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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22 17:05:58
Name   nickyo
Subject   [9주차 조각글] 주먹밥의 꿈
[조각글 9주차 주제]

조건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글을 써주세요.
1. 음식을 먹는 장면이 들어가야 합니다.
2. 다음에서 제시하는 상황 중 하나 이상을 골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아 주세요.
-1. 떠날 준비를 하는 상황
-2. 신체적 문제로 불편해하는 상황
-3.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하고 싶은 말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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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바 오늘도 이거냐?"


뜨거운 태양이 공장의 옥상을 달구는 여름, 낮에 옥상경비를 맡은 김씨와 몇몇은 오늘도 500ml 삼다수 한 병을 가운데에 두고 주먹밥을 든다. 어제 만들어 놨다는 이씨의 말에 각자 킁킁대며 밥의 쉰내를 맡아본다. 먹고 죽는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에, 먹다 뒤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래씹듯이 어금니 사이로 바스럭 거리는 밥알을 애써 삼킨다. 옥상 여기저기에 놓인 철근 바리케이트가 을씨년스럽다. 카메라를 돌려 식사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뭐가 제일 먹고 싶으세요?"
"된장찌개요. 김치. 된장찌개에 김치.. 양파랑 감자, 애호박 뭉텅 썰어서 바글바글 끓이고 고추 한개 썰어서 뻘건 배추김치에 밥 먹고 싶네요. 밥상에 앉아서.."


그러자 벌써 딱딱한 주먹밥을 반이나 씹어삼킨 이씨가 냉큼 끼어든다.


"야 씨 나는 다 필요없고 맹물에 된장만 끓여줘도 좋을거 같어."


그 말에 다들 실소가 터진다. 그러나 웃음기도 잠시, 이내 말 없이 주먹밥을 씹는 사람들. 싸우기 위해서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몸소 실감하는 이들에게 된장찌개는 꿈이고, 사치이며 이 싸움을 끝내는 '그날'일 것이다.


식량공급이 끊긴지 여러일, 가스마저 끊겨 공장 한 켠에 임시로 마련한 주방에는 전기밥솥만이 백여명의 주먹밥을 위해 일한다.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이렇게까지 하냐는 불만들도 이제는 어느새 익숙하다. 그들도 안다. 바깥에서 식량을, 물을, 의료진을 밀어넣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얼마전에는 공장 담을 생수통을 들고 넘으려던 한 대학생이 경찰에게 걸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허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러니 투덜댐도 길지 않다. 바깥에서는 이들을 무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담아내는 모습들은 아주 평범하고, 보통의 양식있는 사람들임을 자꾸 일깨운다. 그래서 나 역시 주먹밥을 하나쯤 얻어먹게 된다. 식사당번을 맡으신 분들도 이제 이골이 났는지 처음에 비해 야채를 다지고 참치를 비비는 솜씨가 여느 식당공장의 어머니보다 능숙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날 지은 밥으로 주먹밥을 뭉쳐 올렸는지, 다들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먹는다.


"아, 간이 잘맞네 이번건."
"이것도 만들면서 느는거지 뭐."
"돌아가면 마누라가 좋아하겠다 야."


껄껄대며 웃는 사람들. 그러나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천장이 쾅쾅 울린다. 깜짝 놀라 머리 위를 쳐다봤지만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리에요?"
"최루액."


건조한 단어 한 마디에 담긴 비릿한 상념. 그의 종아리 피부가 녹아내려 붉은 살점을 드러내고 있었던걸 찍었던게 어제였는데.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그는 다시 주먹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아, 컵라면 남는거 없나."


없음을 알면서도 아쉬움에 던지는 말들. 여전히 천장은 쾅쾅 울린다. 아 씨발새끼들 밥좀 먹자!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터져나온다. 다들 주먹밥을 숨도 아껴가며 바삐 씹는다. 헬기의 프로펠러소리가 유독 요란하다.  "물 없을때는 가끔 최루액을 먹고싶다는 생각도 든다니까." 며칠 전 옥상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있던 삼다수 병이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며칠 뒤.



