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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0/26 22:26:07
Name   YORDLE ONE
File #1   th_IMG_0874.jpg (28.3 KB), Download : 18
Subject   기관실에서 보는 풍경에 대해 생각하다


사진설명 : 아침에 문앞에 낑겨서 찍은 사진이고 사건과는 일체 관계없습니당.. 5시방향은 나의 손가락, 6시방향은 유리창에 붙어있는 務 라는 한자.

경어생략 양해부탁드립니다 꾸벅


人身事故(진신지코)란 전철 등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사고를 일컫는 말이다. 혹시 아니면 말해달라.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투신사고가 가장 흡사하게 쓰이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아침 7시 30분 경, 오다큐선 신주쿠행 열차가 다니는 길에 있는 어떤 역에서 사람이 열차 앞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모양이다. 시체를 치우기 위해 소모된 시간을 비롯한 각종 뒤처리시간이 얼마나 소모되었는지, 이 사고로 인한 나비효과로 오다큐선의 츄오린칸역 환승에 걸려있는 토큐선까지 줄줄이 연착되었고, 무려 40분에 달하는 연착으로 이 노선에 얽혀있는 모든 급행 정차 역은 엄청난 혼란을 빚었다. 나 역시 그 혼란 속에 있었다. 일반 열차가 급행으로 재편성되면서 다급하게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한 그 난리 속에서 내가 올라탄 전철 칸은 가장 앞 칸, 1번 칸이었다.

(제목이랑 연관지어서 혹시 이 아래로 뭔가 끔찍한 사건이 적혀있는건 아닌지 걱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건 없다. 이 아래로 적혀있는건 한 남자가 문에 낑겨서 뇌내망상을 펼친 기록 뿐이다.)

온몸이 짓눌려서 호흡이 힘들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낑겨서 타고 있는 와중에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조종실 창에 이마를 딱 붙인 채로 전철이 나아가는 경로를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부신 햇빛이 차창을 통해 예쁘게 비쳐들어오고 정갈하게 지어진 일본의 주택들과 잘 정비되어있는 노선을 바라보며 한참을 전철역에서 기다려야만 했던 불쾌함이 약간은 가시는 것 같았다. 방송으로는 '인신사고로 인해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다음 역은 아오바다이, 아오바다이입니다." 와 같은 안내문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고 있었다. 곧 아오바다이 역에 전철이 들어섰고, 한국과는 달리 노선과 승강장 사이에 자동문이 설치되어있지 않은 일본의 승강장 위로 바글바글하게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전철 안에 꽉 들어찬, 그리고 저 승강장 위로 가득 들어찬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게 만든 그 사건, 수많은 지각을 발생시키며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 그 인신사고에 대해 생각했다.

이 당시만 해도 나는 누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출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내가 비록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진 못하겠지만 그 사고사를 가볍게 다루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사고로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 원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고에 대해서 도끼눈이 되기 보다는 조금 더 우호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내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닐때도 비슷한 일을 몇번 겪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뭐 그땐 내 근태와는 관계가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오바다이에서 내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하는 과정에서 내 몸에 가해지는 압력은 한층 더 거세졌다. 사람이란게 이렇게까지 전철 안에 낑겨서 타는게 가능하구나. 기가 막혔다. 다음 역인 아자미노까지 가는 시간동안 나는 기관실 문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못하는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책이나 폰을 안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했고, 따라서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기관사 입장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항상 이런 풍경을 보면서 어떤 기분일까, 정차하는 요령은 어떻게 연습하는걸까, 혹시 급행이랑 각정을 헷갈려서 그냥 지나쳐버리고 그러는 일은 없을까.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데 다시 방송이 나왔다. "인신사고로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다음 역은 아자미노, 아자미노 역입니다."

인신사고와 기관사라는 키워드 간에 관계가 구축되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사람을 열차로 쳐서 죽이는 경험은 어떤 기분일까? 일반 승용차로 음주운전이나 안전운전 미준수 혹은 상대 차량의 잘못으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도 비범한 충격을 줄 텐데, 철저히 스케줄과 법규를 준수하며 운전하는 전철 기관사가 만일 선로에 뛰어드는 누군가를 치게 된다면, 기관사가 느끼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은 즉 누군가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고 평생 그 기억에 고통받게 만드는 저주인건 아닌지. 나는 솔직히 생사를 취급하는 것에 대해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아니다. 사는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되있는 사람에게 자살을 하지 마세요. 라고 무작정 말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자살을 권하는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기관사가 불쌍하니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자살법을 준수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투신자살, 인신사고, 끔찍하지. 하지만 지금은 자살이라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자. 나는 그 순간 철저히 기관사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승강장으로 천천히 감속하며 들어가는 전철에서 본 승강장의 사람들 모습은 너무나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저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내 눈앞으로 쓰러져 들어온다면. 갑자기 선로로 뛰어내린다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나는 눈을 꽉 감아버렸다.

만약 그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아마도 그 광경을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어려운 문제를 다 떠나서 그 순간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다.



ps。제목이 너무 말이 안되는거같아서 고쳤습니다.
관련기사 : http://www.nikkei.com/article/DGXLASDG26H1Y_W6A021C1CC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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