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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4/07 19:27:38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김미경 교수 채용논란에 부쳐
21세기 최첨단 인터넷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한국 트렌드에 따라 일단 모르시에이팅을 시전해볼께요.

[전 실제 김교수 채용과정이 어땠는지 거의 모릅니다]

뀽..

그럼 왜 이런 글이나 파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이 일을 기회로 대학 채용문화에 대해 쬐끔 썰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요. 이쁘게 봐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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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자들은 누구랑 결혼할까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대학원생시절 근처에 보이는 이성 중에 맘에 드는 애랑 사귀다 결혼하곤 해요. 그러다보니 대학원생 커플-->박사커플-->교수커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구요. 이들은 각자가 1인분을 하는 학자로서 이 대학 저 대학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가족으로서 둘이 같은 도시에서 같이 사는 것을 꿈꾸지요. 자녀가 있다면 더욱 더 그렇구요.

이러다보니 어떤 대학에서 어떤 학자를 스카웃하려고 할 때 (연봉과 연구조건이 맞다는 전제 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다름아닌 스카웃 대상의 가족일 거예요. 해당 가족을 현재 거주지에서 한꺼번에 뿌리 뽑아서 이곳에 이식하지 않는 한 이적이 안 될 테니 말이지요. 그래서 유행하게된 방법이 바로 1+1이에요. "너를 채용하면서 네 배우자까지 채용하겠다. 그러면 되지?"


2.

이 경우 혹자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요. 불공평한 거 아니냐는 거지요. A 교수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이 학교의 교수가 된 B교수는 대략 1인분 정도 하는 사람이고 자기는 1.5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내가 가져갔을 수도 있는 자리를 B가 가져가냐는 거지요.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만약 스카웃 당사자인 A교수가 3인분, 4인분, 나아가 10인분 쯤 하는 교수라면 어떨까요? A가 정말 10인분을 한다면, B랑 합쳐서 둘이 5.5인분씩 해내는 셈이에요. 그렇다면 챌린지를 건 사람은 자기가 1.5인분이 아니라 5.5인분 이상을 해내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할 거예요.


3.

제가 아는 사례를 몇 개 들자면, 저희 학교 저희 과에서 캐나다출신 중국학자 티모시 브루크를 영입한 적이 있어요. 이양반은 위키에 자기 이름이 있는, 급수 높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데려오려구 무리해서 연봉도 두둑히 챙겨주고 집도 주고 차도 주고... 여튼 영혼을 담은 딜을 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딜을 해놓고는 영국으로 안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족들이 영국 가기 싫어한다. 토론토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설득하고 움직이는 데 시간이 걸리니 일단 첫 1년은 안식년으로 안되겠니?' 라는 거예요. 와 씨... 과의 수뇌부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렵게 영입한 인사이니만큼 안식년 쓰라고 허가를 내줬어요. 그렇게 임용 첫 1년을 유급휴가로 때운 브루크 교수는 '야 미안, 진짜 못가겠다. 우리 계약 해지하자.' 라고 이별통보를 해왔답니다.

이 양반에게 자원을 퍼주느라 다음 교수 구하는 것조차 잠시 어려워졌을 정도로 과에 타격이 왔는데 이렇게 먹튀를 당하고나니 과 안에서 브루크가 금지어가 되는 거야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지금와서는 교수들이 가끔 아예 와이프에게까지 일자리를 줬으면 일이 훨씬 쉬웠을 텐데 하는 이야기를 해요.


에드워드 사이드는 명저 '오리엔탈리즘'을 히트 시키면서 불후의 명성을 얻었어요. 당시 그는 컬럼비아대에 재직중이었는데 어디였드라... 하버드를 비롯해 초대형 구단 몇 곳에서 거액의 이적 제의가 들어왔대요. 이적설이 불거지고, 사이드 교수는 '내 향후 거취는 잘 모르겠다' 같은 말이나 남기고 하는 상황이었지요. 애가 탄 컬럼비아는 그를 찾아가 재계약을 시도해요.

