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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6/15 23:33:03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한국 노벨상 집착 당황스럽다" |
소설 <<채식주의자>>의 번역자가 한국측의 초청으로 내한했나봐요. 하지만 데보라 스미스씨는 한국에서 인터뷰를 하면 당연히 노벨문학상 질문이 나올 걸 예상하지 못했나봅니다. 사람들은 서구세계가 지닌 경제적 힘을 경외하면서도 그들이 그 경제적 힘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다른 종류의 힘에 대해서는 약간 둔감하게 반응하곤 해요. "권위" 라든지, "문화 헤게모니" 라든지. 사실 후자와 같은 힘이 경제적 힘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는데도 말이지요. 교수는 학생에게 학점을 내려주고 학생은 그 처분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지요. 학생이 교수보다 부자라도 말이에요. 심지어 그 학생이 후에 정교수가 된다 하더라도 학창시절 지도교수는 평생 지도교수로서 늘 그 위에서 임하고 있을 거에요. 이 권위의 절대적 비대칭성, 권위자와 비권위자 간의 압도적 차이는 마치 달러화와 원화의 차이와 같아요. 화폐는, 누군가에 의하면, 재화의 가치를 표기하는 기호인데 모든 화폐는 다시 그 가치를 달러화를 기준으로 평가받아요. 따라서 달러는 화폐들의 화폐, 메타화폐 같은 거에요. 한 차원 위에서 거룩하게 존재하지요. 문학 작품의 품질은 독자들의 평가라는 기호로 표기되는데, 이 모든 평가들을 평가하는 게 노벨 문학상이에요. 내가 재미 없게 읽었어도 노벨상을 받으면 "내가 이상한가보지" 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주관과 강단이 뚜렷한 소수 독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는 문학상이라는 메타취향으로 자신의 취향을 재단하고, 표기하려고 해요. 그래서 읽지 않을 걸 알면서도 노벨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괜히 한 번 사서 책꽂이에 꽂아보는 거구요. 스미스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잘 감상하고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 된다. 상은 그저 상일 뿐이다" 라고 했대요. 청중과 발화자를 떼 놓고 보면 그저 평이하고 옳은 말 같은데, 비서구권 시민들의 흉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우린 그저 "권위"가 우리를 인정해주시기를 갈구할 뿐이거든요. 이하는 율곡 이이(李珥)의 전기에서 발췌한 거에요. 겨울에 명(明)나라에서 국사편수(國史編修) 황홍헌(黃洪憲)과 공과급사중(工科給事中) 왕경민(王敬民)이 사신으로 와서 조서를 반포하였는데, 삼공(三公)이 선생을 원접사(遠接使)로 천거하여 국경에 나가 맞이하게 하였다. (중략) ... 묻기를, “그렇다면 천도책(天道策: 율곡이 언젠가 급제할 때 써냈던 답안지 제목)을 지은 사람인가?” 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니, 두 사신은 머리를 끄덕였다. (원주: 선생께서 거자(1차 합격자)이던 시절 천도책으로 답안을 내서 장원을 하셨다. 당대에 회자되어 중화에까지 전해져서 두 사신 역시 전에 이를 보았었다. 평소 존경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先生爲擧子時。對天道策居魁。一世膾炙。傳入中華。而兩使亦曾見之。欽仰有素。故有此問。) 지금 보면 참 별 거 아닌 일 같은데, 조선인이 조선 과거시험에서 쓴 답안이 명나라에 전해져서 사신들이 올 때 "아 이 사람이 그거 쓴 사람이야?" 라고 물어봤다는 사실 자체가 조선 지식인들의 국뽕에 불을 지른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저 해당 구절은 율곡과 관련된 거의 모든 전기성 기록에 빠짐 없이 등장할 뿐더러 심지어 실록에까지 기록되어있지요. 그의 사후에 (본의 아니게) 한 당파의 시조격으로 추숭된 것과 후에 조선 성리학의 대표인물 중 하나로 꼽히게 것과 그 결과 5천원 권에 들어가게 된 것과, 궁극적으로 본인 어머니까지 5만원 권에 들어가게 한 것은 모두 이 사건이 이이의 명성을 당시 하늘 끝까지 올려준 것과 무관하지 않아요. 