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10/21 19:42:19수정됨
Name   Iowa
Subject   성 상품화에 관한 뻘글_ 나는 왜 성 상품화를 싫어할까?
0. 서론. 나는 왜 긴 뻘글을 썼는가.


최근 어떤 기사를 읽고, 한 사건 및 이와 관련된 '성 상품화'에 대한 엄청나게 상반되는 의견을 접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 개최해오던 '누드 촬영'행사가 성상품화 논란으로 중단되었다는 기사입니다.
대충대충 보면 남성/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성 상품화가 뭐가 문제냐' '한국이 또 한국 했네' 같은 폐지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 여성/여초 커뮤니티에서는 '혐오스러운 축제다', '지자체 예산으로 저딴것만 하고'같은 행사에 대한 혐오/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이 와중에 저는 '아저씨'에 대한 약간의 비하적인 뉘앙스의 댓글을 남겼고, 성 상품화와 해당 행사가 무슨 문제냐는 댓글이 빗발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일에 비꼬는 댓글을 남긴 셈입니다.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을 한 점과, 왜 그런 댓글을 남길 정도로 해당 행사에 대해 격앙된 감정이 들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단 성 상품화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는 입장입니다. 청소년기 이후로 여러 형태의 성매매, 유사성매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자연스럽게(사회적 통념으로 학습된 것인지 보다 본능적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 관련 산업과 일정 수위 이상의 성 상품화에 대해 혐오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변 여성들의 경우는 대부분 저와 비슷하거나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성매매/고수위의 성 상품화를 혐오하는 경향을 보였고(보수적인 친구나 퀴어프렌들리하고 개방적인 친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성들의 경우는 '그게 왜 나쁘냐(성매매, 성상품화의 긍정 및 적극적인 이용)'에서부터 '난 그런 데 안가(약간의 혐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목격했습니다.

우선 '성매매'는 도덕적인 논란을 떠나 현행법상 범죄 취급되니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수위로 보이는 '누드 사진대회'나 '리얼돌' 등의 이슈에서조차 가치판단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성적인 주제에 대한 솔직한 의견은 주로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양극화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론이 길었으나, 본 글은 '내가 왜 성 상품화를 싫어하는가'에 대해 탐색하는 한편, 대다수의 여성들이 성 상품화를 경계/혐오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에도 의미를 두려 합니다. 이 글의 대상은 아마도 생물학적 남성이 될 것 같으며, 여성분들은 경험적으로 딱히 부가 설명이 없어도 성 상품화에 대해 '당연히'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성애적인 구도에서 생물학적 여성/생물학적 남성을 일반화하여 가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골 떡밥은 차단합니다.
* '재범오빠 찌찌파티' : 그만 우려먹읍시다.. 여자 아이돌이나 섹시한 사진에 뭘 어떻게 하고 싶다는 댓글 모으면 몇 트럭은 나올 겁니다.
* BL물 RPS : 야동보는 남자 비율보다 훨씬 적을 겁니다. 아닌가요... 기회가 되면 통계를 구하고 싶군요.)




이론 1. 시장을 점유하는 대부분의 성 상품화의 구도는 여성의 성을 남성에게 판매하는 데에 있다.


'성 상품화'에 대한 정의를 찾기 위해 대충 구글에 '성 상품화' 관련하여 검색했을 때 눈에 띄는 항목들에서 '성 상품화'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나무위키 말고는 성 상품화의 문제를 다룬 아티클나 학술자료가 대부분이네요.

소비자의 관심과 호감을 높이기 위해 인간의 성적 매력을 상품 속에 투영하여 부각시키는 것. - 나무위키

여성의 성상품화는 여성을 대상화하여 피해자로 만들어 낸다는 것만이 아니라 몸에 대한 표현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권력관계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대중문화의 성상품화와 인권 ', 2003

성 상품화는 외모나 성적 매력이 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도록 만든다. 동시에 여성의 외모에 대한 획일적이고 왜곡된 이미지, 즉 날씬하고 마른 몸에 대한 이미지를 퍼뜨림으로써 다수 여성들이 자기 몸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다수 여성들은 일상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외모를 가꾸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도록 내몰린다. 〈겟잇뷰티〉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외모를 가꾸는 게 마치 여성의 본분인 것만 같다... 이 모든 일들은 젊은 여성뿐 아니라 나이든 여성도 압박하고, 동시에 나이든 여성에 대한 비하로도 이어진다. - 기사 '성 상품화 ― 성의 자유인가 여성 차별인가?' , 이현주, 2016