이 때 사이드를 잡아놓기 위해 온갖 옵션이 동원됐는데 그 중 하나가 피아노였어요. 그를 위해 피아노 연습실을 아예 하나 만들어서 제공하고, 피아노도... 뭘 사줬대드라.. 여튼 참 좋은 걸 사서 넣어줬대요. 사이드가 피아노 진짜 잘 치고 좋아했거든요 ㅋㅋㅋ 그렇게 환심을 사서 잔류 확정.


4.

아마 지금쯤 느낌이 오셨을 텐데, 맞아요. (특히) 영미 대학들의 채용방침은 MLB나 EPL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하위권 클럽들이 적당한 선수를 키워내면 중위권 클럽이 사가고, 중위권 클럽이 특별한 재능러를 틔워내면 빅클럽이 탐내지요. 구단이 '빅'이냐 '중위권'이냐 등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는 돈이에요. 장비를 빠방하게 제공할 수 있고, 구장을 빠방하게 지을 수 있고, 빅네임을 빠방하게 영입할 수 있고, 빅네임에게 빠방하게 연봉과 각종 옵션을 제시할 수 있으면 그게 곧 빅클럽이지 뭐예요.

하버드, 프린스턴은 양키스 다저스고 옥스퍼드 케임브릿지는 레알 바르사나 다름 없어요. 돈으로 형성된 강한 중력으로 자국내 중위권/하위권 클럽들을 선수수급소로 만들어버리지요.


5.

잠깐. 여기서 정당한 의문을 하나 던져볼 수 있어요. EPL/MLB 구단들은 빅클럽이 되려는 목적이 분명해요. 대회가 있잖아요? 대회에 참가해서 규정에 따라 경기를 하고, 거기서 우승하면 돈과 영광을 얻고... 넘나 명확하지요. 그러면 대학들도 무슨 리그가 있어서 거기서 우승도하고 돈도 벌고 영광도 얻고 그러나요?

물론이죠. 스포츠 구단들이 승점으로 경쟁하듯 대학들은 명성으로 경쟁해요. 명성이 높아지면 학생과 돈이 몰리고, 명성이 낮아지면 둘 다 사그라들지요. 명성을 올리려면 대학 랭킹이 올라가야 하고, 랭킹 올리는 데는 뛰어난 연구 실적과 고강도 언론 노출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좋은 선수들, 가능하면 월드클래스 선수들, 더 가능하면 스타성 있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필요해요. 이 선수들이 말하자면 에드워드 사이드, 티모시 브루크 같은 사람들이구요.

빅클럽들은 빅네임 영입에만 주력하는 게 아니에요. 어느 정도 자원을 쪼개서 팀내 유스들에게 투자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구단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리챠드 도킨스예요.

도킨스는 학계의 리오넬 메시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예요. 학자로서의 명성이 대단할 뿐 아니라 무궁한 화제성과 스타성까지 겸비했으니 더이상 좋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그는 커리어 초기 잠시 UC버클리에서 조교수로 일했던 걸 제외하곤 평생 자기 모교에 충성을 바치다 거기서 은퇴했어요. 그는 8세 때부터 옥스퍼드에서 자라서 학교를 다녔고, 학사도 옥스퍼드 베일리올 컬리지에서, 석사도 동대학에서, 박사도 동대학에서, 심지어 포닥도 동대학에서 했어요. 그야말로 뼛속까지 로컬보이였던 거지요. 옥스퍼드가 가난한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의 슈퍼헤비급 대학들에 비할 바는 아니에요. 충분히 뺏기고도 남을 만한 상황인데 로컬보이라는 어드벤티지를 안고 비교적 싼값에 지켜냈으니 이득을 크게 본 셈이에요. 반대로 도킨스가 애초부터 하버드 로컬보이쯤 됐다면? 옥스퍼드 입장에선 토론토에서 티모시 브루크 뺏어오는 것도 못했는데 도킨스를 무슨 수로 데려올 수 있었겠어요 ㅡㅡ;;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말 그대로 메시에 비교해볼 수 있어요. 10대 초반부터 바르셀로나에서 자랐고, 커리어의 모든 순간을 바르셀로나와 함께 했지요. (FFP가 없다는 가정 하에) PSG(하바드)나 맨시티(스탠포드) 같은 곳에서 지른다한들 바르셀로나를 떠나지 않을 테니 바르사 입장에선 로컬보이 하나 잘 키워서 이득을 크게 본 거예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길러서 얻은 거지요.