혹시라도 한강씨가 노벨문학상이라도 타는 날엔 그게 언제가 될지언정 언젠가는 반드시 화폐에 얼굴이 올라가지 않을까 저으기 상상해봅니다. -------------- 참고문헌 데보라 스미스 인터뷰: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15/story_n_10474418.html?ncid=fcbklnkkrhpmg00000001 월사 이정귀의 율곡 이선생 시장: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M&seojiId=kc_mm_a201&gunchaId=av036&muncheId=01&finId=001 사계 김장생의 율곡 이선생 행장: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g001&gunchaId=av007&muncheId=01&finId=001 조선왕조실록의 이이 부분: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JO&jwId=knb_115&moId=110&daId=010&gaLid=knb_11511001_001&gaId=&yoId=&ilId=&leI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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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떡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초에 MLB사례를 든 제 손가락을 자꾸 저주하게 되네요 -_-;;
엠엘비 이야기를 아예 취소했으면 싶지만 그래도 굳이 쬬끔 더 첨언하자면 전 인정욕 충족과 실제 성취의 크기를 비교할 때 발생하는 우스움 보다는 "실제 성취의 크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저는 대개의 경우 성취 =성취감이라고 봐요.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인 경우, 끝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드디어 내 내면의 악을 극복해낸다든가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취감은 사회적 맥락... 더 보기
엠엘비 이야기를 아예 취소했으면 싶지만 그래도 굳이 쬬끔 더 첨언하자면 전 인정욕 충족과 실제 성취의 크기를 비교할 때 발생하는 우스움 보다는 "실제 성취의 크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저는 대개의 경우 성취 =성취감이라고 봐요.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인 경우, 끝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드디어 내 내면의 악을 극복해낸다든가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취감은 사회적 맥락... 더 보기
찰떡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초에 MLB사례를 든 제 손가락을 자꾸 저주하게 되네요 -_-;;
엠엘비 이야기를 아예 취소했으면 싶지만 그래도 굳이 쬬끔 더 첨언하자면 전 인정욕 충족과 실제 성취의 크기를 비교할 때 발생하는 우스움 보다는 "실제 성취의 크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저는 대개의 경우 성취 =성취감이라고 봐요.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인 경우, 끝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드디어 내 내면의 악을 극복해낸다든가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취감은 사회적 맥락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구요.
아마 엠엘비에 진출했거나 진출하고자 했던 선수들의 마음 속엔 다양한 레벨의 욕망들이 공존했을 거에요. 한 편으론 최고의 리그에서 나를 시험하고 갈고 닦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소년만화적 열망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의 엠엘비 진출 소식을 듣고 그를 축하해주고 응원해주고 안아주고 기뻐해주고 대견해해줄 주변인들 (거의 모두 한국인이겠지요)의 존재가 엠엘비 진출의 기대 성취감 값을 한껏 높여주었겠지요.
그건 율곡의 경우와도 같아요. 당시 율곡이 명나라 사신들에게 인정받은 사건은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거였어요. 상위리그에서 당당히 인정받은 아웃라이어지요. 이건 엄연한 "성취"에요. 하지만 동시에 이 "성취"가 16세기 조선이라는 구체적인 프레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 않나요?
엠엘비 이야기를 아예 취소했으면 싶지만 그래도 굳이 쬬끔 더 첨언하자면 전 인정욕 충족과 실제 성취의 크기를 비교할 때 발생하는 우스움 보다는 "실제 성취의 크기"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저는 대개의 경우 성취 =성취감이라고 봐요.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인 경우, 끝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드디어 내 내면의 악을 극복해낸다든가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취감은 사회적 맥락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구요.