마지막에 인용된 기사는 여성 입장에서 성 상품화가 가지는 의미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여성 성 상품화 -> 상품의 '성적 매력'에 대한 판단기준 -> 모든 여성이 '성적 매력' 기준으로 상품으로 판단될 수 있는 가능성

최근에는 남성 성 상품화로 남성들도 상품화의 굴레에 빠져들긴 했습니다만...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상품 취급받았습니다. 외모에 '하자'있는 신부감의 경우 값어치가 확 줄어들죠. 저도 아버지께 약간의 '시술'을 권유받고 지원받았습니다. 부모님이 성형이나 시술을 권해서 딸의 가치를 높이는 일도 아주 흔하지요.
저런 것에 무감각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본인이 상품 취급받는 것에 민감해진 요즘 여성들은 페미니즘 도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우러러 모십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상품감으로 취급받던 경험에서부터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우수 상품'들, 여자는 몇 살까지만 팔린다(요즘은 줄어들었죠), 공부 잘해 뭐하냐 시집 잘 가는게 최고다.. 페미니즘 서적에서는 이러한 경험들이 내포한 상품화의 의도를 속속들이 파헤칩니다. 요즘 네티즌들이며 방송가들이 피곤해진 이유입니다. TV속 우수 상품들이 받는 취급과 본인들이 사회에서 받을 취급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피곤해진 게 맞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던 전통적인 시스템에 불만이 제기된 것이니까요. 사실 여자 입장에서도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상품 시스템에서 어여쁘고 우수한 일등 상품이 되는 것이 인생 살기 제일 쉽습니다. 그럼에도 외적으로 '일등 상품'인 여성들부터 '하등 상품'인 여성들까지 페미니즘에 심취해 본인이나 타인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결국 '내 ㅈ대로 살겠다' 아닐까요.

위와 같은 투쟁 과정에서, 성 상품화 문제 제기에 주로 남성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본인들의 서비스 이용 행위를 통제받고 권리를 침해받는 데에 위협을 느껴서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측면으로는 현재의 성 상품화 관련 논쟁이 양성간의 권력 투쟁으로 흘러가는 것이 어느 정도 맞기는 한 것 같습니다. 실제 여성에게 손끝 하나 안 대는 것 같은 미소녀 일러스트가 현실 여성에게 주는 영향은? 놀랍게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을 일반화하는 데 기여하여 여성에게 상품 기준을 덧씌우는 것이죠. 이러한 개별 성 상품들이 여성에게 주는 손해와 남성에게 주는 이득을 저울질하면 깔끔하게 결론이 날 것인데요, 아쉽게도 그렇게 정량화하기 쉽지 않군요.



이론 2. 여성들은 가정에서 몇십 년간 성적으로 훨씬 보수적인 교육을 받는다.

(주의 : 개인적인 경험 위주입니다)
요즘 애들은 어떤지 모릅니다. 훨씬 개방적이겠지만, 가정에서 딸 키우는 태도와 아들 키우는 태도가 성적 개방성 면에서 반전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라때만 해도.. 잘 만나고 있는 착하고 매력적인 남자친구와 관계를 가져도 되는지 저를 비롯해 수많은 여학생들이 몇날 며칠 고민했습니다. 주변에 주로 범생이 집단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같은 여자들끼리도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진 여자는 문란한 걸레 취급을 했고, 결혼 전에 순결을 잃는 것이 미래 남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엄청난 두려움으로 자리잡았어요.

그때 당시 제 학교 커뮤니티였던 모모 라이프에서는 '여친이 관계를 거부할 경우 헤어져야 하나' 론과 '처녀 논쟁'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떡밥이었습니다. 저 두 가지가 같은 남자의 가치관이면 ㄱㅅㄲ취급해도 될 테지만 아마 다른 인물들이겠지요. 논란의 핵심은 남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이중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어떤 남자에게 걸리냐에 따라 '당연히'성관계를 요구받을 수도 있고, '당연히'처녀성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남자에게 반대로 성적인 순결성에 대한 강요는 드물죠. 관계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자에게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남성의 문란함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여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1번의 남자친구와 만나서 열심히 관계하다 헤어지고 결혼 적령기에 2번 남자를 만났는데 순결로 공격을 받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2번같은 찌질이는 논외로 치겠지만, 약 20년간 순결 교육을 받아온 여학우들은 이게 농담 같지가 않았습니다.

