준법 조항으로만 보면 다 맞는 말이죠.

30일 이전 해고 예고와 30일분의 해고수당 = 근로기준법 26조.
야간근무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계산 = 근로기준법 56조.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어설프다 싶었습니다.

우선...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예외 사업장으로 56조 적용예외 대상입니다. 아마 그 총각은 우리 가게가 주간 2명, 주말 2명, 사장인 저까지 포함하면 5명이니 아마도 상시근로자 5인 사업장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상시근로자의 판단은 1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근로자'만 포함이 됩니다. 즉 우리가게는 상시근로자가 2인인 사업장인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거 다 떠나 상습적인 지각, 업무태만, 음주근무는 해고사유로 충분히 차고도 남습니다. 증거야 우리의 친구 CCTV가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기도 했구요.

물론 제가 알바친구들에게 엄청 잘해줬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시급도 늘 최저임금보다 훨씬 넉넉하게 책정했고 주휴수당 꼬박꼬박 챙겨주며 법을 잘 준수하며 장사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 알바총각 말대로 야간근무시간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야간근로수당을 안준것도 아닙니다. 야간근로수당 해당 사업장이 아니라서 그냥 명목상 교통비조로 일 5천원씩 따로 챙겨줬었거든요. 순식간에 직원들 갈취하는 악덕업주로 몰리니 기분이 참 상콤하더군요.


근로자에게도 사업주에게도 '근로기준법'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이렇게 영세한 업자들에게 이렇게나 도움이 되는 법이기도 하니까요.


아. 그 문자 받고 어떻게 했냐구요? 그냥. [원하는대로 하시라] 짧게 답장하고 말았습니다. 대응해봐야 나만 피곤하니께요. 글고 진짜로 노동청 가서 민원 넣으면 해당사항 없다고 창피나 당하고 올텐데 무에 신경 쓰겠습니까.



8
  • 사이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939 일상/생각알바생과 근로기준법 이야기 14 tannenbaum 17/07/13 3956 8
4589 도서/문학알료사 6 알료사 17/01/10 5130 12
525 생활체육알렉스 퍼거슨의 흑역사, 월드컵 5 Raute 15/07/06 10442 0
14787 영화알렉스 가랜드 - Civil war(2024), 카메라에 담기는 것들 4 코리몬테아스 24/07/10 884 3
11668 의료/건강알레르기 비염 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27 매뉴물있뉴 21/05/13 6458 10
11519 의료/건강알레르기 검사 결과 후기 9 풀잎 21/03/24 4359 4
2337 일상/생각알랭드보통의 잘못된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하여 54 S 16/03/03 5597 5
8599 여행알래스카항공 마일과 함께하는 북반구 미니세계일주 발권놀이 12 졸려졸려 18/12/03 4859 2
9239 문화/예술알라딘은 인도인일까? 25 구밀복검 19/05/28 8420 42
3572 일상/생각알던 사람들에 대한 단상 25 Zel 16/08/24 5121 1
9257 경제알기쉬운 자동차보험 1. 자동차보험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3 소원의항구 19/05/30 4797 9
9248 경제알기쉬운 자동차보험 0. 들어가며 5 소원의항구 19/05/29 4253 8
8008 일상/생각알기만 하던 지식, 실천해보기 9 보리건빵 18/08/06 4388 32
6483 일상/생각알고 있는 것, 알려줘도 되는 것 1 Broccoli 17/10/30 3310 1
4350 문화/예술알고 보는 트럼프 사진 6 눈부심 16/12/11 5114 3
11050 음악앉은 자리에서 사라지기 14 바나나코우 20/10/14 4549 9
14873 일상/생각앉아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 3가지 1 후니112 24/08/27 761 1
4803 정치안희정은 페미니스트인가? 29 Toby 17/02/08 5476 0
7843 정치안희정 전 지사 부인께서 법정에 섰군요. 7 탐닉 18/07/13 5369 0
11828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5 순수한글닉 21/06/29 4328 32
706 영화안티고네는 울지 않는다 - 윈터스 본(Winter's Bone) 6 뤼야 15/08/03 7407 0
11549 게임안타까운 로스트아크. 2 닭장군 21/04/05 3385 1
6198 정치안철수씨의 연설이 표절의혹을 받고 있군요. 28 Beer Inside 17/08/30 4022 0
2075 정치안철수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영남 패권주의 25 kpark 16/01/21 5131 0
12404 정치안철수는 단일화 안합니다. 아니 못합니다. 20 Picard 22/01/05 4272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