아마 엠엘비에 진출했거나 진출하고자 했던 선수들의 마음 속엔 다양한 레벨의 욕망들이 공존했을 거에요. 한 편으론 최고의 리그에서 나를 시험하고 갈고 닦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소년만화적 열망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의 엠엘비 진출 소식을 듣고 그를 축하해주고 응원해주고 안아주고 기뻐해주고 대견해해줄 주변인들 (거의 모두 한국인이겠지요)의 존재가 엠엘비 진출의 기대 성취감 값을 한껏 높여주었겠지요.
그건 율곡의 경우와도 같아요. 당시 율곡이 명나라 사신들에게 인정받은 사건은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거였어요. 상위리그에서 당당히 인정받은 아웃라이어지요. 이건 엄연한 "성취"에요. 하지만 동시에 이 "성취"가 16세기 조선이라는 구체적인 프레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 않나요?
문학에는 상위리그 하위리그가 없지만 문학'상'에는 리그가 분명히 있지요. 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보다 맨부커 노벨상이 상위리그인 건 자명해요. 일단 간단히 생각해도 시장의 규모가 완전히 다르지요. 한국 소설가 중에도 영어만 잘 했으면 직접 영어로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은 쌔고 쌨을 거예요. 문학의 경우 하위 리그원이 상위리그에 진입하고자 할 때 그 자격이나 스펙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전무하다는 것, 따라서 오로지 기존 상위리그 멤버들의 주관적인(노벨상의 경우 대단히 배타적인) 취향이 하위 리그원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이 스포츠와 다른 점이겠습니다만..
저는 네셔널리즘의 관점에서 다른거 다 덮어놓고 집착하는건 문제라고 보는데 노벨상 자체가 지닌 권위에 대해서는 꽤 긍정하고 있습니다. 노벨 경영학상이나, 노벨 공학상은 없죠. 그 이유는 이러한 종류의 분야들은 시장에 의해서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 역시 마찬가지고요. 상을 만든다는 것은 그 상을 줌으로써 무언가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인데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는 분야에 있어선 권위를 신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수익이 곧 권위이고, 흥행이 곧 권위인데요. 하지만 이런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 더 보기
저는 네셔널리즘의 관점에서 다른거 다 덮어놓고 집착하는건 문제라고 보는데 노벨상 자체가 지닌 권위에 대해서는 꽤 긍정하고 있습니다. 노벨 경영학상이나, 노벨 공학상은 없죠. 그 이유는 이러한 종류의 분야들은 시장에 의해서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 역시 마찬가지고요. 상을 만든다는 것은 그 상을 줌으로써 무언가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인데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는 분야에 있어선 권위를 신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수익이 곧 권위이고, 흥행이 곧 권위인데요. 하지만 이런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라면 이런 권위를 부여해서 특정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을 만든 최초의 취지도 이런 것에 부합하죠. 다이너마이트 발명은 시장에서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서 노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주었지만 노벨은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건 세상을 반드시 이롭게 만드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벨 본인은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모든 유인체계를 시장에 맡기고 모든 사람들이 이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던 것이죠. 기본적으로 특정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기초 학문의 경우는 거의 해당 분야의 가능성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라 이게 단기적으로 시장에서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도 없고 이를 통해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short termism의 극치이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국의 수재라는 아이들의 선호 직종이 의사, 변호사가 지배적이고 해외에서 조차도 '넌 한국인이니 의대나 법대 가겠네' 같은 스테리오타입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결코 폄하될만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기아트윈스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나라의 노벨상에 대한 갈망은 네셔널리즘, 소위 말하는 국뽕의 연장선상에서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거나와 노벨상 자체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비판 받을 소지는 있겠지만요.
