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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8/04 15:50:49
Name   Picard
Subject   [영양無] 양심이 무뎌지면...
안녕하세요. 중견기업 중년회사원입니다.

거늬여사 논문 뉴스를 보고 떠오르는대로 쓰는 글입니다.

1.
저희는 그래도 중소가 아니라 중견이라 저희보다 작은 업체에게는 '갑'입니다.
수많은 '을'들에게 용역이든 물품이든 공급을 받고 청구서를 받아서 결재를 올리면 다음달에 현금 또는 어음이 지급되는 프로세스입니다.

제가 신입때 깜빡하고 매달 정산해줘야 하는 업체의 청구서를 결재 안올린적이 있습니다. (마감시간까지 결재가 끝나지 않으면 그달 처리가 아니라 다음달 처리로 넘어가기 떄문에 돈이 한달 늦게 나갑니다.)
물론 업체 담당자분들은 '아유~ 괜찮아유~ 한달 늦게 받는다고 회사 망할거 같으면 사업 안해야쥬~ 다음달에 두달치 들어오는거쥬~?' 하고 넘어가줬습니다만... 팀장에게 불려가서 깨졌습니다.
'너 같으면 회사에서 이번달 월급 깜빡했네. 다음달에 두달치 줄게? 괜찮지? 하면 정말 괜찮겠냐? 그 사람들도 직원들 월급주고 회사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매달 들어와야 하는 돈이 안들어오면 얼마나 힘들겠냐'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비용에 관한 결재만큼은 절대 마감을 넘기지 않습니다.

옆팀에서 신입이 마감 전날 결재 올리고 챙기질 않아서 마감시간까지 결재가 안 끝났습니다. 이 친구는 '난 마감 전날 결재를 올렸는데 윗분들이 꾸물거린걸?!' 할지도 모르겠지만, 마감 전날 결재 올린게 자랑도 아닐뿐더러 이런 경우 결재권자들을 일일히 찌르면서 굽신굽신 '저 늦게 올려서 죄송한데 마감이 얼마 안남아서 결재좀.. ' 하고 다녀야 합니다.
마감시간까지 결재가 안 끝났는데 처리를 해야 하면 사유서를 CFO까지 결재 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결재권자들마다 한마디씩 하시겠지요. 그리고 사유라고 적을 만한 것도 없고요. 그냥 담당자가 게으르고 결재권자들이 못 본거지..

그래서 옆팀장이 업체에 전화해서 '아이쿠 죄송한데 한달 늦게 돈이 나갈거 같아요? 괜찮죠?' 하고 뭉갰습니다.
이러면 신입은 뭘 배울까요?

이러니까 '이번달 예산 초과했으니 그건은 다음달에 올려' 같은 소리를 굉장히 쉽게 하는거죠.
제 뒷자리 담당자는 업체에 줘야할 돈을 6개월 넘도록 처리 못하고 있습니다.


2.
양심이 무딘 후배 A과장이 있었습니다.
눈앞의 싸움을 이기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 하는걸 '순발력'이라고 포장했고, 자기 일의 성고를 위해 규정/법규를 슬적 어기는 짓도 자주 했고 그걸 '스마트한 일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다 회사를 위한 일이다' 라고 큰소리 쳤지요.

이 친구가 왜 이러나? 궁금했는데...
대학원 시절 논문대필을 해주면서 용돈을 벌었고, 신입때는 윗분들이 곤란한 상황에서 거짓도, 진실도 아닌 보고서를 쓰면서 뭉개는 일처리 방식을 보면서 저게 일 하는 방법이구나 하고 생각했더라고요. 그런데, 내로남불이라고, 윗사람들이 자기가 진실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닌 방법으로 일처리 하고 쉬쉬하는걸 신입이 배워서 따라하면 그걸 좋아라 하겠습니까? 아이고 영리한 친구가 우리 팀에 왔네? 잘 키워야 겠어! 하겠습니까?

그러다보니 1-2년마다 부서가 바뀝니다. 인사기록을 보니 팀을 두번 바꾸고 세번째 팀에서 3년동안 고과도 좋게 받고 승진도 하고 그랬더라고요. 그러다가 부서장이 바뀌고 다시 고과가 떨어지더니 방출을 당했습니다.
술먹으면서 들어보니... 그때 10년동안 생산량 목표 달성했다고 허위보고하고 숫자만 존재하는 재고를 매달 조금씩 조금씩 처리했고 부서장이랑 공장장이 고생한다. 다음에 네가 원하는 부서 보내줄게 하면서 고과도 잘주고 승진도 시켜주고 하면서 잘한다 잘한다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부서장 바뀌고 공장장 바뀌고 나서 새 부서장이 그 사실을 알고 이런짓 하지 마라고 하니까 '아니 그럼 이걸 한방에 터트려서 다같이 죽자는 겁니까??' 라고 대들었고, 그 뒤로 그렇게 허위숫자 넣고 빼고 하는걸 새 부서장이 못하게 하면서 갈등이 일어나서 고과 나쁘게 받고 방출 당했다는 스토리였습니다.