성적인 행위 자체에 두려움을 가진 여성들에게 '성매매'나 '유사성행위'를 구매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상대와 경험하기에도 사회적인/육체적인 리스크가 큰 행위이니까요. '성행위'자체를 금기시 하는데, 그것이나 관련된 성적 요소들을 상품화하는 일에 대한 정서는 어떨까요. 도덕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탄받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아래 세대는 보다 나은 성교육과 여러 매체를 접해 나아질 것 같습니다만, 가정~학교~사회로 연결되는 울타리에서 여성에게 허용되는 성적 자율성이 남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반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적 자율성' 개념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시각도 등장하고 있지요. '자유롭고 쿨한 여성'이 되려면 두려움 없이 가벼운 성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런 시각이 어린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분석인데, 우리나라보다 성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미국 쪽에서 등장한 시각입니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 이런 성 엄숙주의적인 이론의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져도 여성들의 성적인 적극성이 남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네요.



3. 소결. 여성들의 보수성과 성 대립 구도. 해결책은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딱히 이론적인 권위도, 학술적인 지식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끔 느끼는 세상의 괴리를 설명해보려 길게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성상품화를 반대하는 여성'들은 교육받은 보수성과 본인들의 상품화의 거부, 이 애매한 것들이 복합된 어떤 지점에서 성상품화에 경계를 느끼고 배척하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성상품화라는 단어만 나오면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이해하실 수도 있고, 아니 저딴 이유로 잘 나오고 있는 매체들을 망쳐놓느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나 어느 외딴 곳의 성적인 행사 같은 것이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사실 이 문제가 합의가 가능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고, 각자의 시각은 영원히 평행선을 흐를지도 모릅니다. 10년 후의 세상은 어느 지점에서 평형을 이루고 있을까요. 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키보드 파이터들이 이런 뻘글을 써제낄지는 모르겠습니다.



31
  • 맞말추
  • 발제 감사합니다 ㅎㅎ
  • 생각해봐야 할 담론으로 추천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정리가 너무 잘됐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284 요리/음식(내맘대로 뽑은) 2020년 네캔만원 맥주 결산 Awards 36 캡틴아메리카 20/12/27 5975 32
11276 일상/생각어느 택배 노동자의 한탄 11 토비 20/12/26 4132 32
11828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5 순수한글닉 21/06/29 4401 32
10815 의료/건강벤쿠버 - 정신건강서비스 4 풀잎 20/07/25 5396 32
9874 일상/생각착한 여사친 이야기 9 Jace.WoM 19/10/23 5587 32
9788 기타참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29 김독자 19/10/07 5305 32
9419 사회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적정비용을 찾아서 35 Fate 19/07/10 6768 32
8008 일상/생각알기만 하던 지식, 실천해보기 9 보리건빵 18/08/06 4414 32
7922 정치노회찬씨의 죽음에 부쳐 9 DrCuddy 18/07/23 4892 32
6590 일상/생각무죄 판결 20 烏鳳 17/11/14 5547 32
5730 기타사람은 아픈만큼 성숙해지지 않는다 11 소맥술사 17/06/01 5873 32
5342 기타부쉬 드 노엘 13 소라게 17/03/28 4805 32
4783 일상/생각고3 때 12 알료사 17/02/06 4141 32
15028 도서/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92 31
15025 생활체육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65 31
15022 기타[긴급이벤트] 티타임 따봉 대작전 (종료) 19 dolmusa 24/11/05 1140 31
14006 과학/기술유고시 대처능력은 어떻게 평가가 될까? - 위험 대응성 지표들 18 서포트벡터 23/06/26 2856 31
13257 댓글잠금 일상/생각성 상품화에 관한 뻘글_ 나는 왜 성 상품화를 싫어할까? 192 Iowa 22/10/21 10096 31
12859 일상/생각형의 전화를 끊고서, 진토닉 한 잔을 말았다. 4 양양꼬치 22/05/26 3453 31
12556 기타[홍터뷰] 기아트윈스 ep.1 - 닥터 기아트윈스 28 토비 22/02/28 4060 31
11775 역사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70살에 재상이 된 남자. 백리해. 17 마카오톡 21/06/10 5134 31
11264 정치편향이 곧 정치 19 거소 20/12/23 5117 31
10655 일상/생각공부하다 심심해 쓰는 은행원의 넋두리 썰. 10 710. 20/06/06 5873 31
10556 일상/생각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9 켈로그김 20/05/06 4206 31
10253 의료/건강입국거부에 대한 움직임 변화 49 Zel 20/02/02 7253 3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