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6/16 14:57:58
Name   큐리스
Subject   진공청소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
지난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청소를 마친 뒤, 진공청소기를 청소타워에 걸고 무심코 먼지 비움 버튼을 눌렀습니다.
“어? 왜 안 되지… 고장인가?”먼지 비움 알림등이 켜져 있기에 새 먼지 봉투를 찾아봤지만, 집에 여분은 없었습니다.“봉투도 살 겸, 내일 수리를 맡겨야겠다.”

토요일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를 찾아 새 먼지 봉투로 교체했지만, 청소타워는 여전히 잠잠했습니다. 의아해하는 제게 기사님이 말했습니다.“센서 접점에 먼지가 잔뜩 꼈네요. 이 부분도 청소를 해주셔야 합니다.”기사님이 작은 솔로 접점부의 먼지를 꼼꼼히 털어내자, 청소기는 그제야 “우우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먼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불현듯 청소기에게 미안해졌습니다.‘내가 너무 무심했구나.’봉투만 갈면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정작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접점’이 막혀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문득 내 삶의 ‘접점’들은 괜찮은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환기하겠다며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어쩌면 새 ‘먼지 봉투’를 끼우는 것과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관계의 삐걱거림이나 풀지 못한 고민 같은 ‘접점의 먼지’를 그대로 안고 떠난다면, 그 여행은 아무것도 비워내지 못하고 돌아오는 공허한 소음으로 끝나버리겠지요.

마음에 무언가 자꾸 삐걱거리는 신호가 느껴진다면, 소통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그 근원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고장 난 게 아니었던 청소기처럼, 지금의 내 삶도 어쩌면 약간의 세심한 청소가 필요한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5
  • 일상의 통찰은 항상 추천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542 창작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5 Cascade 25/06/22 2326 10
15541 영화아재들을 위한 영화 재개봉 - 클리프행어 삼치 25/06/21 1217 0
15540 사회국내 최고 농구 커뮤니티의 반말 욕설 허용 사건 16 시간아달려라 25/06/21 2004 0
15539 문화/예술니고데모 書에 있는 이야기 10 오르페우스 25/06/20 1548 4
15538 기타[자문단] 나는 어떤 글을 추천하는가? 2 moneyghost 25/06/19 1481 4
15537 일상/생각 넷플릭스를 보다가 찡하고 아려온 백인우월주의자. 1 코리몬테아스 25/06/19 1972 4
15536 정치상반기 KPI 평가중 든 잡념 9 길든스턴 25/06/19 1667 1
15535 일상/생각경험의 주관성에 대해서 6 큐리스 25/06/19 1504 9
15534 일상/생각와이프랑 둘이 같이 연차를 냈는데요.ㅠㅠㅠㅠ 8 큐리스 25/06/19 2066 5
15533 일상/생각읽었다는 증거, 말하지 못한 말 – 응답의 심리와 소통의 변질 9 사슴도치 25/06/19 1597 18
15531 게임우왁굳에 대한 내맘대로 피상적인 이해.. 와 스타여캠 13 알료사 25/06/19 2281 15
15530 철학/종교니고데모 이야기 10 매뉴물있뉴 25/06/18 1620 11
15529 음악[팝송] 크리스토퍼 새 앨범 "Fools Gold" 김치찌개 25/06/18 1104 1
15528 문화/예술[사진]을 찍는다는 것 6 사슴도치 25/06/18 1252 10
15527 일상/생각5개의 아비투스를 지나… 4 골든햄스 25/06/17 1639 5
15526 댓글잠금 기타김재환의 정체에 대한 추측, 그리고 백종원은 아마 이미 알고 있다. 21 단비아빠 25/06/17 2801 1
15525 일상/생각와이프는 언제나 귀엽습니다. 7 큐리스 25/06/17 1656 3
15524 일상/생각진공청소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 1 큐리스 25/06/16 1570 5
15523 기타백종원과 김재환PD의 생사결 19 단비아빠 25/06/16 2782 3
15522 게임[LOL] 6월 15일 일요일의 일정 1 발그레 아이네꼬 25/06/14 1092 0
15521 도서/문학장르소설은 문학인가? - 문학성에 대한 소고 26 meson 25/06/14 2105 12
15520 게임[LOL] 6월 14일 토요일의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5/06/14 1493 0
15519 문화/예술스마트폰과 불안 세대와 K-컬처의 승리 6 바쿠 25/06/13 1650 5
15518 일상/생각감각은 어떻게 전이되는가 – 타인이 그려낸 감각의 지도 4 사슴도치 25/06/13 1607 10
15517 정치만약에..(윤석열과 한동훈, 이명박과 박근혜) 7 Picard 25/06/12 194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