이 친구는 이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게 회사를 위한 일이고, 일을 잘하는 거라고 박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뒤에도 1년마다 팀 옮기다가 저희 팀으로 왔는데, 저랑 일할때도 이 문제로 충돌이 많았습니다.
'팀장님은 모르고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라면서 허위 공문을 만들고 허위 성적서를 만드는데 기겁을 했지요.

영업놈(!)들이 급한거 있으면 제가 아니라 A과장에게 찾아가서 '어떻게든 해주세요' 라고 합니다. 구두로요.
그럼 또 이친구는 '아, 이 새X들.. 형님만 믿으라고!' 하면서 말도 안되는 짓을 해서 결재를 해달라고 해요.
'팀장님. 영업이 물건을 팔겠다는데 우리가 빨리 대응을 해줘야지, FM 대로 한다고 시간 잡아 먹으면 안됩니다. 뭐가 회사를 위한 일인지 아셔야 해요' 라고 협박도 하죠. ㅎㅎ
이렇게 야생마 같은 팀원 어르고 달라고 윽박지르고 해서 선 넘는 짓을 못하게 한다고 했지만, 나 모르게 막 저지른 일도 있고...
그러다가 제가 팀장에서 짤렸습니다. 그때 이 친구가 송별회식하면서 '제가 얘기 했잖아요. 회사일 너무 FM으로 처리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된겁니다. 회사는 팀장님 보다 나같은 사람을 원해요' 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얼마전에 새 팀장이렁 뭐가 삐끗했는지 지금 대외 업무(혼자 지르면 리스크가 따르는 업무) 다 손 떼고 사무실에서 보고자료 만들고 내부 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팀장에게 대들었다는데...


그래서... 양심이 무딘 사람이라고 알려지면 결국 지 손 안 더럽히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꼬이더라... 나도 100% 법/규칙 지키며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사람으로 보이는게 좋겠더라...
라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P.S) 사실 거늬여사 논문 이슈 초기때 A과장이 '저거 돈 있는 사람 다 하는 일이다. 나도 논문 대필해주면서 용돈 벌었다. 저런 사람들 논문은 심사도 빡시게 안한다'라고 했고, 저도 제 친척 어르신중에 비슷하게 박사 따신 분이 있어서 '저기 큰 흠결은 아니지만 걸렸으면 가야지?' 라고 했는데... 이걸 국민대가 OK 해주다니..
지금 일부 박사님들은 '나도 이제 걸리면 거늬여사는요?!' 해야지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난 영부인 아니니까 걸리면 안된다 하고 있을까요.  
저의 양심의 선도 상식적인 수준의 선보다 훨씬 나아가 있는건 아닐까.. 고민됩니다.






8


    양심이 찔릴 때는 적당히 따끔한 게 아니라 요로결석 쯤 되는 고통이라야 할텐데...
    헬리제의우울
    연줄이 충분히 굵다면
    걸려도 유지할 수 있다
    찐타님
    기시감이 들어 찾아보니
    예전에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직원 이야기를 쓰신적이 있네요 ㅎㅎ
    그분 결국 안 짤리고 회사에 남으셨나보군요

    아직 사회초년생에 해당하는 나이다보니 사내정치 스토리 흥미진진합니다
    켈로그김
    이쪽 바닥에서도 이익이 곧 양심이라는 태도를 자주 목격하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ㅋㅋ
    1
    직접우린밀크티
    비용은 제 날짜에 지급이 되어야죠 신뢰의 기본이니까....맞는 말씀입니다
    Paraaaade
    영양가ㅡ많은 글이네요. 저도 요즘 느낍니다. 좋은게 좋은거리고 넘어가는게 사실은 결코 좋은게 아니라는것을....

    한 번 두 번 타협하면 나중에 크게 돌아올 때가 있더라구요.

    항상 자신의 중심, 정도를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공감합니다. 그론데 더 웃긴 현실은 그렇게 양심과 타협 잘하는 사람들이 남들의 흠결엔 칼 같은 잣대를 들어 공격을 잘한단 말이지요.. 그냥 얽히지 않는게 좋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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