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3/13 09:11:03
Name   사슴도치
Subject   써니 싸이드 업을 먹는 방법
아침식사로 가끔 빵을 먹노라면, 애피타이져로 계란 후라이가 하나씩 올라온다. 식탁 위에 작은 햇님이 하나.

의식하지 못하고 매번 먹는데 오늘도 해를 삼키려다 새삼스레 나는 노른자부터 먹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스푼으로 살살 노른자 주변을 오려서 흰자만 남기고 떠내서 먹는다. 과정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순간의 방심은 혹점폭발로 이어져 노랗고 하얀것이 마구 뒤섞인다. 그렇게 잘 떠낸 노란색 구체를 한입에 삼키고 남은 하얀 지도를 제국주의의 군주처럼 이리저리 잘라내서 처리. 이 모든 과정이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것이다.

반숙으로 익혀서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리하는 것부터 그 형태를 몸 안으로 취하는 과정까지. 써니사이드업은 가히 계란후라이의 정수이자 귀족이라 할수 있다.

턴오버[turnover]라고 하는 괴상한 계란후라이는 실패한 써니 사이드 업의 변명이다. 마치 영국의 하류계층이 옥스포드 잉글리쉬를 흉내내기 위해 냅킨을 시비에테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계란후라이는 써니 사이드 업 이외에는 유일무이하다. 

만드는 과정부터 먹는 과정까지의 그 기품있는 무의식은 내가 귀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귀족은 무슨 나는 폐족에 가깝다-써니 싸이드 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아비투스이자 공간을 지배하는 헤게모니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위대한 에피타이저이자 사이드메뉴이다.

또한 그 혹점을 폭발시켜 밥과 참기름, 간장과 비벼먹으면 가히 오리엔탈의 신세계가 열린다.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스스로의 완전함[정]을 깨뜨려[반] 새로운 경지를 만든다는[합] 점에서 써니 사이드 업은 헤겔의 재림이자 변증법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턴오버도 가능한 것이 아니냐 반론한다면 턴오버는 노른자가 완숙하기 쉽고 노른자를 흰자가 방해하여 써니 사이드 업으로 비벼먹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를 갖는다고 항변하겠다.

결정적으로 턴오버는 아름답지 못하다. 써니 사이드 업. 백색과 황색의 황금비율! 흰자와 노른자가 어지러이 뒤섞인 턴오버는 이미 심미적 관점에서 옳지 못하다. 스타일차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스타일이 모든 것을 이긴다.(영화 "벨벳 골드마인" 중)

오늘도 식탁에는 작은 햇님이 하나. 아직 바깥은 어슴푸레하다. 그리고 선명한 아침을 나는 식탁에서 먼저 본다. 바깥 날씨가 맑든 흐리든, 적어도 식탁 만큼은 맑은,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다.

"일상화된 하루하루가 기분 좋게 여겨질 때야말로 다른일을 하도록 분발할 필요가 있다. " -피터 드러커




10
  • 기분이 계란계란.
  • 고오급 음식요리 이야기는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22 일상/생각국산 맥주에 대한 생각 28 미쿡왕김트루 15/11/10 6444 0
815 기타영국 생활 이야기 (2): 복지 42 기아트윈스 15/08/19 6443 0
772 IT/컴퓨터한국이 해킹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2 Leeka 15/08/11 6443 0
9476 일상/생각스무살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 욕 먹은 썰. 26 tannenbaum 19/07/27 6442 25
9481 음악[팝송] 조나스 브라더스 새 앨범 "Happiness Begins" 김치찌개 19/07/28 6440 0
1908 정치위안부 협상- 말 그대로 '협상'을 바라본 평가 12 깊은잠 15/12/31 6440 2
11919 과학/기술예측모델의 난해함에 관하여, .feat 맨날 욕먹는 기상청 48 매뉴물있뉴 21/07/25 6438 40
8751 사회대체 파업을 해도 되는 직업은 무엇일까? 31 레지엔 19/01/11 6438 30
7736 여행경주 열대과일 체험장 아침 18/06/23 6438 0
7690 오프모임6/15 저녁 강남 정상회담(??) 벙개 확정 67 다람쥐 18/06/15 6437 13
6266 스포츠[MLB]이현우 기자의 디스(?)와 함께 보는 현재 다저스에 대한 감상 14 바코•드 17/09/12 6437 0
7445 정치[불판] 2018 남북정상회담 86 알겠슘돠 18/04/27 6437 7
5165 일상/생각써니 싸이드 업을 먹는 방법 39 사슴도치 17/03/13 6437 10
6152 의료/건강[kormedi] 문재인의 식약처, 트럼프의 FDA 10 Zel 17/08/23 6436 7
3382 기타짱구는못말려 16기 오프닝 [부리부리 댄스 파티] HD ver. 1 자동더빙 16/07/28 6436 0
3317 정치하늘에서 빗발치는 그것은 정말 '정의'인가 6 DrCuddy 16/07/21 6435 2
1989 영화버드맨의 죽음 16 Moira 16/01/10 6435 4
1734 음악크리스마스 시즌이니... 4 새의선물 15/12/09 6435 0
10964 일상/생각홍차까페 소정 16 릴리엘 20/09/16 6434 11
10527 정치윤석열 검찰 vs 청와대 현재 대결 구도 39 토끼모자를쓴펭귄 20/04/24 6434 1
3677 게임플레이스테이션4 21 YORDLE ONE 16/09/09 6434 0
8497 사회한국의 미약한 공익신고자 보호 - 대리수술 편 3 April_fool 18/11/09 6432 1
6864 일상/생각2017년 마지막날 써보는 뻘글. 8 Darwin4078 17/12/31 6432 18
2953 과학/기술Re : Re : 국내의 에너지 산업 혹은 태양광산업 동향은 어떤가요? 30 고양이카페 16/06/06 6432 9
10284 정치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개표가 끝났습니다. 6 치리아 20/02/13 6431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