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05/27 01:08:06
Name   nothing
Subject   기계 번역의 성능 향상이 번역서 품질의 저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
본문의 내용은 순전히 저의 뇌피셜입니다.

저는 중고 서적을 자주 구입합니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절판되어 서점에서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책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에 직접 들러서 책들의 먼지내음을 맡으면서 추억 여행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주로 온라인으로 구매합니다.

보통은 사고 싶은 책 하나를 중고서점 사이트에서 검색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팔고 있는 판매자의 서점 코너로 이동해서 다른 책들도 구경하면서 관심가는 책들을 몇 권 더 곁가지로 장바구니에 집어넣습니다.
이는 배송비를 아낄 목적이지만 가끔은 원래 사려고 했던 책보다 곁가지로 샀던 책을 더 재미있게 읽기도 합니다.

최근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원래 사려고 했던 책 A 와 함께 곁가지로 B, C, D 책을 추가로 샀는데, 정작 보고 싶었던 책 A 는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고, 오히려 B, C, D 에 손이 자주 갔습니다.

책 A 는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던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지가 않더라구요. 원문의 문제인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 그도 아니면 조판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 쯤에서 저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책들은 기계 번역을 사용해 오히려 번역 품질이 저하된게 아닐까?"]]

이 가설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책 A가 펴낸지 3년도 채 되지 않는 신간이었고,
잘 읽혔던 나머지 책들이 모두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출판된 책들이었거든요.

언젠가 지인 한 분이 기술 도서 번역 썰을 풀면서, "DeepL 같은 번역기를 사용해 초벌 번역을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번역에 큰 품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게 떠올랐습니다.
이 썰 덕분에 기계 번역이 오히려 번역서의 품질 저하를 유발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심증을 더욱 강화시킨 것은 최근에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초에 기술 서적 한 권의 베타 리딩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 서적의 번역서였는데 극한의 번역체 때문에 베타 리딩 과정이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곳곳에 기계 번역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거든요.

물론 그 책은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는 했습니다. 구어체에서나 자주 쓸 법한 표현들, 그리고 영미 문화권의 경험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관용적 표현들이 꽤 많았거든요.
문제는 그러한 표현들이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려는 노력 없이 그대로 직역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기술 서적은 보통 전문 번역가가 맡기 보다는 번역에 재주가 있는 해당 기술 분야의 전문가가 맡게 마련이므로,
이런 구조상 번역 품질의 한계는 있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운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경험들이므로 이 가설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하지만 기계 번역은 LLM 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성능이 좋아지고 있고,
출판 도서 시장의 성장세는 처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번역가의 처우도 2~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하구요.
이러다보니 내가 만약 번역업체 사장이라 하더라도 기계 번역의 비중을 점점 더 높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86 문화/예술fan letter for BBoy The End, BBoy Born 3 No.42 20/02/14 4642 6
    8211 기타메르스와 메갈 4 nonviolent11 18/09/12 5644 0
    8868 일상/생각소설책과 19금 4 NOORY 19/02/16 4355 0
    12127 생활체육여성 운동화/스니커즈 리뷰? 4 NOORY 21/09/30 3832 3
    9871 일상/생각도움을 주며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0 nothing 19/10/22 3807 30
    10259 일상/생각40대 이후의 삶에 대해. 15 nothing 20/02/03 5486 2
    10685 일상/생각재미난 지인이 하나 있습니다. 12 nothing 20/06/14 4813 2
    10921 일상/생각게임을 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네요. 7 nothing 20/09/03 4521 4
    11063 일상/생각공무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7 nothing 20/10/16 4076 22
    11066 일상/생각SNS 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4 nothing 20/10/18 3851 0
    11073 일상/생각시래기 순대국을 먹고 왔습니다. 15 nothing 20/10/18 4217 11
    12244 IT/컴퓨터변화무쌍한 웹 기술 역시 톺아보기 - 1 13 nothing 21/11/05 3994 7
    12524 일상/생각길 잃은 노인 분을 만났습니다. 3 nothing 22/02/18 3409 35
    12683 도서/문학영화와 소설 "뜨거운 피" 감상평 (노스포) 1 nothing 22/03/30 3577 2
    12701 일상/생각이직 여행기 5 nothing 22/04/07 3671 6
    12763 일상/생각나는 재택 근무에 반대합니다. 24 nothing 22/04/30 4445 23
    12770 일상/생각개인적인 이직 면접 꿀팁 6 nothing 22/05/03 4048 6
    12879 일상/생각손절의 시대 24 nothing 22/06/01 5077 49
    14032 일상/생각생애 첫 책의 원고 작성을 끝마쳤습니다. 12 nothing 23/07/11 2593 20
    13492 일상/생각다세대 주인집 할아머지의 손자에 대한 기억 3 nothing 23/01/19 2407 4
    14009 일상/생각비둘기야 미안하다 13 nothing 23/06/29 2431 7
    14346 일상/생각잊혀진 편의점 알바의 스킬 1 nothing 23/12/20 1507 4
    14455 일상/생각인사고과와 사회적 가면에 대한 생각 6 nothing 24/02/13 1808 8
    14705 일상/생각기계 번역의 성능 향상이 번역서 품질의 저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 4 nothing 24/05/27 1366 3
    14955 일상/생각군 인트라넷 내 "책마을"의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7 nothing 24/10/03 770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