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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1/18 19:58:20 |
Name | 피아니시모 |
Subject | 흥선대원군의 실각 |
1. 흥선대원군의 권력기반은 누가 뭐라하든 바로 그의 아들 고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정상적인 권력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따로 정식관직에 임명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고종의 나이가 20을 넘기기 시작한거죠 결국 대원군의 권력기반인 고종이 대원군의 실각하게 되는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어찌되었든 전제왕조였던 조선에서 제 아무리 임금의 생부라한들 임금의 신하였고 임금이 어리다는 명분으로 행하던 섭정도 고종의 나이가 20을 넘기면서 더는 명분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군은 섭정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야를 한 이후로도 끊임없이 왕실과 갈등을 빚으며 권력을 되찾기 위해 왕실과 관련된 온갖 사건에 개입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내려올 사람이 아니었죠. 비록 고종의 나이가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고종의 생부라는 절대적인(?) 보호막이 있었습니다. 집권기간 10년동안 다져놓은 권력기반에 왕의 생부라는 보호막은 누군들 쉽게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잘못 건드렸다간 대원군은 둘쨰치고 고종의 진노를 직격으로 맞을 수도 있던 문제였으니깐요. 2. 10년간 대원군은 인재등용에 있어 신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붕당이란 건 이미 영조대에 다 개박살이 나있었습니다. 영조는 탕평책을 내세웠지만 이인좌의 난을 비롯한 소론 강경파의 지속되는 반란속에 결국 노론쪽으로 기울다가 그마저도 척신정치로 기울었습니다. 정조가 즉위한 이후 정조는 붕당정치의 부활을 시도했고 그것을 위해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고자 했으나 정조게에 의리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이럴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노론 강경파에 의해 쉽지 않았고 결국 벽파(노론 강경파) vs 시파(노론 온건, 남인, 소론)으로 나뉘게 되고 결국 정조마저도 붕당정치를 포기하고 소론계열의 김조순을 세자의 장인으로 세워 척신정치를 하게 됩니다. 정순왕후의 죽음 이후 벽파는 시파에 의해 궤멸되게 됩니다. 역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개박살이 나고 붕당체제가 완전히 없어지고 세도정치로 유명한 안동김씨의 척신정치로 이어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사역사학을 선도하는 모씨처럼 노론음모론에 따지면 노론이 세도정치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정작 세도정치를 한 안동김씨는 노론이 아니라 소론계열입니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이미 당파 자체가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원군은 과거의 남인이나 소론을 찾아 등용하기 시작했고 그들뿐만 아니라 서얼을 증용하는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인재등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종친 친화정책으로 종친들에게 이런저런 관직을 주면서 폭넓게 지지세력을 만들었죠. 이는 대원군이 실각하고나서도 수많은 세력들이 권력을 잡을 떄 대원군을 얼굴마담 혹은 그를 재집권시키려고 한 원인이 됩니다. 어쩃든 대원군의 권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고 있었습니다. 서원철폐와 경복궁증건으로 민심을 잃었다고 하나 서원철폐는 앞서 말한대로 오히려 백성들이 환호했던 일이었고 경복궁증건이 많은 원한을 사긴 했지만 대원군을 실각시킬 정도로 이어지진 않고 있었습니다. 송시열 이후 두번쨰로 대로라는 호칭을 받았을 정도로 탄탄대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경복궁증건)이 실각의 원인이었다!라고는 하나 그게 정말로 결정타는 아니였습니다. 결정타는 도리어 (적어도 대원군 입장에선) 어이없는 곳에서 날라옵니다. 3. 대원군이 대로라는 칭호를 받은 지 4개월이 지난 고종10년 10월25일 최익현의 상소 하나가 고종에게 올라옵니다. “신은 몇 해 전에 부름을 받고 마지못해 벼슬의 반열에 나왔으나, 며칠도 못 가서 까닭 없이 견파(譴罷)당하였으니, 신의 변변치 못하고 사람답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전하께서도 벌써 환히 알고 계신 바입니다. 그때부터 시골로 물러가서 고생을 달게 받으며 낮은 벼슬자리도 감히 바라보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승지와 같은 훌륭한 벼슬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명을 듣고 나서 놀랍고 황송하여 더욱 죽을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일들을 보면, 정사에서는 옛날 법을 변경하고(정변구장 政變舊章) 인재를 취하는 데에는 나약한 사람만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대신(大臣)과 육경(六卿)들은 아뢰는 의견이 없고, 대간(臺諫)과 시종(侍從)들은 일을 벌이기 좋아한다는 비난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속된 논의가 마구 떠돌고 정당한 논의는 사라지고 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이 뜻을 펴고 정직한 선비들은 숨어버렸습니다. 