6.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아니 그럼, 교수 부인까지 교수로 채용해주는 게 정당하다면 우리는 무얼 기준으로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나요?"

물론 양자를 구분해야지요. 구분하는 데는 명백한 기준이 필요하고, 명백한 기준은 여기서 [성과]가 제공해줘요. 리오넬 메시를 잡아놓기 위해 그의 아빠 엄마 형 누나까지 다 구단에 채용하는 건 그렇게 하는 쪽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히 구단에 이득이되기 때문이에요. 구단은 법인이고, 이 법인은 시민주주들의 소유예요. 단장이나 이사들은 모두 주주가 임명한 전문경영인들이지요. 전문경영인이 누군가를 채용한 이유가 명명백백히 구단의 이득을 위해서였다면 이는 (설령 실패로 끝나더라도) 정당한 경영행위예요. 그런데 그 채용의 이유가 만약 자기 혹은 특수관계인의 사익을 위해서였다면? 이건 더러운 배임행위지요.

다시 말하자면, 안철수 교수 채용 당시 김미경 교수 역시 채용하는 쪽이 법인 서울대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예상되었는지가 중요해요. Yes라면 안/김의 채용은 모두 업무상 정당한 결정이었던 거고, No라면 의문을 제시해야겠지요. 여기서 제 판단은 (비록 결과론의 혐의를 벗기 어렵지만) Yes였다는 거예요.

혹시 지금도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어요. 2011년 가을 경에 안철수후보가 갑자기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상당기간 한국 뉴스에 [매일] 등장했던 기간이 있었어요. 과장 조금 보태서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대선날 까지 안철수 이름 석자가 신문에 안나온 날이 있으면 그거대로 놀랄 일이고, 설령 그런 날이 있었다고해도 손으로 꼽아야할 거예요.

이 기간동안 안철수후보의 공식 직함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고, 사람 이름에 공식직함을 붙여주는 언론의 특성상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역시 덩달아 [매일] 신문지상에 등장했어요. 2011년 가을부터 안철수후보 스스로 이 직위에서 물러난 시점까지 단 하루라도 융합과학...(아이고 길다)대학원이라는 명칭이 신문에 안나온 날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놀랄 일일 거예요.

서울대 융합...머시기는 안후보 덕에 산정불가능한 수준의 홍보효과를 봤고, 안후보 역시 무언가 있어보이는 직함을 달고 나옴으로써 서울대 융합... 머시기의 덕을 봤지요. 하지만 누가 더 이득이었냐를 따지자면 역시 서울대 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서울대 쪽에서 안/김 두 사람을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카이스트 교수 직함을 달고 정치에 뛰어든 안철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안풍을 일으켰을 것이고, 카이스트는 로또급 홍보효과를 누렸을 거예요.



7. 결론

그러니까 결론은, 지금까지 나온 걸로만 봐선 이건 문제거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한국 사회가 대단한 저신뢰사회이다보니 사람들이 주변에서 [배임성 채용행위]를 목도한 경험이 많고, 그러다보니 이 경우도 그 경우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니라는 거지요.

사족을 덧붙이자면, 배임성 채용행위, 곧 낙하산을 막는 방법이 위의 본문에 제시되어있어요. 눈치 채셨나요? 성과를 정량평가해서 빡세게 경쟁시키면 돼요. 배임성 채용행위는 거의 대부분 해당 법인의 성과에 악영향을 끼쳐요. 성과에 악영향이 온다는 게 정량적으로 드러나면, 너무도 명백히 드러나면, 간뎅이가 아무리 커도 배임성 채용 못하지요. 그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시장이 가장 공평한 법관이에요. 교수의 능력이 모두 시장논리로 (+스타성도?) 평가당할 때 여러분이 지긋지긋하게 생각하시는 부정한 채용이 크게 줄어들 거예요.


The End




31
  • 춫천
  • 좋은 글은 추천입니다!
  •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을 쉽게 잘 풀어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 쉽고 재밌게~를 달성한 글입니다!
  • 명확한 논리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완벽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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