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3/08 21:43:27
Name   레이드
Subject   [조각글 17주차] 잘 되야 한다
주제 _ 선정자 : 7월
닭!
- 닭, 치킨 뭐든 좋으니 '닭'에 대한 수필이나 일기를 써주세요.  (수필과 일기만 됩니다,)
- 최대한 의식의 흐름으로 써주세요. (의식의 전개 과정이 보고싶습니다.)
-  수필 형식이면 닭에 대한 연구도 좋습니다. 닭 해부도 좋습니다. 닭이란게 토종닭 장닭 수탉 등이 있더라 그런데 뭐 어쩌고저쩌고 이러셔도 되구요..
- 그냥 마음가는대로 닭 일기 써오세요!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하고싶은 말



본문

닭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치킨? 찜닭? 닭살? 물론 그런것도 떠오르지만, 나는 왠지 닭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재수를 하겠다고 철 없이 안동으로 내려간 나를 보시기 위해 할머니가 오셨었다. 그 깡촌으로, 그 전 날 엄마가 뭐 먹고 싶냐고 묻기에 아무 생각없이 치킨에 피자라고 대답했었는데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로 치킨과 피자를 사들고 오신 것이었다.

내 방은 셋이 앉기에도 비좁아서 바깥으로 나와서 먹었는데 참 추웠다. 따뜻할 땐 맛있었는데 식어가니까 점점 맛이 없어졌다. (그때 나는 아 그냥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할 걸 하고 후회했다.) 그래도 차마 들고 오신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꾸역꾸역 먹곤 정말 못 먹는 건 냉장고안에 넣고 데워먹겠다 말씀드렸다. 물론 그 치킨과 피자는 몇 점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렸다. 난 참...

할머니는 내가 재수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애초에 그다지 뛰어난 공부머리도 아니었고. 얼른 그냥 취업이나 하기를 바라시는 눈치였다. 근데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환상속에 빠져있었다. 내 고집으로 이루어진 재수결정이었고 도피성으로 떠난 잠적이었기에 할머니의 입장에선 떨떠름하신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으셨다. 차라리 대놓고 말씀하시지.

내가 그 곳까지 할머니가 오신 것을 놀라워했던 이유는, 그 때 할머니가 폐암 환자셨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뭐라더라 열었다가 손 못대고 그대로 닫았다고 하셨던가. 짧은 여행도 힘겨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께선 본인의 몸 상태보다 아무것도 못하고 허우적 대고 있는 아픈 손가락 같은 둘째 손자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하셨던 것이다.

치킨을 먹고 있는 와중에,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니가 잘 되야한다 를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내 자신이 조금 병신같고 조금 또라이같다고 지금 생각한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 이후로 할머니가 나에게 이렇다할 말씀을 많이 한 적은 없다. 특히 고시원 생활을 접고 난 이후론 거리도 멀고, 무엇보다 병원 생활을 하시기 시작하시면서 반쯤은 의식이 없는 생활을 하셨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 할머니의 니가 잘 되야 한다 라는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점차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가면서 특히, 내가 커가면서 점점

지금 모습을 보시면 할머니가 좋아하실까?
할머니가 사준 치킨을 다시 한 번 먹고 싶다.



1


    난커피가더좋아
    영화 집으로 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네요.
    얼그레이
    외갓집과 외갓집 장손이자.. 이번에 재수하게 된 외조카가 생각이나네요.
    애기가 착해서, 합격되면 제일먼저 할아버지께 연락드릴게요! 그랬다고 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고등학교 무렵부터 일정시기는 성적 관련해서 자격지심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켜서 오는 자괴감등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짧은 글이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좋은 추억이나 기억은 오래 남고, 사람은 그런 기억으로 지탱하며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할머니가 요새 아프십니다. 집안 어른들이 강성인 편이라 매번 웃으며 인사하고 고개만 몇 번 숙여보이면 됐던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움푹 들어간 살자리를 마주하고 있기 머쓱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입원하신 병원에 가는 것도 여러 핑계를 대며 도망치게 되는데 어째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뵙는 시간에는 웃는 양으로 손을 맞잡는다지만 다시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또 그러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은데 맘대로 되질 않아 제 자신이 좀 혐오스럽기도 해요. 도망쳐서는 안될 시점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또 도망칠까봐 두렵네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460 창작[19주차] 종이학 2 제주감귤 16/03/24 4134 0
    2456 창작[조각글 19주차] 탄생 1 얼그레이 16/03/23 3803 0
    2430 창작[19주차] 무엇이 우리의 밤을 가르게 될까. 1 틸트 16/03/19 3919 1
    2425 창작[조각글 19주차] 카를과 디르도 6 nickyo 16/03/18 3733 0
    2422 창작[조각글 18주차] 방문 3 얼그레이 16/03/17 3756 3
    2421 창작[19주차 조각글 주제] '무생물의 사랑' 3 얼그레이 16/03/17 4298 0
    2414 창작[조각글 18주차] 풀 베기 2 제주감귤 16/03/16 3674 1
    2395 창작[조각글 18주차] 궁극의 질문 8 마스터충달 16/03/13 3799 3
    2368 창작[조각글 18주차] 카톡 5 까꿀 16/03/10 3949 1
    2365 창작[18주차 조각글 주제] '대화로만 이어지는 글' 1 얼그레이 16/03/09 3865 0
    2362 창작[조각글 17주차]닭상(닭에 관한 단상들] 7 난커피가더좋아 16/03/09 4658 1
    2357 창작[17주차] 닭처럼 날아간 사람들 4 틸트 16/03/09 4032 3
    2355 창작[17주차] 치킨 11 얼그레이 16/03/08 5013 1
    2354 창작[조각글 17주차] 잘 되야 한다 3 레이드 16/03/08 3467 1
    2340 창작[조각글 17주차] 닭에 관한 여러 가지 고찰 11 *alchemist* 16/03/05 5688 2
    2333 창작[17주차 조각글] '닭' 4 얼그레이 16/03/03 4172 3
    2329 창작[조각글 16주차] 5월, 그 봄 2 *alchemist* 16/03/01 4679 3
    2327 창작[조각글 16주차] 만우절 1 얼그레이 16/03/01 3585 3
    2308 창작[조각글 16주차] 친구의 진실 3 nickyo 16/02/28 4373 3
    2116 창작[조각글 13주차] 아재요 깃발 습니까. 5 nickyo 16/01/25 3946 2
    2103 창작[조각글 13주차] 201X년 봄 4 우너모 16/01/23 4323 1
    2098 창작[13주차 조각글] 눈이 예뻐요 9 얼그레이 16/01/23 4013 1
    2096 창작[조각글 12주차] 괜찮아 2 우너모 16/01/23 4300 2
    2080 창작[12주차] SMAP -1- 5 레이드 16/01/21 4221 0
    2079 창작[12주차 조각글] 수경 8 얼그레이 16/01/21 387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