그칠 새 없이 받아내는 각종 세금 때문에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있으며, 떳떳한 의리와 윤리는 파괴되고(이륜두상 彝倫斁喪) 선비의 기풍은 없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괴벽스럽다고 하고, 개인을 섬기는 사람은 처신을 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염치없는 사람은 버젓이 때를 얻고, 지조 있는 사람은 맥없이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결과로 인해 위에서는 천재(天災)가 나타나고, 아래에서는 지변(地變)이 일어나며, 비가 오고 날이 개이고 춥고 덥고 하는 기후 현상에서는 모두 정상적인 상태를 잃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는 아무리 노련하고 높은 덕망으로 세상 사람들의 추대와 신망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담당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견제당하고 모순에 빠져 힘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신과 같이 본바탕이 어리석고 학식도 전혀 없는데다가, 외롭고 약하여 어찌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만약 전하의 총애만 믿고서 본분에 지나친 것을 삼가라는 경계와, 복이 지나치면 재앙을 당한다는 교훈을 생각하지 않고, 벼슬 반열에 끼어 따라다니고 길가에서 떠들어대며 의기양양하게 자족하면서, 아무것도 꺼리는 바가 없이 처신한다면, 또한 사람들의 드센 비방과 무엄하고 불경스럽다는 주벌이 잇따라 일어나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 때문에 신이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달려 나가고 싶어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어만 없을 뿐 대원군을 신나게 까고 있는 내용이 고종에게 올라온거죠 대충 정리해보자면 각종세금을 언급하는 데 이는 경복궁증건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과 당백전으로 인한 화폐경제가 망가진 것을 지적한것이고 대신과 대간이 본분을 잊고 대원군을 무서워하여 그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 앞에 대원군을 생각하고 읽어 보시면 됩니다. 이 단 하나의 상소에 온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데 이 와중에 고종은 최익현에게 지금의 내무부차관쯤 되는 호조참판직을 줘버립니다. 그를 충신이라고 칭찬까지하면서요. 당연히 온 조정은 시끌시끌해지며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안기영과 같은 인물들이 최익현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고종은 안기영을 역으로 까기 시작하면서 최익현을 까는 놈은 충신을 까는 간신이라며 욕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군쪽 사람들이 계속해서 최익현을 공격하자 그들의 저의가 무엇이며 최익현이 까는 주체가 누구길래 그렇게 쑈를 하냐며 역으로 공격해버리죠. 모두가 공격대상이 대원군이라는 걸 알지만 섣불리 대원군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 이용한거죠 뒤이어 최익현의 2차상소문이 올라옵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다 옮겨오지 못했는데 간단하게 대원군을 향해 정당한 지위에 있지 않은 종친이라며 까기 시작했고 (흥선군은 어떤 지위에도 올라가지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경복궁증건, 당백전으로 인한 민생파탄 서원철폐를 물고 늘어지면서 대원군의 섭정 자체를 까는 내용을 실어 올린겁니다. 다시 한번 조정이 발칵뒤집힙니다. 내용이 워낙 어마무시하였기때문에 이전까지와 달리 대원군의 눈치를 보며 조정은 겁을 먹기 시작합니다. 대신들은 대원군에게 쫄아버려 최익현을 국문해야한다고 다 같이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계속되는 국문요청에 고종은 그 국문을 받아드리지만 "최익현이 옳은 말을 했지만 상소가 날 핍박하려 하니 국문하겠다"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문을 한다고 합니다.-_-aa 국문이 시작되자 당연히 행해져야할 고문들은 없고 몇마디 주고 받더니 고종은 최익현이 시골촌놈이라 잘 몰라서 그런거다라는는 말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사건 자체를 마무리 해버립니다(..) 명백히 대원군이 공격당했고 그로 인해 국문까지 하게 된 건데 대원군에 대한 말 자체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은 거죠 그리고 이때 조정대신들은 꺠닫습니다. 더 이상 고종이 대원군의 방패막이가 아니라는 것을요 대원군은 운현궁을 떠나 자기 별장에 칩거하면서 무언의 시위를 하였지만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어떤 대신이나 대간들도 대원군을 복귀시키자는 상소를 올리지 않은거죠. 그나마도 1년만에 대원군 복귀상소를 올린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만 고종은 빡쳐서 그 상소올린 사람을 유배보내버렸고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완전히 실각했다는 것을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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