노벨상을 만든 최초의 취지도 이런 것에 부합하죠. 다이너마이트 발명은 시장에서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서 노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주었지만 노벨은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건 세상을 반드시 이롭게 만드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벨 본인은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모든 유인체계를 시장에 맡기고 모든 사람들이 이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던 것이죠. 기본적으로 특정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기초 학문의 경우는 거의 해당 분야의 가능성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라 이게 단기적으로 시장에서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도 없고 이를 통해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short termism의 극치이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국의 수재라는 아이들의 선호 직종이 의사, 변호사가 지배적이고 해외에서 조차도 '넌 한국인이니 의대나 법대 가겠네' 같은 스테리오타입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결코 폄하될만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기아트윈스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나라의 노벨상에 대한 갈망은 네셔널리즘, 소위 말하는 국뽕의 연장선상에서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거나와 노벨상 자체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비판 받을 소지는 있겠지만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애초에 노벨이 이런 상을 만든 동기도 자기 부고가 신문에 잘못 난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죽음의 상인'이라고 까인걸 보고 이대로 죽으면 욕 오지게 먹겠구나 해서 만든 것이다라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근데 이렇게 순전히 모든게 철저하게 명예욕에 기반한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 같이 합의한 권위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저는 긍정하는 편입니다. 기부 행위가 자의식의 충족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기부 행위가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물론 평화상의 몇몇 케이스는 정말 처참한 수준이라고 듣긴 했습니다...
허핑턴포스트에는 [한국문학의 노벨상 수상 전망]을 물어봤다고 되어 있고, 또 어떤 기사에서는 한강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물어봤다고 되어 있는데, 어느 쪽으로 물어봤든 한심한 질문이긴 마찬가지네요. 한국어를 배운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번역자가 한국문학의 수준을 평가할 만큼 다양한 작품을 심도 있게 읽었을 리도 없고, 스웨덴 한림원 멤버 중에 친인척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아직 서구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특정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가타부타 말할 수 있을 리도 없고요. 뭐 기자님들은 덕담이라도 ... 더 보기
허핑턴포스트에는 [한국문학의 노벨상 수상 전망]을 물어봤다고 되어 있고, 또 어떤 기사에서는 한강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물어봤다고 되어 있는데, 어느 쪽으로 물어봤든 한심한 질문이긴 마찬가지네요. 한국어를 배운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번역자가 한국문학의 수준을 평가할 만큼 다양한 작품을 심도 있게 읽었을 리도 없고, 스웨덴 한림원 멤버 중에 친인척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아직 서구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특정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가타부타 말할 수 있을 리도 없고요. 뭐 기자님들은 덕담이라도 해주십사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질문의 번짓수가 잘못됐죠. 만일 데보라 스미스 씨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더라도 기사에 그렇다고 실어주면 안 될 거예요. 그가 세계문학사에 한국문학 포지션을 위치지을 수 있는 비교문학자도 아니고 마르케스의 전문번역자 그레고리 라바사처럼 번역 종수가 수십 권씩 되는 중견 번역자도 아니고. 그런 사람의 덕담에 일종의 권위를 실어 기사화하는 순간 진짜 코메디가 되겠죠. 스미스 씨가 강단 있게 잘 빠져나간 거 같아요.
이번 한강씨의 맨부커상 중 국제부문 수상에 이렇게 까지 열광하는건 당황스럽고, 노벨상까지 나오는건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히 서구권이라고 우아하고 도도하게 상따윈 상관없어 하는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비슷비슷합니다.
- 제가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학교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 우리도 그네들 처럼 노벨상 받은 사람이 많이 나오면 좀 둔감해 지겠죠.
사실 국뽕이나 제3세계 컴플렉스가 유치하긴 하지만 딱히 나쁜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미권이나 대국이 아니니까요.
마지막... 더 보기
하지만 딱히 서구권이라고 우아하고 도도하게 상따윈 상관없어 하는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비슷비슷합니다.
- 제가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학교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 우리도 그네들 처럼 노벨상 받은 사람이 많이 나오면 좀 둔감해 지겠죠.
사실 국뽕이나 제3세계 컴플렉스가 유치하긴 하지만 딱히 나쁜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미권이나 대국이 아니니까요.
마지막... 더 보기
이번 한강씨의 맨부커상 중 국제부문 수상에 이렇게 까지 열광하는건 당황스럽고, 노벨상까지 나오는건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히 서구권이라고 우아하고 도도하게 상따윈 상관없어 하는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비슷비슷합니다.
- 제가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학교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 우리도 그네들 처럼 노벨상 받은 사람이 많이 나오면 좀 둔감해 지겠죠.