드디어 식량과 물, 의료팀의 출입이 허가되었다. 노사간 교섭이 시작된 까닭이다. 먹은걸 싸내고 씻어내는게 가장 괴로웠다는 그들에게 물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것이다. 공장이 축사가 되기 일보직전이었으니 그럴 법도하다. 한여름인데도 비가 한방울 오지 않아 야속했건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나보다. 사람 땀내, 분뇨냄새와 음식냄새, 쉰내와, 쇠와 최루액과 온갖 살고 죽은 것들이 풍기는 냄새들.. 새로 들어온 몇 기자들이 헛구역질을 하고 코를 틀어막는다. 어느새 내가 이 냄새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묘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자리잡는다. 으스대며 그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하자, 또 다른 김씨가 선배질 하냐며 웃는다. 멋쩍다.



새로 들어온 식량은 훌륭했다. 얼마만에 뜨끈한 밥을 앉아서 편안하게 먹어보는건지 모르는 사람들. 자글자글 끓인 된장찌개는 없지만 시래기 넣고 푸욱 익힌 된장국은 그릇 하나 가득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쌀밥, 제육볶음과 김치가 놓인 스티로폼 상자는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얼마만의 휴식일까. 다친 사람들은 치료받느라 여념이 없고, 한 쪽에서는 시원하게 등목을 한다. 배가 고픈이들이 차례차례 밥을 먹고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 눕는다. 그러나 교섭중에도 이들의 경계근무는 끝나지 않는지 몇몇이 다시 옥상과 공장 바깥으로 떠난다.


"오늘은 경계 안해도 되시는거 아니에요?"
"이러다 또 진압들어와요."


그는 마스크를 다시 고쳐쓰며 웃는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들. 어느새 그들은 전쟁에 익숙해져 버렸다. 저녁식사가 어땠냐는 질문에 머쓱하니 좋다고 웃으신다. 그럼에도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젠 진짜 끝나야할텐데. 하고 뇌까린다. 나는 질문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쉬고있는 조합원들을 둘러보았다.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이가 눈에 들어온다. 교묘하게 다친 다리를 가리고 얼굴만을 비춘다. 잘 지낸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의 다리는 한때 괴사직전까지 가서 다리를 절단할 뻔 했다. 그럼에도 공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조합원들은 제발 나가라고 부탁도 하다가, 이내 너 같은 불편한놈은 쓸모도 없다고 매몰차게도 굴었다. 의료진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정말 외발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신씨. 이제 겨우 서른이 조금 넘은 그의 앞길이 어찌 될까 싶어 다들 조마조마 했던 셈이다.





그리고 교섭은 실패로 돌아갔다.
점거중인 해고자들의 복직도 소수만을 '고르겠다'는 회사의 의견을 도무지 받아들일수 없었다고 한다.
교섭에 참여한 간부들은 자신들은 복직을 못해도 되니 참여자들은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걸 일일히 설명치 않아도 조합원들은 묻지 않고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려 애쓴다.
말이나 영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연이 여기에 있다.


공장을 나갈 채비를 하고 싶던 이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그냥 싸그리 와서 한번에 진압하고 밀어버리고..그러고 그냥.."


말 끝을 잇지 못한다. 누군가 화낼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고요한 침묵만이 밤에 흐른다. 누군가가 정적을 깬다. "여기까지 왔는데.." 순간 머리속에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쇠부품으로 만든 구사대의 새총에 맞아 팔이 박살났던 이, 경특공대의 폭력 진압에 옥상에서 떨어져 척추가 부러진 이, 눈이, 귀가, 볼이, 피부가 찢어지고 다쳐.. 절뚝이며 울었던 이들이 한 순간에 떠오른다. 그리고 하나 둘 떠나가던 사람들. "이젠 복직을 시켜준대도 싫어요. 회사가.. 회사가....난 그냥 회사가 싫어. 미안해요." 15년, 20년의 근속으로 우수사원 상장도 잔뜩 모아둔.. 만근보너스 받는게 당연한 사람들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회사가 싫어서 떠난다. 조합원들도, 그들도 서로 원망도 배신감도 없이 그저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남은 이들은 그래서 더욱, 더욱 쉽게 포기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회사의 비열함과 사악함,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공격.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를 끊임없이 가려내야 하는 날들. 이들에게 회사는 무엇이었을까.


"나가셔서 된장찌개 꼭 챙겨드세요."

그는 뜨거운 손으로 힘주어 악수를 하고 떠났다. 철골 바리케이트 사이로 빠져나가는 몸이 저렇게 왜소했었나 싶었다. 등에 맨 작은 가방 하나가 떠나는 이의 모든 짐을 모은 크기라니. 그가 여기에 놓고 가는 것은 무엇이고, 챙겨가는 것은 무엇일까.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기약없는 싸움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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