사실 국뽕이나 제3세계 컴플렉스가 유치하긴 하지만 딱히 나쁜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미권이나 대국이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천도책이 인상적인 이벤트이긴 하지만, 고작 그 하나가 성리학의 대표로 뽑히게 된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건
오히려 성리학과 그 이후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 한게 아닐까요? 이기론과 사칠 논쟁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할만한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히 서구권이라고 우아하고 도도하게 상따윈 상관없어 하는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비슷비슷합니다.
- 제가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학교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 우리도 그네들 처럼 노벨상 받은 사람이 많이 나오면 좀 둔감해 지겠죠.
사실 국뽕이나 제3세계 컴플렉스가 유치하긴 하지만 딱히 나쁜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미권이나 대국이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천도책이 인상적인 이벤트이긴 하지만, 고작 그 하나가 성리학의 대표로 뽑히게 된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건
오히려 성리학과 그 이후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 한게 아닐까요? 이기론과 사칠 논쟁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할만한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일관성은 한국인에게 있는게 아니라 인간 보편에게 있는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ㅎㅎ
그리고 자세하게 적을까 하다 말았는데, 사칠논쟁은 이황대 기대승이 맞지만 이후에는 율곡과 이황간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죠. 그래서 이기론을 앞에 적은거고요. 그리고 성리학적인 철학보다 정치나 명성을 이야기 하시는걸로 보여 아쉽네요. 퇴계와 율곡 이전과 이후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음에도 그 둘이 대표가 된 이유에서 정치나 명성은 양념일 뿐이죠. 율곡이 절에서 공부했던걸로 공격도 제법 받았었고... 그부분을 강조하는건 유학자들에 대한 심한 과소평가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세하게 적을까 하다 말았는데, 사칠논쟁은 이황대 기대승이 맞지만 이후에는 율곡과 이황간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죠. 그래서 이기론을 앞에 적은거고요. 그리고 성리학적인 철학보다 정치나 명성을 이야기 하시는걸로 보여 아쉽네요. 퇴계와 율곡 이전과 이후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음에도 그 둘이 대표가 된 이유에서 정치나 명성은 양념일 뿐이죠. 율곡이 절에서 공부했던걸로 공격도 제법 받았었고... 그부분을 강조하는건 유학자들에 대한 심한 과소평가로 보입니다.
사칠논쟁은 말하자면 엠팍의 우측담장 같은 거에요. 최다댓글 달린 의제. 발제자는 퇴계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최초 발제자는 퇴계의 제자), 첫 댓글러가 고봉이었구요. 율곡은 당시 퇴계는 물론이고 고봉에게 가져다 대기에도 너무 어려서 당장에 참여는 못했어요. 훗날, 퇴계가 죽은 뒤에, 퇴계 빠가 된 자기 친구랑 이 분야에 대해 토론하면서 고봉편을 들었지요.
율곡을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래서, 좀 이상해요. 예컨대 제가 사칠논쟁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쓴다고 해서 제가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리... 더 보기
율곡을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래서, 좀 이상해요. 예컨대 제가 사칠논쟁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쓴다고 해서 제가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리... 더 보기
사칠논쟁은 말하자면 엠팍의 우측담장 같은 거에요. 최다댓글 달린 의제. 발제자는 퇴계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최초 발제자는 퇴계의 제자), 첫 댓글러가 고봉이었구요. 율곡은 당시 퇴계는 물론이고 고봉에게 가져다 대기에도 너무 어려서 당장에 참여는 못했어요. 훗날, 퇴계가 죽은 뒤에, 퇴계 빠가 된 자기 친구랑 이 분야에 대해 토론하면서 고봉편을 들었지요.
율곡을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래서, 좀 이상해요. 예컨대 제가 사칠논쟁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쓴다고 해서 제가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음... 학계에 몸담을 것 까지도 없이 한국에서 조선유학과 관련된 학회에 한 번이라도 가보면 이게 여전히 살아있는 전통이란 걸 강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후손들이 그렇게 많이 와요...-_-;
예컨대 충청권에서 관련 학회를 연다거나 하면 율곡과 직접 관련이 있든 혹은 율곡을 시조격으로 모신 율곡네 당파 (주로 서인-노론계열) 참여자의 후손이든 꽤 많이 옵니다. 반대로 경북권에서 이런 학회를 열면 퇴계-남인 쪽 후손들이 그렇게 많이 오구요. 일선 학자 입장에선 본인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자료를 독해하고 분석해서 연구를 하고자 하더라도 해당 인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표현을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당장 객석 분위기가 험악해지는지라 중심을 잡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나는 조선 유학자 중에 누가 제일 좋더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늘 조심스러워져서 말 꺼내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도 과감히 커밍아웃 해보자면 전 이론적/영적 성취면에서 율곡은 퇴계에 들이댈 수준이 아니라고 봐요. 반면에 정치적/행정적 성취면에서 퇴계는 율곡에 비할 바가 아니기도 하구요. 제 독해력으론 이건 거의 자명하게 느껴져요.
성학집요 읽어보면 꼭 동아전과 보는 것 같아요. 빠삭하게 정리는 잘 해놨는데 자득(自得)이 느껴지지는 않아요. 반면 성학십도를 보면 율곡의 빠삭한 느낌은 없는 반면 고동치는 날것이 있구요.
정치나 명성 부분을 과소평가라고 하셨는데 그건 꼭 그렇진 않아요. 지지하는 정치인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그양반들이 늘 흉악한 심사로 정치하는 건 아니지 않겠어요? 세상을 (본인이 믿는 바)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미디어를 사로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선거 때가 되면 TV광고도 찍고 위기의 순간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요. 이건 그 자체로 대단한 능력이자 커리어에요. 하지만 그렇게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훌륭한 정치인이 됐다고 해서 그의 이론적 식견이 꼭 훌륭할 거라고 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제가 보기엔 율곡이 꼭 그래요.
율곡을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래서, 좀 이상해요. 예컨대 제가 사칠논쟁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쓴다고 해서 제가 사칠논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음... 학계에 몸담을 것 까지도 없이 한국에서 조선유학과 관련된 학회에 한 번이라도 가보면 이게 여전히 살아있는 전통이란 걸 강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후손들이 그렇게 많이 와요...-_-;
예컨대 충청권에서 관련 학회를 연다거나 하면 율곡과 직접 관련이 있든 혹은 율곡을 시조격으로 모신 율곡네 당파 (주로 서인-노론계열) 참여자의 후손이든 꽤 많이 옵니다. 반대로 경북권에서 이런 학회를 열면 퇴계-남인 쪽 후손들이 그렇게 많이 오구요. 일선 학자 입장에선 본인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자료를 독해하고 분석해서 연구를 하고자 하더라도 해당 인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표현을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당장 객석 분위기가 험악해지는지라 중심을 잡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나는 조선 유학자 중에 누가 제일 좋더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늘 조심스러워져서 말 꺼내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도 과감히 커밍아웃 해보자면 전 이론적/영적 성취면에서 율곡은 퇴계에 들이댈 수준이 아니라고 봐요. 반면에 정치적/행정적 성취면에서 퇴계는 율곡에 비할 바가 아니기도 하구요. 제 독해력으론 이건 거의 자명하게 느껴져요.
성학집요 읽어보면 꼭 동아전과 보는 것 같아요. 빠삭하게 정리는 잘 해놨는데 자득(自得)이 느껴지지는 않아요. 반면 성학십도를 보면 율곡의 빠삭한 느낌은 없는 반면 고동치는 날것이 있구요.
정치나 명성 부분을 과소평가라고 하셨는데 그건 꼭 그렇진 않아요. 지지하는 정치인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그양반들이 늘 흉악한 심사로 정치하는 건 아니지 않겠어요? 세상을 (본인이 믿는 바)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미디어를 사로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선거 때가 되면 TV광고도 찍고 위기의 순간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요. 이건 그 자체로 대단한 능력이자 커리어에요. 하지만 그렇게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훌륭한 정치인이 됐다고 해서 그의 이론적 식견이 꼭 훌륭할 거라고 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제가 보기엔 율곡이 꼭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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